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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아들 골라 낳는 체외수정과 출생률 0.65명 시대

[난임전문의 조정현의 생식이야기]

  • 난임전문의 조정현

    입력2024-04-12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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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상] 난임 전문의 조정현의 조언



    2023년 4분기 우리나라 출생률이 0.65를 기록했다. [Gettyimage]

    2023년 4분기 우리나라 출생률이 0.65를 기록했다. [Gettyimage]

    산부인과 의사로서 사법부에 큰 박수를 보낸다. 이제는 임신부가 원하면 언제든 태아 성별을 알려줄 수 있게 됐다. 임신부라면 아기 성별이 궁금한 것은 인지상정이지만 그동안 ‘태아 성별 고지 행위 금지법 조항(의료법 제20조 제2항)’으로 인해 임신 32주까지는 이를 함부로 말해줄 수 없었다.

    실제 임신부에게 태아가 아들인지 딸인지를 알려줬다는 이유로 처벌받은 의사가 있다. 그래서일까, 초음파검사를 하면서 임신부가 “아기 배내옷을 빨강(딸)으로 준비할까요, 파랑(아들)으로 준비할까요?” 하고 물어오면 전전긍긍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하는 의사도 많았다.

    세상이 변했다. 헌법재판소에서 “태아의 성별을 비롯한 모든 정보를 부모로서 당연히 알 권리가 있다”며 “32주 전 고지 금지는 위헌(違憲)”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정말이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임신부에게 태아 성별을 알려주지 못하도록 한 고지금지법은 1987년 시작됐다. 그때만 해도 남아선호사상이 확연했다. 누구라도 아들 낳기만 바라다 보니 줄줄이 딸만 낳는 부부는 딸에게 말숙이, 말자, 끝순이, 섭섭이, 종남(鐘男)이와 같은 이름을 붙여주기도 했다.



    아들만 고집해 임신중절을 마다하지 않은 사례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난 것은 초음파검사로 태아 성감별이 가능해진 1980년대부터였다. 산부인과적으로 인공임신중절(낙태) 수술은 임신 14주까지는 태아의 독자적 생존 가능성이 적어서 허용되고 있지만, 임신 15주부터는 산모의 생명이나 건강을 해치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하지만 남아선호사상이 팽배하던 그 시절에는 초음파검사를 통해 성별을 알게 되는 시기가 임신 16주 이후인데도 불구하고 낙태하는 사례가 빈번했다. 그 결과 1990년대 초반에는 셋째 아이의 출생 성비가 남아가 여아의 두 배를 넘을 정도로 성비 불균형의 정점을 찍었다.

    요즘은 많이 달라졌다. 오히려 여아를 선호하는 부부가 더 많을 정도다. 헌재도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감안해 임신 32주 전 태아 정보 고지 금지를 두고 ‘위헌’이라는 판정을 내렸을 것이다.

    PGT검사로 성별 미리 확인 가능

    배아를 자궁 내 이식하는 시험관아기 시술(IVF)에서는 성별을 알 수 없다. [위키피디아]

    배아를 자궁 내 이식하는 시험관아기 시술(IVF)에서는 성별을 알 수 없다. [위키피디아]

    필자는 난임 전문의여서 임신 11주까지만 초음파로 태아 검사(발육 상태, 크기 재기, 심박수, 양수 양, 목둘레 등)를 하기에 태아 성별에 대한 질문은 거의 받지 않는다. 아주 간혹 시험관아기 시술(IVF)에서 남아만을 선택해 임신할 수 있는지를 조심스레 묻는 난임 부부가 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불가능하다.

    체외수정이 된 지 겨우 3~5일째 되는 배아를 자궁 내 이식하는 IVF에서는 성별을 알 수 없다. 물론 배아 이식 전에 염색체를 들여다볼 수 있는 착상 전 유전학검사(Preimplantation Genetic Testing·PGT)를 하면 성별을 알 수 있지만 의학적 이유에 한해 배아의 선택 이식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남성은 발현이 되고 여성은 보인자(숨겨져 있어 나타나지 않는 유전 형질을 지닌 사람)가 되는 유전병이 있을 경우가 해당된다.

    유전병은 유독 남성에게만 대물림되는 경우가 많다. 성 연관 유전(반성유전)에 의한 혈우병과 듀센형 근위축증이 대표적이다. 두 질환은 남자로 태어나면 생활을 영위하지 못하고 사망하게 된다. X염색체에 그 원인이 있다. 여성(46XX)은 X염색체 하나가 유전적으로 이상이 있더라도 다른 X염색체가 정상적 기능을 하기에 별 탈이 없다. 반성유전에 따른 유전질환이 예상될 경우에는 PGT를 해서 46XX의 수정란만을 이식해 주면 된다.

    인구절벽의 시대이니만큼 반성유전 병이 있는 경우 PGT를 일부 허용한다고 해도 사회적으로 해로운 영향을 끼치지 않으리라고 본다. 다만 반드시 의학적 선택 임신이어야지, 심리적 선택 임신(남아 혹은 여아 선호)이 목적이라면 이를 금지해야 한다.

    태아 성(性)은 정자에 의해 결정된다. 난자(23X)가 23X 정자를 만나면 딸(46XX), 23Y 정자를 만나면 아들(46XY)이 태어난다. 아들을 낳고 싶으면 23Y 정자를 찾아 체외수정을 하는 방법으로 해결되겠다 싶겠지만, 보조생식술에서 23Y 정자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 정자를 이용해 성별 선택 체외수정에 성공한 사례가 있다. 뉴욕 웨일 코넬 의대에서 IVF에서 원하는 성별의 배아를 얻는 데 80% 성공해 화제가 됐다. Y염색체와 X염색체의 무게가 약간 다른 점을 이용해 남아를 원하면 Y염색체 정자로, 딸을 원하면 X염색체 정자로 체외수정하는 데 성공했다는 것이다. 자손의 성을 인위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윤리 논쟁을 야기할 만한 일이지만 저출생 시대에 아기를 한 명이라도 더 낳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또 이제는 남아보다 여아를 선호하는 경향이 뚜렷해져 임신을 시도하는 단계부터 성별 감별이 가능해져도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거라는 전망이 나온다.

    노파심에서 한마디를 더하자면, PGT 같은 현대 과학의 비약적 발달 이면에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도 많다. 수정란(배아)이라는 생명체에서 떼어낸 세포 하나로 전체 염색체 유전자를 들여다볼 수 있는 시대가 됐지만, 검사 정확도가 100%는 아니다. 배아가 세포분열을 하면서 비정상적 세포가 섞이기 때문이다. 정상 유전체 세포들과 함께 비정상 유전체 줄기가 있는 모자이시즘 배아라고 해도 건강한 출산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꽤 있다. 외국에는 PGT, 융모검사, 양수검사까지 이상을 보였는데 정상아로 태어난 경우가 적지 않다. 다시 말해 PGT는 배아 상태를 점검하는 검사지, 비정상 유전자를 정상으로 바꿔주거나 성별을 확인하기 위한 검사가 아니다,

    출생률 0.65 시대

    인구 한 명 늘리는 것이 애국을 실천하는 길이다. 둘째 아이 출생아 수가 연간 10만 명이 안 된다고 한다. 집집마다 외동아들 외동딸만 있는 세상이 곧 올 것이다. 이 땅의 청춘들이 이토록 복잡하고 힘든 세상살이를 형제자매도 없이 홀로 살아가야 할 미래를 떠올리면 마음이 아프다. 눈앞의 이익만 계산하며 경쟁을 부추긴 결과 저출생 시대를 초래하게 됐다. 하지만 늘 사람이 희망이듯이 생명만이 살길이다. 2023년 4분기 출생률이 0.65를 기록했다. 상황이 이럴진대 찬밥, 더운밥을 가릴 때가 아니다. 딸이든 아들이든 한 명이라도 더 낳으면 기특하고 장한 일이다. 마음 같아서는 딸을 원하면 딸을 낳게 해주고 싶고, 아들 원하면 아들을 낳게 해주고 싶을 정도다. 여아 선호든 남아 선호든 뭐가 문제겠는가. 아기를 낳겠다고 하면 반갑고 고마운 일이다.

    조정현
    ● 연세대 의대 졸업
    ● 영동제일병원 부원장. 미즈메디 강남 원장. 강남차병원 산부인과 교수
    ● 대한산부인과의사회 부회장
    ● 現 사랑아이여성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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