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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고민정 “기존 민주당 이념 벗어날 용기 필요… 종부세 폐지해야”

주류에서 비주류로… 변방에서 길을 찾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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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jayko@donga.com

    입력2024-05-24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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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親明 아니라는 말 굳이 선언한 이유

    • 정치 멘토 없다, 멘토 되는 꿈 있을 뿐

    • 오세훈 일부러 안 만나…곧 면담 요청

    • 민주당에 고소득자 대변할 사람도 필요

    • 親文 프레임에 계속 있으면 나의 실패

    • 조국, 지금도 같은 방향 바라보는 동지

    • 이재명 대표 연임, 당원이 판단하겠지만…

    [영상] 고민정 민주당 의원 작심발언



    5월 2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도균 객원기자]

    5월 2일 ‘신동아’와 인터뷰 후 사진 촬영을 위해 포즈를 취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의원. [김도균 객원기자]

    주류에 몸을 의탁하기는 쉽다. 대세에 적당히 묻어가면 그만이다. 자기 색깔을 죽이고 그로 인한 반대급부로 실리를 얻는다. 그러니 오늘도 내일도 안도감을 느낀다. 어려운 쪽은 비주류를 자처하는 일이다. 비아냥거림을 감내해야 한다. 자칫 꼬투리가 잡히면 집중포화의 타깃이 된다. 앉은 의자가 하루아침에 사라져도 이상하지 않다. 갖은 풍파까지는 아니나 정신적 피로도가 극대화하는 삶이다. 고민정(45)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떠올리며 드는 생각이다. 그는 2022년 8·28 전당대회를 기점으로 선명한 비주류의 길에 들어섰다. 친문(親문재인계) 주류로 국회에 입성한 2020년에는 미처 내다보지 못한 미래다. 평탄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 굳이 자신을 화살 앞에 던진 까닭을 듣고 싶었다.

    TV와 라디오에서 접한 그는 정갈하면서도 전형적인 이미지의 정치인이었다. 나직한 어투로 진보파의 논리를 설파하는 사람으로 비쳤다. 공영방송 아나운서 출신이라는 점이 그런 느낌을 강화했다. 개성적 요소라면 특유의 파토스(pathos·감성) 화법이 아닐까 생각한 정도다. 실제로도 그런 사람이었다면 이 글을 시작할 이유는 없다. 3월 초와 5월 초, 두 차례에 걸쳐 장시간 대화를 나눈 뒤 생각이 달라졌다. 편견을 가졌구나 싶었다. 이 사람은 반골(反骨)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돌아보면 4·10 총선 과정에서 공천 내홍에 항의하며 최고위원을 사퇴한 사람은 고 의원뿐이다. 얻기도 어려우나 던지기는 더 어려운 것이 직(職)이다.

    “어떤 분들은 (저를) 순하게 봐요. 착하고 순하고 고분고분하고. 그런 말이 어릴 때부터 참 듣기 싫었어요. 저는 손 들고 발표하는 것도 해본 적이 없어요. 아킬레스건이라고 할까, 없어지면 좋겠다 싶은 성격이었죠. 그렇다 보니 점점 (반골 기질이) 발현되는 것 같아요. 최고위원 선거도 그냥 해도 됐는데 굳이 친명(親이재명)은 아니라고 선언하는 내 모습을 보면 남과 똑같아지는 걸 내가 참 거부하는구나 싶어요. 아나운서 시험 볼 때 그런 생각을 했어요. 1~2명 뽑는데 지원자는 1500명쯤 되거든요. 남과 똑같이 준비하면 나의 경쟁력은 n분의 1이잖아요. 1500명과 다른 나의 모습을 어떻게 어필할까 생각했어요. 정치도 마찬가지고요.”

    비주류 중에 비주류가 됐잖아요

    고민정 의원이 5월 2일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고민정 의원이 5월 2일 ‘신동아’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도균 객원기자]

    지금이야 그가 비주류의 기수가 됐지만 애초에 그랬던 건 아니다. 다수파에 날을 세우던 정치인이 하나둘 당을 떠나면서 나타난 결과다. ‘문자 폭탄’이니 ‘좌표 찍기’니 등의 단어가 쓰인 것도 제법 오래된 일이다. 층층이 누적된 갈등 탓에 당내 선거 분위기는 사나워졌다. 당원 민주주의라는 옹호론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그에게 금태섭 전 의원과 조응천·이원욱·박용진 의원의 이름을 차례차례 거명하며 물었다. 주류와 다른 의견을 낸 사람들이 탈당하거나 낙천한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한 묶음으로 볼 수는 없는 분들 같습니다. 이유가 무엇이건 당을 나간 것에 동의하기 어렵습니다. 박용진 의원은 잘린 것이지 나간 사람은 아니잖아요. 당내에 다양한 목소리가 사라지는 게 아닐까 하는 걱정은 있죠. 곧 초선의원들이 들어올 텐데, 그들이 보기에 ‘고민정 같은 사람이 다른 목소리를 내니 저렇게 되더라’ 이래버리면 누가 또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겠습니까. 저는 최고위원 출마했을 때 ‘나는 다르다’고 선언하고 시작했잖아요. 그런 존재가 반드시 필요해요. 인간 세상이라는 게 획일화될 수는 없거든요.”

    지금 이 사람은 자기 위치를 변방에서 찾는다. 마침 문재인 전 대통령이 공개한 회고록의 제목도 ‘변방에서 중심으로’다. 변방은 고(故) 신영복 전 성공회대 교수의 세계관이 스민 단어다. 고 의원에게도 무게감이 남다른 이름이다. 1990년대 중·후반~2000년대 초·중반 학번에게 신영복의 ‘변방 의식’은 친숙하다. 고 의원은 98학번이다. 입학 직후 민중가요 노래패 동아리를 찾아갔단다. “대학은 고등학교와 달라야 하지 않느냐는 반발심이 있었는데, 그 동아리는 고민거리를 줬다”는 이유에서다. 동아리가 자신을 살아 있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도 했다. 그가 가진 ‘변방 의식’은 대학 시절부터 야금야금 배양된 것이다.

    최고위원이자 재선에도 성공했는데 여전히 스스로를 변방이라 생각합니까.

    “변방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순간 변화는 없다고 생각해요. 신영복 선생께서 ‘중심이라 인지하는 사람은 그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지만, 변방이라 인지한 사람은 중심에 들어가고자 하는 원동력으로 많은 것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했는데, 그 말이 인상 깊게 남았나 봐요. KBS 아나운서 시절 잘나가는 프로그램 MC를 했을 때도 내가 변방이라는 생각을 잊지 않으려 노력했어요. 지금도 최고위원이지만 비주류 중에 비주류가 됐잖아요. 그리고 문재인 정부의 사람이기 때문에 주류라고 볼 수는 없죠. 여성은 또 늘 주류가 아니었고, 나이도 그렇고요. 그 점이 오히려 힘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2남 1녀 집안의 막내딸이다. 남편은 11살 연상의 시인이다. 청와대에서 일할 때 임종석(전 대통령비서실장), 조국(전 대통령민정수석), 윤영찬(전 대통령국민소통수석), 김의겸(전 대변인) 등 열서너 살 많은 이들과 손발을 맞췄다. 그래서일까. 그의 말을 듣다 보면 실제 나이보다는 윗세대의 감성이 읽힌다. 그가 대화 중 언급한 몇 권의 책은 1980년대 후반~1990년대 초반 학생운동권의 필독서였다.

    98학번보다 90년대 초반 학번의 감성이 보이는데, 제가 잘못 본 건가요.

    “맞게 보셨어요. 스스로 그렇다고 생각하거든요. 90년대 초반 학번의 감성이 있긴 한데, 성향은 2000년대 학번 후배들과 비슷해요. 청와대에 있을 때 대통령께서 휴가를 갔다가 큰일이 생겨 돌아오셨어요. 모두가 휴가를 반납했어요. 저는 휴가를 갔죠. 내 역할을 다 했는데 단순히 대통령께서 휴가를 반납했다는 이유만으로 내 휴가도 반납하는 것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했죠. 다녀오니 대통령께서 오히려 물으시더라고요. 가족들은 잘 지내냐고.”

    저는 평생 꼬리만 하게요?

    2월 4일 이재명 대표(왼쪽에서 다섯 번째)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을 예방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고민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2월 4일 이재명 대표(왼쪽에서 다섯 번째)를 비롯한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경남 양산시 하북면 평산마을을 찾아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에서 다섯 번째)을 예방한 뒤 기념 촬영하고 있다. 가장 오른쪽이 고민정 의원. [더불어민주당]

    두 차례 만난 뒤 내린 판단으로는, 그는 리버럴(liberal)이다. 조직 논리에 복속될 의사가 없는 사람이다. 집단주의 성향과는 상극이다. 직함보다 일에서 얻는 의미가 중요한 사람이다. KBS 시절에 대해 물으면 ‘밤을 잊은 그대에게’를 진행할 때 깨달은 바를 조곤조곤 회고하는 식이다. 동아리 회장일 때는 5·18에 책을 읽고 토론하는 관례를 없앴다고 했다. 억지로 읽으면 재미도 의미도 느낄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대신 5·18 관련 사진을 구해 동아리방에 게시했단다. 고민거리를 주면 된다는 거다. 기질적으로는 문재인 전 대통령보다 노무현 전 대통령에 더 가깝다고 했다. 필요하면 언제든 집단의 권위에 맞서겠다는 뜻으로 읽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기질을 가진 사람이 민주당에 점점 줄어가는 것 아닙니까.

    “22대 국회에 어떤 기질을 가진 의원들이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거든요. 부디 다른 목소리를 내는 것에 두려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민주당 당원의 저변을 넓힐 수 있는 길이고요. 또 당원 가입을 하지 않는 국민이 훨씬 많거든요. 우리 당원과 진보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물론 핵심적으로 중요하지만, 절대다수 국민을 설득해야 정권을 잡을 수 있죠.”

    정치적 멘토라고 할 만한 사람은 있나요.

    “어릴 때부터 존경하는 사람 묻는 질문을 가장 힘들어했어요. 뻔한 사람은 쓰기 싫거든요. 고민정의 정치적 멘토 하면 세 글자로 표현해야 하는데, 잘 안 나와요. 조금 버릇없는 말일 수 있겠지만 누군가의 정치적 멘토가 되고 싶은 꿈은 있죠.”

    정치인 만날 때 이 질문을 정말 많이 하거든요. 멘토가 없다고 답변한 사람이 딱 한 명 있는데요.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웃음)

    “그래요?”

    두 분 다 그만큼 자존감이 강하다는 의미겠죠.

    “네(웃음).”

    숱한 친문이 친명으로 변신할 때 가장자리에서 싸우는 쪽을 택했다. 쏟아지는 비판 혹은 비난 탓에 “불면증에 시달렸다”고도 했다. 그러면서도 “같은 자리에 두번 세번 상처가 나면 굳은살이 생긴다”고 부연했다. 의리라는 단어로 손쉽게 요약할 성질의 일은 아니다. 정확히 말하면 그는 친문으로 남는 쪽을 택하지 않았다. 계파의 그늘에서 벗어나는 길로 자신을 밀어 넣었다. 친명이 아니어서 친문으로 불릴 뿐이다. 소수파가 될지언정 제 이름 석 자로만 정치를 해보겠다는 의지다. 리버럴의 DNA가 아니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한데 당의 일각에서는 그에게 친문의 구심이 되길 요구한다.

    친문이 다시 세력화해야 한다고 봅니까.

    “글쎄요.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까…. 과거에 친노(親노무현)가 있었잖아요. 친노가 세력화를 한다 해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친노의 정신이) 녹아들어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친문도 마찬가지예요. 지금 재선급 이상 중에 문재인 대통령 얘기 안 하고 당선된 분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그때는 다 친문이었어요. 그런데 문재인의 시대는 끝이 났잖아요. 친문의 정신은 친노의 정신처럼 (당에) 스며 들어가야 한다고 보고요. 저는 저의 정치를 해야겠죠. 친문 프레임에 계속 있으면 제가 실패한 거겠죠.”

    언론은 여전히 고 의원 앞에 친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은데요.

    “부정하고 싶지는 않아요. 친문으로 시작한 건 맞으니까. 인정하되 시즌 2로 만들어야죠. 변화하고 혁신하는 모습을 보여야지, 옛날 그대로 따라가면 저는 평생 꼬리만 하게요?”

    4·10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에 출마한 그는 51.47%를 얻어 47.60%에 그친 오신환 국민의힘 후보를 3.87%포인트 차로 제쳤다. 4년 전에는 오세훈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후보에 2.55%포인트 차로 신승한 바 있다. 오신환 후보는 오세훈 시장의 임명으로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냈다.

    굳이 관심 끌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기대만큼의 득표였습니까. 아니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었다는 아쉬움이 남나요.

    “모든 선거는 늘 아쉽죠. 대통령선거 때 광진을에서 5%포인트 안팎 졌거든요.(윤석열 후보 50.76%, 이재명 후보 45.37%) 이번에 4%포인트 가까이 이겼기 때문에 9%포인트를 회복한 선거죠. 그리고 저한테는 오세훈 시장과의 시즌2였거든요. 우리 지역에는 윤석열은 보이지 않았어요. 오세훈만 보였죠. 그러니 더 부담스럽죠. 시장의 예산권과 행정력은 너무나 크니까. 녹록지 않았는데 이겨냈다는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세훈 시장이 4월 30일 민주당 당선자들과 오찬을 했는데요.

    “초선과 서울시당 당직자 중심으로 갔는데, 저도 조만간 면담을 요청할 생각이에요. 시장님과 같이 있는 모습 자체가 관심거리잖아요. 굳이 그렇게 관심 끌고 싶은 생각은 없어서 실무적으로 보좌관 통해 일했는데, 총선 때 오신환 후보가 ‘왜 광진구 지역구 의원이 시장 한 번 안 만나냐’ 얘기하더라고요. 나는 일부러 그랬는데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구나…. 저야 만날 일이 너무 많죠. 영동대교 고가 철거 날짜를 확보받아야 하고, 신속통합기획에 대한 주민 반대 의견도 봇물처럼 터지고 있는데 복안도 들어야겠고요. 동서울터미널도 터미널 대체 부지를 놓고도 논란이 크거든요. 들을 답이 많거든요. 그래서 이제는 직접 찾아가려고요.”

    고민정은 진보 정치인인가. 그를 둘러싼 환경은 ‘그렇다’고 말한다. 그의 레토릭(rhetoric)에도 진보의 자국이 짙게 묻어 있다. 한데 무언가 묘하게 전통적 진보와는 결이 달라 보인다. 그 얘기를 하기에 앞서 보고서 하나를 소개한다. 2022년 대선 이후 민주당 새로고침위원회는 ‘이기는 민주당 어떻게 가능한가’를 발간했다. 보고서는 3000명의 패널이 응답한 자료를 모아 국내 유권자를 6개로 분류했다. 평등·평화(37.7%), 능력주의 보수(21.5%), 친환경·신성장(18.8%), 반권위·포퓰리즘(9.3%), 민생 우선(6.4%), 배타적 개혁 우선(6.3%) 그룹이다.(*참고: 이관후 ‘한국 유권자, 보수-진보 이분법은 끝났다’, ‘피렌체의 식탁’ 2022년 9월 2일)

    평등·평화 그룹(37.7%)은 복지와 노동, 민족주의, 균형외교 등 한국 진보의 전통적 어젠다를 지지한다. 30~50대 여성과 50대 남성이 중심이다. 지역으로는 서울, 경기, 호남이 많다. 민주당의 전통적 지지층이다. 능력주의 보수 그룹(21.5%)에는 60대 이상이 가장 많다. 서울과 영남, 고학력자·경영사무관리직이 주를 이룬다. 국민의힘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흥미로운 쪽은 세 번째 덩어리인 친환경·신성장 그룹(18.8%)이다. 환경 이슈에 진보적이되 성장을 중시하고 신산업이 필요하다고 보는 유권자다. 국가가 복지에서 해야 할 역할은 긍정한다. 당파성이 약한 중도층이다. 이 조사를 언급하며 물었다.

    양당 중 한쪽으로 쏠리지는 않지만, 환경 이슈에 진보이되 경제성장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을 끌어당겨야 민주당이 대선에서 이길 수 있지 않을까요.

    “모든 선거는 중도 싸움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기존의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이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민주당도 용기가 필요하죠. 언제까지 서민의 정당만을 표방할 것인가. 서민의 정당을 버리자는 뜻이 아니라 시즌 2를 만들어야 하지 않겠냐는 겁니다. 그러려면 당내에서 치열한 싸움이 있어야 하거든요. 대선이 끝나자마자 저는 사실 그 준비를 했어요. 당내에서 이념과 정책 노선의 방향을 놓고 치열한 싸움이 벌어질 거라 생각했는데, 윤 대통령께서 ‘바이든 날리면’부터 시작해 어이없는 사건을 너무 많이 저지르니 당내 싸움을 할 겨를이 없는 거죠. 한(恨)으로 남아요. 우리가 그 좋은 시기를 놓쳤구나. 지금이 다시 기회일 수 있다고 봐요. 정권을 잡지 못하는 정당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는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가. 저는 대표적으로 종부세(종합부동산세) 폐지했으면 좋겠어요.”

    문재인 정부 부동산정책은 실책

    고민정 의원은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유지할 때 얻는 것과 폐지할 때 얻는 것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고민정 의원은 종합부동산세와 관련해 “유지할 때 얻는 것과 폐지할 때 얻는 것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도균 객원기자]

    다른 시각을 기대하긴 했는데, 예상보다 전향적인 답변을 내놓는다. 보수에도 진보에도 중도가 중요하다고 말하는 정치인은 많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원론적 입장을 반복하는 데 그친다. 그런데 고 의원은 금기(禁忌)를 건드리고 있다. 그와 인터뷰하고 엿새 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가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폐지’를 언급했지만 곧바로 “검토가 필요하다는 얘기”라며 톤을 낮췄다. 정치적 휘발성 때문이다. 무엇보다 종부세를 비롯한 부동산 세제 강화는 문재인 정부의 노선이었다. 고 의원은 대통령비서실 대변인을 지냈다. 무엇이 그의 생각을 바꿨나. 취지를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가급적 요약을 최소화했다.

    “저의 기본 성향이나 지금까지의 정치 노선을 보면, ‘종부세 9억 원’을 깨뜨리면 안 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러나 정치를 겪어보고 유권자를 만나본 뒤 내린 결론은, 종부세를 유지할 때 얻는 것과 폐지할 때 얻는 것을 면밀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세수를 늘리는 목적에서라면 종부세가 아닌 다른 방안을 고민해야 하는 게 아닌가. 오히려 종부세가 상징처럼 돼버려서 민주당은 집 가지고 부자인 사람을 공격하는 세력처럼 됐거든요. 우리가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라고 생각해요. 집값이 많이 떨어졌고 공시지가 변화도 있어서 예전만큼 종부세를 내시지는 않을 거예요. 설령 폐지해도 큰 변화는 없거든요. 그래도 상징적 의미는 굉장히 클 겁니다. 그러나 엄청난 싸움은 벌어지겠죠.”

    종부세 폐지까지 앞장서 주장하면 민주당에서 비주류의 비주류가 되는 것 아닙니까.

    “그럴 수도 있겠죠. 또 이런 고민도 있어요. (민주당이)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는 정당으로 돼가고 있는데, 세계적으로 플랫폼 기업이 자생력을 갖춘 몇 안 되는 나라가 대한민국이거든요. (플랫폼 기업 규제가) 국익에 도움이 되나 싶은 생각이 있어요. 저는 스타트업에 있는 젊은 CEO(최고경영자)들이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존중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를 수 없지 않으냐’하는 생각을 한다고 봐요. 민주화가 된 세상에서 태어난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제는 경제 강국의 꿈을 갖는 세대라고 생각하거든요. 그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어야 하는데, 국회에 젊은 세대가 너무 적잖아요.”

    제가 1986년생인데요. 1980년대 이후 출생한 세대에는 양가적 정서가 있습니다. 일단 글로벌 세대라는 자부심이 있죠. 다른 한편으로는 태어나 보니 민주화가 됐지만 크고 나니 저성장 국가가 된 셈이잖아요. 그러니 늘 미래가 불안하고 연금이 있을지 없을지도 모르겠고, 그런 이유로 자산을 축적하겠다는 생각이 강해지는 것이거든요.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민주당 일각은 그런 인식을 나쁜 욕망인 것처럼 보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 사례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이었다고 생각해요. 문재인 정부로서는 유동자금이 워낙 많고 코로나라는 특수한 상황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나라에 비해 집값이 그래도 많이 오르지는 않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저도 그런 생각을 갖고 있긴 했습니다. 그러나 집을 갖고 싶은 마음을 욕망으로 치부해 버렸다는 건 큰 잘못이라고 생각해요. 한 끗 차이일 수 있지만 ‘누구나 다 품을 수 있는 마음’이라는 시선으로 정책을 짜는 것과 ‘버려야 할 욕망’이라는 시선으로 정책을 짜는 건 다르거든요.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정책은 욕망이라는 시선을 상수로 깔았다는 점에서 실책이었다고 생각해요. 저도 문재인 정부 사람들 만나면 언제 한번 우리끼리라도 평가를 해보자고 얘기하거든요. 반성 없이는 새로운 걸 만들 수 없으니까요.”

    부동산 문제가 문재인 정부 정권 재창출 실패에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는 분석에 동의하나요.

    “정권 재창출 실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문재인 정부의 잘못만 따로 도려내서 본다면 아무래도 부동산이 컸죠.”

    언젠가 ‘먹고살기 힘든 사람들은 왜 민주당 싫어할까’라는 제목의 기사를 쓴 적이 있다. 진보정치의 연료는 을(乙)이어야 하나, 오늘날 을(乙)은 민주당의 골간이 아니다. 상위 중산층이 주로 민주당에 표를 줬다. 동아시아연구원(EAI)이 2022년 3월 10∼15일 실시한 대선 패널 2차 조사에 나오는 결론이다. 이에 따르면 월 가구소득 200만 원 미만 유권자 중 이재명 민주당 후보를 찍은 비율은 35.9%다. 이 후보는 월 600만~700만 원 미만에서 61.7%로 가장 많은 지지를 얻었다. 700만 원 이상에서도 이 후보는 49.6%를 얻어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47.9%)를 앞섰다. 이 내용을 거론하며 질문했다.

    가난할수록 국민의힘을 택하고 소득이 높을수록 민주당을 택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민주당 처지에서는 딜레마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민주당에 다양한 사람이 존재해야 한다는 겁니다. 민주당에 서민·약자를 대변할 사람도 존재해야 하고, 고소득층이 많이 지지하니 그들을 대변할 사람도 있어야 하고요. 민주당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져야 시민이 대리만족하거든요. 그 과정에서 대체로는 합리적 결론이 나올 겁니다. 고소득자는 ‘왜 법인세가 이렇게 높아야 하느냐’에 대해 당연히 본능적으로는 싫어하겠죠. 그러나 민주당에서 갖지 못한 사람을 대변하는 누군가와 기업을 대변하는 누군가가 싸웠는데 결론이 나온다? 그러면 받아들이기가 훨씬 수월하죠.”

    조국, 한번 동지면 영원한 동지

    조국혁신당의 조국 대표와 청와대에서 같은 시기에 일하셨죠.

    “그럼요. 친해요.”

    그에게 조국이라는 이름이 가진 의미는 작지 않아 보인다. 2021년 12월 8일 YTN 인터뷰에서는 “‘조국의 강’이라고 하는데, 그 강을 건너지 못하고 거기에 빠져 죽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재명 당시 대선후보가 ‘조국 사태’에 관해 사과한 점을 묻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에서다. 그 뒤에도 그는 몇 차례에 걸쳐 조 대표를 두고 ‘동지’라고 칭했다.

    총선을 통해 조국 대표가 스스로 ‘조국의 강’을 건넌 모양새입니다. 그런데 조국혁신당을 창당했으니 경쟁 정당 당수(黨首)가 된 셈인데, 여전히 동지라는 표현이 유효합니까.

    “(단호한 목소리로) 네. 배신하지 않는 한 한번 동지면 영원한 동지죠. 나는 그럴 생각은 없고 조 대표님은…. 글쎄요. 선거 끝나고는 만나 뵌 적이 없어서요. (조 대표와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사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예전 선배들은 동지라고 하면 희생과 헌신 위에서 맺는 관계를 생각했다면, 제가 말하는 동지는 철길과 같은 개념이거든요. 각자의 길은 가되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가는 사이. 오히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사이에) 경쟁 구도가 만들어지면 대한민국에는 좋다고 생각해요. 정의당의 자리에 조국혁신당이 들어섰다고 보면, 우리 사회가 전반적으로 진보적 방향으로 가는 데 역할을 할 수 있겠다 싶습니다.”

    최근 SBS 인터뷰에서 ‘투 트랙’이라는 용어를 썼던데요. 조국혁신당은 검찰개혁 이슈 중심으로 의정 활동을 하고 민주당은 민생 문제에 집중한다는 취지가 맞나요.

    “맞습니다. 민주당은 워낙 거대 정당이기 때문에 민생 문제를 챙기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 해서 진보개혁 어젠다를 놓칠 수도 없거든요. 두 가지를 다 챙기려다 보니 늘 가랑이가 찢어지는 거죠. 그 역할(진보개혁 어젠다)을 조국혁신당이 하면 민주당으로서는 (민생 중심으로 노선을 끌고 가는 데) 훨씬 수월하지 않겠나 생각해요. 민주당이 얼마큼 잘 활용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봅니다.”

    이제 와서 말하면 이 대목에서는 그의 발언에 선뜻 공감이 가지는 않았다. 조국혁신당이 내건 어젠다가 한국 사회를 진보적 방향으로 이끌 것이라는 근거가 아직은 나타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다. 검찰개혁은 구호로는 선명하지만 자칫 조국혁신당의 공간을 ‘검찰개혁’에 가두는 고리가 될 수 있다. 다른 구호인 ‘사회권 선진국’은 아직 구체성이 떨어진다. 22대 국회 개원 이후 공개될 ‘사회권 선진국’의 요지가 중요한 이유다. 다시 고 의원과의 문답으로 돌아간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의 영수 회담 어떻게 봤습니까.

    “저라면 영수 회담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을 것 같아요. 보통은 참모들이 조율한 뒤 대통령께 ‘이 정도는 받아줘야 합니다’라고 안을 만들고 영수 회담을 합니다. 정상회담도 다 그렇게 해요. 그런데 윤 대통령의 한마디에 (참모진) 모두가 벌벌 떠는 것 같아요. 저 같으면 영수 회담에서 이태원 참사 특별법을 합의할 수 있게 (의제 조율을) 했을 겁니다.”(*이태원 참사 특별법은 영수 회담 이후 여야 합의를 통해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됐다.)

    앞으로 회담이 또 있을까요.

    “없을 것 같은데요.(헛웃음)”

    강한 정당의 시대 그 이후

    고 의원의 최고위원 임기는 오는 8월이면 끝난다. 이즈음 민주당의 차기 지도부를 뽑는 전당대회가 치러진다. 앞으로 2년간 민주당이 나아갈 방향성이 드러나는 자리다. 친명계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연임론을 띄우고 있다. 대항마가 없는 만큼 사실상 추대 분위기로 흐를 개연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지도부에서 유일한 비주류로 꼽히는 고 의원의 생각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원로인 박지원 전남 해남·완도·진도군 당선인조차 이 대표의 연임이 필요하다면서 아주 공세적으로 주장하고 있는데요. 어떤 입장입니까.

    “결국 당원들이 판단할 영역이고요. 인력(人力)으로 어찌할 수 없는 시대의 흐름도 있습니다. 지금 시대는 강한 정당을 요구하고 있죠. 강한 정당의 시대를 넘어서면 부드러운 통합의 정당을 요구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그런데 지금은 윤석열 정부 때문에 강한 정당을 요구하는 시대는 맞는 것 같고요. 누가 가장 부합할까 물으면 떠오르는 사람이 이재명 대표밖에 없다 보니 이 대표를 얘기하는데, 개원하고 한두 달 시간이 있잖아요. 누군가 의지를 표명할 수도 있고, 당원이나 국민 눈에 누군가 보일 수도 있고요. 지금 예단하기는 참 어려운 영역 같아요.”

    직접 출마할 생각도 있나요.

    “아휴, 없어요.”

    이른 오전에 진행한 인터뷰에도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직업으로서의 정치’에 최적화한 사람으로 보였다. 그와 헤어진 뒤에 딱 한 마디가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강한 정당의 시대를 넘어서면 부드러운 통합의 정당을 요구하는 시대가 올 거예요.” 차근차근 그 시대를 준비하겠다는 말로 들렸다.

    신동아 6월호 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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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재석 기자

    고재석 기자

    1986년 제주 출생. 학부에서 역사학, 정치학을 공부했고 대학원에서 영상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해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2015년 하반기에 상아탑 바깥으로 나와 기자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유통, 전자, 미디어업계와 재계를 취재하며 경제기자의 문법을 익혔습니다. 2018년 6월 동아일보에 입사해 신동아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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