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결혼정보회사가 부산의 명문 A대학 출신이라며 소개해준 여성과 교제했어요. 그런데 제 친구 중에 A대 출신이 몇 있거든요. 그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는 자리에서 그 여성이 A대 출신이 아니란 사실이 들통났어요. 대학원에서 MBA과정을 밟고 있다는 것도 거짓이었어요. 제가 얼마나 창피했을지 상상이 되세요?” (대기업 임원 정모씨)
“커플매니저가 전화를 해서 ‘명문가 여식’ 운운하며 회원가입을 권유하더군요. 이미 결혼했다고 하니까 대뜸 ‘한 여자와 평생 사실 거예요?’라고 합디다. 그게 커플매니저란 사람의 입에서 나올 말입니까?”(5급 공무원 김모씨)
“아는 사람이 결혼정보회사를 차렸다면서 제 사진을 한 장 달래요. 자기 회사 홈페이지에 초혼 회원으로 올려놓고 싶다고요. 그러라고 했습니다. 아무래도 회원을 유치하려면 저 같은 인기 직종 남성 회원이 필요할 테니까요.”(피부과 전문의 주모씨)
“의사 사위요? 150만원입니다”
요즘 20∼30대의 미혼 남녀, 혹은 결혼 적령기 자녀를 둔 부모 가운데 한번쯤 결혼정보업체로부터 회원가입 권유를 받아보지 못한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가정으로, 직장으로, 휴대전화로, 혹은 이메일 사서함으로 ‘당신처럼 멋진 분이 아직 혼자라는 게 안타깝다. 하루라도 빨리 우리 회사의 참한 회원들과 만나게 해주고 싶다’는 분홍빛 속삭임이 간질간질 스며든다. 20대 중반의 딸을 둔 유모(52)씨는 “한 달에 한두 번씩 집으로 전화하는 커플매니저가 있다”고 말한다.
“압구정동에 있는 회사래요. 전화를 걸어서는 대뜸 ‘의사 사위 보고 싶지 않으세요?’ 하더라고요. ‘귀댁 따님 정도면 의사나 사법연수원생을 소개받을 자격이 있다’고 하니까 귀가 솔깃하죠. 150만원만 내면 해준다는데…. 딸이 싫다고 해서 계속 거절하는 데도 잊을 만하면 전화를 해 사람 마음을 흔들어놓네요.”
미혼 남녀의 부모를 상대로 영업을 벌이던 소위 ‘마담뚜’ 형태의 맞선 주선업종은 1990년대 중반부터 결혼정보업체라는, 좀더 현대적이고 세련된 이름으로 변모했다. 운명적인 사랑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면 오죽 좋으랴마는,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고 미래도 장담할 수 없는 법. 그래서 미혼 남녀들은 ‘스스로 머리를 깎겠다’는 진지한 각오로 결혼정보업체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영화배우 신은경이 열연한 영화 ‘좋은 사람 있으면 소개시켜줘’(감독 모지은·2002)의 여주인공 김효진. 그녀는 회원들의 고민을 성의껏 들어주고, 데이트할 때 주의할 점도 일러주고, 미리 맞선자리에 나가 남녀 회원들이 잘 만나고 있는지 확인하는 등 세심하면서도 부지런한 커플매니저이다. 그렇다면 신문광고란이나 지하철광고판에서 자주 접하는 결혼정보업체도 영화와 같을까?
‘아니다’라는 게 결혼정보업체를 경험한 이들의 공통된 대답이다. 각종 소비자 관련기관에는 ‘맞선 상대자의 직업을 속였다’ ‘가입만 시켜놓고 연락을 끊었다’ ‘업체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환불을 안 해주고 버틴다’ 등의 원성이 들끓고 있다. 인터넷에는 결혼정보업체 회원 출신(?)들이 ‘차라리 우리끼리 만나서 좋은 인연을 맺어보자’며 개설한 커뮤니티가 속속 생겨나고 있다.
이들은 한결같이 말한다. “당장 좋은 사람 만나게 해줄 것처럼 꼬드겨 신용카드를 긁게 해놓곤 연락이 없거나 엉뚱한 사람을 소개시켜준다. 불만을 표시하면 눈이 너무 높거나 혹은 너무 못 생겼기 때문이라고 오히려 핀잔을 준다. 환불해달라고 하면 회사 사정이 어렵다고 둘러댄다”고.
“신데렐라가 팥쥐임을 깨닫게 되기까지 100일이면 충분하죠.”
가입 3개월 만에 환불금도 포기한 채 탈퇴했다는 28세 미혼여성의 자조 섞인 말이다.
일단 가입비부터 챙긴다
결혼정보업체의 이 같은 부실 서비스와 그로 인한 회원들의 피해는 무리한 회원유치 경쟁에서 비롯된다. 이들 업체의 회원유치 방식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다. 마케팅 자료로 활용되는 정보 가운데 상당수는 사실이 아니거나 왜곡된 것이다. 미혼 여성 김모(26)씨는 H사에서 가입상담을 받은 경험을 들려줬다.
“자리에 앉자마자 회원가입신청서를 쓰게 해요. 신청서엔 이름, 주소, 전화번호, 주민등록번호, 부모 직업, 재산, 원하는 이상형 등을 쓰는 란이 있죠. 그 다음엔 ‘예쁘다’ ‘남자들이 좋아하게 생겼다’ ‘내 마음에 쏙 든다’고 추켜세우면서 가입을 권유하죠. ‘회원님 정도라면 의사나 사법연수원생, 공무원을 소개시켜줄 수 있다’면서 여러 남자의 사진과 프로필을 보여줍니다. ‘이 의사선생님이랑 회원님은 정말 잘 어울릴 것 같다’며 부추기기도 하고….”
기자는 이 업체가 김씨에게 제시한 남성 회원 중 한 명인 한의사 S씨를 만날 수 있었다. S씨는 “나는 H사 회원이 아니다”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다만 지난해 H사 관계자가 여러 차례 전화를 걸어 가입을 권유한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