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년 후인 2003년 6월. P의 집에서 함께 소주잔을 기울이던 친구 A는 새 직장을 얻어 고향인 대구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왔다. 그는 이곳저곳 집을 알아보다가 서초동에 새로 입주하는 아파트를 얻게 됐다. 50평형 전세 4억원. 아름다운 중앙공원 언덕배기에 위치한 아파트에서 테헤란로를 내려다보면 기분이 상쾌해졌다.
A는 두 달이 더 지나서야 이 아파트가 예전 P의 ‘자취방’이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천장에서 고독이 뚝뚝 떨어지던 집, 빨간 불빛이 반짝이던 구형 진공관 전축, 10년 전 창문 너머로 스쳐 지나가던 강남의 네온사인과 가로등 불빛이 A의 머릿속에 오버랩됐다.
브랜드의 효시, 서초래미안
서울 서초구 서초4동 1682번지. 16∼20평형 1080가구, 1976년식 서초극동아파트는 외환위기가 절정에 달하던 1998년 말에 재건축을 시작했다. 제법 유명했던 ‘극동’ 대신 ‘서초래미안’이라는 새 간판을 내걸었다. 용적률 319%를 적용받아 최대 27층짜리까지 나오도록 빽빽하게 고층으로 지었더니 1129가구로 늘어났다.
새 아파트는 수요가 가장 많다는 34·39·44·50평형으로 이뤄졌다. 이 중 34평형은 2000년 4월 서울시 3차 동시분양에서 17가구 분양에 4185명이 청약해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246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외환위기 이후 부동산시장이 다시 살아나는 신호를 울린 시점이 바로 이 무렵이다. ‘서초래미안’은 삼성건설이 종전의 삼성아파트 대신 ‘래미안’이라는 프리미엄 브랜드로 새롭게 포장해 선보인 최초의 아파트였다.
‘1000가구, 1만5000평’은 건설사와 건축사들이 가장 좋아하는 가구수와 평수이다. 수요자의 선호도가 높아 분양이 잘될 뿐 아니라 단독시공으로 자사의 실력을 과시할 수 있는 적정 크기의 아파트 단지가 형성되기 때문. 2000년 초 삼성은 이곳에서 프리미엄 브랜드를 내걸고 분양가 규제를 벗어나 ‘작품’을 만들어내겠다는 꿈을 키웠다.
서초래미안의 1층은 바로 밑 삼익아파트의 7층 높이에서 시작한다. 언덕 위의 급한 경사로는 노인들이 걸어 올라가기에는 너무 높다. 겨울에 눈이 내리면 경비실에서는 차량통행에 지장이 없도록 정문부터 뜨거운 물을 부어 내려 눈을 녹이는 힘든 작업을 밤새 해야 한다. 높은 곳에 위치해 도시를 내려다볼 수 있는 것은 장점이지만 오르내리기 불편해 아파트 값이 크게 오르지 못하는 결정적인 단점도 지녔다.
강남역이 가깝고 1만5000평의 넓은 땅 에 중대형 평수만 지어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여건이지만 구릉지여서 설계자는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어내기 어려웠다. 결국 아파트 단지는 기울기 차이를 고려해 3단으로 나뉘어 설계됐다. 아름다운 중앙광장과 상가, 분수대, 운동시설을 한데 모아 전 세대의 공유공간으로 삼으려던 당초 계획은 이렇듯 땅의 높낮이로 인해 틀어졌다. 아파트 동(棟)과 동 사이의 이격거리가 방해요소가 됐기 때문이다.
동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의 로열층은 테헤란로의 빌딩숲이 내려다보이는 특급 전망을 갖췄지만 남향으로 배치된 아파트의 로열층에선 삼익아파트의 낡은 옥상이 내려다보였다. 이런 경우 매수 희망자라면 어떤 아파트를 선택해야 할까. 입주 3년 후. 분양시점에 비슷하던 동향, 남향 아파트 가격은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로 끝났다. 2006년 10월 현재는 동향 50평형이 13억원, 남향 50평형이 16억원으로 3억원 차이가 난다. ‘전망’을 압도하는 ‘남향’의 경쟁력을 새삼 확인하는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