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7월호

마지막 회 | 난임전문의 이성구의 ‘수태이야기’

과학과 현실을 외면한 한국의 法

  • 입력2018-07-15 09: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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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아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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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리모’를 떠올리면 ‘애 못 낳는 부부가 자식을 얻기 위해 검은 거래를 마다하지 않는 상황이 뇌리를 스칠 것이다. 일각에서는 30년 전에 화제가 된 영화 ‘씨받이’를 기억해 어린 여인이 대갓집 대를 잇기 위해 씨받이라는 이름으로 들어가서 아기를 낳아주는 장면까지 상상할지 모른다. 

    ‘대리모(代理母)’의 사전적 의미는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부부로부터 의뢰를 받아 아기를 대신 낳아주는 여자’를 일컫는다. 조선시대 대리모는 임신을 위해 아이 아버지가 될 남성과 통정(通情)을 해야 했다면, 현대의 대리모는 의뢰 부부의 정자와 난자로 수정된 배아를 자신의 자궁 내에 이식받아 열 달간 키워서 낳아주는 역할을 한다. 조선시대 대리모는 아이의 유전적 어머니였지만, 현대의 대리모는 비록 열 달간 품어서 낳았지만 유전적으로는 전혀 연관성이 없다. 

    그렇다면 대리모의 자궁에서 낳은 아기는 누구의 자식이 될까? 유전자를 제공한 의뢰 여성의 자식일까, 대리모의 자식일까. 지금까지는 의뢰를 한 부부의 자식으로 보았다. 그런데 최근 한국의 법원은 유전적 연관성이 전혀 없는 대리모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왜 그런 결정을 내렸을까. 다름 아닌 친생자의 기준으로 민법상 모(母)의 출산을 판단 기준으로 해서 “부모 결정 기준은 난자를 제공한 사람보다는 출산을 한 대리모가 아이의 어머니로서 출생신고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 근거였다. 

    결국 이번 판결이 “대리모를 통해 자녀를 출산한 경우 민법상 자녀의 어머니는 ‘대리모’로 규정한다”라는 판례가 되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의뢰한 부부는 대리모와 한 계약이 현행법상 허용되지 않아서 무효이므로 대리모가 낳은 아이를 친생자로 바로 입적할 수 없다. 물론 대리모로부터 친양자 입양 방식으로 데리고 오면 된다. 하지만 친양자가 되면 자칫 훗날에 자식에게 의혹과 상처를 만들 수 있다. 

    임신을 둘러싼 윤리적 문제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자궁 부재와 자궁에 심각한 이상으로 난임을 겪는 여성의 절박한 사정을 고려해서 자매간 선의로 행한 대리모 임신·출산일 경우 관례적으로 병원 측이 눈감아왔다. 해외 토픽에서 딸을 위해 친정엄마가 대리모를 자청해 출산하는 사례가 있듯이 가족 간의 자발적 대리모 임신·출산은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런 판결이 내려졌으니 이제 어느 누가 대리모로 선뜻 나설 수 있을까.



    현실과 동떨어진 관련 법규

    현재 미국의 경우 11개 주에서는 배아 이식을 통한 대리모 출산을 허용하고 있다. 미국생식의학회에 따르면 2015년 대리모 임신을 통해 출산한 아기가 2807명에 달한다. 미국인들 사이에는 의뢰 부부의 정자 난자를 이용한 체외수정으로 임신하므로 유전적으로 산모(대리모)와 연관성이 없다고 해서 ‘임신 대리 출산’의 개념으로 대리모를 해석하고 있다. 최근 뉴저지주에서는 상업적 대리모를 합법화하면서 대리모 자격 요건을 ‘21세 이상, 1회 이상의 출산 경험, 신체·정신적으로 문제가 없는 여성’이라고 명시했다. 

    난임의사 입장에서 현실과 의학 발전의 추이(推移)를 무시한 한국의 법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한국의 생명윤리법에 의거해 난임 부부의 배아는 최장 5년까지만 동결보관이 가능하다. 부부는 냉동된 배아를 통해 둘째 셋째를 낳을지, 폐기처분할지 여부를 5년 안에 결정해야 한다. 누구의 인생인들 5년 안에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있을까 싶다. 

    또한 난임부부 중에는 유전병으로 인해 임신을 포기하는 이도 적지 않다. 최신 생식의학에서는 유전병 대물림을 막기 위한 시험관시술(PGD/pre-implantation genetic diagnosis)을 통해서 배아를 자궁 내 이식하기 전에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다. 그런데 ‘생명윤리 및 안전에 관한 법률’에서 허용하는 배아 및 태아에서 유전자 검사를 할 수 있는 유전병이 160여 종에 불과하다. 이유인즉 생명윤리법 제47조에서 배아·난자·정자 및 태아에 유전자치료를 해서는 안 된다고 못 박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난임병원에서 폐기처분되는 5년 지난 잔여 배아로만 유전 질환을 연구할 수 있어서 유전 질환 연구가 부진할 수밖에 없다. 

    어디 그뿐인가. 난임부부들의 병원비(시술비) 걱정을 덜기 위해 지난해 10월부터 난임 시술 및 치료비에 건강보험이 적용됐지만 시술비 지원 횟수 제한, 나이 제한, 각종 규제 등으로 난임부부뿐 아니라 난임병원도 정부에 섭섭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말이 나왔으니 짚고 넘어가자면 난임 시술의 역사는 겨우 40여 년이고, 불과 20년 사이에 급속도로 발전한 의술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신기술과 신처방이 나오는 분야다. 난임부부가 건강보험이 적용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자칫 불임의 처지(나이, 상황)가 될 수 있다. 그러니 시험관아기 시술을 5차 이상 한 난임부부거나 40대 고령의 난임여성에게는 과잉 치료·처방을 문제 삼지 말고 자비 부담을 허용하더라도 다양한 신기술과 신처방을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싶다.

    ‘공공난임센터’ 건립 의지 어디로

    마지막으로 난임 치료만큼은 정부가 나서겠다며 ‘공공난임센터’ 건립 의지를 표명한 지 2년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대선 후보 시절 내건 공약이기도 하다. 문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난임의 고통을 개인과 가족에게 전가할 수는 없다. 프랑스나 독일처럼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공공난임센터 설립을 적극 검토하겠다”고 강조한 바 있다. 정말이지 반가운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늘 강조하지만 시험관아기 시술 분야는 베테랑 난임의사뿐 아니라 배양기술 R&D가 받쳐줘야 발전할 수 있다. 치료와 시술의 대상인 환자도 있어야 한다. 따라서 시술 경험이 풍부한 난임 전문가의 도움과 조언을 참고해서 설계하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프로젝트도 빛좋은 개살구가 되어버린다. 필자는 지난 24년간 6만 사례 이상 시험관시술을 한 난임의사로서 국가 발전과 난임부부를 위해서라면 그 어떤 귀찮고 번거로운 일일지라도 마다하지 않고 의술 경험과 브레인을 적극 보태고 싶다.


    이성구
    ● 1961년 대구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 대구마리아병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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