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개막전에 8만명의 관중이 몰려드는 등 성공적으로 시작된 ‘현대 A리그’.
사커루는 F조 조별 예선 첫 경기인 일본전에서 경기종료 6분 전까지 0대 1로 지고 있었다. 그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터진 팀 케이힐의 동점골은 호주가 월드컵 본선에서 얻은 첫 번째 골이었다. 어디 그뿐인가. 그 후 추가시간 2분을 포함한 8분 동안 2골을 더 넣어 3-1 대역전승을 거뒀다. 이 또한 호주가 월드컵 본선에서 기록한 첫 승이었다. 한껏 기가 오른 사커루는 16강 진출이라는 위업을 달성하면서 축구 불모지 호주에 축구열풍을 일으켰다.
그런데 그 열풍의 중심에 거스 히딩크 감독과 한국 기업이 있어 재(在)호주 한인교포들의 어깨를 으쓱하게 만들었다. 이 한국 기업은 지난해 호주축구협회와 호주 최초의 프로리그인 ‘현대 A리그(Hyundai Australian Football League)’를 창설한 현대자동차 호주현지법인(HMCA)이다.
호주에서 프로축구 리그를 출범시키는 건 한국에서 프로럭비 리그를 만드는 것만큼이나 무모해 보이는 일이었다. 더욱이 동부 팀과 서부 팀이 원정경기를 하려면 5시간 이상 비행기를 타야 할 정도로 땅이 넓은 나라에서 전국 단위의 프로리그를 만든다는 것은 도박에 가까웠다. 그러나 현대자동차는 호주 사람들의 눈이 휘둥그레질 만한 추진력으로 호주 최초의 프로축구 리그를 탄생시켰다. 현대 A리그는 첫해부터 ‘대박’을 터뜨렸고 이어지는 독일월드컵 특수(特需)까지 겹쳐 다른 기업들의 큰 부러움을 사고 있다.
‘한겨울 밤의 꿈’
TV를 켜면 십중팔구 럭비 경기 중계방송이 나오고 ‘럭비와 맥주가 없으면 혁명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나라 호주. 하지만 독일월드컵 기간에는 럭비가 아닌 축구 열기로 호주의 겨울이 깜짝 놀라서 달아날 지경이었다. 지구 남반부에 위치한 시드니의 6월과 7월은 겨울이다. 아열대성의 기후여서 낮에는 그다지 춥지 않지만 밤엔 두툼한 외투를 걸쳐야 할 정도로 일교차가 크다. 한국에서처럼 호주에서도 심야시간이나 새벽에 월드컵 TV중계방송을 시청하다 보면 거실 소파에서 잔뜩 웅크리고 있기 일쑤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호주에도 한국식 단체응원이 심심찮게 벌어져 길거리로 나가면 한겨울 밤의 추위를 축구열기로 떨쳐버릴 수 있게 됐다. 단체응원은 주로 대형 클럽에서 펼쳐졌는데, 시드니나 멜버른 같은 대도시에서는 사람들이 길거리나 공원에 모여 응원을 했다. 필자는 그들과 어울리려 호주팀 경기가 있는 날엔 시드니 서북부에 있는 ‘더 란츠 클럽’으로 갔다. 그곳은 한국의 ‘붉은악마’ 격인 호주 응원클럽 ‘그린 앤드 골드 군대(Green and Gold Army)’의 시드니 북부지역 본부다.
조별 예선 1차전인 일본과의 경기가 종료되는 순간, 클럽을 꽉 메운 사람들이 “구스! 구스!”를 연호하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의 이름인 ‘거스’의 호주식 발음이다. 응원단장 마크 워렌에게 “왜 골을 넣은 케이힐이나 알로이지가 아닌 구스를 연호하느냐?”고 물었더니 그는 당연하다는 듯 “오늘 경기는 구스가 만든 한 편의 드라마다. 우린 그의 마법에 걸려 울고 웃는다”며 함께 응원하던 연인에게 연신 입맞춤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