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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정은 현대 회장

“몽헌 회장, ‘삼촌이 나한테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며 괴로워해”

  • 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현정은 현대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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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슬퍼할 여유도 없다
  • ●정상영 회장, 집요하게 상속 포기 강요
  • ●정몽구, “비즈니스 얽혀 있어 내가 직접 못 나서겠다”
  • ●경영권 지켜내고 현대건설 되찾겠다
  • ●검찰 조사받을 때 잠꼬대하며 괴로워한 정몽헌
  • ●남편 죽음 지금도 안 믿겨…옷가지, 골프공 하나 안 치워
  • ●사업가 집안서 자라 자연스레 경영수업
현정은 현대 회장
“슬퍼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어요.”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겪는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강도가 높고 후유증이 오래 가는 것이 ‘배우자의 죽음’이라고 한다. 더욱이 배우자가 오래 자리보전이라도 해서 웬만큼 죽음을 예상했던 게 아니라 아무런 기색도 없다가 돌연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라면 상대 배우자는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할 만큼 극심한 정신적 충격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현정은(玄貞恩·49) 현대 회장은 강해 보였다. 일요일 저녁 밝은 표정으로 가족과 외식을 즐기던 남편(정몽헌 전 현대아산 이사회 회장)이 월요일 새벽 투신자살한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을 때도, 빈소에서 경황없이 조문객을 맞으면서도, 너무도 낯익은 육신을 떠나보낸 장례식에서도, 영혼마저 훌훌 날려보낸 삼우재와 49재에서도 현 회장은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자식들 앞에서 무너져 내리기 싫어 이를 앙다물기도 했지만, 향(香) 냄새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경영권 분쟁에 휘말리면서 그는 독한 슬픔에 빠져 있을 겨를이 없었다.

반전 거듭한 경영권 분쟁

고(故) 정몽헌 회장의 숙부인 정상영(鄭相永·68) KCC그룹 명예회장과 현정은 회장 간에 벌어진 경영권 분쟁의 불씨는 2001년 정몽헌 회장이 금호생명에서 대출받은 290억원이다. 당시 정상영 명예회장은 금호생명에 보증을 서주면서 KCC 주식을 담보로 제공했고, 그에 대한 대(代)담보로 정몽헌 회장의 서울 성북동 자택과 정 회장의 장모인 김문희 용문학원 이사장이 갖고 있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70만주(전체 지분의 12.5%)를 넘겨받았다.

그런데 지난해 8월4일 정 회장이 사망하면서 미묘한 상황이 빚어졌다. 정 명예회장이 현 회장에게 “몽헌이의 부채가 재산보다 많으니 상속권을 포기하고 빚잔치를 하라”고 요구한 것이다. 현 회장이 상속을 포기하면 채무에서 벗어나는 대신 자택과 김문희 이사장의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은 정 명예회장의 것이 된다. 이 경우 정 명예회장은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으로 현대그룹 경영권을 거머쥘 수 있다.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그룹의 지주회사이기 때문이다.

이상 기류는 다른 곳에서도 감지됐다.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전혀 갖고 있지 않던 외국인 투자가들이 정 회장 사망 직후 주식을 집중 매입, 순식간에 11.48%의 지분을 확보한 것이다. 이에 정상영 명예회장은 외국인들의 적대적 M&A(인수·합병) 시도에 대비해 현대가(家) 친족들에게 현대엘리베이터 주식을 사들이라고 촉구했다. 정 명예회장은 이른바 ‘범(汎) 현대가’ 계열사들을 동원해 16.2%의 지분을 매입했다. 또한 M&A 방어 차원이라며 현 회장으로부터 자사주 50만주(8.6%)를 인수했다. 그 후 정 명예회장은 “정몽헌 회장 사망후 경영권 공백상태에 빠진 현대그룹을 섭정 방식으로 직접 관리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알려져 현 회장측을 긴장시켰다.

현대엘리베이터 주식 매수세가 급증하면서 주가가 큰 폭으로 뛰어오르자 현 회장은 자력으로 채무 변제가 가능하다고 판단, 상속권을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10월2일에는 금호생명 대출금 중 80억원을 상환했다. KCC측은 이때부터 뮤추얼펀드와 신한BNP투신운용의 사모펀드를 이용해 현대엘리베이터 주식과 현대상선 주식을 비공개로 대량 매집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현대측은 10월21일 서둘러 임시 이사회를 소집, 현 회장을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에 선임했다.

하지만 KCC는 그후에도 계속 주식을 사들였고 마침내 11월14일에는 현대그룹 인수를 전격 선언하기에 이른다. KCC는 “정상영 명예회장과 KCC 계열사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31.25%를 확보했고, 여기에다 정 명예회장의 우호 지분(13.14%) 등 범현대가 지분까지 합치면 50%가 넘는다”고 주장했다.

이에 현대측은 초강수로 맞대응했다. 11월18일 “대주주의 전횡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선진 국민기업으로 거듭나겠다”며 국민주 공모방식으로 1000만주의 현대엘리베이터 유상증자를 실시하겠다고 나선 것. 이대로 주식 공모에 성공할 경우 KCC측 지분율은 31.25%에서 11.2%로 크게 떨어지지만, 신규 발행 주식의 20%를 우리사주조합에 배정받는 현대측 지분율은 24.4%에서 21.6%로 소폭 낮아져 1대주주로 올라서게 돼 있었다.

그러나 이 계획은 일단 좌절됐다. KCC가 제기한 신주발행금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인 것. 12월12일 법원은 “현대엘리베이터의 신주 발행 계획은 기존 대주주 및 현 이사회의 경영권 방어 목적으로 이뤄졌다고 볼 수 있다”며 KCC의 손을 들어줬다.

그렇다고 KCC가 마음을 놓을 수 있는 처지도 못 된다. KCC가 뮤추얼펀드와 사모펀드를 통해 현대엘리베이터 지분 20.63%를 매입한 경위에 대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강도높은 조사를 받고 있기 때문. 금감원은 KCC가 특정기업 지분을 5% 이상 매입할 경우 5일 이내에 공시해야 하는 ‘5%룰’을 지키지 않은 배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금감원이 KCC의 공시 누락 사유를 단순 업무착오가 아니라 적대적 M&A를 위한 의도적 행위로 판단하고 문제의 지분에 대해 처분명령을 내릴 경우 KCC측 지분율은 9.19%로 떨어져 대주주의 지위를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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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형삼 동아일보 신동아 차장 han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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