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양의 술이라도 장기간 마시면 생식 능력이 감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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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양의 술이라도 장기간 마시면 생식 능력이 감퇴한다. [Gettyimage]
문제는 술을 매일, 조금씩 즐기는 데 있다. ‘홈술족’을 자처하는 여성들은 편안한 집에서 술 한잔 마시는 것이 일상 속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취할 정도로 마시는 것도 아니고 조금씩 마시기에 건강에 해롭지 않다고 여기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술을 마시는 이유는 제각각이지만 상당수가 직장 스트레스에 기인한다. 맞벌이 부부의 60%, 독신 여성의 90% 이상이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 퇴근 후 혼자 식사하며 자연스럽게 마시는 ‘혼술(나 홀로 술)’은 대수롭지 않다. 직장에서 안 좋은 일이 생기거나 언짢은 얘기를 들었을 때 혼자 먹는 음식과 술이 자신을 달래주는 친구처럼 긴장을 풀어주니 홈술, 혼술 의존도가 갈수록 높아진다. 걱정되는 건 이같이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평소 주량보다 술을 더 많이 마실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혼자 밥상을 차려놓고 술 한잔 곁들이면서 TV 드라마를 시청하는 여성을 상상해 보자. 그녀는 마치 자신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 듯 그 속에 빠져들 것이다. 요즘 드라마를 보면 남성보다 여성의 활약(심지어 액션 신에서도)이 경이로울 지경이다. 술 마시는 장면에서도 여성이 남성의 주량을 이긴다. 회식에 참석한 여주인공이 만취해 남자 주인공의 등에 업혀 귀가하는 장면이 흔히 등장한다. 드라마뿐 아니라 유튜브 동영상에도 여성의 혼술 장면이 예사로 나온다. 식사도 안주도 없이 온전히 술만 들이켜기도 한다.
비만음주자 배란 이상 확률 60%
공복에 마시는 술은 취기를 빨리 오르게 한다. 술만 섭취하면 식도 하부에서부터 알코올이 흡수되며 위와 장에도 빠르게 흡수된다. 알코올의 도수가 높을수록 다량의 알코올이 흡수되는 것이다. 흡수된 알코올은 핏줄을 타고 간으로 이동해 일부는 대사(代謝)가 되지만 많은 양이 심장을 통해 전신으로 퍼지게 된다. 이 알코올은 뇌에 가서 기분을 좋게, 조금 들뜨게 만든다. 알코올의 농도가 높고 흡수되는 시간이 길어지면 행동이 무뎌지고 말이 어눌해진다. 음주 운전이 차 사고로 연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여성에게 술은, 특히 잦은 음주(반주는 더더욱)는 생식력 저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 여성이 술을 자주 마시면 음주 초기에 머리가 잠시 시원해진다고 느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신체에는 많은 문제가 생기기 때문이다. 사실 알코올이 신체에 끼치는 좋은 영향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알코올이 위와 장에 빠르게 흡수되듯 세포에도 빠르게 스며든다. 이렇게 스며든 알코올은 효소와 반응해 알데히드(아세트알데하이드)라는 독소를 만드는데 이 알데히드가 세포의 산화를 유발한다. 세포의 산화는 곧 세포의 노화와 직결된다. 알데히드는 세포의 심장부라고 할 수 있는 핵을 공격하고, 핵 안에 있는 유전물질인 2중 나선구조의 DNA를 산화시킨다. 따라서 핵에서 세포질에 내리는 단백질 합성 같은 명령과 그 과정에 차질이 생긴다.
생식력에도 노란불이 켜진다. 난소의 난자도 알코올의 침습에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즉 난자가 성숙, 배란 단계를 거쳐 정자와 만나 수정되기까지 전 과정에서 모든 것을 계획하고 명령하는 DNA가 손상을 입으면 전 과정의 작동에 차질이 생긴다. 부실한 난자로 어떻게 예쁘고 건강한 아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따라서 술을 많이, 장기간 마시면 난자의 수명이 짧아지고 난소 기능이 저하돼 결국 생식능력은 떨어진다.
![뚱뚱한 여성은 보통 체중 여성보다 배란 이상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Gettyimage]](https://dimg.donga.com/a/700/0/90/5/ugc/CDB/SHINDONGA/Article/67/9c/25/9e/679c259e20dbd2738276.jpg)
뚱뚱한 여성은 보통 체중 여성보다 배란 이상 증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Gettyimage]
술고래의 정력이 좋기 어려워
임신 중 음주는 더 큰 문제를 야기한다. 적은 양의 알코올로도 태아 알코올 증후군을 유발할 수 있다. 즉 태아의 신체적 기형(소뇌증, 심장기형, 척추기형, 두개안면 기형 등)과 정신적 장애(주의 산만, 행동장애, 충동적 행동, 지각 이상 등)를 초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술을 많이 마시는 남성 역시 생식력이 저하된다. 정자는 머리와 중간부(미토콘드리아라는 연료통)와 꼬리가 전부다. 정자에 머리는 DNA의 전체로 단 하나의 원형질막으로 돼 있다. 일반 세포의 DNA에는 원형질막-세포질-핵막의 3중 방어막이 있는 반면, 정자는 DNA가 얇은 막 하나로 싸여 있어 외부 환경에 매우 취약하다.
수년 전, 대학생 지원자(임상 연구에 참여)에게 알코올을 마시게 해서 혈중농도가 상승했을 때 정액의 상태를 검사한 적이 있다. 아니나 다를까 정자의 운동성이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알코올이 정자 DNA의 산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다. 술을 많이 마시는 남성의 정자는 배란된 난자에 도달하기도 어렵고, 도달한다고 해도 난자와 정상적으로 수정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음주를 자주 하면 여성은 성욕 감퇴, 남성은 발기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술고래가 정력까지 좋기란 좀처럼 힘들다고 보면 된다.
필자에게 시험관아기시술(IVF)을 받는 부부가 이렇게 물었다. “난자를 채취해야 하는 전날 회사에서 중요한 모임이 있는데 그때 술을 한잔 마셔도 될까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아니, 술은 독인데 어떻게 예쁘고 귀여운 아기를 갖고 싶어 하면서 독을 먹을 생각을 하십니까?” 포도주가 건강에 좋다느니, 한국인의 몸에는 막걸리가 맞을 거라느니 하는 말은 모두 다 근거가 없다. 운동이나 노동을 하고 나서 땀을 흠뻑 흘린 뒤 마시는 맥주 한잔이 순간적 상쾌함을 줄 순 있지만, 몸에 좋을 리 없다. 술에 관한 한 모든 기대는 착각이다. 어떤 음료에라도 알코올이 들어가면 더는 음료수가 아니다.
착한 술은 없다. 거듭 강조하지만 음주는 세포에서 활성산소의 부하를 증가시킬 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산화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는 술과 담배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담뱃갑에 암 사진을 붙여 흡연 위험성을 경고하는 금연 정책처럼 술에도 경고 사진과 문구를 부착할 필요가 있다. 알코올 속에 있는 발암물질이 체내 조직이나 점막에 쉽게 침투해 기능에 문제를 야기하고, 간이 알코올을 분해하며 만드는 독성물질인 아세트알데하이드가 암을 일으키는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