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신동아 로고

통합검색 전체메뉴열기

역사 산책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하늘의 빛에서 생명을 얻은 자 빛의 세계로 돌아가니…

  • 글: 유재신 토론토대 동아시아학부 석좌교수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1/5
  •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한국 고유의 사상과 도교 및 불교사상이 곁들여져 있다.
  • 동아시아의 종교사상에 한국적 특색을 가미한 셈이다.
  • 특히 도교가 한국으로부터 중국에 전래되었음을 시사하는 부분도 눈에 띈다.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삼족오(三足烏)’가 일본 축구국가대표팀의 엠블렘으로 사용되는 바람에 일본의 상징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실은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내가 고구려 고분 벽화를 눈으로 직접 본 것은 1988년 지안(集安)에서였다. 짧게는 1500년, 길게는 1700년 가량 된 작품들이었지만 나는 한눈에 그 화려한 빛깔과 훌륭한 솜씨에 빠져들고 말았다. 이 벽화들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광개토대왕비와 더불어 우리 민족의 얼과 뿌리를 이해하는 데 크게 기여할 것이다.

또한 21세기 회화에 영감을 주고 동아시아 미술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동양미술과 종교의 뿌리를 연구하는 데도 소중한 재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고려시대에 편찬된 ‘삼국사기(三國史記)’와 ‘삼국유사(三國遺事)’도 훌륭한 역사적 재료이지만 고구려 고분 벽화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그려졌기 때문에 우리는 이 벽화들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는 한국 역사의 뿌리를 찾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발전된 채색 기술과 우수한 회화 기법을 통해 미술사를 고증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고구려의 고분 벽화 연구는 고구려의 역사, 풍속, 해외정책, 음악, 미술, 그리고 종교사상적인 측면을 아우르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삼족오(三足烏)’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세 발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는 일본이 축구 국가대표팀의 엠블렘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은 1930년부터 삼족오를 상징물로 사용했는데 특히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일본축구협회가 삼족오를 상징물로 사용하면서 외국인들은 삼족오가 일본의 고유 상징으로 오해하는 일도 생겨났다.

하느님의 자손, 고주몽

그러나 실상 삼족오는 고구려 고분 벽화에서 유래한 것이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타나는 다리가 셋 달린 까마귀, 즉 삼족오는 태양 숭배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3’이라는 숫자는 동양철학에서 신성한 숫자로 여겨지며 ‘천지인(天地人)’을 가리키기도 한다.

그렇다면 해 안의 세 발 까마귀와 달 안의 두꺼비는 어떤 사상적인 의미를 담고 있을까.

고구려 건국신화에 따르면 시조 고주몽은 하느님의 자손, 해와 달의 자손이다. 해 안의 까마귀는 신비한 출생과 관계가 있다. 고주몽은 천제(하느님)로 칭하는 해모수(天神)와 지모신(地母神)이라는 유화가 만나서 태어난 신인(神人)이라는 것이다.

고주몽이 알에서 햇빛을 받고 태어났다는 것은 하늘, 즉 하느님으로부터 태어났음을 의미한다. 이는 한편으로는 무교의 천신(天神)과 천조(天鳥)신앙, 즉 알에서 새가 나온다는 사상과도 일치한다. 다시 말해 이는 일신(日神)신앙과 천조신앙의 결합을 의미한다.

해와 달은 도교의 음양사상과도 무관하지 않아 중국의 복희씨와 여와씨의 신상(神像)에서도 이를 볼 수 있다. 한국에서 건너간 무당이라는 설이 있는 일본의 첫 여황(女皇) 천조대신(天照大神)은 일신(日神)이면서 황조신(皇祖神)으로 이 역시 삼족오(三足烏) 설화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곧 고대 동이(東夷)족의 태양숭배 신앙이 조류숭배 신앙과 합쳐진 결과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나오는 새들은 무속의 천조(天鳥)신앙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새는 이 세상과 하늘세계를 연결하는 매체라고 할 수 있다. 즉, 고분 벽화는 동이계의 조류숭배와 태양숭배의 샤머니즘, 즉 원시신앙에 근거를 둔 것이다.

고구려인들은 사람이 죽으면 몸은 사라지지만 영혼은 하늘로 올라가 삶이 계속된다고 믿었다. 무덤 주인은 생전에 자신의 일족이 받들던 조상신의 일원이 되어 계급 신분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여겼던 것이다. 고구려인에게 사후에 영혼이 도달하는 곳은 광명의 신(神)이 지배하는 ‘빛의 하늘’이었다. 그들은 하늘의 빛에서 생명을 얻고, 죽은 후에는 자신의 근원인 빛의 하늘로 돌아간다고 믿었다.

고구려인들의 이러한 세계관, 즉 하늘은 광명의 세계이자 아래 세상에 복을 베푸는 선한 신의 세계라는 사상은 단군신화와도 관계가 깊다. 하느님의 아들 환웅이 웅녀와 결혼하여 단군을 낳고 ‘홍익인간’의 이념으로 이 세상을 잘살게 했다는 단군신화와, 해모수와 유화가 결혼해서 고구려 태조 고주몽을 낳아서 고구려를 건국하게 하고 이상적인 나라를 이룩하여 복을 내리게 한다는 고구려 건국설화는 모두 샤머니즘에서 유래한 우주관에 그 맥이 닿아 있다.

고구려 고분 벽화에 성스럽고 큰 나무가 그려져 있는 것은 천신(天神)신앙이 산신(山神)신앙으로 연결되는 대목이다. 나무에는 곰과 호랑이가 기대고 있는데 이는 단군신화에서 인간이 되기를 꿈꾸었던 웅녀(熊女)와 이곳을 드나드는 신(神) 환웅의 상징이었던 것 같다. 또 나무, 곰, 호랑이 그림은 죽은 사람이 다음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정할 수도 있다.
1/5
글: 유재신 토론토대 동아시아학부 석좌교수
목록 닫기

고구려 고분 벽화의 사상적 고찰

댓글 창 닫기

2018/10Opinion Leader Magazine

오피니언 리더 매거진 표지

오피니언 리더를 위한
시사월간지. 분석, 정보,
교양, 재미의 보물창고

목차보기구독신청이번 호 구입하기

지면보기 서비스는 유료 서비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