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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 속에 스스로를 유배한 ‘고독한 남자’

‘이상한’ 정치인, 섬 같은 국회의원 조순형

  • 글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원칙 속에 스스로를 유배한 ‘고독한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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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꿈이 뭐였나요.

“글쎄…, 어머니께서는 의사가 되라 하셨어요. 존경받으며 안정된 직업이라고요. 또 그때 노구치 히데요라는 일본 의사의 전기를 읽었는데 상당한 감동을 받았지요.”

―글 솜씨가 좋은 편인가요.

“읽는 걸 좋아하고 좋은 문장 외는 것도 즐기는데 문장력은 없는 것 같아요. 정치라는 게 결국 명확한 의사 표시와 설득을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잘 해내느냐에 달린 건데, 전 말과 글 양쪽에 다 재주가 없어요. 그게 잘 안 되더라구요. 사실 노력도 많이 하거든요. 뭐든 제 이름으로 나가는 건 부족한 솜씨나마 직접 쓰고 발표하는 연습도 좀 하고요.”

―국회의원이면 수필집이나 자서전 한 권쯤은 갖고 있게 마련인데 조의원은 없더군요.



“네. 문장력이 없어서 그래요. 그리고 제 인생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게 못 되거든요. 그저 하루하루 열심히 사는 거지요.”

솔직히 말해 자서전, 수필집을 정말 제 손으로 쓰고 다듬어 내는 국회의원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런데도 그는 “문장력이 없어” 책을 못 냈단다.

―종교가 있습니까.

“어디 서류에 (종교가) 뭔지 쓰라 그러면 무교(無敎)라 하지만 무신론자는 아니에요. 어떤 신의 섭리, 하나님의 섭리가 있다는 것은 믿어요. 인간의 힘으로는 통제하고 지배하는 것이 불가능한 사태들이 많잖아요. 그러니 절대자에 의지할 수밖에요.”

―그 신이란 기독교적 하나님인가요.

“뭐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고…. 하지만 교회나 성당에 나가지는 않아요. 얽매이는 것이 싫고 해서요.”

―기도는 자주 하나요.

“그냥… 간혹 합정동 다리 건너 있는 절두산 성지에 가지요.”

―가서 뭘 하세요.

“벤치에 가만 앉아 있다 와요. 맘이 편해지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그냥 참 편해요.”

―어찌 보면 참 옛날 분 같기도 하고요. 요즘 개혁이나 변화에 막연한 불안감을 갖고 있는 기성세대가 참 많은데, 조의원은 어떻습니까.

“시대가 변하는 거야 당연하지요. 살던 대로 살면 그뿐 두려움 같은 건 없어요. 개혁이란 게 별거 아니거든요. 정해진 대로 행동하고 실천하면 돼요. 뭐든 법이나 제도에 따르지 않고 관행에 의존하는 것이 문제지요. 변화나 개혁을 두려워하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이들이지, 전 무슨 기득권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고요.”

마음을 당기는 이 수줍음

―국회의원이 기득권이 없다 하면…, 어쨌든 국회의원이라 좋은 점도 제법 있지 않나요.

“말하고 싶은 걸 말할 수 있고, 제대로 말하면 언론에서 보도도 해주고, 뭐 그런 거지요. 하지만 제약도 많아요. 남들은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일들을 공인이라 못 하는 것도 있거든요. 어디 놀러 다니고 그러는 거.”

―성당 안 다니는 것도 비슷한 차원인가요.

“그런 지도 모르지요.”

제법 긴 이야기를 나눴는데도 눈 안 맞추고, 대답 어눌하고, 두 손 꼭 틀어쥐고, 쑥스러운 듯 미소짓는 표정에는 변함이 없다. 이래서야 속 얘기를 끄집어내기가 쉽지 않다. 말하기를 꺼리는 이에게 말을 강요하다니, 괜히 미안해진다. 다시 찾아뵈마 인사하고 일어서려는데, 문득 무뚝뚝함 속 나이를 잊은 그 수줍음이 마음을 당긴다.

“외람된 말씀입니다만 의원님, 귀여운 면이 있으시네요.”

순간 얼굴 발개진 노신사, 소파 밑으로라도 들어갈 모양새다. 너무 솔직했나 싶어 또 한번 미안해진다.

“그런데 정말, 왜 국회의원이 되셨어요? 너무 안 어울려요.”

예의 느릿한 걸음을 옮기던 그가 귀밑을 만지작거리며 답한다.

“그냥 어쩌다 보니까…. 전 아직도 제가 왜 정치인이 됐는지 모르겠어요. 아무래도 안 맞는 것 같아요.”

엘리베이터 앞에서 헤어지면서도 그는 예의 당부를 잊지 않는다.

“정말 할 말이 없어요. 저말고 다른 훌륭한 분을 찾아보세요.”

아니다. 그에게 들을 말이 많다. 국회의원은 무엇으로 사는가.

■ 두 번째 날

의원회관 5층에 자리한 조의원의 사무실은 유난히 좁아 뵌다. 탁자, 책상은 물론 바닥 여기저기며 난방기 위에까지 온갖 책, 서류들이 그득그득 쌓여 있다.

‘청춘이란 두려움을 물리치는 용기/ 안이함을 선호하는 마음을 뿌리치는 모험심을 의미한다/ 때로는 20세 청년보다도 70세 인간에게 청춘이 있다/ 나이를 더해 가는 것만으로 사람은 늙지 않는다/ 이상을 잃어버릴 때 비로소 늙는다’(사무엘 울만 詩 ‘청춘’ 中)

창문 앞에 놓인 액자에 담긴 시다. 탁자 유리 밑에는 또 이런 구절이 새겨져 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신약성서 마태복음 7장 13, 14절 말씀이다.

다른 의원들 방에서 익히 보아온 세련된 가구, 상패나 트로피, 값비싼 족자며 화려한 장식품은 찾아볼 수 없다. 대신 눈에 띄는 건 앞의 두 글귀와 유석 내외의 옛 사진 몇 장이다.

―책을 많이 읽는가 봅니다.

“그렇지도 않아요. (읽는) 속도가 느려서요. 마누라가 만날 흉보는 걸요.”

그가 잠시 자리를 비운 새 살펴보니, 작은 탁자 한구석에 서울대 규장각 정옥자 관장의 신간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선비’(현암사)가 놓여 있다. 옆에 펼쳐진 노트에는 둥글둥글한 펜글씨로 책의 주요 내용이 꼼꼼히 정리돼 있다. ‘이런 공부까지 하나’ 싶어 요리조리 들쳐보다, 행여 들킬세라 얼른 돌아와 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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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이나리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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