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군은 1학년 때만 해도 내신 1, 2등급을 유지했지만, 2학년 땐 3등급, 3학년 땐 4등급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포항공대와 카이스트에 동시 합격할 수 있었던 건 그야말로 길을 다양하게 열어놓은 ‘수시’ 전형 덕분이다. 수시엔 ‘일정 자격’을 갖추면 내신이나 수능 성적에 상관없이 합격 가능한 대학이 적지 않다.
손군의 무기는 2학년 때 따놓은 한국생물올림피아드 금상이었다. 2008학년도 입시에서 서울대, 카이스트, 연세대, 성균관대 등이 국제 올림피아드 참가자 및 수상자, 한국 수학·물리·화학·생물·정보올림피아드 입상자만 지원 가능하거나 우대하는 전형을 내놓았다.
손군이 올림피아드를 준비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다.
“성적이 비슷한 선배 두 명이 있었는데, 한 명은 서울대 수시에 합격하고, 다른 한명은 연세대 수시에 조건부 합격했다가 수능 점수가 안 나와 떨어졌어요. 서울대에 합격한 선배는 천문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받은 적이 있어요. 고등학교 1학년 때 고3 선배들의 희비가 엇갈리는 걸 보고 저도 일찌감치 준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죠.”
선배들의 전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줬다. 하나는 로또복권 같은 수능에 불안하게 매달리지 않으려면 수시에서 조건부가 아닌 확실한 승부를 봐야 한다는 것. 다른 하나는 올림피아드에서 (3위 이내로) 입상하면 승부를 유리하게 끌고 갈 수 있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공부를 열심히 하는데도 만족할 만큼 내신 성적이 안 나오는 답답한 상황도 올림피아드 대비에 전념하도록 부추겼다.
올림피아드 중에서도 생물올림피아드를 준비한 건 중학교 시절, 아는 형이 곤충을 채집하러 갈 때마다 졸졸 쫓아다녔을 정도로 생물 분야에 관심이 많고 좋아했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쓰는 ‘일반생물학’ 교재를 구해 보고, 학원에 다니며 기출문제도 풀었다. 생물올림피아드는 2학년까지만 출전 가능해 사실상 시간이 별로 없었다.
“자기에게 맞는 문을 찾아라”
“중학교 때부터 준비하는 친구도 많은데 전 고등학교 2학년이 돼서야 본격적으로 준비를 시작했기 때문에 열심히 하지 않을 수 없었어요.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여름방학 동안 오로지 생물만 파고들었어요. 하루 10시간 이상 생물 공부만 했으니까요. 지금 생각해도 그때만큼 열심히 공부한 적이 없어요.”
대학 ‘일반생물학’ 책은 통째로 머릿속에 넣었다. 전반부는 이해하면 되는 내용이라 별 부담이 없지만, 후반부는 생리, 호르몬, 작용 등 암기해야 할 것 태반이었다. 그런데도 생물 과목이 그나마 나은 편이라고 한다. 물리나 화학은 대학 교재만 해도 한 권이 아니란다. 손군은 좋아서 생물을 선택했지만 결과적으로 수월한 길을 간 셈이 됐다.
2학년 2학기에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을 수상함으로써 대입 합격 전략의 한 단계가 완성되자 3학년 때는 심층면접 준비에 전력을 쏟았다. 논술과 심층면접(구술)을 동시에 준비하는 게 쉽지 않을 뿐만 아니라 논술은 단기간에 실력을 키우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 서울대(자연계), 포항공대, 카이스트에서 논술 대신 구술고사만 본다는 사실을 파악하고는 더 고민할 게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