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 폐기물 매립시설 환경적합성 평가 모두 합격 통과
인근 5km 반경 주민 90% 폐기물 매립시설 건립 찬성
연천군 토지용도변경 막아 매립시설 건축 불가
연천군 “원래 골프장이니 체육시설로 쓰겠다” 주장
사업자 “8년간 방치해 놓고 이제와서 체육시설?”
은통산단 들어서면 연천 폐기물 매립장 반드시 필요
경기 연천군의 사업장 폐기물 처리시설 예정 부지. 분지 지역인 데다 민가와도 멀리 떨어져 있다. [지호영 기자]
“연천군 반대 법적 근거 희박해”
폐기물 매립시설 건축 예정지는 2008년 골프장이 들어서며 도시계획상 체육시설부지가 됐다. 2012년 골프장은 경영난으로 폐업했다. 이후 5년간 이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빈 땅이었다. ㈜북서울은 2018년 폐기물 매립시설을 짓겠다며 이 부지를 사들였다. ㈜북서울이 계획하고 있는 폐기물 매립시설의 면적은 4만9877㎡. 매립용량은 97만4648㎥이다.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이하 국토계획법) 시행령 29조에 따르면 ‘지자체는 5년마다 여건 변화로 존치가 어려운 지구의 용도를 변경 및 폐지를 군 관리계획 입안에 반영해야’ 한다. 하지만 연천군은 골프장 폐업 후 8년이 넘은 현재까지 해당 부지를 체육시설부지로 그대로 묶어두고 있다.
㈜북서울은 2020년 10월 “해당 체육시설부지(골프장)를 폐기물 매립시설 부지로 용도 변경해 달라”며 연천군에 토지용도 변경신청을 했다. 하지만 1월 연천군은 “㈜북서울이 요청한 토지용도 변경신청 내용을 관리계획에 반영하지 않겠다(미반영)”고 통보했다. 연천군이 밝힌 관리계획 미반영 이유는 “‘지방의회(연천군의회)가 해당 지역을 체육시설부지로 유지하는 것이 공익에 더 부합한다’며 체육시설부지 폐지에 반대했다”는 것.
현재 ㈜북서울은 “연천군의 이 같은 행정처분이 부당하다”며 경기도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한 상태다. 연천군의 미반영 사유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북서울 관계자는 “연천군이 이 부지를 체육시설로 쓸 생각이 있었다면 진작 군 관리계획에 이를 반영했어야 한다. 다년간 방치하다가 규정에도 없는 지방의회 반대를 이유로 체육시설 폐지를 막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국토계획법 시행규칙 2조에 따르면, 공공체육시설을 제외한 체육시설부지 폐지에 지방의회의 의견을 들을 의무는 없다. 연천군도 이를 알고 있다. 연천군이 체육시설 폐지를 검토하기 위해 작성한 ‘연천 체육시설 폐기 결정 변경안’의 ‘지방의회의견 청취’란에는 ‘해당 없음’이라 적혀 있다.
소음, 악취 없는 폐기물 매립시설
연천군이 체육시설 폐지를 검토하기 위해 2020년 10월 작성한 ‘연천 체육시설 폐기 결정 변경안’ 문서의 일부. 지방의회 의견을 들을 필요 없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북서울 제공]
㈜북서울 관계자는 “폐기물 매립시설을 짓는 데는 3가지 조건이 있다. 폐기물 매립시설은 인근 주민의 눈에 보이지 않아야 한다. 폐기물을 처리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아야 하고, 폐기물의 악취가 민가까지 번지면 안 된다. 이곳은 민가와 멀리 떨어진 데다 시설이 보이지 않는다. 산이 둘러싸고 있으니 소음도 새어 나가지 않는다. 게다가 이곳에 매립될 산업용 폐기물은 소각재, 폐모래 등 악취가 없는 폐기물이다. 이를 주민들에게 잘 설명해 동의를 받았다”고 밝혔다. 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 결과, 연천군 폐기물 처리장은 소음 및 악취 및 대기오염 부문 배출 허용기준에서 모두 합격점을 받았다.
실제 현장을 방문해 보면 매립시설 건립 예정 부지는 외부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세 알 수 있다. 골프장이 있었다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산세가 험하다. 차량을 이용해 산길을 따라 3분가량 들어간 뒤에야 매립장이 나타난다. 게다가 입구를 제외하고는 전면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은 고능리와 양원리. 직선거리로 2~3km 가량 떨어진 곳들인 데다 산으로 가려져 있어 민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인근 주민은 폐기물 매립시설 기다린다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은 연천군 은통산업단지 예상 폐기물 과소측정 의혹을 제기했다. [동아DB]
해당 폐기물 매립시설은 침출수의 ‘방류’ 대신 ‘정수’를 선택했다. 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서에 따르면 연천군의 해당 시설은 침출수를 모아 수질 보전지역 수준으로 정수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렇게 정수된 물을 그대로 연천군 하수 시설로 방류하는 것도 아니다. 외부 수자원 위탁처리시설을 통해 재처리 후 방류할 계획이다.
매립시설 예정 부지 인근 주민이 아닌 연천군 다른 지역 일부 주민이 “토양오염 위험이 있다”며 폐기물 매립시설 건립 반대 운동에 나서는 일도 있었다. 2020년 7월 14일 ‘연천군 산업폐기물 매립시설 설치 반대 주민대책위원회’는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인증지역인 연천군에 폐기물 매립시설을 설치해서는 안 된다”며 5000명의 주민 서명이 담긴 용지를 전달했다.
과연 이 시설의 토양오염 위험은 어느 정도일까. 환경청의 환경영향평가에 따르면 “토양오염 위험은 주차장 시설이 들어설 때보다 낮은 것”으로 드러났다. 환경영향평가 결과, ‘토양환경보전법 토양오염 우려기준 2지역 판정’을 받았다. 이때 ‘2지역’은 ‘창고, 하천, 유원지’로 쓰일 수 있는 토지를 가리킨다. 일반 공업시설이나 주차장이 토양오염 우려기준 3지역에 속해 있으니 연천군의 폐기물 매립시설의 토양오염 위험도는 일반 주차장보다도 낮은 셈이다.
㈜북서울 관계자는 “폐기물 매립시설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모은 서명도 허위 사실을 기반으로 서명운동을 한 결과다. 폐기물 매립시설에 원자력발전 폐기물을 묻는 것처럼 설명하며 서명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서명운동 용지에는 “천재지변이 발생하면 일본의 원전 사건처럼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발생”이라는 내용이 있었다.
한편, 폐기물 매립시설 건축 예정지 인근 주민들은 빨리 매립시설이 들어오기를 바라고 있다. 연천군 고능리·양원리 주민들은 2020년 6월 토지용도변경 허가를 반대하는 군의회 의원들의 사퇴를 촉구하기도 했다. 사퇴 촉구 당시 양원리 일부 주민들은 “인근 지역 주민들이 폐기물 매립시설 설치를 압도적으로 찬성하고 있는데 민의를 대변해야 하는 지방의원과 지자체가 무조건적인 님비에 앞장서고 있다”고 비판했다.
은통산단 폐기물 매립시설 절실
연천군이 반대하고 있지만 현재 연천군에는 폐기물 매립시설이 절실히 필요하다. 2021년 연내 연천군에 대형 산업단지인 은통산업단지(이하 은통산단)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폐기물처리시설 설치촉진 및 주변지역지원 등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연간 폐기물 발생량(재활용 제외)이 2만t 이상이면 인근에 폐기물 처리시설(매립·소각)을 지어야 한다.연천군 내 조성 예정이었지만 2020년 무산된 통현일반산업단지(이하 통현산단)의 예상 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1만 2045t이었다. 통현산단의 규모는 16만8290㎡. 은통산단 규모(60만19㎡)의 3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다. 규모만 따지면 은통산단의 예상 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2만t을 훌쩍 넘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2017년 은통산단 환경영향평가 당시 연천군이 밝힌 예상 폐기물 발생량은 연간 3800t에 불과했다. 이에 2020년 10월 국정감사에서 은통산단의 예상 폐기물 발생량이 과소 측정됐다는 의혹이 불거졌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인 박대수 국민의힘 의원이 환경영향평가 전문가들에게 문의해 은통산단의 예상 폐기물 배출량을 재산정한 결과, 연간 예상 폐기물 배출량은 약 8만5000t. 기존 발표 배출량의 22배에 달한다. 박 의원은 “은통산단은 환경영향평가 변경협의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유사한 사례에 대해 환경부가 전수조사를 통해 시정조치를 해야 한다”고 밝혔다.
의혹은 사실로 드러났다. 2020년 12월 7일 환경청은 ‘국정감사 지적사항 후속조치 보고’ 문건을 통해 “은통산단의 예상 폐기물 발생량이 과소 측정된 사실을 확인했다. 해당 지역에 폐기물 매립시설을 설치하거나 매립시설을 설치할 지역을 확보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땅 주인도 모르는 체육시설 계획
환경부의 △폐기물 매립시설 사업 적합 통보, △인근 주민 대다수의 동의, △은통산단 폐기물 처리 문제 등 사업장 폐기물 매립시설 사업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연천군은 구체적인 해명을 내놓지 않고 있다. 연천군 도시계획업무 관계자는 “현재 폐기물 매립시설 사업에 관한 행정심판이 진행 중이라 답변이 어렵다”고 밝혔다.한편, 연천군은 전곡읍 고능리에 사업장 폐기물 매립시설을 지을 수 없다는 의견을 고수하고 있다. 연천군 업무 담당자는 “연천군은 해당 지역을 체육시설부지로 유지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 보고 있다. 현재 그 지역에 체육시설을 하겠다는 사업자도 있다”고 밝혔다. “해당 지역은 이미 ㈜북서울의 사유지인데 어떻게 체육시설로 쓸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는 “그것은 사업자들이 만나서 결정할 사안”이라 답했다. 이에 대해 해당 토지의 소유주인 ㈜북서울 관계자는 “관련 내용에 대해 전혀 들은 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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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준 기자
sejoonkr@donga.com
1989년 서울 출생. 2016년부터 동아일보 출판국에 입사. 4년 간 주간동아팀에서 세대 갈등, 젠더 갈등, 노동, 환경, IT, 스타트업, 블록체인 등 다양한 분야를 취재했습니다. 2020년 7월부터는 신동아팀 기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90년대 생은 아니지만, 그들에 가장 가까운 80년대 생으로 청년 문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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