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5월호

‘강경투쟁’ 전교조, 칼날 위에 서다

  • 글: 이지은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miley@donga.com

    입력2003-04-28 10: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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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남 예산군 보성초등학교 서승목 교장의 자살 사건 파문으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이 출범 후 최대 위기를 맞았다.
    • 서교장이 전교조의 서면 사과 요구에 시달리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사회 전반에서 전교조에 대한 비난이 들끓고 있다. 특히 전교조의 ‘투쟁 일변도’ 활동 방식에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일각에서는 곪을 대로 곪은 우리 교육계의 구조적 모순이 이 사건을 발화점으로 폭발했다고 본다.
    ‘강경투쟁’ 전교조, 칼날 위에 서다
    고 서승목(徐承穆·56) 교장의 영결식이 있던 4월8일엔 하루종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을씨년스러운 날씨가 이어졌다. 보성초등학교 입구에는 ‘진모 교사와 전교조 소속 교사 2명의 수업을 거부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내걸렸다. 학부모들이 써붙였다고 했다.

    영결식이 치러지던 운동장 한켠에서는 서교장의 부인 김순희씨가 “착한 우리 남편 살려내!”라고 외치며 오열했고, 두 아들은 어머니를 껴안으며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그 장면을 놓칠세라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며 취재에 열을 올리는 100여 명의 기자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분위기가 숙연해지자 얼결에 울음을 터뜨리는 아이들, 전국에서 몰려온 1000여 명의 교장단과 교육 관계자들, ‘참교육 가면 속에 교단이 무너진다’ ‘살인집단 분쇄하여 교직안정 되찾자’며 전교조를 규탄하는 수십여 개의 만장(輓章), 고인에 대한 추모와 전교조에 대한 원색적인 비난들이 뒤섞인 각계의 추모사…. 영결식은 추모 행사라기보다는 전교조 성토대회에 가까웠다.

    서승목 교장은 4월4일 나일론 끈으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유서 한 장 남기지 않았다. 부인 김씨는 경찰에서 “남편이 ‘여교사에게 차 시중을 요구하고 부당한 장학을 했다’는 이유로 전교조 충남지부로부터 서면 사과를 요구받고 매우 괴로워했다. 그것말고는 자살할 만한 이유가 전혀 없다”고 진술했다. 이어 김씨는 전교조 충남지부 관계자 2명과 보성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 정모(여·41)씨와 최모(여·36)씨, 그리고 차 시중 논란의 발단이 된 진모(28) 교사 등 5명을 협박·명예훼손 등의 혐의로 경찰에 고소했다. 그들 사이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서면 사과 논란

    ‘강경투쟁’ 전교조, 칼날 위에 서다

    고 서승목 교장

    중등교사 자격증을 가진 진씨는 지난 3월초 보성초등학교에 기간제 교사로 임용됐다가 20일 만에 사표를 제출했다. 그러고는 교육인적자원부, 충남도교육청, 전교조 충남지부 홈페이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글을 올렸다.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교사인 내게 교장과 교감선생님이 차 접대, 찻잔 관리 같은 ‘성차별적 업무’를 요구했다. 심지어 ‘수업중에도 손님이 오면 내려와 차를 타야 한다’고 했다. 이를 거절하자 교장과 교감선생님이 수업 장학을 이유로 수시로 수업중인 교실로 들어와 아이들 앞에서 큰 소리로 질책하는 등 부당하게 교권을 침해했다. 또 교장선생님이 ‘윗사람이 시켜서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라며 전교조를 비하하는 발언을 하고 억압적인 분위기를 조성해 사표를 낼 수밖에 없었다. 교장선생님은 한마디도 만류하지 않았고 사표는 곧바로 수리됐다.”

    3월24일 충남도교육청과 전교조 충남지부 예산지회에서 진상 조사를 위해 보성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당시 홍승만 교감은 진교사의 주장에 대해 이렇게 항변했다.

    “진교사가 먼저 ‘차 한잔 타드릴까요’라고 해서 ‘좋지요’라고 하니까 차를 한잔 타줬다. 그래서 ‘교장선생님에게도 한잔 타주는 게 어떻겠어요’라고 부탁했더니 교장선생님에게도 차를 타줬다. 그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차 접대를 강요한 적은 절대로 없는데, 갑자기 진교사가 ‘아침마다 차를 타지 않겠다’고 이야기해 황당한 기분이 들었 을 정도다. 다만 찻잔과 스푼 등 차 도구를 관리하도록 한 것은 사실이다”고 말했다.

    또한 서교장은 “진교사가 중등교사 자격증 소지자라 초등학교 수업에 익숙지 않을 것 같아서 관심을 기울인 것은 사실이다. 그것이 부당한 장학 활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해명했고, 전교조 비하 발언과 관련해서는 “전혀 그런 사실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했다.

    전교조 충남지부는 조사를 마친 후 서교장에게 진교사의 원상 복직, 차 도구 관리를 포함한 접대 업무 폐지, 교장과 교감의 연명 서면 사과 등 세 가지를 요구했고, 서교장은 우선 접대 업무 폐지를 약속했다. 26일에는 예산군교육청 인장식 장학사와 서교장, 진교사가 전교조 충남지부 사무실에 모여 재임용과 서면 사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그런데 이날 오간 대화에 대해 예산군교육청과 전교조측의 주장이 엇갈린다.

    인장식 장학사는 “서교장은 ‘장학 활동이 부당하게 느껴졌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재임용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재임용 자체가 상호 신뢰 회복을 의미하므로 서면 사과는 어렵다는 입장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전교조 충남지부 이진형 사무처장은 “서교장이 서면 사과 의사를 표명했고, ‘28일 다시 전교조 사무실을 방문해 진교사에게 서면으로 사과하겠다’고 말했다”며 “이에 진교사가 사과문을 다른 목적으로 이용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면서 합의가 성사됐다”고 반박했다. 그런데 홍교감이 차 접대를 요구하고 부당한 장학을 했다는 데 대해 전면 부인하면서 자신의 입장을 예산군 교육청 홈페이지에 올렸다는 것. 이처장은 “서교장이 ‘서면 사과를 하지 않겠다’는 홍교감의 강경한 태도에 매우 곤란해했던 것으로 안다”고 했다.

    서교장과 홍교감의 서면 사과가 없자 전교조 충남지부는 3월31일 전교조 소속 교사 20여 명과 함께 예산군교육청에서 조속한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집회를 가졌다. 이 집회에는 보성초등학교 최모 교사와 정모 교사도 참가했다. 이들은 이 사건에 대한 보도자료를 지역 언론사에 배포했고, 4월2일자 ‘대전일보’와 ‘대전매일’에 관련기사가 실렸다. 이틀 후인 4월4일 서교장은 유명을 달리했다.

    영안실에서 만난 부인 김씨는 “남편은 사과 요구를 받은 후 내내 고민했지만, 4월1일 기자들이 취재를 벌이자 더욱 불안해했고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마자 신문부터 집어들고 관련 기사를 읽더니 밥도 못 먹고 안절부절못하는 등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은 것처럼 보였다”며 울먹였다. 홍교감은 “서교장이 줄담배를 피워대며 힘겨워했다. ‘기사가 나왔으니 거짓도 사실로 알려지지 않겠냐’며 ‘죽어서라도 내 누명을 벗고 싶다’는 말까지 했다. 예산 토박이로 지역 주민들로부터 존경받아온 서교장으로서는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기사가 실렸다는 것만으로도 감당하기 어려운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했다.

    이에 대해 이진형 사무처장은 “교육청을 방문했을 때 기자들이 먼저 이 사건에 대해 관심을 보이며 취재를 요청하기에 그날 밤 늦게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면서 “3월29일 서교장이 진교사에게 재임용 발령장을 보냈고 4월1일 진교사가 복직했으며, 그 학교 선생님들에 따르면 두 사람 사이에 그다지 불편한 기류가 흐르지 않았다고 한다. 전교조의 서면 사과 요구가 궁극적인 자살 원인이라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해명했다.

    전교조는 4월9일 기자회견을 갖고 “신분이 불안정한 기간제 여교사에게 행해진 부당한 학교 관행을 개선하는 과정에서 생긴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이 사건을 규정했다. 아울러 “유서가 없기 때문에 전교조의 서면 사과 요구가 서교장의 자살 원인이라고 확신하는 것은 옳지 않다. 철저한 진상 규명이 우선돼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교조의 과실이 드러나면 유족과 관계자에게 사과하고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전교조는 “자살의 원인이 지역 교장단 회의에 있는 것 같다”며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즉, 4월2일 서교장이 참석한 예산교육청 초등 교장단 회의에서 이 사건을 집중 거론하며 서교장을 궁지로 몰아넣었다는 것. 보성초등학교의 전교조 소속 정모 교사는 “교장단 회의가 끝난 후 교장선생님이 회식에 참석했는데,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고 평소와 달리 아무 말도 없이 식사만 했다”며 “교장단 회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던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예산교육청측은 “교장단 회의에선 천안초등학교 화재 사건과 관련한 학교 안전문제가 주요 논의 대상이었고, 보성초등학교 건은 안건에 포함되지도 않았다”며 회의록을 공개했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초등학교 한규복 교장은 “서교장을 ‘왕따’시키기는커녕 모두가 그분의 처지에 공감하면서 위로했다”고 전했다.

    투쟁 일변도에 집중 포화

    한편 서교장이 자살 직전까지 겪은 일을 꼼꼼히 적어놓은 메모장이 발견됐는데, 여기엔 전교조 간부가 ‘묻는 말에 똑바로 답하라. 허위로 밝혀질 때는 용서하지 않겠다. 그런 말은 법정에 가서 하라…우리가 곧 갈 것이다’라며 공갈, 협박했다던가 ‘교장·교감 연명으로 사과문을 써라’고 요구했다는 등의 내용이 적혀 있다. 메모는 ‘대전일보에 나옴(기사)’으로 끝났다.

    진교사가 인터넷에 올린 글에 대해 서교장이 자필로 사실 여부를 기록한 문건도 발견됐는데, 서교장은 자신이 ‘수업중에 차를 타라’ ‘윗사람이 시켜서 못 하겠다고 하는 사람은 전교조야’라고 했다는 부분에 대해 ‘사실과 다름’이라고 써놓았다.

    서교장 사건 이후 전교조는 여론의 집중 포화에 휩싸여 있다. 1989년 ‘참교육 실현’을 기치로 내걸고 설립되어 교육 개혁과 민주화의 선봉에 서 온 전교조가 출범 이래 최대 시련에 부딪힌 것. 전교조 홈페이지(www.eduhope.net)에는 전교조를 비난하는 글이 끊임없이 올라왔고, 안티 전교조 사이트(cafe. daum.net/antiktu)의 회원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을 비롯한 각종 학부모 단체와 한국교총, 지역별 교장단 협의회 등은 ‘(서교장의 자살은) 한 개인의 죽음이 아니라 한국 교육 현장의 죽음이며 교육의 파탄’이라며 전교조에 직격탄을 날렸다.

    평소 전교조와 껄끄러운 관계였던 교장단이나 교육 관료들 뿐 아니라 그동안 전교조와 같은 길을 걸었던 시민단체나 전교조 소속 교사들 사이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 이들이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하는 것은 전교조의 강경노선, 다시 말해 투쟁 일변도의 전교조 활동 방식이다. 서교장 사건에 있어서도 전교조가 강한 비난을 산 대목은 진교사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얘기의 사실 여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도 전에 무작정 서교장을 몰아붙였다는 점이다.

    전교조 충남지부 관계자는 “진교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발령난 지 20일 만에 학교를 그만뒀겠느냐. 더구나 서교장은 이번 일에 대해 사과한 뒤 진교사를 복직시켰다. 잘못한 게 없다면 왜 그렇게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나 보성초등학교 홍교감은 “사건 와중에 서교장은 진교사가 자신의 옛 제자임을 알게 됐다. 그래서 더욱 좋게 좋게 풀어나가려고 한 듯하다. 서교장이 사과하고 복직시킨 것은 잘못을 인정한 게 아니라 일을 원만하게 해결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자신들의 주장만 펼치며 서교장을 다그쳤다”고 주장했다.

    ‘강경투쟁’ 전교조, 칼날 위에 서다

    서교장이 자살 직전의 일을 적어놓은 메모장과 진교사가 인터넷에 남긴 글에 대한 사실 여부를 적은 문서

    올해 초까지 서울 A초등학교에 근무한 B교장은 “결국 죽음을 선택한 서교장의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나도 그간 전교조에 당한 것을 생각하면 서너 번은 자살해야 한다”며 강한 분노를 드러냈다.

    “지난해 가을 학교 서무부장과 전교조 소속 여교사가 말다툼을 벌였다. 50대인 서무부장은 젊은 여교사가 계속 언성을 높이자 ‘당신 뭐야, 이렇게 하면 다 되는 줄 알어?’라고 윽박질렀다. 물론 서무부장이 거친 말로 윽박지른 것은 잘못이다. 하지만 결코 손찌검과 같은 폭행을 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도 전교조는 학교로 ‘서무부장 여교사 폭행 규탄대회’를 하겠다는 협박성 공문을 보냈다.

    이 일로 인해 학교는 지역 교육청으로부터 특별감사를 받았다. 전교조는 불미스러운 사건을 방치했다는 이유로 학교장을 비방하고, ‘서무부장을 엄중 문책하라’는 공문을 보냈다. 그래서 서무부장이 행정조치(징계의 일종)를 받고 직원회의에서 여교사에게 공개 사과를 하는 것으로 전교조와 합의했다. 사건을 처리하는 동안 실로 엄청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전교조 교사들은 왜 대화가 아닌 힘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가. 꼭 지회, 지부 등 상부에 연락을 해 단체행동을 해야 하는가. 꼭 서면 사과를 받아서 증거자료로 남겨두어야 하는가. 더구나 전교조는 합법적인 단체다. 노동조합법에 따르면 전교조에겐 단체행동권이 없는데, 왜 툭하면 불법적인 단체행동을 일삼거나 단체행동을 하겠다는 공문을 보내는지 모르겠다.”

    B교장의 주장에 대해 전교조 서울지부 관계자는 “폭언도 폭행이다. 당시 서무부장이 젊은 여교사에게 일방적으로 10분 이상 폭언을 퍼부었고, 이로 인해 여교사는 큰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고 반박했다. 다행히 교육청에서 원만하게 중재를 해서 양측 모두 큰 피해 없이 해결됐다는 것.

    A초등학교는 교원 중 과반수 이상이 전교조에 소속돼 있어 ‘강성 학교’로 통한다. 하지만 B교장은 1999년 발령 후 2년 반 동안은 전교조 교사들과 전혀 문제가 없었다고 말한다. 교사들은 매우 열심히 아이들 수업에 임했고 연가투쟁에 참가할 때면 B교장에게 먼저 찾아와 연가투쟁에 참여하려는 이유를 설명하고 보강수업 등의 대책을 논의했다. B교장도 연가투쟁이 있는 날을 ‘가정체험학습일’로 정하는 등 융통성 있게 대처했다.

    하지만 “전교조 집행부의 ‘몰아붙이기’식 투쟁을 경험한 후로는 전교조라면 몸서리를 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전교조 교사들 대다수는 열정적이고 창의적으로 아이들을 가르친다. 참 훌륭한 분들이 많다. 그러나 전교조 집행부와 몇몇 교사들의 예의에 어긋난 행동을 대할 때면 분노가 치민다”며 씁쓸해했다.

    학부모들의 분노

    이상주 전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은 “전교조는 자신과 의견이 다른 사람의 말은 아예 들으려 하지 않을 만큼 편협적이며, 무조건 집단행동으로 나온다”며 전교조를 강하게 비판했다.

    “교육부총리 시절 45개 학교를 방문했는데, 대다수 교장들이 ‘전교조 교사들 때문에 행정을 제대로 해나갈 수 없다’고 호소했다. 사사건건 반대와 거부를 일삼는 것은 물론, 문제가 생기면 무조건 집단행동으로 나와 교장을 규탄한다는 것이다. 어디 학교뿐인가. 교육정책이 전교조의 입장과 다르면 교육감실로 쳐들어가고 교육청 마당에 천막을 치고 두세 달씩 시위한다. 걸핏하면 연가를 내고 수업을 빼먹은 채 시위에 나서 세(勢)를 과시한다.

    이런 태도는 자잘한 사건을 다루는 지부, 지회에서부터 전교조 본부에 이르기까지 똑같다. 전교조 본부는 자립형 사립고, 외국인학교 입학조건 완화, 교원 성과급 차등 지급, 기초학력 진단평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등 교육부가 추진하는 정책마다 반대하며 집단행동을 벌여 제대로 이룬 게 하나도 없다.”

    현재 전교조는 교육개방 양허안 제출과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을 두고 정부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전교조 원영만 위원장은 강력한 투쟁 의지를 천명하며 삭발했고, 3월27일에는 분회장 연가투쟁을 벌였다. 이상주 전 부총리는 “원위원장이 교육개방 양허안 제출 및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도입 반대를 공약으로 내세워 당선됐기에 공약사항을 무리하게 밀어붙이는 것 같다”고 귀띔했다.

    이에 대해 원영만 위원장은 “교육개방은 외국 교육자본에 한국 교육이 종속되는 것을 의미하고,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도입할 경우 개인정보가 불법 유출될 위험이 매우 크다. 따라서 이 두 사안에 있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 파업도 불사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전교조는 10만명 연가투쟁을 계획했으나, 서교장 사건 이후 무기한 연기됐다.

    연가투쟁·조퇴투쟁과 같은 전교조의 단체행동에는 학부모들도 반대하고 있다.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학사모) 대표 고진광씨는 “전교조가 연가투쟁 등을 통해 세 과시에만 열중하고 있다. 이는 명백히 학생들의 학습권 침해”라고 비난했다.

    지난 3월26일 전교조가 주도하는 교육개혁시민운동연대에서 탈퇴한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이경자 사무국장도 “전교조가 교육개혁보다는 교권에만 집착하는 이익단체, 즉 노조 노릇에만 충실한 것 같다. 학교 수업을 하지 않고 거리로 나서 단체투쟁을 하는 것은 교사로서의 의무와 권리를 포기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강경투쟁’ 전교조, 칼날 위에 서다

    공교육 정상화를 주장하며 시위를 벌이는 전교조 교사들

    이렇듯 각계에서 쏟아지는 비난을 전교조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 한 전교조 관계자는 “전교조 내부에서도 그간 지나치게 강성 기조를 고집한 데 대한 반성이 일고 있는 게 사실”이라고 털어놨다. 전교조는 4월9일 성명을 통해 “그동안 대화가 아닌 투쟁 일변도로 나가지 않았는지 반성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교육계의 ‘약자’인 전교조로서는 집단행동으로 투쟁하지 않으면 학교장이나 교육관료들이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는 항변도 있다. 전교조 송원재 대변인의 말.

    “교사가 학교장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았을 때 학교장이 구두로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해놓고도 ‘나 몰라라’ 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다. 그래서 증거를 남겨두기 위해 서면 사과를 받아온 것이다. 단체협약은 교육청과의 약속이고 문서로 증거를 확실하게 남겼는데도 교육 현장에는 이를 지키지 않는 교장들이 적지 않다. 하물며 구두 약속 정도야 안 지키면 그만인 게 현실이다.”

    그는 또 “교육관료들이 의도적으로 전교조를 싸움꾼으로 만들고 있다”고 주장했다. 가령 올해 말 시행 예정이던 교육행정정보시스템을 새 교육부총리가 취임하자마자 밀어붙여 전교조를 당혹스럽게 했고, 게다가 전면 시행이라는 초강수를 두니 ‘파업(10만명 연가투쟁)’이라는 초강수로 맞대응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교장 선출 보직제 실현을 위한 교육연대 대표이자 전교조 정책국장을 지낸 김대유 교사는 “모든 노동조합이 이익집단이듯 전교조 또한 정치적 성향의 이익집단”이라며 “하지만 여느 노조와 달리 전교조는 ‘교육’을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투쟁의 방식이 강성이냐 연성이냐 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보다 중요한 건 투쟁의 목적이다. 지금의 전교조는 ‘반대’ ‘저지’ 같은 투쟁을 하고 있기 때문에 호응을 받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나아가 대안을 제시하는 투쟁을 한다면, 즉 투쟁의 부가가치가 교육의 주체인 학생들의 부가가치로 나타난다면 어떤 강경투쟁을 벌이더라도 국민적 호응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즉 교육개방 저지나 교육행정정보시스템 반대 투쟁이 아니라 교장 선출 보직제(각 학교별로 일정 자격을 가진 교사들을 대상으로 교장을 직접 뽑는 것)나 학내 학부모회, 교사회 등의 법제화 추진과 같은 교육 현장의 민주화에 기여할 수 있는 투쟁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참교육을 위한 전국 학부모회 최선희 사무처장은 “‘전교조 죽이기’식의 언론 보도에 학부모들이 부화뇌동하면 안 된다. 전교조에서 벌이는 투쟁의 내용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나서 가치 판단을 내려야 한다. 잘못된 부분이 있을 경우 ‘가슴’이 아닌 ‘머리’로 따끔하게 지적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분차·세대차 갈등

    한편 교육계 일각에서는 서승목 교장 사건이 이미 곪을 대로 곪은 우리 교육현장의 구조적 모순이 폭발한 것으로 바라본다.

    이 사건의 발단은 학교내 약자인 기간제 여교사와 학교장·교감과의 갈등이었다. 그동안 교장은 ‘제왕’이라 불릴 만큼 권력을 누려왔다. 요즘은 학교 경영이 상당히 투명해져 대부분의 현안들이 학교운영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고 하지만, 아직도 학교내 최고 실권자는 교장임에 틀림없다. 서울 S초등학교 운영위원인 학부모 김미정씨는 “운영위원회를 다녀올 때마다 학교장의 권한이 얼마나 큰 것인지 실감한다”며 “교장, 교감선생님 앞에서 결제를 받으려고 서 있는 교사들이 가련해 보이기까지 했다”고 말한다.

    교사들이 그럴진대 하물며 비정규직인 기간제 교사는 신분 불안 때문에 학교 안에서 가장 약자일 수밖에 없다. 재계약과 해고 등 임용에 관한 모든 권한을 교육청이 아닌 학교장이 갖고 있다보니 늘 교장의 눈치를 봐야 한다. 또한 정식 교직원이 아니기 때문에 전교조나 한국교총 등 교원단체에 가입할 수도 없는 처지다.

    ‘수고하는 기간제 교사들을 위한 카페’(cafe.daum.net/giganje), ‘전국 기간제교사 모임’(cafe.daum.net/giganj edamoim) 같은 게시판과 교육청 홈페이지 게시판 등에 기간제 교사들이 올린 글과 2002년 전교조에서 실시한 비정규직 실태보고서 등을 보면 상당수 기간제 교사들이 각종 잡무 부여 등의 부당한 근무조건 강요, 연가 불인정, 퇴직금 미지급 등 차별대우를 받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기간제 교사가 젊은 여성인 경우 차 접대 같은 성차별적 업무가 주어지는 경우가 다반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기간제 교사들도 자신이 근무하는 학교를 잠시 머무는 곳쯤으로 여기고 임용고시를 준비하는 등 다른 일을 겸하는 경우가 많아 실질적으로 교수의 질을 높이기 힘든 형편이다.

    전교조 충남지부 김상복 사립위원장은 “이처럼 교장·교감과 기간제 교사의 처지는 판이하기 때문에 똑같은 상황이라도 양측이 전혀 다르게 받아들였을 수 있다”고 본다. 차 접대와 관련해서도 서교장과 홍교감은 ‘강요’하지 않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진교사는 이를 ‘강요’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

    김위원장은 “일각에서는 진교사가 전교조 소속이 아닌데도 전교조가 이 사건을 문제삼고 나선 것은 세를 과시하기 위한 게 아니냐고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하지만 학교에서 약자인 기간제 여교사가 성차별적 업무를 강요받는 등 교권을 침해당했다고 판단하고도 가만히 있다면 전교조가 의무를 다했다고 볼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여기에 더해 20대의 젊은 여교사와 50대 교장·교감 사이의 세대차이도 갈등을 증폭시킨 것으로 보인다. 서교장과 홍교감이 진교사에 대해 쓴 교내 장학록을 보면 ‘진선생이 운전면허를 취득할 때까지 매일 16시50분경 퇴근하게 해달라고 했으나 이를 불허함. 근무시간 준수할 것을 촉구’ ‘단원명 기록, 학습목표 또는 학습문제를 반드시 기록토록 지도했으나 그렇게 할 필요 없다고 고집’ ‘지도 내용을 받아들이지 않음. 수업 장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강하게 비침’ ‘빈자리가 있으니 하루종일 같이 생활하자고 하는 등 지도하는 입장에서 좀 심하다 할 정도로 빈정거림’ 등의 내용이 있다.

    이로 미뤄볼 때 진교사는 당돌할 정도로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표출했던 듯하다. 하지만 진교사의 이런 태도는 나이 든 서교장에게 상당히 불쾌하게 느껴졌을 수 있다. 보성초등학교에 근무하는 정모 교사는 “평소 조용하고 친절하게 말씀하시던 교장선생님이 진선생님에게 장학지도를 할 때는 다소 언성을 높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고 말했다.

    ‘수업권’과 ‘수업 지도권’의 충돌

    앞에서 본 것처럼 수업 장학에 대해서도 서교장과 진교사는 의견이 많이 달랐다. 진교사는 “차 접대를 거절한 후 부당하게 수업권을 침해당했다”고 본 반면 서교장은 “잘못된 부분을 지적했을 뿐 부당한 장학을 한 일은 없다”고 생각했다. 학생들에게 어떤 내용을 가르치는 권리, 이른바 수업권은 교사의 가장 중요한 권리다. 교사들의 수업을 지도하는 것 또한 학교장의 중요한 권리다. 이 사건에서 보듯 학교 현장에서는 두 권리가 자주 갈등을 빚는다. 이라크전쟁 발발 후 일부 전교조 교사들이 진행한 반전 평화 수업도 그 한 가지 예다.

    서울 K중학교에 근무하는 전교조 소속 김모 교사는 “반전 평화 수업을 진행할 때 교장·교감·부장선생님들의 반대가 심했던 것은 사실이다. 학교측이 교사를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교사들이 반전·평화가 아닌 반미만을 부르짖으며 학생들을 의식화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 교사들은 이라크전쟁에 대한 객관적인 사실들, 즉 미국과 이라크 양측의 입장을 모두 알려주고 학생들로 하여금 스스로 평화의 의미를 깨닫도록 가르친다. 교사들의 판단력을 믿고 수업을 맡겨줬으면 좋겠다”는 뜻을 밝혔다.

    경기도 Y초등학교 이모 교감은 “반전 수업을 참관해보면 대개 ‘미국은 나쁘고 이라크 국민들만 불쌍하다’는 식으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어린이들이 ‘미국은 무조건 싫다’고 말하는 것을 보면 냉전시대에 ‘공산당은 무조건 싫다’고 말하도록 교육했던 것과 무엇이 다른가 싶었다. 이럴 경우 교감으로서 수업의 방향과 방식을 바꿔달라고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처럼 교장·교감의 수업 지도권과 교사의 수업권 사이에는 마찰이 생기고 있다. 특히 개혁·진보 성향이 강한 전교조 교사들의 경우 교장·교감과의 갈등 수위가 상대적으로 더 높은 편이다.

    아름다운 학교 운동본부 이인규 사무총장(교육학 박사)은 “서교장의 안타까운 죽음은 투쟁 일변도의 전교조 활동 방식과 교육 현장에 잠재해 있던 각종 구조적 모순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것”이라며 “무엇보다도 사건의 각 주체가 서로에게 마음을 열지 않은 것이 불행의 씨앗이 됐다”고 설명했다.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조금씩만 양보했다면 막을 수 있는 사건이었다는 것.

    생각해본다. 고인이 된 서승목 교장이 진정 원하는 것은 무엇일지. 젊은 여교사에게 도덕적 사망선고 내리기? 전교조 죽이기? 교단 가르기? 다 아닐 것이다. 그는 평생을 교사와 학생들, 교육 현장을 위해 헌신해온 사람이다. 이 사건이 전교조를 비롯한 교육계 구성원들을 어떻게 변화시킬지, 그리고 그 변화가 고인의 인자한 얼굴에 미소를 떠오르게 할지, 아니면 고인을 두 번 죽일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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