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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진 전 대표팀 언론담당관이 지켜본 2006 월드컵

프랑크푸르트의 영광 라이프치히의 환희 하노버의 울분

허진 전 대표팀 언론담당관이 지켜본 2006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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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축구에 관심 깊은 독자라면 ‘허진’이라는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2002년 월드컵 당시 대표팀의 언론담당관으로 활약했던 바로 그 외교관이다. 독일월드컵을 앞둔 지난해말 주(駐)독일대사관 사관으로 발령 받아 현지로 날아간 그는 이번 대회에서도 지원업무를 맡아 전 기간을 함께했다. 두 차례의 월드컵, 히딩크호와 아드보카트호, 그리고 그들의 코칭스태프까지 속속들이 들여다본 그에게 ‘현장에서 지켜본 월드컵 결산’을 청했다.
허진 전 대표팀 언론담당관이 지켜본 2006 월드컵

6월19일 새벽(한국시각) 라이프치히 월드컵 경기장에서 열린 프랑스와의 G조 두 번째 경기에서 동점골을 넣은 박지성(왼쪽)이 환호하고 있다.

2006 월드컵의 주인은 가려졌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16강 탈락의 아픔이 씻기지 않고 남아 있다. 상대의 압도적인 실력 우위로 조 예선 통과가 좌절됐다면 깨끗이 잊어버렸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심판의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추격의지를 박탈당한 경기가 마지막이었기에 그 실망감은 특별한 것이 됐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대회에서 최초의 원정대회 승리(그것도 역전승으로!), 원정대회 최대 승점(4점) 확보 등 무시할 수 없는 성과를 올렸다. 한편으로는 2002년에 비해 축구 외적인 면에서 여러 문제점이 드러나기도 했으며, 많은 전문가가 ‘우리는 아직 축구를 즐길 줄 모른다’는 자아비판을 내놓았을 정도로 월드컵에 대한 언론의 지나친 상징조작을 문제 삼는 의견이 제기되기도 했다. 광화문 등지에서 벌어진 엄청난 규모의 장외응원에 대해서도 순수성과 상업성을 말하는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필자는 월드컵을 둘러싼 온갖 논쟁과 화제를 일관된 논리로 비판, 옹호하거나 체계적으로 정리할 만한 위치에 있지 못하다. 신문선이나 이용수 같은 축구인 출신의 해설가도 아니고, 장원재 같은 축구인류학자(?)는 더더욱 아니다. 더욱이 축구를 워낙 좋아하다 보니 축구와 관련된 웬만한 일탈은 다 용서해주고 싶은 심정인데다, 과거 대표팀 선수들과 1년 반 동안 같이 생활한 처지라 잘하건 못하건 그들을 나무라거나 문제점을 파헤치고 싶지가 않다.

대표팀을 ‘우리 식구’라고 굳게 믿는 필자로부터 한국 축구에 대한 냉정한 비판과 객관적 분석을 기대하는 독자가 혹시라도 있다면, 별로 도움을 줄 수 없을 것이므로 빨리 다른 페이지를 펼 것을 권한다. 다만 말해 두고 싶은 것은, 나는 월드컵 축구에서 느끼는 이 패배의 처절함과 좌절의 안타까움마저 깊이 사랑하는 맹목적인 축구 팬의 한 사람이라는 점이다. 독자 또한 그러하다면, 이 글은 충분히 읽을 만한 ‘공감 어린 경험담’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들을 다시 만나다



독일에서 대표팀을 처음 만난 것은 우연히도 길거리에서, 그것도 운전하던 중이었다. 프랑크푸르트 숙소로 향하던 대표팀 버스 바로 앞에 우연히 끼어든 나는, 어두운 차창으로 희미하게 비치는 홍명보와 고트비 코치를 보고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며 고함을 쳤다. 하도 난리를 치니 버스에 타고 있던 선수들이 모두 일어나 도대체 누가 저러는지 확인하려 했다. 나를 잘 모르는 김두현과 박주영은 ‘웬 이상한 놈이 괴성을 지르는가’ 살펴보려 했고, 이운재와 이영표는 ‘여기서 만날 줄 알았다’는 듯 빙그레 웃고 있었다. 맨 뒤에 타고 있던 안정환과 최진철은 그제서야 나인 줄 알고 손을 크게 흔들었다.

이번 대회 기간 나는 베를린대사관에서 출장 나와 한국팀 경기가 열리는 도시로 자리를 바꿔가며 대표팀이나 축구협회, 기타 공·사적인 방문자와 응원단 전체에 대한 관리와 지원 업무를 맡았다. 마음은 굴뚝같았지만 선수들을 만나 사적인 추억을 나눌 만한 여유는 없었다. 여유가 있다 해도 컨디션 조절에 민감한 그들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과거에 언론담당관으로 재직할 때 온갖 매체의 선수 인터뷰 요청을 칼같이 가로막은 장본인인 내가 사적인 관심을 채우려 선수들과 코칭스태프들의 시간을 빼앗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과거 히딩크의 통역을 담당한 축구협회 전한진 팀장이나 입장권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신만길 과장과 업무상 협의할 일이 있어 숙소를 찾았다. 마침 진행되던 이탈리아와 가나의 예선 경기 중계방송을 잠시 보고 떠날 요량으로 로비에 앉아 있는데, 갑자기 웬 사내가 내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깜짝 놀라 뒤돌아보니 고트비 코치가 아닌가. 우리는 약속이나 한 듯 얼싸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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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진 駐독일대사관 참사관, 2002 월드컵 대표팀 언론담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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