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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미의 달콤쌉쌀한 스위스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 글·사진 신성미 | 在스위스 교민 ssm0321@hanmail.net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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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놀러 다니는 걸 너무 자랑하는 거 아냐? 얘는 여행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여행 갔대? 그럼 일은 언제 해? 저렇게 여행 다니면서 저축은 할 수 있나?
  • 한국댁에게 스위스 여행문화는 충격 그 자체였다.
  • 모두가 여행에 빠져 사는 듯한데, 그래도 스위스 사회는 잘만 굴러간다.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등산은 스위스인들의 ‘국민 스포츠’다.


“싱가포르에 여행 간 형이 한국 식당에서 김치를 먹었다며 인증 사진을 보냈어.”

“지금 모리셔스에는 비가 오네. 막냇동생이 보낸 사진을 보니 수영하긴 글러 보여.”

“아버지가 오늘 여섯 시간이나 등산을 하셨대. 산 경치 정말 멋지다!”

남편은 시댁 식구들의 여행 소식을 수시로 전한다. 스마트폰의 가족 그룹채팅방에 올라오는 소식들이다. 시아버님과 아들 4형제는 연중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휴가지에서 사진을 찍어 보내며 안부를 전한다. 가족뿐만이 아니다. 우리 집 우편함에는 가끔 남편 친구들이 휴가지 풍경이 담긴 기념엽서에 손글씨로 적은 여행 소식이 도착한다. 오랜만에 친지들을 만나면 대화의 주제는 가장 먼저 최근 휴가 이야기로 시작되고 자연스럽게 앞으로의 휴가 계획으로 이어진다.

스위스 사람들, 놀러 다니는 걸 남한테 너무 자랑하는 거 아냐? 얘는 저번에 여행 다녀온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여행 갔대? 그럼 일은 언제 해? 저렇게 여행 다니면서 저축은 할 수 있을까? 처음엔 그런 궁금증이 일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세계 최장 수준의 근무시간과 세계 최저 수준의 휴가일수로 직장인을 탈진시키는 한국에서 온 사람이 아닌가. 글로벌 온라인 여행사 익스피디아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인은 연차휴가 15일 중 6일만 사용해 조사 대상 26개국 중 휴가일수와 사용률 꼴찌를 기록했다.

최소 4주 유급휴가 보장

스위스 근로자들은 연간 최소 4주의 유급휴가를 보장받는다. 이 가운데 2주는 한꺼번에 써야 한다. 연령과 직업군에 따라 연간 5주, 6주에 이르는 유급휴가를 얻기도 한다. 스위스 대기업 회사원인 내 남편의 경우 휴가일수는 연간 5주다. 최대 명절인 크리스마스 기간에는 정해진 휴가일수와 별도로 일주일쯤 ‘추가 휴가’를 주는 회사들도 있다.

장기 휴가로 유명한 이웃 나라 프랑스의 바캉스처럼 스위스에서도 여름휴가와 크리스마스 때는 식당과 빵집, 상점도 2~3주씩 문을 닫는다. 자영업자들도 쉬어야 하기 때문이다.

한꺼번에 이어지는 2~3주의 휴가를 해외에서 보내는 스위스인이 많다. 관광자원이 발달한 스위스에도 볼거리와 즐길 거리가 많지만, 국내여행은 주로 주말이나 사나흘의 짧은 휴가기간을 이용한다. 유럽의 한가운데 자리한 지리적 이점 덕분에 이탈리아·독일·프랑스·오스트리아 등 국경을 접한 나라로는 자동차나 기차로 쉽게 갈 수 있고, 스페인·영국·덴마크·노르웨이 등 다른 유럽 국가도 단시간 비행이면 닿는다. 스위스는 물가와 임금 수준이 높아 국내여행보다 해외여행을 가는 게 비용이 더 적게 든다. 휴가를 길게 쓸 수 있으니 아시아, 북미, 남미, 호주, 아프리카 등 다른 대륙으로 장거리 여행도 곧잘 간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상류층, 중산층 중엔 스위스의 아름다운 산악지방이나 이탈리아, 독일 등에 휴가용 별장이나 아파트를 둔 사람도 많다. 그들은 장기 휴가나 주말을 이용해 수시로 그곳에 머물며 머리를 식히고 휴식을 취한다.

배춧값 올라도 김치 먹듯

삶의 최우선은 ‘휴가’  그래도 세상은 잘 굴러간다

주말 오후 호수에서 수영과 피크닉을 즐기는 사람들.

나도 여행을 좋아하고 여행에 큰 가치를 두고 산다. 남편을 처음 만난 것도 홀로 미국을 여행하던 중 뉴욕에서였다. 사람에 따라 소비에 대한 가치가 다르겠지만 내 경우엔 불필요한 옷이나 가방 같은 걸 안 사는 대신 그 돈으로 여행하면서 삶의 안목을 넓히자는 생각을 가졌다. 그럼에도 장기간의 휴가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나로서는 스위스인들의 장기간 여행을 이해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저축이 미덕이고 해외여행은 사치로 여기는 문화, 열심히 일하거나 공부해야 보람차고 놀면 왠지 죄책감마저 들게 하는 한국의 사회문화적 시선에 길들어 있었다.

3주를 외국에서 보내려면 대략 20박에 이르는 숙박비를 지출해야 한다. 유럽의 평범한 호텔 하룻밤 숙박비를 15만 원으로 잡아도 3주면 숙박비만 300만 원에 달한다. 여기에 항공료와 매끼 식사비용, 각종 입장료와 레포츠 비용도 상당하다. 그런데 스위스에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장년의 중산층뿐 아니라 사회 초년생인 20대 젊은이들도 매년 이런 여행을 즐길 수 있다는 게 놀랍기만 했다.

한번은 친구의 단골 카페에 갔는데 그 카페에서 서빙을 하는 종업원이 친구와 인사를 나누면서 최근에 휴가 다녀온 얘길 했다. 오스트리아의 웰니스 호텔(자연 속 호텔에 머물면서 사우나, 마사지, 온천욕 등을 즐길 수 있는 휴양 호텔)에서 쉬다 왔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라면 커피숍에서 일하는 직원에게 과연 이런 휴가를 즐길 경제적·시간적 여유가 있을까.

스위스인들은 돈이 많아서 이렇게 여행을 자주 가는 걸까. 물론 이 나라가 부국(富國)이긴 해도 모든 국민이 부자인 건 아니다. 그럼 카드 빚을 내서 여행을 할까. 신용카드 할부 사용이 매우 드문 이곳의 소비 문화를 감안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나는 많은 스위스인 친지가 휴가를 즐기는 모습을 관찰하면서, 그리고 남편과 많은 대화를 나누면서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갔다. 눈에 띄는 점 하나는 스위스인들의 지출 카테고리에선 여행 또는 휴가가 최우선순위로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가계부의 지출 예산뿐 아니라 심리적인 지출 카테고리에도 말이다. 한국인들이 전통적으로 김장 비용을 아끼지 않는 것과 비슷한 이치랄까. 배춧값이 오르더라도 어쨌든 우린 김치를 먹어야 하니까. 스위스 사람들은 이처럼 휴가비 지출을 당연하고도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20박을 호텔에서 머물러도 심리적으로 큰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한국식 사고로는 이런 휴가비 지출이 사치스러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휴가를 가는 평범한 스위스의 지인들 중에 고가 브랜드의 가방이나 시계, 불필요하게 큰 고급 자동차를 사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외양이나 다른 소비 행태를 보면 대개 수수하고 검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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