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모의 정성스런 뒷받침 덕분에 혜림양은 수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왼쪽부터 천혜림양, 동생 혜빈양, 아버지 천룡씨, 어머니 김창금씨.
“수능 위주의 내신을 제대로 관리하면서 동시에 SAT시험을 준비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어요. 매달 SAT시험이 있어서 이것을 준비하다 보면 따로 내신을 위해 공부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친구들은 내신에 대비해 학원도 다니는데 저는 훨씬 불리한 입장이었죠. 그래서 수업시간에 집중해서 강의를 듣고 모르는 것은 수업이 끝난 후 선생님께 질문해 확인하고 넘어갔어요. 또 그날 배운 것은 반드시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복습했죠.”
그런데 문제는 수학이었다. 영어와 달리 수학엔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천양. 하지만 내신 반영비율이 커서 주말 저녁에는 수학만 공부했다. 봉사나 특기적성 등 과외활동을 하느라 시간이 많진 않았지만, 매주 공부할 분량을 정해놓고 그것만은 꼭 지키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천양은 내신에서도 좋은 성적을 받았고 SAT수학에서 만점을 받았다.
천양에게 가장 큰 스트레스는 육체적 피로가 아니었다. 어디를 가든 ‘잘한다’ ‘똑똑하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대원외고에는 그 말고도 똑똑한 친구가 많았던 것. 특히 같이 미국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에게서 자극을 받았다고 한다.
“미국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친구들이 쓴 에세이를 읽다가 풍부한 어휘력과 뛰어난 문장력에 깜짝 놀란 적이 많았어요. 생각도 깊고 특기적성활동이나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는 친구들이었죠. 다 잘하니까 자만에 빠지지 않았던 거죠. 친구들에게서 자극도 많이 받았어요. 열심히 공부하는 친구만한 자극제는 없으니까요.”
봉사활동 하며 변호사 꿈 키워
그렇다고 천양이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1년 넘게 맹인재활학교에서 시각장애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쳤고 방학 때마다 미 상공회의소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행사기획 및 통역 등 실무를 배웠다. 또 모 정당의 정책연구소에서 일하며 외국인 노동자와 장애인들에 대한 부당한 처우 및 대책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천양은 그 중에서도 맹인재활학교에서의 봉사활동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고등학교 2학년 때부터 방배동에 있는 맹인재활학교에서 영어를 가르쳤어요. 주로 30∼40대 아저씨들이었어요. 앞을 못 보는 분들이라 듣기 위주로 가르쳤는데, 좀 아쉽더라고요. 그런데 문뜩 ‘영어점자를 알면 책을 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바로 점자 공부를 시작했죠. 영어 점자는커녕 국어 점자도 배운 적이 없었거든요. 제가 먼저 점자 공부를 한 뒤 플라스틱으로 알파벳 점자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나눠주고 가르쳤죠.”
하지만 계속 알파벳만 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천양은 국내외 점자도서관에 영어점자로 된 책을 수소문해봤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직접 영어점자책을 만들기로 했다. 한국의 전래동화를 영어로 번역한 후 일일이 점자를 달았다. 책을 만드는 데만 6개월 이상 걸렸다. 이렇게 고3 가을에 완성된 책은 그가 가르쳤던 맹인학교 학생들은 물론 다른 맹인학교에도 보내졌다.
이 과정을 담은 에세이를 써서 각 대학에 보낸 것이 주효했다. 하지만 천양은 단지 맹인학교에서 봉사활동을 했고 영어점자책을 만들었다고 해서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봉사활동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무엇이고 이것이 자신을 어떻게 바꾸어놓았는지를 에세이에 진솔하게 썼는데, 그 내용이 높이 평가받은 것 같다는 것이다.
“맹인학교에서 알파벳 점자를 가르치려고 한 아저씨의 팔목을 잡았는데, 의수(義手)였어요. 순간적으로 그 팔을 놓아야 하나 계속 잡고 있어야 하나 고민했어요. 팔을 놓아버리면 아저씨가 ‘흉측해서 그러나 보다’하고 생각할까봐 그럴 수 없었죠. 그런데 그 아저씨가 편안하게 웃으면서 의수가 아닌 다른 팔을 제게 내밀었어요. 그 순간 제가 평소 장애인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본 것은 아닌지,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불편할 정도로 특별하게 대한 것은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천양은 봉사활동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환경이 열악한 것도 사실이지만 정작 사회적 약자에게 필요한 것은 열악한 환경을 개선할 수 있는 ‘기본적인 배려’인데, 배려는 하지 않고 그들이 원하지 않는 ‘특별대우’만 하고 있다는 것. 이는 국제관계에서도 통용되고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유엔 등에서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들을 원조하는 것을 보면, 정책이 중구난방이에요. 무슨 사건이 터지면 그것을 봉합하는 수준이죠. 이 나라들이 처한 문제의 원인이 무엇인지 파악하고 대책을 세워야 하는데 그냥 표피만 살피는 것 같아요.”
학부에서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후 하버드 법과대학원에 들어가 국제변호사가 되는 것이 꿈이지만 유엔에서 일하며 제3국을 지원하는 정책을 세우고 싶은 생각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