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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 체제, 과격투쟁 비판만 받고 쟁취한 건 없었다”

이수호 민주노총 위원장 “단병호 체제, 과격투쟁 비판만 받고 쟁취한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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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선 후 여러 지면에 나온 인터뷰를 찾아 읽었습니다. 전임 민주노총 집행부가 싸움은 열심히 했지만 노동자들 손에 쥐어진 것이 없다고 말했더군요.

“한두 번 싸워 성과를 얻을 수 없는 거창한 이슈를 내걸고 총파업을 했습니다. 예컨대 신자유주의나 경제특구법 같은 것 말이죠. 그게 당장 해결될 문제가 아니잖아요. 조합원들이 필요성을 명확하게 이해하지 못한 경우도 있어요. 지나친 투쟁이라는 비판만 받고 구체적으로 쟁취한 것이 없습니다. 거대 담론 또는 큰 이슈를 갖고 무리하게, 그것도 최고의 싸움 수준인 총파업 투쟁을 벌이는 데 따른 조합원들의 불만이 컸습니다.”

-전교조 위원장을 하면서 상급단체인 민주노총이 무리한 총파업에 참여하라고 요구할 때는 어떻게 대처했습니까.

“전교조는 법률상 파업을 할 수 없는 조직입니다. 단체행동권에 제약을 받는 거죠. 민주노총이 발전노조 매각에 반대하며 총파업을 결정했을 때도 전교조는 학교 대표 한 사람이 파업하는 시간에 맞춰 조퇴해서 참여하는 정도였지요. 그렇게 했는데도 발전노조 파업하는 데 교사들이 왜 나서느냐고 비난받았죠.”

“화염병에 대해선 부정적”



-지난해 11월 민주노총이 전태일 열사 분신 33주기를 맞아 벌인 거리 투쟁에서 화염병과 쇠파이프가 등장하고 새총으로 볼트 너트를 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시민으로부터 욕을 먹을 게 뻔한 그런 거리 투쟁을 꼭 해야 했습니까.

“무리한 손해배상소송과 가압류로 인해 노동자들의 생존권 자체가 위협당하고 있었습니다. 두산중공업 배달호씨와 한진중공업 김주익씨가 그 문제로 자살하지 않았습니까. 노동운동 자체를 부정하고 생존권을 노골적으로 위협하는 현실 앞에서 상급단체가 가만히 있을 수는 없는 거죠. 다만 화염병에 대해선 부정적입니다. 노동운동의 폭이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넓게 퍼져 있습니다. 그런 판을 이용해 구성원 일부가 그렇게 한 거죠. 그렇더라도 민주노총은 전체를 끌어안고 더 책임지는 태도로 나왔다면 좋았을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민주화가 이뤄졌고 민주노총과 전교조도 합법화됐습니다. 노동운동 방식도 과거 권위주의 시대와 달라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이 위원장도 취임 인터뷰에서 건강한 상식에 의한 대화와 타협을 강조하는 말을 했던데….

“선거 구호가 ‘우리를 바꾸자, 세상을 바꾸자’였습니다. 우리를 먼저 바꾸겠습니다. 사회변화 속에서 노동운동이 지향할 방향이 어디인지 바로 알고 올바르게 가자는 것입니다. 조합원들에게 공개적으로 당당하게 ‘우리를 바꾸자’고 해서 선택받았습니다.”

-선거공약 중에 전 산업이 참가하는 ‘준비된 총파업’이 들어 있더군요. 아까 단병호 위원장의 무리하고 과다한 총파업에 대해 비판적인 말을 했지만 국가경제와 민생에 엄청난 충격과 불편을 몰고오는 총파업은 되도록 자제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싸움을 제대로 하자, 꼭 할 싸움이라면 준비해서 하자는 말입니다. 노동3권은 기본적으로 자본과 사용자 그리고 정권에 맞서 저항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총연맹은 단위노동조합 또는 여러 연맹의 상급단체로서 노동자들의 결집체입니다. 개별 사업장의 문제라면 그 곳 스스로 해결하면 됩니다. 그러나 한 사업장이나 산별노조의 범위를 뛰어넘는 물결과 정책에 대해서는 민주노총이 나서야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자본의 세계화가 진행돼 경쟁을 부추기면서 노동자들의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고 있습니다. 그런 것은 민주노총이 떠맡아야 할 전체 노동자의 문제이지요.

국제통화기금(IMF) 경제위기도 노동자의 생산력이 급격히 떨어지거나 노동자들이 잘못해서 생겨난 게 아닙니다. 한보 기아 등 몇 개의 큰 기업이 흔들리고 투기자본이 일시에 빠져나가면서 문제가 커진 것 아닙니까. 그런데도 그 책임을 고스란히 노동자들이 졌어요. 민주노총은 전체 노동자와 민중의 이해를 지킬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전체 노동자의 이익을 위해 싸울 일이 발생하면 민주노총이 그 중심에 서겠습니다.”

“선생님 잡아가면 시험 거부하겠다”

그는 군에서 제대하자마자 경북 울진군 근남면 제동중학교에서 교사생활을 시작했다. 전체 3학급짜리 신설학교였는데 시골학교라 교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당시 이 학교의 교감은 이 위원장의 모교인 대구 계성고의 담임 교사였다. 은사가 제대하는 이수호 교사를 불러들였던 것이다. 이 교사는 이 학교 1회 학생들을 가르치며 “너희들은 시골에 처박혀 있으면 안 된다. 세상은 넓다. 도시로 나가 공부를 계속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그 제자들이 졸업할 무렵 이 교사는 서울의 신흥명문 신일고로 찾아갔다. 계성고 은사 두 분이 신일고 교감과 교무부장으로 있었다. 산골 중학교 교사는 구두가 없어 운동화를 신고 결혼식때 입었던 단벌 양복을 걸치고 은사들의 소개로 교장을 만났다. 교장은 그와 이야기를 나누고 나서 지금은 빈 자리가 없지만 자리가 나면 연락하겠다는 말을 했다. 인사치레의 빈말처럼 들리지는 않았다.

대구로 내려와 얼마 안 있어 국어교사 자리가 비었다는 연락이 왔다. 이 교사는 1977년 3월 첫학기부터 서울에서 교사생활을 하게 됐다. 그는 1989년 전교조 결성을 주도한 이유로 해직될 때까지 신일고에서 13년 동안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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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황호택 동아일보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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