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치론<br>존 로크 지음, 강정인 · 문지영 옮김, 까치
재판 내용이나 판결에 앙심을 품고 보복하는 것을 우려해 판·검사나 변호사 신변보호 수단으로 익명성이 높은 가발을 쓴다는 설도 전해온다. 천장이 높은 영국 법정이 추웠기 때문에 방한용으로 가발이 등장했다는 주장도 있긴 하지만 기능성만으로 300년 넘게 전통이 이어지지 않았음은 분명하다. 영국 판사와 변호사 대다수가 여전히 법정에서 가발 착용을 원하는 반면 국민은 시대착오적인 관습으로 여긴다는 조사 결과가 이를 증명한다.
‘천부인권’ 사상에 바탕을 둔 시대정신에 비춰보면 당초 착용 동기와 상관없이 법정의 가발은 사람이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상징물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는 견해도 있다. 누구나 하늘이 내린 인권을 소유하고 있다는 자연법 아래서 사람을 재판할 수 있는 것은 하늘 밖에 없는 셈이다. 이에 따라 ‘하늘의 대리자’ 역할을 가발 쓴 판사가 한다는 개념이 그것이다.
천부인권의 동의어에 가까운 자연법 사상으로 영국 민주주의의 이론적 틀을 만든 인물이 17세기 정치철학자 존 로크다. 로크는 인간이 원래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천부인권 개념을 정립하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주권재민’ 사상에 이르기까지 근대 민주주의 정치철학의 근간을 세웠다. 이 같은 정치사상을 압축한 저작이 ‘통치론’(원제 Two Treatises of Government)이다.
이 책은 근대 민주국가의 형성과 통치 원리를 최초로 개념화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 책은 자연법, 사회계약설, 권력분립론 같은 거대담론을 주창한다. ‘통치론’은 당연히 천부인권부터 설파해나간다. 들머리에서 ‘모든 인간은 전지전능한 조물주의 작품이며, 각자가 자기를 위한 재판관이고 집행자인 상태’라고 전제한다.
홉스가 자연 상태를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으로 가정한 반면, 로크는 자연 상태에서 완전한 자유와 평등이 존재하며 평화롭다고 전제한다. 이 책에서는 ‘모든 인간은 자연적으로 자유롭고 평등하다’는 견해를 여러 차례 강조한다. 자연 상태에서는 자연법이 지배한다. 자연법은 신에게서 나온 것이어서 모든 사람이 이를 따라야 한다.
美 독립, 佛 대혁명 추동
로크의 자연법은 생명, 자유, 재산에 대한 권리다. 이 권리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사유재산권이다. 자연물은 원래 공공의 것이지만 노동이 개입되면 개인적인 소유가 된다는 게 로크의 생각이다. 이 소유권은 국가가 박탈할 수 없으며, 누구도 이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재산권은 근대 시민사회 성립에 중요한 이론적 기초가 됐다. 사적 소유를 정당화한 그의 사상은 훗날 시장 자본주의의 성립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자연 상태는 자유롭고 평화스럽지만, 이 상태에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이 재판관’이기 때문에 언제든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 일어나기 쉽다. 이를 막기 위해 사람들은 ‘사회계약’을 통해 평화와 자기 보존을 목적으로 권리를 국가기구에 양도한다.
“인간은 본래 모두 자유롭고 평등하며 독립된 존재이므로, 어떤 인간도 자신의 동의 없이 이러한 상태를 떠나서 다른 사람의 정치권력에 복종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자연적 자유를 포기하고 시민사회의 구속을 받아들이는 유일한 방도는 재산을 안전하게 향유하고 공동체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부터 좀 더 많은 안전을 확보하면서, 상호간에 편안하고 안전하며 평화스러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동체를 결성하기로 합의하는 것이다.”
‘정치사회 결성의 목적이 재산 보호에 있다’는 그의 주장은 정치적 자유주의 이론의 핵심 요소에 속한다.
이렇게 탄생한 정치체라고 해서 무한한 권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은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 사형 등 모든 처벌을 할 수 있는 법을 정하는 권리다. 정치권력은 그러한 법을 집행하고 외세 침략에서 국가를 지키기 위한 공동체의 힘을 사용할 수 있는 권리다. 정치권력은 오로지 공공선을 위해서만 행해져야 한다.”
‘통치론’의 핵심 중 하나는 ‘권력분립론’이다. 로크는 전제적 국가권력의 위험을 피하기 위해 권력을 상이한 기관에 속하게 하는 권력 분립을 주장한다. 이는 오랫동안 권력을 독점했던 왕권의 해체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국민이 직접 선출한 입법부가 권력의 중심이다. 행정부는 입법부의 권력 독점을 견제하는 집행기관이다. 국민을 대표하는 입법부라도 법을 만들고 집행까지 할 경우 권력이 지나치게 집중돼 결과적으로 국민의 권리를 침해할 우려가 있다는 게 로크의 착안이다. 권력분립론은 훗날 ‘법의 정신’을 쓴 몽테스키외의 삼권분립론에 영감을 준다.
‘행복한 철학자’
로크는 군주제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시민의 저항권까지 인정한다. “왕이 권위를 가지지 못하게 되는 경우 그는 더 이상 왕이 아니며 따라서 저항할 수 있다.” ‘통치론’은 입법부가 선언한 법률을 군주나 권력자가 바꾸거나, 입법부의 집회를 방해할 경우 이에 저항할 권리를 명시했다. 저항권은 국민 뜻과 달리 선거 방식을 훼손하거나, 입법부 권한을 외세에 넘길 때도 가능하다. ‘왕권신수설’에 따라 왕의 권력에 대한 도전이 신성모독의 대역죄로 간주되던 시대에 로크는 대담하게 인민의 저항을 권리로 정당화했다. ‘신은 세계를 근면하고 합리적인 자들이 사용하도록 주었다’는 로크의 지론에서는 초보적인 노동가치설이 나왔다.
‘통치론’은 원제목이 시사하듯 1편인 ‘로버트 필머 경과 그 일파의 잘못된 논리에 대한 비판’과 2편인 ‘시민정부의 참된 기원과 범위 및 목적에 관한 소론’으로 구성돼 있다. 1편은 ‘사람은 자유롭게 태어나지 않았다’는 명제에 따라 절대왕정을 옹호한 로버트 필머와 그 일파의 주장에 관한 전면적 논박이다. 2편은 우리나라에서 ‘통치론’이란 제목으로 번역, 출간된 부분이다. ‘시민정부론’이란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책은 혁명적인 저작이 대부분 그렇듯이 순조롭게 출판될 수 없었다. ‘혁명을 통해서라도 통치자를 바꿔야 한다’는 지론으로 무장한 로크는 끝내 더 자유로운 네덜란드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 망명한 뒤에도 새로 왕위에 오른 제임스 2세가 로크를 체포해줄 것을 네덜란드 정부에 정식으로 요청하기에 이른다. 그는 수많은 가명을 사용하면서 숨어 지내야 하는 수배자 신세가 됐다. 로크는 미리 써놓은 ‘통치론’을 세계 최초의 시민혁명인 명예혁명 다음 해에 발표해 이 혁명을 사상적으로 강력하게 뒷받침했다.
아래로부터의 저항
1689년 로크는 익명으로 이 책을 출판했다. ‘통치론’은 그때까지도 위험한 저작으로 취급받아 이름을 감추고 출간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혁명의 성공으로 정치현실을 변화시켜 영국 근대 정치철학의 교과서로 불렸다. 더 크게 보면 미국 독립과 프랑스 대혁명에 결정적인 추동력으로 작용했다. 미국 독립혁명에 끼친 로크의 영향력은 ‘독립선언서’가 ‘통치론’을 표절했다는 시비에 휘말린 사실에서도 드러난다. 선언서 전체의 내용이나 구성은 물론 구체적인 문장까지 너무 흡사했기 때문이다. 기초자인 토머스 제퍼슨은 독립선언서를 작성하는 동안 어떤 책이나 팸플릿도 옆에 두고 참조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통치론’은 볼테르의 ‘관용론’, 장 자크 루소의 ‘사회계약론’, 이마누엘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등에도 적지 않은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로크의 사상은 19~20세기 전체주의와 독재국가들에 맞서 ‘아래로부터의 저항’을 이끌어내고 정당화하는 데도 기여했다.
이 책은 한계점도 드러냈다.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일치’를 주장한 루소와는 달리 권력의 양도를 정치사회 결성의 전제로 삼은 대목이 그렇다. 서구 예외주의도 발견된다. ‘통치론’은 유럽인과 아메리카 원주민 사이에 존재하는 재산제도와 정치조직의 차이를 근거로 삼아 유럽 식민주의를 정당화했다.
이러한 한계를 안고 있음에도 ‘통치론’은 ‘진보적 자유주의’의 출발점이라는 역사적 의의를 지닌다. “국가의 목적은 인민의 복지이며, 정치권력의 행사는 개인의 동의에 기반을 둘 때 정당하다”는 로크의 견해도 여전히 금과옥조 같다. 우리나라 헌법 제10조도 천부인권에 바탕을 두고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개인이 가지는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을 확인하고 이를 보장할 의무를 진다’고 규정했다. ‘통치론’은 출간된 지 300년이 넘었지만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모든 나라의 헌법에 살아 숨 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