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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가 훼손한 백두대간 제 이름 찾는다

20년 논쟁 끝, 첨단기술로 다시 그리는 산맥지도

일제가 훼손한 백두대간 제 이름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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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반도의 등줄산맥은 백두대간인가, 낭림·태백산맥인가? 지난 20년 동안 일제시대에 만들어진 현행 산맥체계를 둘러싸고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이에 국토연구원은 올해 초부터‘위성영상을 이용한 한반도 산맥체계 재정립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다. 현행 산맥체계와 백두대간 산맥체계의 과학적 근거를 분석해 한반도 산맥체계를 재정립하고, 일제에 의해 ‘창지개명(創地改名)’된 우리 산맥들에게 새 이름을 찾아주지는 취지다.
일제가 훼손한 백두대간 제 이름 찾는다
“태백산맥, 함경산맥, 묘향산맥, 멸악산맥, 차령산맥…”학창시절 줄기차게 외웠던 이 산맥 이름이 지금도 초등학교 4학년 사회교과서에 그대로 나온다. 외우는 데 진땀 흘리기도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이 산맥의 이름들은 누가, 언제 붙인 것일까?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한반도의 산맥체계는 일제가 조선을 침탈하기 위해 갖가지 공작을 꾸미던 1900년대 초 일본인 지질학자 고토 분지로(小藤文次郞)가 조사한 지질구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즉 현재의 산맥체계는 일제가 식민지 수탈 차원에서 한반도의 지하자원을 조사하는 과정에 생겨난 산물인 것이다.

創地改名된 땅이름, 산맥이름

고토 분지로는 망아지 네 마리와 여섯 사람을 동원해 14개월 동안 한반도 전역의 지질구조를 조사했다. 그리고 1903년 ‘조선산악론’이란 논문을 발표했는데 이 논문에서 그는 백두대간을 동강내고 낭림산맥과 태백산맥을 한반도의 등뼈줄기로 삼아 산맥이름들을 붙였다. 이는 백두산 정기를 한민족의 마음속에서 지워버리려는 민족문화 말살정책의 하나로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광복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창지개명(創地改名)’된 땅이름과 산맥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고토 분지로가 한반도 땅을 답사했던 20세기 초반의 기술여건으로는 기껏 1년이 조금 넘는 기간에 고작 망아지 네 마리와 여섯 사람을 동원해 한반도 전역을 샅샅이 조사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는 단지 땅 밑의 지질구조에 관심을 갖고 우리나라의 산맥체계를 스케치했다. 그러므로 그의 논문은 땅 위의 산맥체계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지질학적으로도 증거를 분명히 제시하지 못하는 한계를 안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산맥체계는 지난 100년간 뚜렷한 과학적 검증 절차도 밟지 않은 채 고토 분지로의 이론적 틀 안에 갇혀 있는 실정이다. 또한 고토 분지로의 한반도 산맥분류체계와 명칭이 각 교과서 저자에 의해 조금씩 달리 표기돼 원본과 크게 다를 뿐 아니라 심지어 지리교과서마다 조금씩 다르게 수록되어 있다.

그렇다면 우리 선조들은 고토 분지로 이전엔 큰 산줄기에 이름을 붙여 불렀던 적이 없는 것일까. 그렇지는 않다. 조선후기에 편찬된 지리서인 ‘산경표(山經表)’를 보자.

우리 선조들은 한반도 전역의 큰 산과 고개를 15개의 산줄기, 즉 1대간(大幹), 1정간(正幹), 13정맥(正脈)으로 구분했다. 백두산에서 두류산,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 속리산을 거쳐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큰 산줄기를 ‘백두대간(白頭大幹)’이라 불렀다. 지금으로 치면 이른바 마천령산맥, 함경산맥, 낭림산맥, 태백산맥, 소백산맥의 일부분씩을 이은 산줄기가 백두대간이다. 그리고 두류산에서 함경북도 내륙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장백정간(長白正幹)’이라 불렀다. 또 청천강 이북에 ‘청북정맥’이 있고, 그 이남에 ‘청남정맥’이 있다. 이것이 바로 옛 사람들이 산줄기를 표시했던 방법이다.

백두산이 한반도의 중심

본디 우리 민족의 자연관은 자연조화사상이었다. 이러한 자연관은 산에 대해서도 예외가 아니다. 생활환경의 큰 배경이 되는 산과의 조화는 산과 관련된 문학, 풍류, 종교 등에 반영되었다.

조선시대 이전 산에 대한 인식체계를 찾아볼 수 있는 문헌은 통일신라 후기 때 도선(道詵, 827∼898)이 쓴 ‘옥룡기(玉龍記)’다. 도선은 여기서 ‘우리나라 지맥은 백두산에서 일어나 지리산에서 그치는데, 그 산세는 뿌리에 물을 품은 나무줄기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我國始于白頭終于智異 其勢水根木幹之地)’며 우리 국토를 한 그루의 나무에 비유했다.

현재 조선시대 여러 학자들이 산줄기체계에 대해 서술한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이익(李瀷, 1681∼1763)은 ‘성호사설(星湖僿說)’의 ‘천지편하지리문(天地篇下地理門)’에서 제목 중 하나를 ‘백두정간’이라고 하고 그 내용 중 백두대간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백두산은 우리나라 산맥의 조종이다. … 그 왼쪽 줄기는 동해를 끼고 뭉쳐 있는데, 하나의 큰 바다와 백두대간(白頭大幹)은 그 시작과 끝을 같이하였다. … 대체로 그 한 줄기 곧은 대간이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태백산에서 중봉을 이루고 지리산에서 끝났으니, 애당초 백두정간이라 이름 지은 것은 뜻이 있어서일 듯하다.》

이중환(李重煥, 1690∼?)은 ‘택리지(擇里志)’에서 한반도 산맥에 대해 조선산맥, 백두대맥, 백두남맥, 대간 등의 표현을 썼다. 또한 신경준(申景濬, 1712∼81)은 ‘산수고(山水考)’의 서두에서 ‘하나의 근본에서 만 갈래로 나누어지는 것이 산(山)이요, 만 가지 다른 것이 모여서 하나로 합하는 것이 물(水)이다’라고 말하면서 우리나라 산천을 산경(山經)과 산위(山緯), 수경(水經)과 수위(水緯)로 나누어 파악하였다. 즉 산줄기와 강줄기의 전체적인 틀을 날줄로 삼고, 지역별 산과 강에 대한 자세한 특징과 내용을 씨줄로 엮어 국토를 정리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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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영표 국토연구원 GIS연구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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