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호

해도 너무하는 지방의회 해외 출장 비리 백태

[밀착취재] 항공권 조작·예산 부풀리기는 예사…

  • 김건희 객원기자 kkh4792@donga.com

    입력2025-02-08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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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항공권 조작하고 예산 부풀려 18억 원 낭비

    • 항공료 차액 챙기려 포토샵 조작해 QR코드 훼손

    • 출장 명목으로 소주, 숙취해소제, 해장국도 구입

    • 루브르 박물관·온천 방문… 권익위 “경찰 수사 의뢰”

    2024년 12월 16일 유철환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전국 243개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2024년 12월 16일 유철환 국민권익위원회 위원장이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전국 243개 지방의회 국외출장 실태 점검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뉴시스]

    서울 동대문구 전농동에 거주하는 회사원 이윤미(33) 씨는 동대문구의회를 볼 때마다 답답하고 분통이 터진다. 연봉은 인상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다 주식은 고점에 물려 있어 장보기 횟수도 주 1회로 제한할 정도로 사정이 나빠진 그는 설 연휴 동안 베트남으로 3박4일 가족여행을 떠나려던 계획도 취소했다. 그러던 중 지방의회의 외유성 국외 출장 실태를 보도한 기사를 접했다. 국민권익위원회(권익위)에 따르면 서울 동대문구의회는 2022년 일본 출장에서 도쿄 롯폰기힐스 모리타워, 온천 등 관광지 입장료로 90만 원, 가이드 비용 160만 원을 의회 예산으로 지출해 논란이 일었다. 이 씨는 기사를 가리키며 “기름값 오름세에 자동차를 집에 두고 대중교통으로 출퇴근하는 국민이 적지 않은데, 지방의원들은 국민 혈세로 외유성 출장을 다녔다고 하니 기가 찬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지방의회 국외 출장 1400건에 400억 원 지출

    지방의회의 해외 출장비용 청구 과정에서 예산 부정 사용 문제가 심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권익위는 2024년 12월 16일 전국 243개 지방의회(17개 시·도 의회, 226개 기초 의회) 의원들이 최근 3년 동안 다녀온 해외 출장을 전수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다. 이들이 2022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다녀온 해외 출장은 모두 915건으로, 지출된 예산은 355억 원 규모였다.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다녀온 해외 출장 인원에 지방의회 의원이 포함된 경우는 모두 1400건. 여기에 지출된 예산은 약 400억 원으로 집계됐다.

    전수조사는 어떻게 이뤄진 것일까. 권익위 관계자는 1월 초 ‘신동아’와의 전화 통화에서 “외유성 지방의회 해외 출장 논란이 끊이지 않던 터에 2024년 초쯤 신고가 들어와 조사에 착수하게 됐다. 조사 결과 부정 사실이 확인됐고, 7개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샘플 조사를 추가 실시했다. 이 조사에서도 부정 사실이 드러나 전국 243개 지방의회를 대상으로 한 전수조사가 불가피했다”고 조사 배경을 설명했다. “2022년 이전에도 관련 신고가 접수됐느냐”는 질의에 권익위는 “확인이 불가한 사항”이라고 답했다.

    문제는 지방의회가 그동안 다녀온 해외 출장 상당 건에 대해 관련 규정을 위반하고, 관광할 목적으로 온갖 편법을 동원해 출장 경비를 부풀리는 수법으로 허위 비용을 청구해 왔다는 점이다. ‘신동아’는 권익위의 지방의회 해외 출장 실태 점검 결과를 추적해 지방의회의 국외 출장 수법을 들여다봤다. 이를 통해 우리나라 풀뿌리 민주주의 원칙인 지방자치법의 문제점, 지방의회 국외 출장 폐해 등을 살폈다.

    국민권익위원회가 파악한 지방의회의 국외 출장 항공권 조작 사례. [국민권익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가 파악한 지방의회의 국외 출장 항공권 조작 사례. [국민권익위원회]

    ‌권익위 조사 결과를 보면 항공권을 조작해 예산을 유용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항공권을 조작하고 예산을 부풀려 청구한 건수는 전체의 44.2%인 405건에 달했다. 이 같은 수법으로 빼돌린 예산만 18억 원에 달한다.

    충남도의회 농수산해양위원회는 2022년 12월 18~26일(7박9일) 유럽 3개국(네덜란드, 벨기에, 독일)으로 해외 출장을 떠날 때 1인당 164만4700원인 항공료를 2배가 넘는 338만5900원으로 변경해 과다 청구했다. 포토샵 같은 사진 편집 프로그램을 이용해 실제 항공료보다 2배가량 비싼 것처럼 꾸며 예산을 부정하게 타냈다는 게 권익위 판단이다. 이 방법으로 10명에게 초과 지급된 금액은 총 1741만2000원에 이른다.

    경기 안산시의회는 2024년 5월 13~17일 안산시의회 국민의힘 의원 8명과 시의회 공무원 3명 등 총 11명이 인구소멸 대응 방안 관련 인구정책 분야 사례 탐구와 우수 정책 시찰을 통한 관광자원 활동 등을 목적으로 일본 시즈오카현과 도쿄를 방문했다. 안산시의회는 출장을 앞두고 2024년 5월 13일 오전 9시 서울에서 출발해 당일 오전 11시 20분 도쿄에 도착하는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발권한 후 항공권에 기재된 좌석 등급을 이코노미석으로 위조해 비즈니스 등급의 금액을 청구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해당 비즈니스석 항공권을 취소하고 다시 이코노미석으로 발권해 국외 출장을 떠났다. 비즈니스 항공권으로 비용을 청구하고 이코노미 등급으로 변경하는 수법으로 실제 항공료보다 많은 예산으로 지출하도록 해 그 차액을 편취한 것으로 권익위는 보고 있다.

    울산시의회도 2024년 태국 출장차 구입한 항공권의 금액을 2배 정도 과다 청구하고는 항공권의 QR코드를 인식하지 못하게 고의로 훼손했다는 의혹을 받는다. 권익위가 QR코드를 복구해 과다 청구 사실을 확인했다. 권익위 관계자는 “이 같은 방식의 비용 허위 청구 행위는 형사처벌에 이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항공권 위조로 세금 유용, 명백한 범죄

    권익위가 밝힌 지방의회의 항공권 조작 사례는 시민의 세금을 부당하게 유용한 명백한 범죄행위로, 범죄 혐의가 입증되면 형사처벌이 이뤄질 수 있다. 권익위 관계자는 “수사기관에 수사를 요청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항공권 조작 증거물을 토대로 혐의점과 관련된 사실관계를 정리하고 있다”며 경찰 수사 의뢰를 시사했다.

    의전 비용을 확보하기 위해 과도한 인원이 출장에 동원된 사례도 빈번했다. 지방의원 의전을 위해 많은 의회 직원을 출장에 동원하게 하고, 직원의 부담금을 대신 납부하는 행위가 전체의 117건(13%)으로 집계됐다. 권익위에 따르면 한 지방의회는 의원 10명이 출장을 가며 직원 7명을 동원했고, 의원들이 직원 분담금 약 900만 원을 대신 납부했다.

    하지만 이는 공직선거법 113조에 따라 금지된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 공직선거법 113조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정당 대표 및 후보자와 그 배우자 등이 금전이나 물품 등 이익을 제공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지방의원이 선거구민인 지방의회 직원의 여행 비용을 대납하는 행위는 공직선거법 113조에 따라 금지한 기부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게 권익위의 설명이다.

    권익위가 2022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지방의회의 출장 지역을 분석한 결과 상위 20개국 방문이 80% 이상 차지했고, 일정은 관광지 방문에 집중됐다. [국민권익위원회]

    권익위가 2022년 1월부터 2024년 5월까지 지방의회의 출장 지역을 분석한 결과 상위 20개국 방문이 80% 이상 차지했고, 일정은 관광지 방문에 집중됐다. [국민권익위원회]

    ‌외유성 출장을 대부분 관광지로 떠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권익위가 지난 3년간 지방의회의 출장 지역을 분석한 결과 일본, 싱가포르, 독일, 호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상위 20개국 방문이 80% 이상을 차지했다. 일정 또한 관광 명소에 집중됐다. 싱가포르 출장 94건 가운데 가든스바이더베이(74회), URA시티갤러리(73회)를 방문한 경우가 많았다.



    한 지방의회는 2022년 11월 네덜란드와 프랑스 출장에서 람사르 습지, 파빌리온느 아스날 등 관광지 방문 명목으로 100만 원을 청구했다. [국민권익위원회]

    한 지방의회는 2022년 11월 네덜란드와 프랑스 출장에서 람사르 습지, 파빌리온느 아스날 등 관광지 방문 명목으로 100만 원을 청구했다. [국민권익위원회]

    ‌대구 수성구의회는 2023년 프랑스와 이탈리아로 출장을 떠나는 동안 루브르 박물관, 바티칸 박물관 등 관광 명소 위주로 방문했다. 관광 명소를 방문하면서 가이드료, 입장료를 별도 예산으로 지출한 경우도 33건(3.6%)으로 나타났다. 원래 인솔자 비용은 출장을 가는 사람들이 부담해야 하지만 대구 수성구의회는 인솔자 한 명에게 300만 원을 지급한 뒤 이를 사무관리비로 집행했다. 목적에 맞지 않는 예산 집행이라는 지적이 제기되는 이유다. 권익위는 이에 대해 “공적 목적에 맞지 않아 환수 처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출장 명목으로 소주, 숙취해소제, 해장국, 피로회복제 등 부적절한 물품을 구입한 사례도 전체의 19.5%(178건)에 달했다.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권익위 조사 대상에 이름이 오른 더불어민주당 소속 P의원은 1월 8일 전화 통화에서 해외 출장 예산 유용에 대해 “결코 의도적이지 않았다”고 항변했다. 그는 “출장 비용을 의원이 언제 일일이 확인하고 있나. 직원이 의원들에게 출장 떠나기 전 자기 분담금을 알려주면 ‘그런가 보다’ 하고 그 돈만 낸다. 출장을 떠나면 현지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어 출장 비용을 하나하나 따져볼 틈이 없었다”고 말했다. ‘외유성’ 출장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현지에 가서 정책과 제도를 살펴보자’는 취지의 출장도 많고, 친선 교류 같은 출장도 많다”며 반박했다.

    국민의힘 소속 K의원은 권익위 조사 결과에 대해 “이번 권익위 실태 조사를 계기로 해외 출장 비용 처리에 많은 문제가 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며 “직원들이 처리한 일이라 해서 ‘나 몰라라’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관행이라며 처리하는 출장 비용을 찬찬히 들여다보지 못했다. 부끄럽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의원들 사이에서 이번 일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며 시정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홍성현 충남도의회 의장(국민의힘)은 전화 통화에서 이에 대해 “의장으로서 이유를 불문하고 죄송하다는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다만 그는 “2024년 1~7월 출장에 한해 자체 조사를 실시했는데 농수산해양위원회 이외 나머지 위원회의 국외 출장에는 문제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 권익위 조사 결과와 달리 항공권을 조작해 부풀린 예산은 (1741만2000원이 아닌) 1250만 원이었다”며 일부는 사실과 내용이 다르다고 지적했다.

    부풀린 예산의 수치가 다르다고 해서 항공권 조작이나 예산 부풀리기 같은 부정행위의 무게가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전수조사에서 드러난, 허위·과다 청구로 차액을 챙긴 주체는 향후 수사기관의 수사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권익위 관계자는 “차액을 챙긴 주체가 지방의원인지, 지방의회 직원인지, 여행사인지는 사안마다 달라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지방의회의 외유성 해외 출장 논란이 연례행사처럼 반복되는 것은 이를 규제할 법적 근거가 없어서다. 풀뿌리 민주주의 원칙인 지방자치법에 따라 지자체 소관 사무는 지자체가 각자 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2019년 2월 행정안전부가 지방의회 의원들의 해외 출장과 관련해 ‘지방의회 의원 공무 국외출장 규칙 표준안’을 개정해 지자체에 통보했지만, 이는 강제력이 없는 권고 수준에 불과하다. 여기에는 각 지방의회의 출장을 규제하거나 제한하는 내용도 담겨 있지 않다.

    지방의회는 행안부 표준안에 따라 조례를 제정, 의원 국외 출장 시 민간위원이 전체 3분의 2 이상인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받고 출장 전후로 계획서와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심사위에서 문제점을 제기해도 지금까지 출장 자체가 부결된 사례는 드물어 실효성이 없는 실정이다.

    권익위가 지방의회 국외 출장 실태조사를 발표한 후 일부 지방의회에서는 지방의원들의 국외 출장 심사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조례 또는 규칙을 개정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박태순 안산시의회 의장(더불어민주당)은 전화 통화에서 “권익위 조사 발표 이후 ‘안산시의회 지방공무원 공무 국외출장’ 관련 조례 개정을 추진하고 있다. 이전엔 지방의회의원 공무 국외출장 규칙에 따라 심사위원 5명 중 2명이 지방의원 등 내부 인원으로 채워졌다. 앞으로는 5명 전원을 외부 인사로 채우고 위반 사항에 대해서는 징계를 내릴 방침”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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