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슈아 웡 “홍콩의 현 상황, ‘1980년 광주’와 비슷”
기성세대 비판하는 ‘황쓰’(黃絲·홍콩민주화 지지) 홍콩 20대
“중국식 일국양제는 사기” 대만인 분노
“反中 분리주의 반대” 중국인 유학생 토로
“인권 공감 못한 中 유학생 ‘레넌 월’ 훼손 답답”
“ ‘맥난민’ 홍콩 청년들에 공감”
5월 10일 홍콩 뉴타운플라자에서 열린 홍콩민주화시위. [GettyImage]
지난해 6월 9일 홍콩 빅토리아 공원에서 시민 100만 명이 모인 가운데 중국 정부의 송환법 개정에 반대하는 시위가 열렸다. 일주일 후 열린 집회에는 홍콩 전체 인구 약 700만 명 중 약 200만 명이 운집했다.
홍콩 시민 200만 명 참여 대규모 시위
5월 13일(현지시간) 홍콩에서 캐리 람 홍콩 행정장관에 반대하는 시민이 람 행정장관의 사진을 짓밟고 있다(왼쪽). 같은 날 시위를 막기 위해 출동한 홍콩 경찰. [AP=뉴시스]
1997년 영국이 홍콩을 반환할 당시, 중국은 2047년까지 홍콩에 ‘일국양제’를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외교·국방 등 주권은 중국에 있지만, 영국 통치하에서 민주주의·자본주의를 경험한 홍콩의 특수성을 감안한 결정이었다. 홍콩 반환 당시 중국이 약속한 행정장관 직선제 도입이 20여 년 미뤄지면서 홍콩 자치권이 유명무실하다는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조슈아 웡(Joshua Wong·중국명 黃之鋒·24) 홍콩 데모시스토(Demosistō·香港眾志)당 비서장(사무총장)은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홍콩 밀레니얼 세대의 기수다. 2012년 학생단체 ‘학민사조’(學民思潮·Scholarism)를 이끌어 홍콩 당국의 ‘국민교육’(중국공산당에 대한 충성을 강조) 의무화에 맞섰다. 2014년 9월 ‘우산운동’(행정장관 직선제 도입을 요구)에 이어 지난해 시위에서도 주도적 역할을 했다.
웡 비서장은 홍콩시위 1주년을 한 달 앞둔 5월 12일 인터뷰에서 “다음 달이면 홍콩 시위 1주년이다. 우린 계속 싸울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의 현재 상황을 묻자 웡 비서장은 “수십 년 전 한국의 광주시민들이 겪은 탄압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시위대 수천 명이 당국에 체포됐고 코로나19 방역을 빌미로 단속이 더 심화됐다”는 것. 코로나19 확산으로 시위가 잦아들자 당국은 민주화운동가 체포에 나섰다. 다만 웡 비서장은 “지난 수개월 동안 거리에 사람들을 모으기가 너무 어려웠다. 하지만 코로나19 확산세가 잦아드는 것으로 보여 상황을 낙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침묵하는 홍콩 시민도 민주화운동가 지지”
웡 비서장은 홍콩시위를 ‘친미·친영 운동’으로 비난한 중국 당국에 대해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미 지난해 선거에서 민주파가 86%가 넘는 의석을 가져가 침묵하는 다수 홍콩인도 민주화운동가들을 지지하고 있음이 증명됐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24일 홍콩 구의원 선거(한국의 지방선거에 해당)에서 ‘범민주 세력’은 전체 452석 중 388석(86%)을 확보했다.홍콩시위 1년을 맞아 향후 활동 계획을 묻자 웡 비서장은 “어떤 도전이 있더라도 행정장관 직선제라는 목표를 관철하겠다”며 “이번 여름에 시위를 재개하면 지난해와 같은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홍콩의 젊은이들 사이에는 ‘황쓰’(黃絲·노란리본)와 ‘란쓰’(藍絲·파란리본)라는 말이 있다. 황쓰는 홍콩 민주화운동을 지지하는 세력을, 란쓰는 홍콩·중국정부 및 경찰의 엄정한 법 집행을 지지하는 이들을 가리킨다. 지난해 시위 와중에도 황쓰와 란쓰 간의 갈등은 거리를 넘어 가정까지 이르렀다. 부모와의 정치적 견해차로 갈등을 빚고 집에서 쫓겨나거나 가출하는 젊은이가 많았다.
한국의 대학에 재학 중인 홍콩인 대학생 A(20) 씨는 황쓰를 자처한다. A씨는 “어릴 적엔 ‘중국홍콩인’이라 생각했지만 자라나면서 홍콩인과 중국인은 다름을 느꼈다. 지난해 시위를 계기로 내가 홍콩인이라고 100% 확신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에 있는 시간이 많아 실제 시위에는 1번밖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현지의 친구들과 홍콩 민주화에 대해 계속 대화하고 있다.
A씨 또래에게 기성세대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다. 중국공산당이 시민의 자유를 억압하는데도 ‘애국심’을 이유로 두둔하거나, 민주주의의 가치를 알면서도 눈앞의 이익을 위해 침묵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개인적 견해’라고 전제하면서도 신랄한 어조로 기성세대를 평했다.
“홍콩에서 1960년대 이전에 태어난 이들은 자신이나 부모 세대가 일제강점기를 겪어 ‘중화부흥’이란 가치에 공감한다. 일본제국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중국’이라는 국가와 민족을 중시한다. 이들은 신세대에겐 애국심이 없다며 이상히 여긴다. 1960~70년대생들은 영국 통치 시절 번영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다. 중국의 인치(人治)가 아닌 홍콩의 법치주의를 중시하지만 중국공산당에 저항할 수 없다 생각한다. 자유보다 이른바 사회 안정과 번영을 추구한다. 대개 란쓰지만 간혹 온건한 황쓰도 있다.”
“일국양제 훼손한 중국에서 독립하자”
A씨는 자신을 ‘중국공산당의 악행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은 세대’로 규정했다.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 시절 홍콩의 ‘중국화’로 자유가 억압받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는 “중국 정부가 판매 금지한 책을 팔았다는 이유로 서점이 당국의 박해를 못 견디고 폐업하는 등 억압상이 일상에까지 이르렀다. 시진핑(習近平) 주석 집권 후 중국의 행보에 극도의 반감과 혐오감을 느낀다”며 “홍콩은 향인치향(香人治香·홍콩 자치권 보장)과 일국양제 원칙을 훼손한 중국으로부터 독립해야 한다”고 말했다.A씨가 언급한 서점은 코즈웨이베이북스(銅鑼灣) 서점이다. ‘중국교부 시진핑’(中國敎父 習近平·시진핑 국가주석을 ‘마피아의 거부’로 비판), ‘10월거변’(十月巨變·중국공산당 내 권력암투를 다룸) 등 홍콩에선 유통되지만 중국 본토에서 금서로 지정된 책을 판매했다. 2015년 서점 운영자 5명이 실종됐고 일부는 중국 당국에 체포돼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운영자 중 한 사람인 람윙키(林榮基) 씨는 구금됐다 풀려났으나 지난해 중국으로 송환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대만으로 이주했다. 람씨가 대만 타이베이에서 새로 연 서점에 대만인들의 기부금 300만 대만달러(1억2000만 원)가 몰렸다.
대만인들에게 홍콩시위는 남 일 같지 않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에 따라 대만을 독립국가가 아닌 통일의 대상으로 본다. 대만과의 통일 방식도 홍콩에 적용된 일국양제다. 일국양제 실험의 파국이 지난해 홍콩시위로 드러난 만큼, 상당수 대만인은 중국을 의심의 눈초리로 볼 수밖에 없다.
대만인 린모(39) 씨는 지난해 대만 시민단체를 통해 25대만달러(10만 원)를 홍콩에 기부했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를 통해 홍콩시민들의 상황을 전해 듣고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린씨는 “시위대에 필요한 방독면과 마스크, 보안경 등의 물자를 보내자는 시민단체의 취지에 공감했다. 홍콩과 대만의 민주 세력이 연대해야 한다는 생각에 작은 도움을 보탰다”고 말했다.
린씨는 중국의 일국양제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냈다. “중국공산당과 대만의 친중 세력이 홍콩을 성공 사례로 꼽으며 일국양제를 대만인들에게 설득한 ‘사기 행위’가 드디어 지난 홍콩 사태로 탄로 났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홍콩 ‘우산운동’ 닮은꼴 대만 ‘해바라기운동’
대만에서 작가로 일하는 30대 간모 씨는 2014년 ‘해바라기운동’에 참여하며 대만인으로서 정체성을 자각했다. 간씨는 “중국과의 밀착이 대만 독립을 훼손할지 모른다는 생각에 해바라기 운동에 참여했는데 지난해 홍콩시위를 보며 생각을 굳혔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정부의 홍콩과 티베트, 신장 위구르 지역에 대한 탄압을 예로 들며 “중국에 인권이란 없는 듯하다. 자국민을 학대하는 공산당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홍콩의 ‘우산운동’에 앞서 대만에선 해바라기운동이 있었다. 2014년 3월 대만 입법원(한국의 국회에 해당)에서 중국국민당 주도로 중국과의 양안서비스무역협정(海峽兩岸服務貿易協議·CSSTA)이 ‘날치기’ 통과됐다. CSSTA는 중국·대만 간 금융·의료 서비스산업 시장을 상호 개방하는 협정이다. 친중 성향 마잉주(馬英九) 당시 총통(국민당 소속)이 추진하던 중국과의 경제교류 활성화 정책의 일환이었다. 대만 경제가 중국에 예속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협정 체결에 반대한 대학생 1만 명이 입법원을 점거해 ‘민주주의 수호의 밤’ 집회를 개최했다.
해바라기운동으로 대만 사회에 고조된 반(反)중국 분위기는 2016년 총통선거에서 탈(脫)중국 기조를 내세운 민주진보당(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 후보 당선으로 이어졌다. 지난해 자신의 SNS 계정에 “온 세상 자유와 민주를 믿는 사람들이 홍콩 사람들과 함께 설 것”이라며 홍콩시위를 지지한 차이 총통은 올해 1월 재선에 성공했다.
간씨는 “대만의 주권을 수호하는 차이 총통을 지지한다. 앞으로도 친중적 후보나 정당은 지지하지 않을 생각이다. 주권을 지키기 위해선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교류의 일부를 희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국내에서도 대학 캠퍼스를 중심으로 홍콩시위 지지 움직임이 있었다. 한국 대학생과 홍콩·대만인 유학생은 캠퍼스 내에 ‘레넌 월(Lennon Wall)’을 세워 홍콩 민주화운동에 공감하는 대자보를 부착했다. 체코 프라하의 레넌 월(1980년대 체코 시민들이 당시 공산체제에 반대해 ‘비틀스’ 멤버 존 레넌의 노랫말을 인용한 그래피티를 적은 벽)을 본떴다. 일부 중국인 유학생들이 레넌 월을 훼손하거나 홍콩시위 지지 측 학생들과 물리적 충돌을 빚기도 했다.
“운동권 아니어도 보편적 인권 지지”
지난해 11월 21일 대학생 단체 회원들이 홍콩시위 지지 대자보를 철거한 한국외대 당국을 규탄하고 있다. [뉴시스]
황씨의 학교에서도 레넌 월이 훼손되는 사건이 있었다. 대자보 위에는 홍콩시위를 ‘반중친미(反中親美)’로 규정해 비난하고 한국인 학생들에게 ‘내정간섭 말라’는 쪽지도 여럿 붙었다. 황씨는 “비신사적으로 행동하는 중국인 유학생도 일부 있었다. 레넌 월에 자신의 의사를 표하는 것은 좋지만,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다른 글을 훼손한 경우도 적잖았다. 보편적 인권 문제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가 답답했다”고 말했다.
중국인 유학생들은 홍콩시위에 대한 의견 표명을 극도로 꺼렸다. 취재를 시도해도 “별 관심 없다”거나 “홍콩시위가 언론에 보도되는 것 자체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피하기 일쑤였다.
어렵사리 입을 연 중국인 유학생 B씨는 홍콩 민주화운동을 ‘반(反)중국 분리주의 책동’으로 규정했다. B씨는 “홍콩은 분명 중국의 일부다. 일부 과격분자들이 영국의 통치를 그리워해 중국에서 이탈하려는 시도는 용납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지난해 홍콩시위를 지지한 한국 대학생에게도 서운함을 토로했다. “한국 학생들은 홍콩시위를 곧잘 5·18 광주민주화운동에 비견하곤 한다. 5·18이 독재에 맞선 시민운동인 반면, 홍콩시위는 중국이란 국가 자체를 부정한다”는 것이 B씨의 생각. 그는 “만약 한국의 한 지방이 정부에 반발해 독립하겠다고 나서면 한국인들은 받아들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서강대 사학과 3학년 채성준(22) 씨는 지난해 ‘홍콩 민주화를 지지하는 서강인 모임’을 주도했다. 정의당 서울시당 학생위원장으로서 서울시내 각 대학에 재학 중인 청년당원들과 홍콩시위를 지지하는 활동을 기획했다.
“비싼 집값·취업난 시달리는 홍콩 청년에 공감”
채씨는 모임에 참여한 또래 홍콩인 학생들로부터 홍콩시위가 발생한 또 다른 배경에 대해 들을 수 있었다. 그들이 토로한 높은 생활비 부담과 취업난은 한국 청년의 현실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설명이다.“홍콩의 젊은이들이 마주한 문제는 중국의 탄압뿐만이 아니다. 사회적 불평등도 심각했다. 워낙 집값이 비싸다 보니 회사에서 제공한 사택에서 사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런 혜택도 정규직에 국한된다. 홍콩도 청년 취업난이 심각해 정규직 취업은 어렵다. 거처가 있어도 냉방비·가스비 등 관리비가 비싸 젊은이 중 ‘맥난민’이 적잖단다. 여름에 냉방비가 걱정돼 에어컨을 잘 못 켜니 맥도날드 매장에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다.”
채씨는 “국가 폭력에 맞서는 데 국경은 없다. 또래 홍콩인 학생과 연대하며 동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으로서 공감되는 부분이 많다. 홍콩 시민에 대한 응원이 혐중(嫌中)을 넘어 보편적 인권 옹호로 이어졌으면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