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6월호

난임전문의 이성구의 ‘수태이야기’

둘은 낳아야 하는 진짜 이유

  • 이성구

    입력2018-06-13 17: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참으로 큰일이다. 인구절벽 현상이 가시화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10년간 저출산 대책에 100조 원 가까운 예산을 집행했는데도 한 달에 태어나는 신생아가 3만 명도 되지 않는다. 지난겨울엔 사망자 수가 출생아 수를 추월하는 역전 현상이 발생하고야 말았다. 이런 현상이 지속되면 말 그대로 인구 감소가 본격화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앞으로 30년 내에 전국 읍·면·동 10곳 중 5~6곳은 사라진다는 통계까지 나왔다. 신생아 수가 4만 명이 줄면 초등학교 200개가 폐교된다고 한다. 심각한 인구 감소로 인해 ‘축소도시’라는 용어까지 등장했다. 국토연구원은 전국 20개 도시를 축소도시로 분류했다. 

    출산 장려를 위한 정부의 그 어떤 노력에도 불구하고 출생아 수가 좀처럼 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혼인 감소와 만혼(晩婚), 가임 부부들의 출산 기피 문화만 탓하기에는 단순하고 진부하다. 무엇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불결하고(dirty), 힘들고(difficult), 위험한(dangerous) 일을 기피하는 3D현상이 뚜렷한데, 결혼과 육아를 3D에 편입시키고 있다니 인생 선배로서 할 말이 없을 따름이다. 

    난임의사 시각에서 저출산 이유를 좀 다르게 본다. 집집마다 둘째 낳기를 포기하거나 주저하는 것도 출산율 요지부동의 원인이다. 둘째 낳기를 포기하는 이유가 비단 경제적 부담과 육아 부담 가중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둘째 난임(두 번째 임신이 힘든)을 겪는 부부가 의외로 많다. 실제로 난임병원을 찾는 이들 중에는 첫째 아기를 자연 임신으로 별 무리 없이 낳았기 때문에 부지불식간에 난임이 된 것을 모르고 살다가 늦은 나이에 용기를 내 병원을 찾은 경우가 많다. 난임병원 문턱을 넘으면 다행이다. 문제는 상당수가 임신·출산을 한 번이라도 경험해봤기에 난임이 아니라며 병원 가기를 꺼리며 둘째 낳기를 포기하는 데 있다. 

    옛날 어르신들은 시집가는 손녀에게 “가자마자 얼른얼른 애부터 낳아라. 서른 되기 전에 출산 다 끝내라”고 했다. 참으로 의학적인 조언이다. 여성의 수태력(가임력)은 생리(약 35~40년)를 하고 있다면 가능하지만 서른다섯 살이 넘으면 퀄리티가 떨어진 난자가 배란되는 건 물론이고 지난 세월에 없던 질환(자궁내막증, 자궁근종 등)이 생길 수 있다. 체중이 늘고 운동량이 줄면서 인슐린 효율성이 떨어지게 되면 여성의 몸에 남성호르몬 수치가 넘쳐나는 다낭성난소증후군이 되어 급기야 배란 불균형 상태에 빠진다. 임신·출산 경력이 있는 여성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또한 제왕절개수술 후유증으로 생식기(난소, 자궁, 나팔관)와 장기가 유착돼 각 기관의 기능이 저하되기도 한다. 바이러스(HPV/인유두종 바이러스)에 감염돼 자궁경부암에 노출될 수도 있고, 각종 균(클라미디아 등)에 의해 나팔관이 막혀 정자가 난자를 못 만날 수도 있다. 난임병원을 방문하면 여성이든 남성이든 각종 균검사(STD)를 하는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자신도 모르게 임질이나 요도염 같은 질환이 생길 수 있는데 제대로 치료하지 않으면 정관이 막혀서 정자가 배출되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결혼 이후 문란한 성관계를 지양해야 하는 것이다. 



    심리적인 원인도 무시할 수 없다. 열 가지 중에 하나만 마음이 맞아도 눈에서 번갯불이 번쩍이던 연애 기간이나 신혼 초와 달리, 부부로 몇 년 살아보면 열 가지 중에 하나만 마음이 안 맞아도 싸늘한 냉기가 돌면서 각자의 주장을 하게 된다. ‘너는 나의 운명’에서 ‘저 화상과 내가 왜 결혼을 했나?’가 되는 마당에 둘째까지 낳고 싶진 않을 것이다. 또 고소득 가구일수록 둘째를 안 낳는 경향이라고 한다. 첫째 아이 키우면서 어영부영하다 보니 나이 먹고 만사가 귀찮아져서 무남독녀, 무녀독남을 키우기로 합의해버렸다는 젊은 부부도 많다. 인생의 선배로서 “단 한 번이라도 자식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봤는가”라고 외치고 싶다. 


    지금으로부터 23년 전, 대구에서 큰 불행이 있었다. 지하철 공사 중 실수로 파손한 도시가스 배관에서 새어나온 가스가 폭발해 101명이 사망한 대형 참사였다. 사망자 중 42명이 등교하던 중학생이었다. 사망한 학생 중에는 외동이 많았다.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아픔은 창자가 끊기는 듯 참담했을 것이다. 그들 중에는 시험관아기 시술을 받아서라도 임신을 다시 해보려고 필자를 찾아온 경우가 꽤 있었다. 

    난임병원에는 외자식을 잃은 슬픔을 늦둥이 임신으로 극복해보려고 용기를 내서 오는 부부가 꽤 있다. 그들은 하나같이 마음먹으면 얼마든지 가질 수 있었던 자식을 포기한 지난날의 선택에 가슴을 치고 후회하며 눈물로 매달린다. 시험관아기 시술로 임신이 되면 다행인데, 45세 이상 고령일 경우에는 임신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다. 50세 전후해서는 출산도 위험한 도전이다. 

    삶이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여정이다. 오늘의 선택이 내일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알 수 없다. 오늘의 최선이 미래에는 최악의 씨앗이 되기도 한다. 보이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는 힘도 인정해야 한다. 매사에 호언장담은 금물이다. 더욱이 생(生)과 사(死), 자식 일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했다. 시험관아기 시술로 힘들게 첫째 아이를 출산한 부부 중에는 병원 측에 냉동 상태로 보관 중인 동결배아(수정란)를 폐기해달라고 자신 있게 말하는 경우가 더러 있다. 부부가 둘째 아이 임신에 도전하지 않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마음(둘째 낳기로)이 바뀌어 다시 찾아오는 부부가 적지 않다. 첫째 아이가 동생 낳아달라고 졸라서 시험관시술 재도전을 하러 와서는 폐경 선고를 받는 여성도 적지 않다. 

    쉰이 넘으면 초상집에 갈 일이 자주 생긴다. 상주가 많은 부모상에는 조문객도 많다. 호상(好喪)이 아니더라도 상주가 많으면 마음이 놓인다. 무남독녀, 무녀독남이 홀로 부모상을 치르는 것만큼 외롭고 슬퍼 보이는 상(喪)이 있으랴. 나를 낳고 키워준 부모가 세상에 더는 존재하지 않을 때 느끼는 허허로움은 나이와는 무관할 것이다. 불현듯 걱정스러워진다. 부모에게 그토록 의존하며 키워졌고 성인이 되어서도 캥거루족으로 살기를 마다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 그들이 홀로되는 미래가 어떠할지, 부모 역시도 편하게 눈감지 못할 것 같다.


    이성구
    ● 1961년 대구 출생
    ● 서울대 의대 졸업
    ● 서울대병원 산부인과 전공의
    ● 대구마리아병원장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