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아일보
주관적 판단 = 착각
더욱이 윗사람 눈에 실력은 도긴개긴일 때가 많다. 공채로 들어와 중간관리자 이상에 오른 경우는 더하다. 장단점이 있을지언정 누가 더 탁월하다고 말하기 어렵다. 스스로 내가 가장 출중하다고 굳게 믿겠지만 그것은 주관적 판단, 곧 착각일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실력이 경쟁자에 비해 조금 낫다 하더라도 결정적 장점으로 봐주진 않는다.
실력 80점, 충성심 100점
나의 실력이 100점이고 경쟁자의 실력이 80점일 때, 하지만 나의 충성심은 80점이고 경쟁자의 충성심은 100점일 때 상사는 누구를 택할까. 당연히 경쟁자, 그 ‘나쁜 놈’이다. 왜 그럴까. 경쟁자의 충성심을 나는 아부라고 주장한다. 맞다, 아부가 맞을 것이다. 그러나 아부도 충성심이다. 나는 ‘충성심이 강하다. 그러나 아부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상사는 나에 대해 충성심이 강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에선 표현하는 것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수시로, 반복적으로, 확실하게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이것은 상사의 생리를 잘 모르기에 그런 것이다. 상사는 끊임없이, 그리고 수시로 부하의 충성심을 확인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충성한다는 사실을 수시로, 반복적으로, 확실하게 표현해야 한다.
“자기 나 좋아해?”
뒤집어 생각해보면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나 또한 부하에 대해 동일하게 행동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연애할 때도 연인 간에 가장 자주 또 지속적으로 오가는 대화는 애정 확인이다. “자기 나 좋아해?” “그럼 좋아하지!” “얼마나?” “하늘만큼 땅만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거짓말이지만, 이것을 아부라고 매도하는 사람은 없다. 상사와 부하 사이의 애정 확인, 충성심 확인도 감정이 오가는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빼도 박도 못할 명분
실력은 기본에다 충성심에도 차이가 없다면 어떤 것이 변수로 작용할까. 명분이다. 나를 해고할 수 없는, 빼도 박도 못할 논리적 근거다.
구조조정이나 승진에 수동적으로 임하는 직장인이 많다. 연공서열에 따라 이뤄질 때, 부장급까지 ‘자동 빵’일 땐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연공서열이 파괴되고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무한경쟁 시대에 이래선 곤란하다. 적극적으로 임해도 자리를 보장받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경쟁이 심해지면 홍보전도 치열해진다. 루머가 난무하기도 한다. 그렇다고 재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인사권을 행사하는 상사들로서도 판단이 힘들어진다. 아무개는 이 점이 뛰어나고 아무개는 저 점이 뛰어난 식이기 때문이다. 장점이 많은 순서로도 비교해보고 단점이 많은 순서로도 비교해보지만, 판단이 힘들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판단력조차 희미해지면 직관 또는 감정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이다.
‘○○○은 살리는 게 맞다’
직관적으로 ‘아무개는 살리는 것이 맞다’는 판단을 내린 순간, 인사권자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대외적으로 설득이 가능한 명분이다. 단지 포장에 불과할지라도 그것이 약하면 당당하게 고집할 수 없다. 그래서 영리한 이들은 바로 그 명분을 만들어 인사권자에게 제공한다.
그 명분은 왜 나를 살려야 하는지, 왜 나를 승진시켜야 하는지를 홍보하는 논리와 더불어 단점을 방어하는 논리다. 그것은 누구라도 곧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간결하게 정리돼 있어야 한다. 한 페이지 이내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