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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方外之士 ③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찻잎 우러나는 소리 들으며 마음을 닦지요”

  • 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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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품명가(品茗家) 손성구씨는 차기(茶氣)만으로 차의 품질을 알아내며, 차 한 모금으로 비료를 사용했는지 아닌지 간파한다. 1982년 우연히 중국차를 마신 후 차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오다가 품명가의 길에 들어섰다는 손씨. ‘차는 곧 수행’이라는 그는 “마음이 고요하고 에고가 없어야 진정한 차 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차 맛 감별하는 품명가(品茗家) 손성구

품명가 손성구씨에게 차는 참선이나 명상 같은 수행법이라고 한다.

서양에 ‘소믈리에(sommelier)’가 있다면 동양에는 ‘품명가(品茗家)’가 있다. 소믈리에가 와인의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라면 품명가는 차(茶)의 맛을 감별하는 전문가를 가리킨다. 차와 와인은 전문 감별사가 따로 존재해야 할 만큼 복잡한 물건이라는 점에서 공통점이 많다. 첫째 차와 포도는 수확하는 해의 기후에 큰 영향을 받는다. 비가 많이 온 해인가, 가뭄이 든 해인가에 따라 맛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둘째 맛, 향, 색깔, 투명도 등등을 따지는 기준이 서로 비슷하다. 셋째 어떤 재료(잎 혹은 포도)로, 어떤 산지에서, 어느 해에 만들었느냐에 따라 빈티지(vintage : 제작연대)가 결정된다. 양자 모두 빈티지가 선택의 기준이 된다. 넷째 종류가 아주 다양하다. 저질에서 극상품(極上品)까지 선택의 폭이 아주 넓다. 그렇다면 차와 와인의 다른 점은 무엇인가. 와인은 많이 먹으면 알코올에 취하지만 차는 맛과 향에 취한다.

차의 출신성분, 족보 꿰뚫어야

국내의 품명가를 수소문해보았다. 도대체 그 수많은 차 중 어떤 차가 좋은 차이고 차 맛은 각기 어떻게 다른지 알고 싶었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품명가가 바로 손성구(42)씨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국내에 몇 안 되는 품명가 중 한 사람이다.

차 전문가라는 말을 듣고 지리산의 그윽한 골짜기에 살 것으로 예상했지만 실제 그의 거처는 서울 강남 서초동의 12평 짜리 조그만 오피스텔이었다. 사바 세계의 한가운데서 차 맛을 즐기고 사는 한량이랄까. 한량은 인생의 맛을 아는 사람이다. 보통 사람은 매연 맛만 보고 사는데 그는 차 맛을 보고 산다. 차 맛을 안다는 사실 하나로도 그 삶의 질이 어떠한가를 추론해낼 수 있다.

손씨의 체격은 보통이었지만 눈이 인상적이었다. 야간 등대에서 나오는 탐조등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품명가 소리를 들으려면 차에 대해 어느 정도 감식력을 가져야 됩니까.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은 차에 비료와 농약이 들어갔는지 구별해내는 일입니다. 비료와 농약이 안 들어간 차는 일단 좋은 차입니다. 하지만 요즘 차를 대량으로 생산하면서 비료와 농약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아요. 비료나 농약이 들어가면 차의 색깔이 투명합니다. 비료가 들어가면 차 맛이 미끄덩거린다고 할까, 맛이 텁텁합니다. 음식점에서 조미료 많이 들어간 음식을 먹고 난 후의 느낌과 비슷한 거죠. 농약이 들어가면 목이 따끔거리거나 아리아리합니다. 비료나 농약이 들어간 차를 마시면 몸의 순환이 막혀요. 예민한 사람이라면 머리가 꽉 막히거나 척추와 등이 굳어지는 느낌을 갖기도 합니다. 반대로 화학첨가물이 없는 차를 먹으면 몸의 순환이 잘 되는 게 느껴집니다.

다음으로 차의 맛만 보고도 어느 지역에서 생산됐는지, 해발 몇 미터 높이에서 자랐는지, 차를 수확하던 해에 비가 얼마나 왔는지, 어느 정도 온도에서 자란 잎인지, 차를 익힐 때 적당하게 덖었는지(볶듯이 익히는 것), 전문가가 덖었는지 아마추어가 덖었는지 등등을 간파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한 마디로 차 한잔에 그 차의 출신성분과 족보를 꿰뚫어야 합니다.”

중국 차 맛보기 위해 박람회 참석

-감별에 관한 에피소드가 있으면 소개해주시죠.

“한번은 지방에서 감정을 해달라고 두 종류의 녹차를 보내왔습니다. 맛을 보니 하나는 ‘세작(細雀)’으로 비료와 농약을 사용한 차였고 다른 하나는 ‘우전(雨前)’으로 농약은 사용하지 않고 비료만 들어간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우전에 사용된 비료가 매우 섬세할 뿐 아니라 다른 것과는 맛이 달랐습니다. 비료를 쓴 것 같기는 한데 맛이 좀 색다르다고 했더니, 차를 보낸 측에서 우전을 따기 전에 영양제를 투입했다고 하더군요. 영양제 맛이라서 다른 비료하고는 약간 달랐던 거죠.

중국에 갔을 땐 이런 일도 있었습니다. 저는 중국 차를 맛보기 위해 차 박람회에 꼭 참여합니다. 차 박람회에는 중국 각지의 차가 모이기 때문에 한 자리에서 수십 종류의 차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기회죠. 중국의 내로라하는 차 전문가들과도 조우하게 됩니다. 제가 한국에서 왔다니까 어떤 사람이 저를 테스트하더군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만든 15가지의 보이차(普햔茶)를 우려 놓고 생산지와 제조방식을 말해보라는 겁니다. 내키지는 않았지만 물러서자니 체면이 상할 것 같아 감별에 응했습니다. 맛과 차기(茶氣)만 가지고 15가지 보이차의 생산지가 어디인지를 말했습니다. 세 곳은 틀리고 열두 곳은 맞췄어요. 80%는 맞춘 셈이죠. 보이차는 포장지를 뜯는 순간부터 어떤 감이 전해져 옵니다. 저는 그 감을 차기(茶氣)라고 표현해요. 차기를 접하는 순간 이 보이차가 좋은 것인지, 안 좋은 것인지 간파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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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조용헌 원광대 초빙교수 cyh062@wonkw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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