대통령과 국회 대충돌은 여소야대 대통령제의 치명적 결함
5년 단임제와 헌재의 탄생, 임계점 이른 87년 체제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 필요
대선과 총선 동시선거·근접선거의 효과
분권형 대통령제? 이원제의 또 다른 이름일 뿐
탄핵 남발 다수당 횡포의 견제 장치 = 국회해산제
정치에 오염된 헌재의 존립 위기
개헌, 무조건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양건 전 감사원장. [박해윤 기자]
양건(78) 전 감사원장이 2018년 5월에 펴낸 ‘헌법의 이름으로’(사계절)에서 1987년 6월 시민혁명이 탄생시킨 ‘87년 헌법’의 현실을 평가한 대목이다. 그가 이 책의 집필을 시작한 2017년에 ‘촛불항쟁’이 일어났다. 국민주권 등 ‘헌법의 이름으로’ 시위가 이어지고, 급기야 ‘헌법의 이름으로’ 국가원수가 쫓겨나는 경천동지할 광경이 벌어졌다.
애초 헌법의 역사를 포함한 헌법 해설서를 쓰고자 했으나 87년 헌법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자연스럽게 촛불항쟁의 헌법론으로 이어졌고, 2018년 당면 과제였던 개헌 문제까지 짚어보느라 색인을 포함해 620쪽에 달하는 방대한 저작 ‘헌법의 이름으로’가 탄생했다.
그로부터 8년, 우리는 또다시 ‘헌법의 이름으로’ 펼쳐지는 극한의 대결정치를 목도하고 있다. ‘지난 30년간’을 ‘지난 38년간’으로 숫자만 바꾸면 놀랍게도 이어지는 문장은 토씨 하나 바꿀 게 없을 정도다. 여소야대 상황에서 대통령과 국회의 대립, 국정 정체, 정치의 사법화 현상은 더욱 심화했다.
1947년생, 한국 헌법학의 거목이라 불리는 노 법학자는 2008년 국민권익위원회 초대 위원장에 이어 2013년 8월 제22대 감사원장직을 끝으로 공직 생활을 마친 뒤, 평생을 천착해 온 법사회학·법철학 연구와 집필 활동에 집중했다. 2022년에는 ‘하산 길’이라는 제목의 회고 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제왕적 대통령제 버리자? 외양간 고치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꼴
그가 오랜만에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낸 것은 지난해 11월. 헌정 사상 최초로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이 추진되자 전윤철, 김황식, 양건, 황찬현, 최재형 등 역대 감사원장들은 “헌법 정신을 존중해 감사원장 탄핵 추진을 중단해 주기를 촉구한다”는 내용의 공동 성명서를 발표했다(11월 29일). 그러나 12·3비상계엄 선포 직후인 12월 5일 최재해 감사원장에 대한 탄핵안은 이창수 중앙지검장, 조상원·최재훈 검사에 대한 탄핵안과 함께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어서 박성재 법무부 장관, 조지호 경찰청장, 윤석열 대통령,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국무총리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줄줄이 가결됐고, 모든 판단은 헌법재판소로 넘어갔다.
2025년 1월 현재 헌법재판소에 계류 중인 탄핵심판 사건은 10건. 1988년 헌재 개소 이래 2023년까지 접수된 탄핵심판이 총 7건에 불과했던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변화다. 장기화 중인 탄핵 정국에서 인터뷰를 고사하던 양 전 원장이 어렵게 입을 열었다. “지금 시점에 헌법학자로서 제도의 문제인 개헌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87년 헌법’은 시효를 다했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리고 있다.
“개헌은 해야 한다. 임계점을 넘었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개헌은 필요하지만 지금의 정치 상황을 보면 개헌을 해봤자 효과가 있을까 회의적이긴 하다. 최근 완전히 대통령제를 버리고 내각제, 이원정부제(양 전 원장은 ‘이원집정부제’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라고 했다)로 가자는 주장이 부각되는데, 일견 당연해 보이지만 이럴 때일수록 한쪽으로 쏠리지 말아야 한다. 즉 내각제, 이원제의 좋은 면, 좋은 결과만 보지 말고 ‘잘 안 되는 경우’를 더 중대하게 숙고해야 한다. 대통령제를 유지했을 때의 위험성과 내각제나 이원제를 채택했을 때의 위험성을 비교해 보라. 오작동의 위험이 어느 쪽이 더 작은가. 새로운 제도를 채택할 때는 네거티브 관점을 심사 기준으로 삼는 게 옳다고 본다. 우리의 국회, 국회의원, 정당 수준에서 내각제든 이원제든 위험한 도박이다. 자칫 외양간 고치려다 초가삼간 태운다.”
2018년 펴낸 ‘헌법의 이름으로’에서 87년 헌정 이래 성공한 대통령이 없는 이유는 대통령제의 실패라기보다 대통령 ‘5년 단임제의 부작용이 컸다’고 분석했다.
“전 세계적으로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드물다. 왜 이렇게 희소한 제도를 택했을까. ‘헌법의 이름으로’에서도 이 부분을 언급했는데 1987년 여야 정치인들이 모여 급히 헌법안을 만들다 보니 생겨난 치명적 결함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 여당이었던 민정당은 6년 단임제를, 야당 민주당은 4년 중임제 및 부통령제를 제시했으나 어떤 이유에서인지 협상 결과 5년 단임제로 귀결됐다. 여기엔 정략적 계산, 즉 선거에 패배할 경우 향후 집권 가능성을 염두에 뒀지 않겠냐고 추측만 할 뿐이다. 5년 단임제는 평화적 정권교체를 통한 민주화의 정착이라는 정치적 성과를 거뒀지만 국정의 효율성을 떨어뜨리고 국정 조기 단절, 국정 불연속성이라는 폐해를 가져왔다.”
87년 헌법 시행 이래 여소야대 현상이 빈발하게 된 원인도 대통령 5년 단임제와 관련 있나.
“여소야대 현상을 유발하는 요인 중 하나인 것은 맞다. 국회의원 4년 임기와 불일치하기 때문에 대통령 임기 중 치러지는 총선은 중간선거의 성격을 띤다. 중간선거는 집권당에 대한 비판 여론이 강세를 이루기 마련이고, 그 결과 여소야대가 통례가 됐다. 여대야소를 단일정부, 여소야대를 분할정부 또는 분점정부라고 하는데, 분점정부하에서 대통령과 의회의 대립은 대통령제가 지닌 가장 큰 취약점이다. 노무현 대통령이 ‘대통령 못 해먹겠다’고 무력감을 토로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각각 민주적 정당성을 지닌 대통령과 의회가 ‘정당성의 충돌’을 할 때 제도적으로 해결할 방법은 무엇일까. 의회와 협치를 이끌어내는 대통령의 리더십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 과연 한국의 정당 내부 구조와 정치 문화에서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대통령에 대한 불만 표출의 장이 된 중간선거
1988년부터 2024년까지 10차례 국회의원 총선(13~22대 국회)이 치러졌다. 13~16대까지 4회의 총선 결과는 모두 여소야대의 분점정부였고, 17~19대는 거꾸로 여대야소의 단일정부가 됐다. 2016년 20대는 다시 분점정부로 회귀했다가 2020년 21대는 단일정부, 2024년 22대는 분점정부로 돌아가기를 반복하고 있다. 87년 체제에서 우리는 단일정부 4회, 분점정부 6회를 경험했다.
양 전 원장은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선거가 동시에 이뤄지는 동시선거, 또는 두 선거의 선거일이 근접한 근접선거의 경우 단일정부를 가져오는 것이 상례이고, 반대로 중간선거의 경우 총선은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불만 표출의 마당이 되고, 그 결과 분점정부를 유발하는 것이 보통이다”라고 설명했다.
4년 중임 대통령제와 대선·총선 동시선거가 해법이 될 수 있을까.
“프랑스는 대통령과 수상(총리)이 서로 다른 정당에서 나오는 동거정부 하에서 국정이 마비되는 현상을 몇 차례 겪고 2000년 개헌을 했다. 대통령 임기를 7년에서 5년으로 단축해 하원의원 임기와 맞추고, 대통령선거 한 달 이내에 의원 선거를 치르도록 하는 근접선거로 바꿨다.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지만 여소야대 현상을 줄이는 데 상당한 효과를 보았다.”
대통령을 견제하기 위해서라도 중간선거는 필요하지 않나.
“대통령 견제라는 순기능보다 분점정부로 인한 국정 정체의 폐해가 더 크다. 중간선거라는 순기능은 지방선거에 맡기는 게 낫다.”
4년 중임 대통령제의 독재나 포퓰리즘 가능성은 없나.
“4년 중임이나 5년 단임이나 독재의 위험은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중임이라는 것 자체가 1기에 대한 심판적 의미가 있다. 중임제에선 대통령이 첫 임기에 인기 정책만 펼칠 거라고 우려하는데 때로는 오히려 인기 정책을 좀 하더라도 괜찮지 않은가. 거듭 얘기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대선과 총선의 동시선거 또는 근접선거를 통해 국회의원 선거가 중간선거가 되는 것을 배제하는 개헌이 필요하다.”
결선투표제 도입으로 연립 가능하게 해야
이번 비상계엄 선포와 관련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라고 한다.
“87년 헌법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주장은 엄격히 말해 잘못이다. 우리 헌법이나 법률이 규정한 대통령의 권한이 미국 등에 비해 ‘제왕적’이라 할 만큼 강하다고 보지 않는다. 제왕적 대통령이라고 하면 달리 말해 권위주의적 정치를 했다는 것인데, 그것은 대통령제가 안고 있는 본질적 요소다. 미국에서 왕 대신 만든 자리가 대통령이므로 태생적으로 권위적일 수밖에 없다. 전 국민이 직선으로 뽑는 유일한 공직으로서 대통령에게 따르는 권위는 말할 수 없이 크다. 여기에 우리의 위계적·수직적 문화가 결합돼 미국보다 훨씬 더 권위적인 대통령을 만들었다. ‘헌법의 이름으로’에서 이런 제왕적 대통령상은 김영삼, 김대중 대통령 시대에 현저했다고 했다. 두 대통령은 국회 권력까지 제압했다는 점에서 제왕이라는 칭호에 어울린다. 박근혜 대통령의 몰락은 과거 권위주의 시대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 비극이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일부 개헌론자, 특히 대통령제 폐지론자의 과장된 수사라고 생각한다. 다만 대통령에게 주어진 제도상의 권한 자체보다 그 권한을 남용하는 것이 문제다. ”
대통령의 권한 남용을 막을 견제 장치는 필요하지 않나.
“대법원이나 헌법재판소 등 헌법기관의 구성에서 대통령의 관여를 축소하는 방안, 또는 대통령의 사면권 행사에 대한 통제 방안 등을 통해 국정 운영의 민주성을 높일 수 있다. 예를 들어 감사원 인사에서 5급 이상은 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돼 있다. 원장이 5급조차 임명할 수 없다는 얘기인데, 이처럼 직원 인사권을 대통령이 컨트롤하면 어떻게 감사원의 독립이 이루어질 수 있나. 고쳐야 할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개헌을 하더라도 대통령제를 유지하는 쪽이 낫다는 것인가.
“1987년 헌정 이래 성공한 대통령이 없다는 것은 제도의 부작용도 있지만 대통령제 ‘운영’의 부작용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대통령제의 실패냐 대통령의 실패냐고 물으면 나는 ‘둘 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다만 대통령제 제도의 일부 결함이 심각했다고 본다.”
현행 대통령제를 고쳐 쓰는 원포인트 개헌을 한다면 보완할 점은 무엇인가.
“‘상하 양원제를 만들자’ ‘부통령 제도 만들자’ 이런 식으로 백가쟁명이 되면 이번에도 개헌은 성공하기 어렵다. 원포인트 개헌을 한다면 대통령 4년 중임제와 결선투표제 도입을 중점적으로 논의해 볼 것을 권한다. 당선 조건인 일정 이상의 득표율을 충족시킨 후보가 없을 경우 득표수 상위 후보 몇 명을 대상으로 2차 투표를 하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하면 후보들 간 타협이 불가피하고 연립을 할 수밖에 없으므로 지금과 같은 적대 정치를 조금은 완충시키는 장치가 될 것이다. 아울러 탄핵 남발과 같은 의회 다수당의 횡포를 막기 위한 견제 장치로 일정 요건 아래 국회해산제 도입도 검토해볼 만하다.”
분권형 대통령제는 내각책임제 염두로 포장만 바꾼 것
내각책임제나 이원정부제는 대안이 될 수 없나.
“내각책임제라고 다 같은 게 아니다. 스웨덴 같은 북유럽의 다당제 국가에서는 과거에 연립정부가 수십 년씩 유지되기도 했지만 요즘은 많이 흔들린다. 이탈리아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매년 내각이 바뀔 만큼 불안정하다. 이 차이는 내각제 탓인가 민족적 기질 탓인가. 우리는 어느 쪽에 더 가까운지 생각해 보라. 내각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세련된 정치 문화에서 가능하다. 즉 타협이 가능한 정치 문화에서 성공할 수 있는 체제다. 이원정부제는 대통령중심제와 내각책임제를 혼합한 것이라고 하지만 원래 유럽에서 내각제의 결함을 시정하려는 취지로 시도된 것이다. 전통적인 의회 중심의 정치제도를 기반으로 하면서 보통의 내각책임제와 달리 국민이 선출하는 대통령에게 일정한 실질적 권한을 부여한다. 행정권을 대통령과 총리에게 쪼개놓았기 때문에 내각제보다 더 섬세한 제도다.
한국은 제2공화국 장면 정부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내각제라고 하나 이원제적 요소가 많았다. 대통령에게 국군통수권, 총리 지명권, 계엄선포 거부권 등 상당한 권한이 있었기 때문이다. 민주당 구파인 윤보선 대통령과 신파인 장면 총리의 동거정부 8개월 동안 3차례 내각 개편을 할 만큼 혼란스러웠다. 오죽하면 군 쿠데타가 일어나자 윤보선 대통령이 ‘올 게 왔다’고 하지 않았나. 분열적이고 비타협적 정치 문화에서 내각책임제나 이원정부제의 역기능은 치명적일 수 있다. 당장 내각제나 이원제를 한다고 하면 국회의원들은 만세를 부르겠지만, 국회의원 수부터 줄이고 처우는 행정부 과장 수준으로 고치겠다고 하면 모를까.”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대안으로 ‘분권형 대통령제’가 거론된다.
“이원정부제를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포장한 것이니 이름부터 부정직하다. 이 용어가 처음 나온 것이 2009년 8월 국회의장 자문기구였던 헌법연구자문위원회의 결과 보고서다. 여기에 1안 이원정부제, 2안 4년 중임 대통령제라고 해놓고 1안을 ‘분권형 대통령제’라고 홍보했다. 2014년 5월 또 다른 국회의장 자문기구인 헌법개정자문위원회가 개헌안을 제시하면서 정부 형태를 ‘분권형 대통령제’로 명명했다. 이원정부제가 학술용어라면 분권형 대통령제는 대중 홍보용 신조어라고 하겠다. 그렇다고 해도 이를 대통령제의 일종처럼 이름 붙인 것이 적절하고 타당한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원제의 역기능은 외면하고 국민이 선호하는 대통령 직선과 내각제 불신 정서를 감안한 것이라고 본다.”
양건 전 감사원장. [박해윤 기자]
정치의 사법화, 사법의 정치화 결국 여론 눈치만
87년 체제의 두 축은 직선 대통령제와 헌재의 탄생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헌법재판소에 대해 ‘87년 헌법에 담긴 비장의 장치’라고 했다.
“2018년 ‘헌법의 이름으로’를 쓰면서 ‘헌법재판, 비민주적 사법통치인가’라는 제목으로 한 장을 할애했다. 헌법재판이란 헌법 규정과 관련해 분쟁이 발생한 경우 헌법을 기준으로 유권해석하는 국가 작용이며, 우리나라에서는 대부분 헌법재판소가 담당한다. 영화 검열 위헌(1996), 제대군인 가산점제도 위헌(1999), 과외 금지 위헌(2000), 동성동본 결혼 금지 헌법불합치(1997), 호주제 헌법불합치(2005), 간통죄 위헌(2015) 등 국회나 행정부가 정치적 위험부담 때문에 섣불리 손대지 못했던 논쟁적 사안들이 헌재 결정을 통해 해결됐다. 이는 사법적극주의라고 하겠다. 한편 국가보안법이나 날치기 입법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사건’에 대해 헌재는 소극주의 자세를 유지했다. ‘한정합헌’ ‘5대 4 결정’(재판관 9인 가운데 5인이 위헌, 4인이 합헌 의견으로 갈리는 결정, 위헌결정에는 6인 이상 필요)과 같이 헌법논리적 명분과 정치적 현실을 절충하는 방법을 구사했다.
즉 정치적으로 민감하지 않지만 국민적 관심이 있는 판결에서는 적극주의로, 정치적으로 민감한 경우에는 자제하고 회피하는 소극주의가 헌재의 생존 전략이었다. 이처럼 정치세력이나 사회세력이 헌법재판을 일종의 정치적·사회적 보험제도로 활용하는 현상은 ‘정치·정책의 사법화’를 초래하고, 이는 다시 ‘사법의 정치·전략화’ 현상을 불가피하게 한다. 언제부턴가 우리 헌법재판은 정치재판이라 할 만큼 너무 정치에 오염됐다. 또 다른 문제는 헌법재판이 여론과 재판관 성향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이다. 과거 두 차례 대통령 탄핵에서 노무현 대통령은 기각되고, 박근혜 대통령은 인용됐는데 결과는 당시 여론의 추이를 쫓아간 것이라 하겠다. 박 대통령 때는 탄핵 여론이 워낙 압도적이었다.”
여론이 민심이고 민심을 따르는 게 민주주의 아닌가.
“헌법재판이 국민적 지지를 받으려면 그냥 여론만 따라가서는 안 된다. 헌법재판에서 고려할 국민 의사는 일시적으로 표출된, 그때그때 부침하는 여론과 구별돼야 한다. 헌법재판의 판단 기준인 진정한 국민 의사는 ‘헌법 속에 내재한 국민 의사’인데 그것을 찾는 과정은 지난하다. ‘헌법의 이름으로’에서 ‘헌재의 결정은 국민 의사에 근거를 두어야 하며 국민 속에 잠재된, 미래에 표출될 수도 있는 이상적 국민 의사여야 한다’고 했다.”
헌법재판관은 중도 성향으로, 선출 방식부터 바꿔라
이번 탄핵심판으로 전 국민의 시선이 헌재에 집중되고 있다. 헌재가 정치에 오염됐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권위를 세우려면 무엇을 바꿔야 하나.
“향후 탄핵심판 과정에서 헌재의 존재 양식, 나아가 존립을 둘러싼 논란에 휘말리게 될 수도 있다. 헌재도 변화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일단 재판관 임명 방식부터 바꿔야 한다. 지금은 333(대통령, 국회, 대법원장 각각 3명씩 지명)인데 여기서 특히 재판관의 권위를 떨어뜨리는 것 중 하나가 대법원장이 지명하는 것이다. 재판관을 대법원장이 지명하니까 마치 헌재가 대법원의 하위 기관처럼 인식될 우려가 있다. 정치적으로 오염됐다는 부분은 가급적 중도 성향의 사람들을 재판관으로 임명해서 해소해야 한다. 독일 제도를 참조할 필요가 있는데, 독일은 헌법재판관 전원을 의회에서 선출하되 3분의 2가 찬성해야 하므로 어느 한쪽을 편드는 정치 성향을 가진 사람은 재판관이 되기 어렵다.”
결국 아무리 제도를 바꿔도 정치 문화가 바뀌지 않으면 소용없다는 건가.
“정치는 정치로 풀어야 하는데 모든 사건을 법원으로 가져가는 것도 우리의 정치 문화다. 조선시대 정조 임금이 우리 백성들은 왜 이렇게 송사를 좋아하느냐며 탄식했다고 하지 않나. 정치 문화가 성숙했다는 것은 극단적으로 가지 않고 타협할 줄 안다, 자제할 줄 안다는 것인데 끝까지 대결 구도로 가다 보니 국정이 마비되고 대혼란이 온다. 결국 적대적 정치 문화가 바뀌어야 하는데 쉽게 바뀌지는 않을 것이다. 흔히 한강의 기적, 세계에서 유일하게 몇십 년 만에 민주화와 경제성장을 다 이룬 나라라고 한다. 압축성장을 뒤집어 말하면 갈등이 고도로 압축돼 있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도 근본 원인은 적대 정치이고, 적대 정치가 헌정 제도의 결함과 만나 터진 것이다.”
지방자치단체장들을 중심으로 ‘지방분권형 개헌’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개헌의 여러 쟁점 중 하나가 지방분권 강화를 위한 개헌이다. 그러나 지방자치를 하면서 좋아진 점도 많지만 중앙정부의 비리가 지방으로 이전됐다. 중앙은 감시의 눈이 많으니까 조심이라도 하는데 지방은 감시 자체가 제대로 되지 않는다. 감사원장으로 일하면서 놀란 것은 지방의 비리 카르텔이다. 단체장, 지방의회, 토호 세력, 기업형 조폭 세력까지 합세해 비리 카르텔을 만들고 각종 이권 사업에 관여하는 토착 비리가 너무나 많다. 당장 대장동 사건만 봐도 전형적인 토착 비리다. 지방 부패·비리의 확산을 초래할 위험이 큰데 그에 대한 대책도 없이 지방자치 확대, 지방분권 확대는 절대 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이다.”
지방분권 강화 개헌’ ‘감사원을 국회로’ 시기상조
국회의 행정부 감시 기능 강화를 위해 감사원 조직을 국회로 이전하자는 주장은 타당한가.
“반대다. 국회 밑으로 가면 감사원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국회 하부기관처럼 된다. 지금도 정치인들이 자신의 지역구 관련 감사를 빼기 위해 알게 모르게 온갖 압력을 넣는다. 안 되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불러서 언성을 높이며 추궁한다. 감사원을 대통령 밑으로 두면 그만큼 힘이 생긴다. 대신 대통령으로부터 독립성을 유지하기 어려워진다. 헌법만 아니라 법률에서 고칠 점도 많다. 예를 들어 앞서 얘기했듯이 감사원 인사에 관한 법률을 고치는 등의 세부 개선이 필요하다. 또 감사원을 독립기구로 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다만 상당기간 힘이 약한 기관이 되기 쉽다.”
지금이 개헌의 적기인가.
“한국은 1987년 이후 40년 가까이 정치 불안정이 지속됐다. 언제까지 촛불혁명인가. 급기야 헌법 빙자 협박 정치의 일상화, 비상사태의 일상화가 되고 있다. 지금의 난국은 법치의 이름으로, 법치의 허울 아래 내전 직전으로 다가가는 상황이다. 물론 제도의 변경만으로 정치 문화는 쉽게 변하지 않는다. 문화는 쉽게 뿌리 뽑을 수도 없다. 서서히 바뀔 뿐이다. 다만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개헌이다. 가능한 한 빨리, 반드시 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겪고도 탁상공론만 하다가 결국은 리더들이 별로 원치 않으니까 개헌을 미루는 일이 반복돼서는 안 된다. 1987년 박종철 사건이 일어난 직후 엄혹한 시절에 동아일보에 처음 쓴 칼럼 제목이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였다. 그때와 다르지만 지금도 그런 심정이다. ‘헌법의 이름으로’ ‘법치의 이름으로’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참담하고 참담하다. 나라를 생각한다면 모두 한발 물러서야 한다. 지금은 1987년 이래 최대 위기다. 그럼에도 오늘의 한국을 이루어낸 한국인의 저력을 믿는다.”
신동아 2월호 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