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 설계를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한양대 토목과를 졸업하고 공군장교로 복무한 게 계기가 됐다. 제대 후 대림산업에 근무하면서 비행장 설계 프로젝트를 맡았다. 군에서 공항 설계를 했던 경험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마침 그 비행장이 골프장과 연결된다는 걸 알고 골프장 설계에 관심을 가졌다. 그러다 군에서 상사로 모시던 이가 운영하던 골프장 설계 회사에 합류한 것이 34세 때.
“송추CC를 처음 설계했어요. 그때 제게 골프장을 설계하는 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영감과 통찰력, 상상력 같은 게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됐습니다. 골프장 디자이너는 90만㎡의 드넓은 땅 위에 그림을 그립니다. 토목은 말할 것도 없고 조경과 미학까지 알아야 해요.”
코스 설계에 발을 들인 뒤에도 그는 골프를 칠 줄 몰랐다. 골프를 모르면 제대로 된 설계를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그제야 골프를 시작했다. 처음 1년 동안은 연습장에만 나갔다. 손에 물집이 잡히고 굳은살이 박일 때까지 연습했다. 1992년 첫 라운드에서 130타를 쳤다. 그 뒤 5개월 만에 88타를 쳤고, 1994년 경기 용인 레이크힐스에서 79타를 쳐 싱글패를 받았다.

송호 대표가 설계한 곤지암CC(왼쪽)와 드비치CC.
송 대표의 고집은 골프계에 널리 알려져 있다. 골프장 사장이 아무리 사정해도 자신의 철학에 맞지 않으면 애초 설계한 내용을 웬만해선 바꾸지 않는다. 최근엔 송 대표에게 코스 설계를 의뢰한 모 대기업이 그에게 설계 저작권을 넘겨달라고 요구했다. 그는 창작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골프장은 제게 문화유산과 같아요. 한번 만들어놓은 코스는 대를 이어 후손들이 운동을 하게 됩니다. 나무 한 그루, 벙커 하나도 소중한 가치를 지녔어요. 열정과 영혼을 바쳐 만드는 골프장인데 아무리 돈을 많이 받는다고 자존심을 통째로 넘겨줄 순 없는 거죠.”
그의 베스트 스코어는 72. 아직 홀인원은 기록하지 못했다. 그가 꼽은 가장 인상적인 라운드는 2003년 페블비치에서다. 7번홀 90m 거리의 파3, 태평양에서 불어오는 강풍에 맞서 그는 아이언 5번을 휘둘렀다. 일반적인 코스에서 그는 5번 아이언으로 170m 정도의 비거리를 내는데, 그 절반 거리에서 5번 아이언으로 풀 스윙을 했다.
“날아가던 공이 밀려서 되돌아오는 게 보일 정도로 강풍이 불었어요. 그런데 바다를 향해 클럽을 휘두르는 그 느낌이 정말 특별했습니다. 골프장에서 자연이 주는 감동이 이런 거구나 하는 생각을 했지요.”
송 대표는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인간의 욕망을 골프를 통해서 느끼도록 코스를 설계하겠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후대에 유산으로 물려줄 명품을 만들겠다는 송 대표의 열정과 장인정신은 그의 손끝에서 빚어진 명문 코스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드비치(사진), 세인트포CC, 곤지암(리뉴얼·사진), 프리스틴밸리, 백암비스타(현 BA비스타), 비전힐스, 남촌, 엘리시안, 서원힐스….

송 대표의 스윙은 루크 도널드처럼 ‘예쁘고’ 리드미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