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8월호

사실상 상영불가 판정 기존 예술영화전용관 상영 바람직

제한상영가

  • 곽영진 │영화평론가

    입력2013-07-19 13: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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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 김기덕 감독의 영화 ‘뫼비우스’가 영상물등급위원회(영등위)로부터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았다. 지난해 제69회 베니스영화제에서 ‘피에타’로 황금사자상을 수상, 우리 국민에게 큰 자긍심을 선사한 세계적 감독의 신작이기에 논란과 파문이 크게 일었다.

    국민 정서에 반한다는 등의 이유로 제한상영가 등급을 받은 영화는 성인들조차 도심 외곽의 제한상영관에서만 관람할 수 있다. 그런데 국내엔 정작 제한상영관이 단 한 곳도 없어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영화는 개봉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개봉하려면 문제로 지적된 장면들을 자진 삭제해 재심의를 통과해야만 한다. 검열 시비가 생기는 핵심 원인이다.

    국제적 감독인 김지운의 ‘악마를 보았다’, 레오 카락스의 ‘홀리 모터스’ 등도 앞서 이런 운명을 거쳐야 했다. 반면 김곡·김선의 ‘자가당착’은 최근 행정소송에서 영등위에 승소해 제한상영 결정이 취소됨에 따라 정상적(?)으로 개봉하게 됐다. 김기덕 감독 겸 제작자는 영등위로부터 받은 5가지 지적에 근거해 근친상간 등 21컷의 장면을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결국 1분40초가량의 영상을 들어냈다.

    영등위의 등급 심사통계에 따르면 최근 1년간 등급분류심사를 받은 영화 1051편 가운데 청소년관람불가와 제한상영가 판정을 받은 작품이 각각 480편과 12편으로, 전체의 46.8%에 달한다. ‘성인전용’ 등급에 해당하는 청소년관람불가와 ‘성인전용 이상’ 내지 ‘연령 외’ 등급에 해당하는 제한상영가 비율은 2008년 29%에서 2010년 30.5%, 지난해 45.8%로 해마다 높아지는 추세다. 이와 관련해 영등위는 “해마다 출시되는 영화가 크게 늘어나고, IPTV나 VOD 서비스 등 차후 부가시장을 목적으로 한 성인영화가 급증한 데 따른 것”이라며 등급분류를 보수적으로 하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미국 ‘X등급’과 달라



    하지만 김수용 초대 위원장, 이경순 3기 위원장에 이어 지명혁 4기, 박선이 5기 위원장이 들어선 최근 4~5년 사이 영등위의 보수성이 강화된 흔적과 근거는 많다. 그간 영등위를 둘러싼 정치적 외압은 거의 없었다고 봐야 하겠지만, 영등위가 정권의 성격에 따라 ‘분위기를 탄다’는 지적은 개연성이 있다. 새 자리를 위해 정치권에 줄을 대려고 부단히 노력한 위원장이 있었다는 설도 나돈다. 위원장직을 수행하면서 심의 행정에 보수적·규제적 분위기를 조성하려 했을 것이라는 추정을 낳기도 한다.

    흔히들 국내 제한상영가 등급을 미국의 ‘X등급’으로 본다. 하지만 미국 같은 나라에는 심의 기구에서 부여하는 이런 명칭의 등급이 없다. 미국영화협회(MPAA)가 심의물인 영화와 비디오물의 지나친 외설과 폭력성 등을 문제 삼아 (연령 분류에 따른) 등급을 제외한 UR(Unrated)이나, 유사한 이유 등으로 판권 소유자가 아예 등급 신청을 포기하고 NR(Not Rated) 즉 ‘등급 없음’으로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를 X등급으로 통칭하는 것이다. NR은 ‘무등급’이나 ‘비등급’, UR은 ‘등급 외’로 번역하는 것이 합당하겠다.

    이런 ‘무등급’과 ‘등급 외’가 우리의 제한상영가 등급에 해당하는 것일까.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영화법상의 검열적·위헌적 등급보류 조항을 적용해 이른바 외설·폭력영화는 시장 진출 자체를 금지했지만, 2002년부터는 완전등급제를 도입해 시행하고 있다. 기존의 전체관람가, 12세관람가, 15세관람가, 18세관람가(청소년관람불가)에 제한상영가 등급을 추가해 헌법상의 자유시장 원리와 표현의 자유(언론·출판의 자유), 나아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누릴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 것이다. 완전등급제의 핵심은 국가나 민간의 어떤 심의 법제와 기구도 (등급을 보류, 제외, 거부할 권한은 있겠지만) 특정 영화의 유통, 곧 시장 진출을 막거나 결과적으로 국민의 볼 권리를 막을 수 없다는 것이다.

    사실상 상영불가 판정 기존 예술영화전용관 상영 바람직

    영화 ‘악마를 보았다’의 한 장면.



    하지만 이는 원천적 금지의 불용(非허용)만을 의미한다. 선진국은 물론 어떤 나라도 영상콘텐츠의 무제한 유통을 허용하거나 영화법 외(外) 형법 등 책임 사항에 면죄부를 주는 경우는 없다. 나라마다 정도 차이는 있어도 대부분 선량한 풍속을 현저히 위반하는 영상물에 유통상의 일부 제한을 두고, 그 내용과 표현에 대해 형사처벌로 다스린다. 이러한 일부 유통 제한과 형법·특별법 적용은 그 자체로 위헌이 아니며, 과잉금지의 원칙을 준수하는 한 합법이라는 게 국내외 법조계의 통설이다. 다만 표현 수위가 문제가 되는데, 이는 미국, 유럽, 호주, 일본, 싱가포르, 한국 등 나라마다 큰 차이를 보인다.

    우리나라는 김대중 정부 때부터 국가의 심의 개입이 위헌 사항임을 인식하고 영등위 등의 심의기관을 민간자율기구의 법정위원회로 만들었다. 그러나 영등위는 헌법재판소가 이미 2002년에 사실상의 행정기관으로 판시했거니와, 내부 사정을 살펴봐도 합의제 민간행정기구가 맞다. 그래서 검열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영화계 일각에서 영화 심의기구의 민간자율화 논의가 고개를 쳐드는 것이다.

    제작가협회, 극장협회, 영화인회의 등 국내 영화 관련 단체들은 정체성으로 보나 원칙적으로 보나 미국이나 일본처럼 영등위의 민간자율화를 추진하는 게 합당할 것이다. 그런데도 그들은 이 같은 노력을 경주하는 데 적극적이지 않다. 업계나 영화 관련 단체(연대기구) 심의라고 하는 대(對)국민 ‘행정’을 담보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만약 그간의 연령등급 적용이 너무 보수적이고 편파적이어서 영화계가 큰 손해를 봤다면, 또 많은 자유를 누리지 못해왔다면 민간자율화가 적극적으로 추진됐을 것이다. 하지만 대중영화의 제작이나 배급에 매달리는 영화계 주류는 원론적인 차원을 넘어 제한상영가 문제를 자기 일로 여기지 않는 경향이 있다. 물론 내용과 표현이 문제가 돼 청소년관람불가를 받을 때는 해당 영화사가 재심의를 요청하거나 장외 설전을 벌이는 일도 종종 있다.

    3가지 대안

    반면에 순수창작단체인 한국영화감독조합은 제한상영가 등급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최근 공식 보도자료를 통해 “영등위는 ‘뫼비우스’에 대한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을 철회하라. 문화체육관광부는 영등위를 민간자율화하는 문제를 포함해 합리적 등급분류를 위한 논의의 틀을 즉시 만들라”며 박선이 위원장의 사퇴를 요구하기도 했다. 그렇다면 제한상영가 문제의 해법 혹은 대안은 뭘까. 크게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영등위를 민간자율화하고 18세 관람가(청소년관람불가) 이상의 제한상영가 등급을 두지 않는 것.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영화계의 준비와 합의가 필요하다. 반대 의견도 만만치 않다.

    둘째, ‘등급 외’ 등급을 신설하는 것. 한때 영등위는 제한상영가 등급을 폐지하고 영화 및 비디오물에 대한 ‘등급(연령) 외’ 등급을 신설하려 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심의기구가 ‘등급 외’ 등급을 악용할 수 있다는 우려와, 불이익을 받을까봐 이를 수용하지 않으려는 업계의 대응이 걸림돌이 됐다.

    셋째, 제한상영가 수준의 예술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하는 것. 7월 4일 문화체육관광부는 제한상영가 수준의 예술영화를 예술영화전용관에서 상영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영화법(영화 및 비디오물의 진흥에 관한 법률) 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제한상영가 수준의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예술영화전용관을 새로 만들 게 아니라 기존 예술영화전용관을 활용해야 할 것이다. 기존 예술영화전용관보다 교통 접근성이 더 나쁜 곳에 신설한다면 안 하느니만 못하다. 이렇게 한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광고·선전의 제한을 푸는 문제가 남는다. 이는 결국 제한상영가 등급이 없어져야만 풀릴 문제다.

    앞서 제시한 세 가지 안 중 어느 것도 입법 타당성과 실효성 면에서 절대적 우위에 있지 않다. 제한상영가에 관한 갑론을박이 거듭되는 이유다.



    논점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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