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4년 ‘신동아’ 취재에 응한 김기웅씨의 모친 강덕례씨(오른쪽). 왼쪽에 얼굴을 가리고 있는 김씨의 사촌누나는 고문과 성학대로 지금껏 정상적인 생활을 못하고 있다.
그로부터 1년8개월이 흐른 지난 6월13일,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과거사위)는 ‘김익환 일가 고문 및 가혹행위 사건’에 대해 ‘조사개시결정’을 내렸다. 진상조사에 앞서 과거사위가 ‘신동아’ 기사를 토대로 정리한 사건개요는 다음과 같다.
‘1971년 9월20일경 전남 여천군 화정면 백야리 섬마을에 거주하던 신청인 김기웅의 모(母) 강덕례(당시 32세), 사촌누나 김OO (당시 26세)와 백부 김익환(당시 42세)이 여수출장소 중앙정보부 소속 수사관들에게 간첩사건 관련자로 연행되어 당시 여수시장 관사(官舍)로 사용되던 중정 조사실에 수용되어 갖은 고문을 받고 무혐의로 풀려난 후 지금까지 고문후유증에 시달린다며 진상규명을 요청함.’
김기웅씨에 따르면 어머니 강덕례(67)씨는 그때의 충격으로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고 다리를 온전히 쓸 수 없게 됐다. 미혼이던 사촌누나 또한 알몸으로 고문과 성학대를 받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해 지금껏 가정을 이루지 못한 채 병마에 시달리고 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일 과거사위가 정식 출범한 지 나흘 뒤에 진실규명신청서를 제출했다. 그로부터 6개월이 흐른 지난 6월19일에야 비로소 과거사위측으로부터 ‘결정통지서’를 받을 수 있었다. 이에 앞서 신청서를 접수한 2개월 뒤 김씨는 과거사위로부터 ‘진상규명신청서 보완요구서’를 받았다.
보완할 내용 중 하나로 지적된 것은 ‘당시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납치과정에서 제시받은 체포장이나 동행명령증 존재 여부에 관한 사실관계 확인’이었다. 김씨는 “어디로, 무슨 이유로 가는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무슨 체포장이며 동행명령증이 있었겠습니까?”라는 내용의 회신을 보냈다.
‘고문’은 계속된다
김씨는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이유 불문하고 온 집안을 뒤져 쑥대밭으로 만들었고, 어머니와 누나는 눈까지 가려진 채 질질 끌려갔다. 사람을 일주일 동안 붙잡아 고문해놓고 나중에 일절 발설하지 말라며 각서를 두 장씩이나 쓰게 한 사람들에게 법이 어디 있고 무슨 서류와 절차가 있었겠냐”고 반문했다.
과거사위 대외협력과 유한범 과장은 “자료 보완요구와 관련해 신청자에게 입증 책임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수십년 전의 사건을 다루는 과정에서 가능하면 많은 증거·정황 자료를 확보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위원회에 접수된 사건들은 대부분 오랜 시간이 지난 것들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는 없는, 다시 말해 신빙성을 뒷받침할 만한 자료가 부족해 각하결정을 받는 사건이 적지 않다. 이는 매우 안타까운 일”이라고 덧붙였다.
과거사위 규정에 따르면 진실규명신청서가 접수된 날로부터 90일 이내(30일 연장 가능)에 ‘조사개시’ 또는 ‘각하’ 결정을 내리고 통보하도록 되어 있다. 시한이 지난 지 두 달이 넘도록 결정이 지체되자 김씨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갔다. 그는 “생각을 해보라. 고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후 지난 4년간 온갖 국가기관에 민원을 넣었지만 어느 한 곳 관심을 갖고 조사한 적이 없다. 이번에도 똑같은 꼴을 당하지 않을까 초조하고 불안했다”며 속내를 털어놓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