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7월호

골프장은 울고 골퍼는 웃는 시대 오나

  • 정연진 │골프라이터 jyj1756@hanmail.net

    입력2012-06-20 11: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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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골퍼와 클럽, 그리고 골프장은 골프업계를 지탱하는 핵심 축이다. 세 개의 축에서는 황당하거나 재미있는 일이 자주 일어난다. 때론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논쟁이 재연되기도 한다. 골프와 관련된 상식이나 에피소드, 논란거리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런 사례들이 있어 골프는 더욱 흥미롭고 유쾌하다.
    사례 하나. 올해 ‘제5의 메이저’ 플레이어스챔피언십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연출됐다. 마지막 날 선두를 달리던 한 선수가 속절없이 무너졌다. 공동 7위라는 초라한 성적을 받고 최종 라운드를 마쳤다. 슬로 플레이가 문제였다. 한 홀에서 5차례의 연습스윙과 24차례의 왜글을 했다. 급기야 동반자가 얼굴을 붉혔고, 언론까지 비난에 가세했다. 이 선수는 PGA에서 ‘거북이 플레이어’로 알려져 있다.

    사례 둘. 지난해 4월 발레로 텍사스오픈 1라운드에서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한 선수가 두 번의 티샷 OB를 냈다. 이후 벌타를 받고 언플레이어블까지 선언했다. 결국 이 선수는 파4 홀에서 무려 16타를 쳤다. 다행히 PGA 최악의 스코어는 아니었지만, 얼굴을 들고 다니기 힘들 기록을 남겼다.

    두 사례의 주인공은 ‘코리안 브러더스’의 일원인 케빈 나(나상욱). 그는 요즘 플레이 속도를 올리려고 무던히 애쓰고 있다. 그리고 ‘16타의 악몽’을 잊은 지 오래다. PGA투어 두 번째 우승컵을 들어올리기 위해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내기와 도박의 애매한 경계

    케빈 나의 사례를 아마추어 골퍼에게 적용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첫 번째 사례처럼 플레이가 느린 아마추어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다. 프로처럼 벌타를 받지는 않지만, 스코어에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심지어 동반자들 사이에 라운드 기피 대상으로 찍힐 수 있다. 국내 라운드 환경에서 적절하게 플레이 속도를 조절하는 것은 팀을 생각하는 에티켓에 속한다.



    골프는 에티켓에서 시작해 매너로 마무리된다. 라운드 분위기의 가장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실력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머리를 얹을 때 기술보다 에티켓과 룰을 먼저 가르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력이 모자라는 골퍼와는 라운드를 해도 매너 없는 골퍼와는 동반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아마추어가 의외로 많다.

    두 번째 사례는 아마추어에게 불가능에 가깝다. 보통 기준 타수의 두 배를 치면 ‘양파’를 외치고 그 홀을 마치는 게 불문율이다. 국내 아마추어의 핸디캡이 정확하지 않은 주요한 이유다. 퍼팅 시 쉽게 OK 사인을 주는 것도 마찬가지. 특히 100타 내외의 실력을 갖고 있는 아마추어에게는 더욱 그렇다. OK 남발은 퍼팅 실력을 키우는 데 자칫 독이 될 수 있다.

    지난 2005년 법원에서 흥미로운 판결을 내렸다. 내기골프를 하다 도박죄로 기소된 피고인들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내기골프는 우연성이 없으므로 도박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하지만 이듬해 상급심에서 유죄로 판결이 뒤집혔다. 아마추어 사이에서 때 아닌 골프내기 논쟁이 일어났다. 논점은 ‘내기와 도박을 가르는 액수가 얼마냐’에 모아졌다. 골퍼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가 일종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

    ‘내기골프에서 액수가 그린피를 넘어가면 안 된다. 게임의 재미와 실력 향상을 위해 쓰는 동기와 목적일 때만 내기이고, 그 경계를 넘으면 도박이다.’

    법원은 그동안 수만 원 정도의 스킨스게임에 대해서는 무죄를 선고했다. 반면 수천만 원 이상의 내기 골프에 대해서는 유죄 판결을 내렸다. 무죄와 유죄 사이의 액수 차이가 상당하다. 내기를 하지 않는 골퍼는 거의 없다. 문제는 내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에 있다. 실력을 끌어올리고 분위기를 좋게 만드는 것은 긍정적인 영향이다. 스윙이 흔들리고 타수에 집착하는 것이 내기의 폐해다. 내기인지 도박인지, 골퍼들은 마음속으로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길이와 정확성의 끝없는 논쟁

    일본 골프용품업체인 PRGR의 뉴 에그 임팩트 드라이버의 샤프트 길이는 43.5인치다. 샤프트를 짧게 한 대신 헤드는 205g으로 무겁게 설계했다. 전체 중량은 기존 제품보다 7g이 줄어 다루기 편해졌다. 던롭 젝시오7 드라이버는 기존 제품보다 0.5인치를 줄였다. 아마추어를 대상으로 한 실험 결과 46인치를 넘으면 오히려 거리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핑골프의 상급자용 드라이버 i20도 45.25인치를 넘지 않는다. 대표적인 장타 드라이버로 알려진 클리블랜드의 블랙도 46인치를 최대치로 잡았다. 대신 무게를 265g으로 줄여 스윙 스피드를 높였다. 이들 드라이버는 기존 제품보다 길이를 짧게 해 정확하게 칠 수 있게 한 것이 공통점이다.

    최근 짧은 드라이버가 속속 출시되면서 ‘장타’에 대한 논쟁이 다시 불붙었다. 샤프트가 1인치 길어지면 거리는 7야드 늘어난다고 한다. 지난해 이 이론을 근거로 긴 드라이버가 관심을 받았다. 규정상 한계치인 48인치의 드라이버까지 선을 보였다. 그러다 올해 들어 분위기가 반전됐다. 장타는 길이가 문제가 아니라 정확성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장타자 버바 왓슨도 44.5인치의 드라이버를 쓴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길이와 정확성의 문제는 아주 오래된 논란거리다. ‘드라이버는 쇼이고 퍼팅은 돈이다’라는 골프 격언이 있다. 하지만 모든 골퍼는 장타를 꿈꾼다. 드라이버를 자주 교체하는 이유는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해서다. 스코어를 위해선 퍼팅이 더 중요하다는 논리적인 비판이 끼어들 틈은 없어 보인다. 골프가 존재하는 한 이 논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샤프트가 길수록 스윙 아크가 커져 장타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만큼 컨트롤이 어려워 정확한 임팩트가 안 되면서 거리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 반면 골프는 정확성의 스포츠다. 스윗 스폿에 정확히 맞혀야 장타를 기대할 수 있다. 아무리 길고 성능이 뛰어난 드라이버라도 정확하게 맞히지 못하면 소용없다.

    결국 길이보다 개인의 성향이 중요하다. 샤프트의 길이에 내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나의 체형과 스윙에 따라 길이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스윙아크를 최대한 크게 그리면서 정확하게 임팩트할 수 있는 길이는 개인마다 조금씩 다르다. 요즘 출시되는 클럽은 신소재에 첨단공법이 가미됐다. 대부분의 드라이버는 스윗 스폿에 정확히 맞히면 200야드 이상의 비거리는 문제없다. 그러면 파4 홀에서 무난히 투온이 가능하다. 장타에 과욕을 부릴 필요가 없을 만큼 요즘 클럽의 성능은 뛰어나다.

    골프장에 부는 변화의 바람

    “제주도의 몇 개 골프장은 세금조차 제때 내지 못한다는 소문을 들었다. 지방으로 내려갈수록 상황은 더욱 좋지 않다. 주말에 티업 시간을 모두 채우는 골프장이 손에 꼽힐 정도다. 골프장 매물이 점점 쌓여간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 전북 고창군의 선운산CC가 골프존에 팔렸다. 골프존은 몇 개의 골프장을 더 인수할 것으로 알려졌다. 골프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국내 골프장도 일본 골프장처럼 도산이나 파산이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논란이 거세지고 있다.”

    골프장의 상황이 말이 아니다. 겉으로는 평온한 것처럼 보이지만, 속으로는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쟁해야 할 골프장은 점점 늘고 있다. 내장객 수는 알게 모르게 줄고 있다. 좀 더 저렴하게 골프를 즐기려는 골퍼들의 압력을 무시할 수 없다. 더 좋은 조건에서 일하려는 캐디를 붙잡는 일도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수도권 골프장은 그래도 나은 편이지만, 손놓고 낙관할 상황은 아니다.

    골퍼들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을지 모른다. 골프장끼리 경쟁이 심해지고 매출액이 감소하면 고객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리라는 기대감 때문이다. 그동안 골퍼보다 골프장의 목소리가 컸던 게 사실이다. 골프장에 변화의 바람이 강하게 불고 있다. 골퍼들이 원하는 진정한 의미의 대중화 시대가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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