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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의 삶

“한문 공부하다 보니 셈법이 보입디다”

‘컴퓨터보다 정확한’복리계산법 개발한 김병채 옹

  • 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한문 공부하다 보니 셈법이 보입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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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김옹은 수학 공부만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다. 부안군내의 교사 퇴직자 모임인 삼락회 회장과 울산 김씨 부안 김제 종친회장을 맡고 있다.

-문중 일도 열심히 보시는데, 요즘 세상에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보십니까.

“가치가 있다 없다고 보는 것이 아니라, 혈족간에 당연히 해야 할 의무라고 봐야제. 나는 문중 일을 하면서 매년 400만~500만원씩 지출하지만 ‘누군가 해야 할 일이라면 내가 하자’는 것이 나의 신조요. 현재 울산김씨가 부안에 58가구, 정읍에 100가구, 고창에 350가구 살고 있는디, 나는 이 사람들의 정신적 안식처 역할을 하고 싶어.”

긴 대화를 나누다 보니 80 노인보다 필자가 더 지쳐버렸다. 좁은 방에서 웅크리고 앉아 있는 것도 불편하고 봉창한 뒷문을 다 열어놓아서 춥기도 했다. 그래서 잠시 마당으로 나와 휴식을 취한 후 안채 서재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시작했다.

“왜 젊은 사람이 힘들어 허요? 나는 매일 담배 한 갑 반을 피고, 아침 점심 저녁으로 집에서 담근 술을 맥주잔으로 한잔씩 마시요. 거기에 소주 한잔만 더 들어가면 대취해버리지만, 그래도 건강은 괜찮허요. 오히려 눈썹이 까맣게 되고, 얼마 전까지 머리털이 많이 빠졌었는디 근년에는 가운데 머리카락이 많이 나서 신묘하다고 생각하고 있소.”



김옹의 골상은 장군 스타일이다. 건강이 천부적이란 인상도 든다.

-식사로 특별히 하시는 것이 있습니까.

“채식하는데 젓갈을 무지하게 좋아허요. 갈치 속젓, 뱅어젓, 토하젓 이런 것들이 비위에 맞어. 그란디 밥은 안 들어가. 작년 5월초 이후 오늘까지 밥은 280그릇밖에 안 먹었소.”

역시 밝은 수리 계산법에 의한 설명이다.

지난해 5월초 이후부터 4월1일까지라면 약 11개월, 삼시 세끼라면 330 곱하기 3 해서 990그릇이 된다. 말하자면 990그릇이 정상인데 그 3분의 1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밥을 먹고 있다는 것.

-80 평생 지금껏 살아오면서 가장 후회한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나도 가출을 세 번 했소. 선친과 뜻이 맞지를 않았어. 선친이 조부님한테 대들고, 어머니한테도 안좋게 해서 나 역시 불만이 많았제. 그래서 객지로만 8년을 떠돌다가 일본 가서 공업학교 다니다 완성을 못하고 돌아와부렀어. 따지고 보면 후회 안 되는 일이 없어. 특히 둘째아들만 생각하면 가슴이 너무 아파.”

유독 심약했고 염세적이어서 음독 자살까지 시도했던 그의 둘째아들은 20여년 전 가출해 지금껏 소식이 없다. 세속과의 인연을 끊고 승려가 되었다는 말도 있고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풍문도 들었다. 그런 아들의 가출벽도 자신의 가출벽을 닮았는지 모른다며 한숨을 쉬었다.

“그래도 주택공사 다니는 우리 큰아들놈의 마음 씀씀이가 기특하오. 논을 사거나 물건을 살 때도 언제나 동생 몫을 챙기요. 어느 때든지 오면 준다고 동생 몫을 따로 맹글어놔요.”

한문 배워야 산다

-노인정은 안 나가십니까.

“유림회도 다니고 노인학교도 나가고, 강의도 하지만은 나하고 비위가 잘 안 맞어. 비생산적이란 말이여. 화투나 치고, 자기 허물은 20가지나 되는디 남의 허물만 잡고 늘어져. 그런 것이 못마땅혀. 언젠가는 공부 좀 하자고 책 500권을 구비해 노인당에 갖다 놓았더니 벌레가 생긴다고 고물상에 넘긴다고 그래. 그래서 그 길로 문화원에 기증을 해뿔고, 지금은 아예 담을 쌓아부렀어. 늙었더라도 사람은 무엇인가 찾아서 일을 혀야 혀는디, 시비나 할라고 하고, 허물이나 보려고 허니 당최 비위가 안맞어.”

그러면서 그는 ‘남 괴롭히지 않을 것’ ‘자기가 맡은 일은 반드시 스스로 처리할 것’ ‘남을 배려하는 인성을 기를 것’ ‘공동체에 대한 인식을 가질 것’ 등을 생활 철학으로 삼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은 어린 아이들에게 한문 공부를 시키는 것. 현재 초등학생인 두 손자에게 직접 회초리를 들며 한자 공부를 시키고 있다.



“그런데 지난해말 두 외손주가 한문경시대회에 나가서 1등, 3등을 했어. 나가 경시대회 날 얼마나 떨었는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벅차요. 막내딸이나 사위, 그리고 집사람도 회초리를 든다고 걱정 반 추궁 반을 했는디, 그런 가운데 혹시 성적이 형편없어봐. 내 교육방법이 틀렸다고 비난할 것이고 또 교육자로, 할아버지로서 비난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밤잠이 오들 안혔어. 그란디 장원을 한 것이여. 그때사 안도의 숨을 쉬었당개. 이젠 우리 손주뿐 아니라 많은 어린 아이들에게 한자 공부를 시키고 싶어. 그래서 맥가이버 칼을 공부하러 오는 아그들에게 선물로 줄라고 준비하고 있소.”

-굳이 선물까지 주면서 아이들에게 한문공부를 시킬 필요가 있을까요.

“암만해도 우리는 중국과 가까이 지내야 할 운명이오. 중국은 압록강하고 붙어버렸싱개 미국보다 오히려 숙명적 인연을 갖고 있는 것이요.”

김옹이 아이들에게 한문을 가르치고 싶다는 것은 이를 계기로 자신의 한문공부도 완성하고 싶다는 의지로 보인다. ‘80 젊은이’라는 말이 그에게 딱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동아 2003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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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이계홍 언론인·용인대 겸임교수 khlee1947@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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