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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재현의 심心중中일一언言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베스트셀러 ‘라틴어 수업’의 저자 한동일 교수

  • 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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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홍중식 기자]

그의 호칭을 뭐로 해야 할까. 라틴어로 ‘트레스 페(3P)'라 불러야 할지 모르겠다. 파테르(Pater·신부), 파트로누스(Patronus·변호사), 프로페소르(Professor·교수) 셋 다에 해당하는데 공교롭게도 모두 알파벳 P로 시작해서다. 지난 6월 말 출간돼 석 달 만에 5만 부 이상 판매되며 인문분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책 ‘라틴어 수업’(흐름출판)의 저자 한동일(47·세례명 사무엘) 교수다.
 
한 교수는 광주가톨릭대와 부산가톨릭대 신학교에서 학사와 석사 과정을  마치고 2000년 사제 서품을 받은 신부다. 또 2001년 로마 유학길에 올라 교황청에서 세운 라테라노 대학에서 교회법 석사와 박사 과정을 최우등(숨마 쿰 라우데)으로 졸업하고 교황청 대법원인 로타 로마나의 3년 과정 사법연수원을 통과한 변호사이기도 하다. 한 교수가 로타 로마나의 변호사가 된 것은 700년 역사상 930번째이자 아시아인으로서는 최초다. 그리고 2010년~2016년 서강대에서 라틴어 강의를 진행했고 현재는 연세대 법무대학원에서 ‘유럽법의 기원’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이기도 하다.

‘라틴어 수업’은 그가 서강대에서 강의한 내용 중에서 젊은이들의 삶에 나침반이 될 28개의 라틴어 문구를 꼽고 그 의미를 감칠맛 나게 음미한다. 라틴어의 원리와 기본 문법 지식은 그 입맛을 돋우게 할 애피타이저에 가깝다. 딱딱한 라틴어 문법서가 아니라 라틴어에 응축된 로마와 중세유럽의 인문학적 성찰과 통찰을 맛보게 해주는 입문서에 가깝다.

실제 그의 강의를 들은 학생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지면서 첫 학기엔 24명에 불과하던 수강생이 마지막 학기엔 240여 명으로 10배로 불었다. 서강대 학생뿐 아니라 인근 연세대와 이화여대 학생도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데 메아 비타

“둠 스피로, 스페로!  숨 쉬는 동안 나는 희망한다!”

출간 두 달 만에 5만 부가 팔리며 인문분야 베스트셀러로 떠오른 ‘라틴어 수업’. [흐름출판사 제공]

이는 한 교수에게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에게 3개 호칭 중에 가장 선호하는 호칭이 뭐냐 물었을 때 ‘프로페소르(교수)’를 꼽은 이유도 거기에 있었다. “신부가 된 게 특별한 사명감이 있어서였던 게 아니었어요. 교황청 변호사가 된 것도 계획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교수가 돼서 연구하고 학생들 가르치는 보람이 가장 큽니다. 하느님이 저를 신부로 삼으신 뜻도 ‘공부해서 남 줘라’에 있지 않을까 어렴풋이 짐작해봅니다.”

한 교수의 수업에서 중간고사 과제는 늘 같았다. ‘나의 인생에 대하여’라는 뜻의 라틴어 ‘데 메아 비타(De mea vita)’를 주제로 A4 용지 한 장 분량의 리포트를 제출하는 것이었다. 책 말미에 수록된 제자들의 편지글에도 등장하지만 이 과제를 부여받은 학생들은 처음엔 갈피를 잡지 못하고 번민에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고 한다. 자신의 삶을 진지하게 성찰한 적이 없어서이기도 했지만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이도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과제물을 작성하며 삶의 의미를 찾았다는 수줍은 고백을 만나게 된다.

이를 읽으며 기자는 문득 한동일 교수의 ‘데 메아 비타’가 궁금해졌다. 책에서 단편적으로만 등장하는 그의 인생 역정부터 파고들었다.

한 교수는 서울 제기동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실향민이던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한 뒤 3층 연립주택 옥탑 단칸방에서 초·중·고교를 다녔다. 아버지는 폐인처럼 지내다 일찍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시장에서 도라지를 팔아 겨우 입에 풀칠하고 살아야 했다. 그래서 학교 공납금 낼 때가 가장 힘겨웠단다. 중고생이 된 뒤에는 공납금 낼 때가 되면 14년 터울로 분가한 맏형의 직장을 찾아가 손을 내밀어야 했다. 그래서 억울한 마음에 공부를 열심히 했지만 성적은 기대만큼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외국어 공부에 관심이 많았기 때문에 중3 때 외고 진학을 희망했습니다. 어느 날 담임선생님이 저를 불러 ‘너희 집안 형편에 등록금이 비싼 외고는 무리’라고 인문계 진학을 권하셨죠. 바로 그날 집에 와서 어머니에게 들은 이야기가 ‘차라리 상고로 진학하는 게 어떻겠냐’였는데 눈물이 핑 돌더군요.

소년 한동일에겐 공부를 깊게 하고 싶다는 소망이 있었다. 그래서 대학 진학을 위해 인문계 고교로 진학했는데 배정받은 학교가 제기동에서 멀리 떨어진 혜화동에 있는 동성고였다. 가톨릭재단 학교인 동성고는 김수환 추기경이 졸업한 학교이기도 했다. 자연스럽게 그곳에서 김수환 추기경에게 세례까지 받게 됐다. 하지만 신앙심이 깊었던 게 아니어서 세례만 받고 미사 참석을 멈췄다. 그러다 그 자신도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고 한다.

“고2 때 수학 수업시간에 칠판에 ‘신부가 돼라’는 글씨가 보이는 거예요. 제 눈에만 보이는 거였죠. 미친 놈 취급받을까 말도 못 하다가 가까운 수녀님에게 털어놨습니다. 그분께서 가만히 웃으시더니 한참 뒤 ‘아무래도 하느님께서 너를 신부로 삼으시려는 계시 같다’ 하시더군요. 농담으로만 받아들였는데 고3이 되면서 신부가 되면 좋아하는 공부도 맘껏 할 수 있으니 승부를 한번 걸어보자는 결심이 서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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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권재현 기자|confett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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