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다음 대통령 누가 되든 똑같은 일 벌어질 수 있다”

[Special Report | ‘카오스’ 한국 정치를 말하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강원택 교수의 조언

  • 허문명 기자 angelhuh@donga.com

    입력2025-01-26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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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민주주의 후퇴 없이 잘 버텼는데… 자괴감 드는 요즘

    • 언론 기능 무너지고 극단적 지지자들로 양분

    • 文 적폐청산이 ‘극단의 정치’ 촉발

    • 정치력 없는 대통령 + 절제 없는 야당이 현 사태 초래

    • 사람 아닌 시스템이 문제, ‘정치 시스템’ 한계 도래

    • 대통령 권한 나눠 총리에게, 사정 기관엔 자율성 부여해야

    • 재난을 통해 배우자… 낡은 패러다임 벗어나 새 시대로

    1월 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현 정국 혼란은 사람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1월 9일 서울 중구 한 카페에서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신동아’와 인터뷰하면서 “현 정국 혼란은 사람이 아닌 시스템의 문제”라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한국의 대표적 정치학자인 강원택 서울대 교수는 윤석렬 대통령이 계엄을 선포하기 3개월 전인 지난해 9월 계엄을 주제로 한 칼럼을 썼다(중앙일보). 그런데 비판의 대상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였다.

    칼럼 내용은 이랬다. 강 교수 본인이 민주화 이후 ‘계엄’이란 말을 처음 들었던 것이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직후인 2003년 3월 어느 학술 세미나였는데 한 참석자가 “노무현 때문에 나라 꼴이 말이 아닌데 군(軍)은 안 나오고 뭘 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자 청중이 황당해하며 폭소를 터뜨렸다는 거였다.

    그런데 20년 뒤 이재명 대표가 어렵사리 성사된 정당 대표 회담에서 “계엄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대통령이 계엄 해제를 국회가 요구하는 걸 막기 위해 선포와 동시에 국회의원을 체포, 구금하겠다는 계획을 꾸몄다는 이야기도 있다”고 말하는 걸 들으며 “이 대표와 민주당 사람들 발상이 ‘가히 충격적’이며 황당무계하다, 이래 갖고는 대안 정당 자격이 없다”고 일갈한 것. 국민 대부분이 강 교수와 비슷한 생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계엄 선포가 현실이 됐다.

    강 교수는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내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해 왔고 협치할 것을 강조해 왔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오히려 계엄이 선포됐다. 그는 요즘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리고 대한민국 정치의 미래는 어떻게 바뀌어야 할까. 이런 의문을 갖고 그를 만났다.

    강 교수는 “요즘 너무 마음이 힘들다”면서 “아침에 눈뜨면 뉴욕타임스, BBC, 이코노미스트도 한 번씩 스캔하고 지나간다. 요즘에는 한국 관련 기사가 메인 뉴스로 뜨는데 창피해서 못 보고 있다”고 했다.

    완전히 무너진 정치…정치학자로서 자괴감

    “정치학자로서 자괴감도 들고 내가 그동안 뭘 잘못 생각했나, 혹은 너무 안일하게 생각하고 있었던 건 아닌가, 이런 생각이 들어요. 밖에서 보면 우리처럼 30여 년 전에 민주주의를 했던 많은 나라가 있는데 그사이에 후퇴하지 않고 잘 버티고 있는 나라가 많지 않단 말이죠. 우리는 그 몇 안 되는 성공 케이스 중에 하나였기 때문에 자부심도 있었고, 민주주의 회복력에 대한 믿음도 있었잖아요. 박근혜 탄핵 과정에서도 그걸 보여줬고요. 근데 이번 사태는 조금 다른 것 같아요. 윤 대통령 탄핵으로 결론이 나더라도 그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갈등의 시작이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있어요.”

    마음이 힘들다는 그를 바라보며 기자는 질문 대신 한숨이 흘러나왔다. 잠시 후 다시 그가 이렇게 덧붙였다.

    “제가 이전부터 계속 시스템과 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이야기해 온 사람이긴 하지만 그동안 좀 낙관적으로 봤던 우리 사회와 정치 전반에 대한 어떤 병리적인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오기 시작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면에서 자괴감이 컸고, 나는 그동안 뭘 했나 뭐 이런 실망감도 컸고. 뭐 또 한편으로는 완전히 무너져야 새로운 질서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그런 기대감도 조금은 있고 어떻든 혼란스러워요, 몹시….”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자이면서도 정치 뉴스를 애써 외면해 왔어요. TV도 안 보고 신문도 헤드라인만 보고 지나가고요. 정치 뉴스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으니까요. 그러면서 자위하기를 정치는 정치다, 내가 굳이 관심을 갖지 않아도 그들만의 리그에서 그들끼리 잘 싸울 것이다, 정치라는 게 중요한 행위이긴 한데 아무리 얘기해 봐야 바뀔 것 같지도 않으니 거기에다 에너지를 쏟아봐야 나만 손해다 이러고 살았는데 막상 계엄이 현실화하니까 정치가 저의 일상과 삶에 이렇게 영향을 미치고 있구나 하는 걸 새삼스럽게 느꼈어요.

    그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가 다시 말을 이었다.

    종교인들도 걱정이 많은데 제가 존경하는 어느 목사님 한 분이 설교에서 원수를 놓아준 다윗의 예를 드시면서 결국 정치도 이런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시는데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한편으로 우리가 정치지도자에 대해 너무 성자(聖子)급 주문을 하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어제 세미나 자리에서도 그런 이야기를 했는데 우리는 여전히 어떤 유능하면서도 역량을 갖고 있는 리더를 원해요.”

    일도 잘하고 인품도 훌륭하고 적(敵)도 끌어안고 말이죠.

    “그래도 지난 대통령들을 돌이켜 보면 재임 당시에는 이러저러한 논란이 있었지만 꽤 괜찮은 리더들이 쭉 있었어요. 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은 좀 멀다고 한다면 민주화 이후에 이렇게 안정적이고 착실하게 민주적인 정치체제가 공고화된 건 노태우·김영삼·김대중 이 세 분의 역할이 컸다고 보거든요.

    일례로 노태우 대통령은 ‘전환기 대통령’이라는 걸 당신 스스로 확실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로 가는 과정의 토대를 닦았다고 할 수 있어요. 국제정치적으로는 냉전 시대에 북방 정책을 펴서 활로를 찾았고 국내 정치와 관련해서도 권력을 행사하는 데 굉장히 자제력을 발휘했어요.”

    예를 들면요.

    “군 출신임에도 불구하고 ‘물태우’라고 불렸던 건 그만큼 권력을 행사하는 데 참을성이 있었다는 겁니다. 직접 KBS를 찾아가 ‘나를 개그 소재로 쓰라’고 했을 정도였어요. 지금은 언젠가부터 코미디 프로에서조차 대통령의 풍자가 불가능한 세상이 되지 않았나요.

    노태우 대통령은 군정에서 민정으로 넘어가는 전환기에 일어날 수 있는 여러 가지 혼란이 예상됐지만 질서 있는 변화를 향해서 잘 참아내고 이끌어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잘 했다고 봐요.

    그다음 들어선 김영삼 정부에서 제일 중요했던 건 문민정부에 맞게 군을 정리하고 광주도 전두환 재판을 통해 명예를 회복해 주었다는 겁니다. 그게 또 DJ(김대중)가 들어올 수 있게 해준 또 중요한 발판이 됐죠.

    DJ는 무엇보다 박정희, 전두환 때 두 번이나 죽을 뻔했잖아요. 박정희 때는 도쿄로 끌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뻔했고 전두환 때는 사형선고를 받았습니다. 하지만 집권 이후에는 자기를 죽이려고 한 사람들을 용서하고 통합했단 말이에요. 전두환을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했고, 박정희에 대해서는 기념관 건설을 승인하고 지원했습니다.

    한국이 이렇게 쭉 안정적으로 올 수 있었던 건 정치적 역량과 경륜을 갖춘 이런 분들이 지도자로 있었기 때문이라는 거죠. 의회에서 몇십 년 활동을 하셨던 분들이니까 정치를 아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참을 줄도 알고 국민 여론도 무서워할 줄 알고. 그런데 이제 점점 정치라는 공간에 경험이 짧은 사람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새 한국은 대통령 한 명이 뭘 해내기가 힘들 정도로 사회경제 규모가 커졌습니다. 리더의 더 큰 역량이 필요한 상황이 된 겁니다. 그런데 정치 경험이 전무한 데다 그 무거운 자리를 감당할 능력도 안 되는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서 문제가 시작된 거죠. 슬프고 답답한 건 정치 경륜을 갖춘 인물을 찾기가 힘든 만큼 다음에 누가 대통령이 되더라도 똑같은 일이 반복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는 겁니다.”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진행된 1월 15일 과천청사 공수처 청사로 윤 대통령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윤석열 대통령 2차 체포영장 집행이 진행된 1월 15일 과천청사 공수처 청사로 윤 대통령이 출석하고 있다. [뉴스1]

    정당 결집력 떨어지고, 정치 커뮤니케이션도 달라져

    비단 대통령이나 정치인만 그럴까요. 사회 전체가 무엇이 옳고 그른지에 대한 기준이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혼란스럽습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정치는 완전히 기준이 무너졌어요. 정당도 옛날 같은 모습이 아닙니다. 정치 커뮤니케이션 방식도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과거에는 내부에 정치적으로 노련한 게이트키퍼들이 있어서 대체적으로 안에서 내부 정리를 해주고 전달됐기 때문에 논리가 허접하거나 확인되지 않은 것들은 내보내지 않았지요.

    사회적으로 게이트키핑을 해오던 전통적 언론의 역할이 약화되면서 정보의 흐름은 자유로워졌을지 모르지만 온갖 거짓 정보가 난무하고 이걸 토대로 이념적으로도 강성이고 정치적 관심도 매우 높은 열성 지지자들이 더 똘똘 뭉치는 양상이죠.

    자기들끼리만 만나게 되면서 그 안에서 뭘 만들어내고 그걸 통해서 특정 정당을 압박하고 정당은 정당대로 조직적으로 더 취약해지고 이런 상황은 결국 정치 경험이 많지 않은 아웃사이더의 등장을 가능하게 해주고 있죠. 경험도 없고 그동안에 검증도 안 됐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그 상황 어떤 타이밍에서 그 사람들의 정서에 호소해서 지지를 이끌어낼 수 있다면 바로 정치 리더가 되는 거죠.”

    미국 유럽의 리더십도 다 실종됐다, 이런 이야기들도 합니다만.

    “좀 다르다고 생각해요. 일단 미국부터 이야기하죠. 미국도 마찬가지로 양극화가 심하고, 트럼프라는 이전에 없던 포퓰리스트가 등장하긴 했지만 대통령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건 연방 수준의 일이거나 대외정책과 관련된 것, 혹은 거시경제정책 정도입니다.

    미국 사람들의 일상적 삶과 관련돼 있는 일은 다 주(州) 정부에서 합니다. 그래서 연방, 스테이트 아닙니까. 국가의 연합이잖아요. 대통령 한 사람이 바뀌었다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다 바뀌지는 않는 거죠.

    또 아무리 공화당이 다수당이라 해도 의회가 걸러내는 역할을 하면서 견제의 기능을 합니다. 무슨 ‘바람’이 불었다고 대통령이 의회를 동시에 장악할 수 있는 게 아니고, 대통령은 4년 중임이지만 하원은 임기가 2년, 상원은 임기가 6년으로 2년마다 의원들을 3분의 1씩 계속 바꾸고 있으니까 제도적으로 한쪽으로 쏠려가지 않게끔 시스템이 돼 있어요.

    유럽은 또 대부분이 내각제 국가이기 때문에 포퓰리즘 정당이 등장한다고 하더라도 연립의 일원이 되는 거지, 단독으로 집권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아요. 그 말의 뜻은 다수당이 권력을 유지하고 싶다면 타협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탈리아 같은 경우에도 총리가 소속된 당이 극우에 가까운 정당인데 예상과 달리 극단을 피하고 차분하게 안정적으로 가고 있는 건 단독 집권이 안 되기 때문이에요.

    우리는 그런 분권화가 제대로 안 돼 있기 때문에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으면 A부터 Z까지 다 바뀌고 영향을 받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 때문에 휘청거릴 수 있는 정도가 다른 나라에 비해서 더 크죠.”

    文 적폐청산으로 촉발된 ‘극단의 정치’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 참가자들이 검찰개혁,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호,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2019년 9월 28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열린 ‘검찰개혁·사법적폐 청산 집회’ 참가자들이 검찰개혁, 조국 당시 법무부 장관 수호, 공수처 설치를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사람이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라는 데 공감이 많이 되는 요즘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왜 여기에 귀 기울이지 못했을까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이후부터 사실은 대통령제가 수명이 다한 걸로 봐야 될 것 같은데… 아직도 우리 국민 마음속에는 누군가 뛰어난 역량을 갖고 있는, 이른바 ‘메시아’ ‘초인’을 기다리는 심리가 일부 있는 거 같고, 87년 체제를 만든 ‘내 손으로 대통령을 뽑겠다’ 는 여망도 아직 있는 거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 때 주변에 있던 사람들에게서 들은 거지만 ‘우리가 권력을 잡아서 한번 싹 다 바꾸고 싶다’는 거예요. 문 대통령도 ‘주류를 완전히 재편하고 싶다’고 이야기했잖아요. 저는 오늘날 정치가 매우 나빠진 데에는 문재인 대통령 때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진 복수의 정치가 영향을 미쳤다고 봅니다. 문 대통령이 ‘노무현의 유서를 가슴에 품고 다닌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었잖아요.

    바로 그 지점이 DJ와 딱 비교되는 지점이에요. 문 전 대통령은 자기가 당한 것도 아닌데. DJ는 자기가 당한 일이었는데도 다 용서하고 품어 안았잖아요. 문 전 대통령은 적폐청산을 하며 ‘우리는 선이고 너희들은 악이기 때문에 선이 당연히 악을 응징해야 된다’고 했어요. 전형적 포퓰리즘이죠. 이때부터 사회가 극단적으로 갈라지기 시작한 겁니다. 조국 사태 때 가장 상징적으로 크게 나타났던 거고.

    그 이후로 양극화가 점점 더 심각해지고, 거기에 편승해서 또 이득을 보려는 정치인들이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제 역량이고 비전이고 다 필요 없고 상대방과 가장 잘 싸울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민주당에서도 지난 대선후보 경선 때 이낙연보다는 이재명이 훨씬 더 잘 싸울 것 같다는 심리가 작용했고, 국힘은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하던 참에 갑자기 윤 대통령이 문 전 대통령한테 대드는 걸 보고 ‘아 괜찮네, 잘 싸우네’ 생각해서 선택한 거잖아요. 두 후보 다 선택된 기준은 우리 편을 위해서 잘 싸워줄 사람이었던 거예요. 그렇게 적대의 정치가 시작됐고, 지난번 대통령 선거가 박빙으로 끝나자 갈등이 이어지면서 이재명 대표는 자기가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해 정부와 대통령을 괴롭힌 거고, 대통령은 적개심을 갖고 버티다가 여기까지 온 거지요.”

    의회와 대통령이라는 두 개의 권력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내란수괴 윤석열 규탄대회’를 열고 윤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지난해 12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롯한 민주당 의원들이 ‘내란수괴 윤석열 규탄대회’를 열고 윤 대통령을 규탄하고 있다. [뉴스1]

    그래도 설마 계엄을 하리라고는 상상 못 했습니다.

    “전두환 대통령도 안 했던 일이죠. 제가 책 ‘5공화국’에 자세히 썼는데 전 대통령은 6월 항쟁 때 군을 동원하려는 마음도 있었어요. 작전을 아는 사람이니까 했으면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했을 거예요.

    그런데 병력을 움직이는 영관급 지휘관들이 ‘다시 시민들한테 총을 겨누라고 하면 이 총이 어디로 갈지 모른다’ 하는 여론이 시시각각 보고가 됩니다. 광주에서 있었던 참극은 대다수 군인에게도 수치스러운 일이었던 거죠. 결국 전 전 대통령 스스로도 ‘군을 부르면 간단하다. 그러나 그건 언제나 쿠데타의 위험이 있다’고 말해요.

    이번에 계엄이 해제됐기에 망정이지 정말 실행됐다면 다음 날 아침에 광화문에 시민이 100만 명은 넘게 몰렸을 거예요. 군이 못 막죠. 그 과정에서 희생자가 나올 수도 있고…. 정말 상상하기도 싫어요. 그랬다면 정말 엄청난 혼란이 왔을 거예요, 현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윤 대통령은 정치적 상상력도 없고, 시대 변화도 못 읽은 사람이에요.”

    시민들한테 총을 겨누는 걸 실행한 사람이 대통령이었다는 게 부끄럽다고 생각합니다.

    “대통령도 김용현 전 국방장관도 그냥 정치인들만 손보면 된다고 생각하고, 시민들이 어떻게 움직일 거에 대한 생각을 전혀 못 한 거죠. 어떤 형태로든 이해할 수도 용서할 수도 없는 겁니다.

    어떻든 이제 우리는 완전히 다른 형태의 정치를 경험하게 됐어요. 여기에는 국회의 책임도 있는데 미국 예일대 정치학자 후안 린츠는 ‘대통령제의 위험성(The Perils of Presidentialism)’이라는 유명한 논문에서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과 의회 다수당이 부딪칠 때 이를 해결할 제도적 장치가 없어 언제 갈등이 폭발할지 모른다’고 했어요. 즉 대통령제라는 건 의회와 대통령이라는 두 개의 권력이 있는 건데 두 기구 간 갈등을 해소할 민주적 원칙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거죠.

    남미에서 보듯 때때로 군부가 개입하는 게 우연이 아니라는 거죠. 후안 린츠가 남미를 보고 쓴 논문이 한국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어처구니가 없어요. 대통령뿐만 아니라 의회도 국민이 선출한 기구라는 점에서 민주적 정통성을 갖기 때문에 대통령보다 우위에 있다고 볼 수 없어요, 결국 서로 협상해야 하는 거죠. 일시적으로 좀 ‘데드 록(dead lock·교착상태)’이 있더라도 말이죠.”

    우리는 대통령과 당이 일체잖아요.

    “그렇다 보니까 야당이 국회를 장악하게 되면 대통령은 야당과 적대 관계가 되죠. 이게 노무현 대통령 때부터 문제가 됐는데 제가 ‘한국의 정치개혁과 민주주의’라는 책에서 이 문제를 다뤘어요. 노 전 대통령이 대연정 이야기할 때 어느 학자의 책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그랬는데, 그게 저였습니다. 저도 사실 뉴스 보고 노 전 대통령이 그 책을 봤다는 걸 알았어요.”

    근데 제도적으로 어떻게 당과 의회의 일체화를 막습니까.

    “우선 우리의 경우에는 행정부 대 입법부 구도가 아니라 정부-여당 대 야당의 형태로 정치가 이뤄져 왔지요. 여소야대가 된 상황에서도 오늘날 같은 혼란이 없었던 건 야당이 자제했기 때문이지요.

    야당은 대통령과 행정부의 정책 주도권을 인정하면서 반대편에 서서 정책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비판하면서 다음에 정권을 잡자 이런 포지션이었거든요. 예산 같은 경우도 대통령이 관심을 갖는 예산을 정치 쟁점으로 삼지만 어느 정도의 핵심적 쟁점을 제외하면 그냥 넘어갔어요. 그런 자제가 있어서 작동이 돼고 유지가 돼 왔는데 이번 국회에서는 야당이 비판과 견제만 한 게 아니라 직접 주도하겠다고 나서면서 두 개의 정부가 생긴 겁니다.

    실제로 이번 야당은 정치 공세에 그치지 않고 정책을 주도했어요. 예를 들어 국민 모두에게 25만 원씩 다 나눠주겠다고 하지 않았나요. 탄핵을 스물 몇 차례 했다는 것도 국정과 관련돼 있는 중요 보직에 대한 대통령 인사에 적극적으로 개입했다는 거거든요. 이전과 달리 야당이 자제하지 않고, 정책·예산·인사에 개입한 거죠. 그래서 갈등이 커진 겁니다.

    이렇게 야당이 자제하지 않으면서 모든 권력구조에서 최악의 경우라고 할 수 있는 ‘태양이 두 개’인 상황이 된 거죠. 이 두 개가 계속 부딪치다가 여기까지 온 겁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대통령은 계엄을 할 게 아니라 정치를 했어야죠. 양보할 거 양보하고 해서 뭔가 풀어내야 되는 건데 정치력이 없었던 거죠. 검사가 피의자를 다루듯이 죄가 있냐 없냐, 0과 1의 이진법 논리만 상상한 거죠.”

    그는 이 대목에서 “무엇보다 나쁜 전례가 만들어진 것이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나쁜 전례라면요?

    “언제라도 야당이 절반보다 한 석이라도 많은 의석을 얻게 되면 탄핵시킬 수 있는 거잖아요. 장관들이고 뭐고 마음에 안 드는 인물이 있으면 해임 결의안이 아니라 탄핵으로 가버리는 거죠. 그러면서 ‘너희도 그렇게 했잖아’ 이렇게 될 수 있는 거지요. 정치 질서나 안정성이 다 깨지는 거예요. 다음 정권이 누가 돼도 이런 식이라면 지금까지 작동해 왔던 모든 시스템이 한계상황에 다다른 거라고 할 수 있죠.”

    현재로서는 이재명 대표가 지지율이 제일 높게 나오는데요.

    “이 대표가 대통령이 된다 하더라도 2년 반쯤 있다가 또 총선을 치를 텐데 지금까지의 패턴으로 보게 되면 임기 중반 선거에서 여당이 질 가능성이 높아요. 그럴 경우 민주당이 만약에 과반을 놓치게 되면 또 지금과 같은 일이 반복될 수 있어요. 똑같은 일이 반복되겠죠.

    여러 많은 학자가 지적하지만 민주주의 정치라는 게 계속 유지되기 위해서는 제도 자체에 대한 것도 있지만 그걸 운영하는 사람들의 절제와 배려, 그다음에 통합을 위한 노력 이런 게 필요한 건데 이제 더는 그런 기대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니 시스템을 바꿀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미국 헌법을 만든 사람들이 굉장히 뛰어난 사람들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데 이 사람들의 기본 생각은 ‘권력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어요. 어떤 누구도 권력 앞에서 약해질 수밖에 없다는 거죠. 그래서 사람이 아닌 시스템에 의해 권력이 상대를 견제할 수 있도록 만든 거지요.”



    문제는 사람 아닌 시스템…대통령 권력 나눠야

    그렇다면 어떤 부분을 어떻게 고쳐야 한다고 보세요.

    “우선 대통령 권력을 나눠야 한다고 봐요. 한 사람이 나라 전체를 흔들어서는 안 된다는 거죠. 그러려면 총리를 의회에서 선출하고 그 총리에게 권한을 주는 겁니다. 지금 책임총리제가 안 되는 게, 대통령이 인사권을 갖고 있는 상황에서 총리가 단독으로 할 수 있는 게 없거든요.”

    4년 중임은요?

    “별로 의미가 없어요. 기본적으로 8년을 가자는 거예요. 대통령 자체가 문제인데 임기를 8년으로 늘린다 한들 달라지는 게 뭐가 있겠어요. 게다가 부정선거 이야기까지 나오는 판인데 현직 대통령이 다시 출마한다면 공정성 시비는 더 커질 겁니다. 한 사람이 5년도 제대로 못 해갖고 이 난리인데 8년씩이나 간다는 건 문제가 있지요.”

    대통령 권력을 나눈다고 할 때 총리와 어떻게 나누자는 겁니까.

    “외교나 통일은 대통령한테 맡기고 나머지는 총리가 하자는 말도 있는데 듣기에는 굉장히 괜찮을 것 같지만 사실 무 자르듯 딱 나누기가 어려워요. 예를 들어 자유무역협정(FTA)은 외교예요, 경제예요?

    그래서 저는 정책과 관련된 모든 영역은 총리한테 맡기고 대통령에게는 의회를 해산할 수 있는 권한을 주자는 겁니다. 다수당이 없거나 굉장히 큰 쟁점이 생겨서 여야 간에 분열적 상황이 됐을 때는 대통령이 개입해 선거를 다시 해 분명한 권력의 위임자를 결정하는 식으로 가는 거죠. 이탈리아 같은 경우는 장관 중에 아주 논란이 될 만한 사람은 대통령이 거부할 수 있어요. 상당히 강력한 권한이죠. 그런 경우 대통령은 정치적 갈등을 부르는 일반적 정책 추진이나 집행에서는 벗어나 있는 거죠. 그게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이렇게 나라가 혼란스러운데 중심을 잡아줄 수 있는 리더가 없잖아요.

    예를 들어 북한하고 대화할 거냐 아니면 싸울 거냐, 노동 문제는 또 어떻게 할 거냐 등등 개별 정책에 대해 각자 다른 견해를 갖고 있는데 그런 일상적 정책 업무는 총리가 내각이랑 알아서 하고 싸움도 그 수준에서 하고, 대통령은 그 위에서 정무적 입장을 갖고 문제가 있을 때 개입하고, 한마디로 국가의 어른으로서 역할을 해주게 하는 거죠.”

    대통령이 국가의 어른 역할을 한다는 게 얼른 상상이 안 가네요. 어른은커녕 문제를 일으키는 주체가 돼버려서요. 어떻든 내용이야 서로 다를 수는 있어도 이쯤 됐으면 대통령 한 사람에게 권한이 집중되지 않도록 법을 바꾸자는 공감대는 형성돼 가는 것 같아요. 분위기는 어떻게 보세요.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큰 것 같아요. 저는 우리 정치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는 말을 오래전부터 했는데 처음에는 이런 이야기하면 시기상조다, 우리는 정치문화상 잘 안될 거다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굉장히 많은 곳에서 바꿔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고 있어요. 약간 결이 다른 이야기이긴 한데요, 제가 2월1일부터 서울대학교에 만들어지는 싱크탱크인 국가미래전략원장을 맡을 예정이에요. 유홍림 총장이 ‘지금이야말로 국가 시스템을 바꿔야 될 때인 것 같다, 서울대학교가 뭔가 역할을 해야 되지 않겠느냐’ 제안하셔서 맡았는데 첫 번째 작업이 개헌 관련 프로젝트가 될 것 같아요.

    현 대통령제에 대한 보완 및 수정은 단순히 어떤 정파적 이해관계나 뭐 저의 학문적 관심사나 판단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미래와 우리 사회의 안녕과 관련된 매우 심각한 상황이 됐어요. 나라가 이 정도까지 나락으로 떨어졌다면 이제 뭔가 새로운 시스템으로 바꾸지 않으면 안 됩니다.”

    양당 체제 연구도 많이 하셨는 데요.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는 1988년 4당 정치로 시작했어요. 1990년 1월 3일 3당 합당으로 양당제로 변모했지만 이후에도 제3당이 등장해 왔습니다. 1992년 통일국민당, 1996년 자민련(자유민주연합), 2004년 민주노동당, 2016년 국민의당이 그거죠. 양당제는 사실 최근 일이에요. 그리고 양당제는 미국을 제외하면 매우 드문 일입니다. 사실 양당제는 정치적 양극화와 관련이 있어요.

    권력이 한 사람에게만 집중되다 보니 선거에서 승리하면 한쪽이 독식하는 제로섬게임이잖아요. 상대방의 행복이 다른 상대방에게는 불행인 거죠. 제로섬게임에서는 결집이 유리합니다.

    이렇다 보니 정치적 양극화는 더 심해집니다. 서로 간에 다른 생각이나 이념이 있어도 하나로 결집하는 게 승리에 유리하니까요. 더욱이 상대 정파에 대한 적대감이나 분노가 큰 상황이라면 절대로 상대방이 승리하도록 둘 수 없고 무조건 하나로 합쳐야 합니다. 이러니까 상대방은 너무 싫고 그래서 우리가 권력을 꼭 잡아야 된다, 각자 내부에서는 조금 의견이 다르거나 싫더라도 저쪽이 미우니 일단 결집해야 되는 거죠.

    지금 국회가 이렇게 된 데에는 이런 상황하고도 관련이 있습니다. 제법 의석을 가진 제3당이 있어서 어느 당도 독자적으로는 과반이 안 되는 상황이었으면 사안별로 타협해야 과반을 만들어내니까 논의와 타협, 양보를 기반으로 한 정치력이 작동하는데 그런 게 없어진 거죠. 단독 과반 상황에서는 이런 과정이 필요하지 않으니까요.”

    강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해서 총리에게 주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강 교수는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해서 총리에게 주는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영철 기자]

    대통령 인사권 총리와 나누고, 기관 자율성 존중해야

    좀 다른 이야기를 해볼까요, 시스템도 중요하지만 결국 그 시스템을 구성하는 건 사람이고, 얼마나 양질의 인재가 그 안에 있느냐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정치라는 직업은 가성비(?)가 매우 떨어지는 직업이 된 지 오래라고 봅니다. 정말 고도로 훈련된 사람들이 해야 하는 전문직인데 말이죠. 이 대목에서 정치적 소양이라고 하는 건 뭘까요.

    “우리는 대통령이 되기 위한 조건이 연예인처럼 그냥 인기가 높으면 되는 그런 형태로 가고 있어요.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정치 역시 전문 영역이에요.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영국이나 독일 같은 데서 총리가 되려면 우선 같은 당에서 일하는 동료 의원들 평가를 잘 받아야 돼요.

    직장 생활도 그렇지 않습니까. 함께 일하면서 겪어본 사람들이 그 사람의 역량이나 성격을 제일 잘 알죠. 일단 당의 리더가 되려면 그 안에 있는 구성원들로부터 평가를 받아요. 그렇게 받은 평가가 국민들이 보기에도 적합해야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정당의 안과 밖 두 군데서 평가를 받는 거죠.

    A라는 리더가 있을 때 국민은 이 사람이 초선이었을 때, 재선이었을 때 혹은 장관을 했었을 때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했는지 축적한 정치적 자산을 보고 평가하는 거지요. 정치 리더라는 건 그런 경험을 통해서 성장해 가는 거죠. 근데 우리는 그런 과정이 없어요.

    또 하나 문제는 ‘캠프 정치’예요. 앞서 말했지만 민주화를 공고화할 수 있었던 건 오랜 의회정치를 통해 정치적 경륜과 역량을 쌓은 엘리트들이 정치를 이끌었기 때문이거든요. 하지만 상대에 대한 적대감에 기반하는 양극화 정치에서는 오로지 우리 편의 승리에만 집중한 나머지 그 후보가 어떤 인물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투표하고 있어요.

    또 당선자와 함께 일하게 될 사람들에 대해서도 거의 정보를 가질 수가 없어요. 대통령이 되고 나서 주요 직책을 맡게 될 이들이 오랫동안 검증된 인물이기보다 선거캠프 출신 인사로 채워지거나 당선자와의 개인적 인연에 의존하기 때문이죠.

    이러니 여당과의 관계는 상대적으로 덜 중요해지는 겁니다. 지난 정부도 취임 때에는 문재인과 민주당 정부라고 했지만 결국 청와대 정부로 끝나고 말았잖아요. 결국 정당과 무관한 통치가 이뤄지게 되고, 이게 또 당정 간에 불협화음으로 이어지면서 통치력은 약화되는 거죠.

    거듭 말하지만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예요. 대통령의 인사권을 제한하고 총리에게 대폭 권한을 맡기고 각 기관의 자율성을 강화하는 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지금은 대통령이 너무 많이 깊이 개입하고 있어요. 산하 공단 기관장, 감사부터 대법원장 임명까지 다 틀어쥐고 있잖아요. 심지어 부인까지도 개입하고 말이죠. 대통령 권한을 줄이지 않으면 기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겁니다.”

    역대 대통령 중에는 ‘내가, 청와대가 혼자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이런 얘기들을 했어요.

    “그 사람들은 경험이 있는 분들이었던 거죠. 밑에 사람들 말이나 국민 여론을 들었던 겁니다. 그리고 아랫사람들이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 거지요. ‘어렵게 드리는 말씀입니다만 이건 안 됩니다’ 하면 당장 눈앞에서는 화를 내고 싫은 표정을 해도 결국은 말을 들었어요. YS만 해도 아들 현철씨 이야기만 나오면 정말 듣기 싫어했다는 거 아니에요. 하지만 결국 그들의 말을 들었잖아요. 윤 대통령의 경우 네트워크도 대단히 협소했기 때문에 주변 인물들이 검증되지 않았고, 조직 내에서 역량을 평가받지 못했던 사람들이 개인적 인연이나 부인 줄을 타고 들어가 저렇게까지 간 거죠.”

    대화를 나누면서 참담한 심정에 대한 공감도 그렇고, 그런 가운데서도 이대로는 주저앉을 수 없다, 뭔가 희망의 씨앗을 만들어야 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만.

    “우리가 IMF 외화위기 때 국제사회에서 굉장히 수모를 당했지만 그걸 잘 극복하면서 새로운 전환과 도약의 모멘텀이 생겼잖아요. 마찬가지로 이번이 워낙 참담한 상황이기는 하지만 어떻게 보면 현재까지 해왔던 정치 시스템이 이제 더는 유효하지 않다. 바꾸지 않으면 안 된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어요. 우리 사회에 정말 무거운 질문을 던진 거지요.

    세상은 크게 달라졌는데 한국의 보수든 진보든 전과 달라진 게 별로 없어요 보수는 여전히 박정희 패러다임에, 진보는 진보대로 권위주의의 반독재 패러다임에 머물러 있어요. 한쪽은 유능함이 사라졌고, 한쪽은 여전히 비판과 저항만 하고 있고. 이제는 질문의 내용이 바뀌어야 합니다. 보수냐, 진보냐 이런 틀 말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이번 계엄 관련 사태는 매우 불행한 일이고 일어나서도 안 될 일이었지만 우리가 지혜를 잘 모아서 개헌 같은 제도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또 각각의 정치 세력도 시대에 맞는 가치나 목표를 만들어낸다면 정말 한 단계 더 도약하는 기회가 되지 않을까요. 지금은 앞이 안 보여 힘들지만 그런 희망을 놓고 싶지는 않아요.”

    문득 개인적 질문을 드리고 싶네요. 정치학을 하다 보면 플레이어로 뛰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지 않을까요. 그동안 권유를 많이 받지 않으셨어요?(웃음)

    “권유나 제안이 없지는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별로 마음이 흔들린 적은 없습니다.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연구하고 학생들을 가르치는 일이죠. 제 업의 정체성은 교육자입니다.”

    신동아 2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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