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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이 쓰는 이 사람의 삶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 윤 기

“반한반일(半韓半日)의 코스모폴리탄, 재일교포 노인들의 든든한 ‘빽’이 돼드릴게요”

  • 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 윤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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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생 남 돕길 좋아하는 한국인 청년과 일본인 처녀가 사랑을 했다. 아버지는 동네 거지들을 데려다 먹이고 입혔고, 어머니는 고아들의 콧물받이 눈물받이가 됐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일본으로 건너가 한국 노인들을 돌본다. 한국에서 32년간 2995명의 고아를 길러내고도 임종 무렵 ‘우메보시’를 찾던 일본인 어머니를 잊을 수가 없어서다.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이사장 윤 기
감동으로 막 읽기를 마친 ‘김치와 우메보시’. 그 책의 안표지에 사회복지법인 ‘마음의 가족’ 윤기(尹基·64)) 이사장은 “사랑이 있는 한 인간의 내일은 걱정없다”라고 썼다. 김치와 우메보시는 작은 빗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는 이야기였다. 빗방울이 모여 작은 개울이 되고 개울이 모여 강이 되고 마침내 바다에 이른다.

빗방울? 그건 사랑이다. 신념이다. 아니 사랑과 신념을 모아 강과 바다로 흘러가게 만드는 소셜워커(사회사업가)의 정열이다. 정열이 모이면 하나의 활성화된 에너지가 된다. 그 에너지는 응축되면 절로 폭발하는 성질이 있다.

그 폭발이 사회사업가 윤기로 하여금 일본에 재일(在日)한국인을 위한 노인홈을 만들게 했다. 오사카에 하나, 지진 참사가 있었던 고베에 하나. 지금은 교토에 또 하나 노인홈을 지을 준비를 하고 있다. 이름은 ‘고향의 집’. 고향의 집에서 노인들은 입모아 아리랑을 부르고 동요 ‘고향땅’을 부르고 온돌방에 잠자고 김치찌개를 끓여 먹는다. 앞으로 일본에 ‘고향의 집’을 7개 더 지어 10개를 채우는 것이 윤 이사장의 꿈이다. 또 일본 아닌 땅에도 ‘고향의 집’ 10개가 더 필요하다는 것이 윤 이사장의 판단이다.

“한국의 사회사업가를 세계가 부르고 있어요. 해외동포가 700만 아닙니까. 3만명에 1명씩이라고 해도 250명은 해외에 나가야 되지 않겠습니까. 북한에도 동북아에도 사회사업전문가가 들어가야 해요. 일본의 노인홈에 늘 ‘죽고 싶다’고 하는 한국 할머니가 계셨어요. 일본 사회복지사는 ‘저 노인이 자살 충동을 느끼나보다’ 하면서 긴장했는데, 한국말을 할 줄 아는 복지사가 와서는 ‘할머니, 정 죽고 싶으면 내가 그만 죽여줄까?’ 하고는 둘이 깔깔 웃는단 말이에요. 같은 언어를 쓰는 복지사가 아니면 그런 정서가 어떻게 통할 수 있겠어요?”

그는 기적을 이루는 사람이다. 기어코 꿈을 이룰 것이다. 물론 윤 이사장 자신을 위한 꿈은 아니다. 평생을 이국에서 보내고 낯선 땅에서 죽음을 맞을 수밖에 없는 이들, 그들 모두를 위한 것이다. 설령 ‘고향의 집’에 들어가서 임종하지 않더라도 한국인 전용 노인홈이 거기 있다는 것 자체가 어르신들을 안심시킨다. 불현듯 조국땅이 몸살 나게 그리우면, 뜨끈뜨끈한 온돌방에 엉덩이를 지지지 못해 눈물이 날 정도면, 김치와 된장이 못 견디게 먹고 싶어지면, 우리말로 푸근한 잡담과 수다가 떨고 싶어 입이 근질거리면 바로 거기 ‘고향의 집’으로 달려갈 수 있다는 현실, 그 자체가 어르신들을 어루만지고 달래는 위로이고 치료이고 보험이고 ‘빽’이다.

‘움직이는 청구서’

그가 맨처음 세운 오사카 한국인 노인홈은 한 해에 입소 희망자가 400명씩 줄을 선다. 그런데 20명밖에 자리가 비지 않는다. 한국인 고령자들은 “고향의 집 들어가기가 도쿄대 들어가기보다 더 어렵다”고들 한다. 재일 한국인이 70만이고 그중 9만이 노인이다. 자식이 있어도 나이 들면 외로워지는 게 인지상정이다. 고향이 그리워지는 것도 같다. 이제와 한국이나 북한으로 돌아갈 처지도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그들의 아까운 시간을 다다미방에서 말도 통하지 않는 일본 복지사들 손에 맡겨둬야 하나. 전쟁 전엔 강제노역으로, 전후(戰後)에는 일본의 재건 현장에서 뼈 빠지게 일만 해온 그들을? 친절하고 정직하고 예의바르다는 일본인들은 도대체 뭣들 하나. 그게 윤 이사장의 문제의식이었다.

사회사업가로 태어나 사회사업가로 잔뼈가 굵은 윤 이사장에게 사회적 ‘니즈(needs)’가 생겨나면 그건 곧바로 행동으로 연결된다. 호소하고 뜻을 모아 동참할 사람들을 찾아나선다. 발 벗고 달려가고 글을 쓰고 강연한다. 그러면서 조금씩 기적은 일어난다. 물방울이 강이 되는 것이다.

“난 ‘움직이는 청구서’예요. 많이는 말고 벽돌 한 장씩만 도와달라고 말하지요. 365분의 1만 할애해달라고, 1년에 하루만 노인홈에 나와 봉사해달라고 부탁해요. 한 사람이 많이 기부하는 것보다 여러 사람이 조금씩 하는 기부가 훨씬 큰 의미가 있습니다. 복지시민이 있어야 복지국가가 되는 겁니다.”

그의 말은 사회복지에 관한 교과서였다. 나는 짧은 시간에 복지의 정의와 현황과 역사와 의미를 모조리 훑은 기분이었다. 처음 그가 일본에 사는 한국인 노령자에게 뜨거운 관심을 갖게 된 건 신문에 난 기사 때문이었다. ‘통일일보’라는 교포신문에 실린, 아이치현에 살던 재일교포 노인이 사후 13일 만에 발견됐다는 기사였다. 어떤 교포노인은 화재 속에서 구출됐으나 홀로 투병하다 끝내 사망했고 유족이 없어 복지사업소가 유골을 보관하고 있다는 내용도 있었다.

이곳이 정글도 아니고 무인도도 아닌데 한 사람의 죽음이 13일 동안이나 방치되어 있다니 말이 되는가. 재일교포 노인들은 결국 정치의 피해자들이다. 나카소네 전 총리는 국회에서 “전후처리는 끝났다”고 간단하게 말했지만, 홀로 외롭게 살다 죽어 방치되는 사체가 있는데 끝은 무슨 끝인가. 가엾고 애달프고 분하고 서러워서 윤 이사장은 자리에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숱하게 문을 두드리고 다녔다. 예상외로 온정의 손길은 넘쳐났다. “일본엔 기독교인 숫자가 적어서 안 될 거다” “일본인은 성정이 냉정해서 안 될 거다” “땅 한 평 없는 주제에 무슨 허무맹랑한 시도냐”고들 했지만 가볍게 이겨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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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령 칼럼니스트 psyche325@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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