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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글거리는 대구의 고흐’ 성기열 화백

“나는 어둠으로 빛을 찾고, 지우면서 확장한다”

  • 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이글거리는 대구의 고흐’ 성기열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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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독학으로 일어선 지방 화가의 인생론, 그림론. 그는 “민요도‘한 오백년 살자’고 노래하는데 왜 우리는 100년도 못 사는 인생에서 모든 것을 이루려 하는가”라고 반문한다. “보이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보이지 않는 것을 중하게 여겨야 한다”는 자수성가 한 화백의 독백을 들어본다.
‘이글거리는 대구의 고흐’ 성기열 화백

“세상에 불순한 정의는 없다”고 단언하는 성기열 화백. 그는 보이지 않는 것을 그리기 위해 묵화에 매진하고 있다.

“꽃이면 됐지 붉은 꽃, 노란 꽃, 예쁜 꽃, 덜 예쁜 꽃을 따질 이유가 어디 있는가? 사람이면 됐지 흑인, 백인, 황인, 회색인을 구별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가수 한경애씨가 부른 ‘옛 시인의 노래’엔 “뚜루루루 귓전에 맴도는 낮은 휘파람 소리∼”란 구절이 있다. 운사(雲史)라는 아호를 갖고 있는 성기열(成基列·64)씨는 이 가락이 하도 절실해, ‘뚜루’란 예명을 갖게 됐다고 한다. ‘그대가 나무이고 내가 잎새라 해도, 우리들 사이엔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요’라고 하는 이 노래엔 끈적이는 흑백(黑白)의 기억이 묻어난다.

“사람의 모습은 아무리 선하게 그려도 그저 선한 사람으로 보이는 것뿐이지, 선한 사람을 그린 것이 아니다. 나는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을, 보기 좋은 것보다 보아야 할 것을 그리기 위해 묵화(墨畵)를 택했다.”

뚜루의 그림 ‘빛’을 보았을 때 “아~” 하는 탄성을 내지른 것은 바로 이 설명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영육(靈肉)은 죽음을 맞았을 때만이 아니라, 깨달음을 얻었을 때도 분리될 수 있다. 해탈의 경지에 들어서면 평소 쌓아온 내공(內功)만큼의 ‘아우라(aura)’가 뿜어져 나온다. 부처의 아우라는 매우 밝아서 따로 ‘광배(光背)’라는 이름까지 얻었다.

피안(彼岸, 깨달음이 있는 저 세계)에 있는 니르바나(열반)의 세계를 찾아가는 과정을 열 폭 그림으로 그린 것이 절 대웅전 외벽에 그려져 있는 심우도(尋牛圖)라면, ‘발광(發光)하며 내 손으로 내 목 떼기’를 그린 뚜루의 ‘빛’은 차안(此岸, 현세)에서 바라밀다(波羅蜜多, ‘깨달음의 세계인 저 언덕에 이르다’란 뜻)를 이룬 것을 묘사한 듯하다.

그러나 속세에 몸을 두고 있는 사람은 완벽한 깨달음을 얻기 힘들다. ‘돈오점수(頓悟漸修)’를 하며 살아가는 것이 최선의 방안일 것이다. ‘문득 깨달음’을 뜻하는 ‘돈오’와 ‘지속적인 수련’을 뜻하는 ‘점수’ 중에서 무엇이 먼저인지에 대해서는 양론이 있다.

頓悟가 먼저냐 漸修가 먼저냐

깨닫고 난 후 그 깨달음을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 지속적으로 수련해야 한다고 믿는다면 ‘선오후수(先悟後修)’를 주장할 것이고, 각고(刻苦)의 노력이 있어야 깨달음을 얻는다고 확신한다면 ‘선수후오(先修後悟)’를 강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다 틀렸을지도 모른다. 깨달음과 수련은 한덩어리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수련 속에 깨달음이 있고 깨달음 속에 수련이 있다면, 둘은 수레의 양 바퀴처럼 함께 굴러야 한다. 깨달음과 수련을 함께 해 현세의 득도를 추구하다 보면, 왕왕 영육이 분리되는 느낌과 함께 환희심(歡喜心)의 다른 표현인 밝음이 번져 나온다.

색깔이 빠진 묵화는 동양적이다. 채색화가 기독교에 가깝다면 탈색(脫色)한 묵화는 불교에 근접한 느낌을 준다. 그러나 뚜루는 기독교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목사가 되는 꿈을 가졌으나 이루지 못한 그는 대신 동생을 신학교에 진학시켰고, 교회에서 부인을 만났다고 한다. 뚜루는 ‘빛’이 “예수를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수를 꼭 인자한 사람으로 그려야 하나? 예수는 곰보였을지도 모르는데…. 무언극은 벙어리가 하는 연극이 아니다. 유창한 언어를 생략했기에 강한 연상을 불러일으켜, 오히려 사람의 이목(耳目)을 잡아당기는 것이 무언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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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동아일보 신동아 편집위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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