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6월호

깐깐한 라이선스 관리로 ‘名品’ 이미지 지킨다

니나리찌 코리아·원풍물산

  • 글: 최희정 자유기고가 66chj@hanmail.net

    입력2003-05-26 16:2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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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니나리찌 코리아는 남성복 화장품 지갑 핸드백 우산 등 10여 종의 패션 제품을 국내 시장에 내놓고 있다.
    • 그 중에서도 (주)원풍물산이 라이선스를 받아 생산하는 남성복은 숙련된 기술자들과 최첨단 설비의 ‘합작품’으로, 꼼꼼한 품질관리를 통해 브랜드 이미지를 높여간다.
    깐깐한 라이선스 관리로 ‘名品’ 이미지 지킨다

    한 백화점의 니나리찌 남성복 매장

    몇해 전, 제법 이름값을 하는 국내 한 영화감독이 영화 제작을 앞두고 프랑스의 유명한 시향사에게 “세계 최고의 향수를 찾아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날에 걸쳐 수십여 종의 향수를 시험해본 시향사는 고심 끝에 니나리찌의 ‘레르 뒤 땅’을 선택했다. 레르 뒤 땅은 영국의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가 즐겨 사용한 향수기도 하다.

    레르 뒤 땅 덕분에 니나리찌의 명성이 높아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니나리찌가 향수나 화장품만 만드는 곳은 아니다. 핸드백 지갑 벨트 같은 가죽 패션용품, 양산 우산 타월 등의 생활잡화, 머플러 넥타이 와이셔츠 여성복 남성복 홈패션 등 의류에 이르기까지 멋을 내는 곳이면 어디에나 니나리찌의 이름이 빠지지 않는다.

    1985년에 설립된 니나리찌 코리아는 니나리찌 본사와 라이선스 계약을 맺은 업체를 관리하는 것은 물론, 제품 유통망까지 총괄하는 니나리찌의 한국지사다.

    “아시다시피 니나리찌는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입니다. 처음에는 여성 하이패션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패션 액세서리와 화장품, 남성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제품을 생산하고 있어요. 그렇다고 제품 가짓수를 마구 늘려가지는 않습니다. 브랜드의 명성이 흔들리지 않도록 패션 분야에서 꼭 필요한 제품만 만들고 있지요. 니나리찌 코리아 역시 그런 자긍심을 갖고 한국 패션산업을 주도하고 있습니다.”

    니나리찌 코리아 서윤석(徐允錫·58) 회장의 말이다.



    현재 니나리찌 코리아가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생산하는 제품은 화장품 향수 넥타이 머플러 지갑 핸드백 남성복 수영복 홈패션 양산 등 10여 품목에 이른다. 브랜드 이미지가 워낙 좋다보니 ‘니나리찌’ 상표를 붙이기만 하면 그리 어렵잖게 유통망을 확보할 수 있고 그만큼 매출 규모도 늘릴 수 있지만, 니나리찌 코리아는 그런 마케팅 전략에 의존하지 않는다.

    ‘요란한 잔치에 먹을 게 없다’고, 취급하는 품목이 많아지면 품질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꼭 필요한 제품만 생산해 니나리찌의 명품 이미지를 지켜나간다는 게 서회장의 경영방침이다.

    니나리찌 코리아는 라이선스 업체를 꼼꼼하게 관리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회장도 수시로 공장을 방문해 생산 현황은 물론, 공장의 위생 수준이나 작업 환경까지 하나하나 점검한다.

    “근로자들의 복장이며 공장의 청소 상태 등을 구석구석 살펴봅니다. 깔끔하고 잘 정돈된 공장에서 만드는 제품이라야 믿을 수 있거든요. 작업환경이 열악한 공장에서 어떻게 우수한 품질의 제품이 나오겠습니까.”

    파리 유행 패션 수시로 전수

    품질관리에도 철저하다. 매년 2∼3회 프랑스 파리 니나리찌 본사의 수석 디자이너가 한국을 방문, 국내 패션 경향과 실정에 맞는 디자인을 연구·개발한다. 유럽에서 유행하는 색조나 트렌드가 대개 1년 뒤에는 우리나라에도 상륙하는 현상을 감안해 파리의 패션과 디자인을 그때그때 라이선스 업체로 전달하기도 한다.

    니나리찌는 라이선스 업체와 계약할 때 까다로운 조건을 내거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니나리찌의 라이선스를 얻으려면 무엇보다 회사의 재무구조가 튼튼해야 한다. 금융 부분에서 아무 문제가 없는 회사와 계약하고 현금으로만 거래한다는 것이 니나리찌 코리아의 원칙. 빚이 없고 재무구조가 튼튼한 회사라야 한눈 팔지 않고 우수한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니나리찌는 처음 회사를 고르고 계약할 때는 이렇듯 까다롭기 이를 데 없지만, 일단 계약을 한 후에는 웬만하면 라이선스 업체를 바꾸지 않는다. 로열티를 더 높게 책정하기 위해 걸핏하면 라이선스 업체를 바꾸는 기업도 적지 않지만, 니나리찌 코리아의 경우 초기에 관계를 맺은 회사와 지금껏 계약을 연장해오고 있다.

    이렇듯 변함없는 고급품 이미지, 깐깐한 품질관리, 라이선스 업체와의 돈독한 신뢰는 니나리찌 코리아가 거듭된 불황에도 해마다 20% 이상 매출액을 늘려온 비결이다.

    니나리찌 코리아는 국내 남성복 시장의 규모가 커지고 고급화하는 추세를 감안해 1999년 원풍물산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고 남성복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 국내에서 남성복을 생산하는 브랜드는 100여 개.

    니나리찌 코리아가 명성있는 대기업들을 제쳐두고 굳이 중소기업인 원풍물산을 라이선스 파트너로 선택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다. 서윤석 회장의 설명.

    깐깐한 라이선스 관리로 ‘名品’ 이미지 지킨다

    원풍물산의 첨단 원단 절단기원풍물산의 첨단 원단 절단기

    “우선 회사 대표가 장인정신이 투철하고 경영진도 유능하기 때문입니다. 재무구조도 비교적 탄탄했고요. 원풍물산은 오랫동안 고급 남성복 생산 한 길만을 걸어온 전문업체로, 니나리찌 브랜드 이미지에 걸맞은 제품을 생산할 역량이 충분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결국 저희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어요.”

    굳이 서회장의 설명을 빌리지 않더라도 원풍물산은 섬유업계에서 탄탄한 기술력을 인정받는 기업이다. 1972년에 설립돼 세계 18개국으로 남성복을 수출하면서 기반을 다져왔다. 처음 20년 동안은 수출에 주력했다. 그러다 보니 해외 소비자들의 요구 수준을 충족시키기 위해 선진국 봉제 기술자들로부터 남성복 노하우를 꾸준히 전수받았다.

    노련한 기술자, 첨단 설비가 ‘밑천’

    이렇게 축적된 기술력을 바탕으로 1991년 국내 남성복 시장에 진출했다. 사람이 곧 밑천인 봉제산업의 특성상 오랜 경험을 가진 노련한 기술자를 많이 확보한 것은 큰 재산이었다. 이들이 가진 기술이면 비록 뒤늦게 신사복 시장에 뛰어들었어도 승산이 충분하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몇몇 대기업들이 장악하다시피 한 유통망을 뚫는 일은 쉽지 않았다. 아무리 우수한 기술력과 노하우를 갖췄다 해도 중소기업이 내미는 명함을 반기는 곳은 별로 없었다. 원풍물산 이원기(李元祈·70) 회장은 “제품은 확실한데도 중소기업이라고 백화점에서 선뜻 자리를 내주지 않아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그래도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고 마음을 다잡고 품질을 높이는 데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저희 같은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경쟁해서 살아남으려면 그것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거든요. 비록 회사는 작지만, 우수한 기술자와 최첨단 자동설비를 갖췄기 때문에 내심 해볼 만하다고 자신했습니다.”

    1999년부터는 니나리찌 라이선스로 남성복을 생산했다. 이를 계기로 원풍물산은 품질 향상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본사 디자이너에게 자문하는 것은 물론, 원단은 80%를 수입해서 쓰고 있다.

    “1년에 두어 차례씩 니나리찌의 수석 디자이너와 머리를 맞대고 디자인을 개발합니다. 아울러 품질 차별화를 위해 ‘슈퍼 150S’ 이상인 고급 원단을 사용합니다. 최근에는 건강 컨셉트를 도입해 진주 옥 숯 황토 등을 함유한 부자재를 개발해 쓰고 있죠.”

    원풍은 컴퓨터 설계 및 생산 설비(CAD-CAM)를 비롯한 첨단 자동화 기기로 신사복을 생산한다. 원단 낱장을 일일이 재단할 수 있는 최신 기계인 ‘커팅 에지’도 갖췄다. 그만큼 정교한 재단이 가능해졌다.

    현재 원풍은 월 8000벌 정도의 신사복을 생산하는데, 매년 매출액이 15% 안팎씩 늘고 있다. 1997년에는 코스닥 시장에 등록됐다. 이원기 회장은 백화점이나 대리점으로 옷을 출고하기 전에 직접 품질을 점검한다. 바느질이며 다림질 상태 등을 꼼꼼히 살펴보고 조금이라도 흡족하지 않은 부분이 있으면 공장으로 되돌려보낸다. 많이 만들기보다는 하나라도 제대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이회장의 소신이 털끝만한 허점도 용인하지 않는 것. 원풍은 1985년부터 지금까지 전국 봉제 분야 QCC(품질관리) 우수상을 놓친 적이 없다.

    공장도 깨끗하기 이를 데 없다. 옷감을 다루는 공장이라 여기저기 천 조각이 굴러다닐 법하지만, 어디에도 먼지 하나 눈에 띄지 않는다. 최첨단 설비와 숙련된 기술자를 갖춘 데다 이렇듯 작업 환경까지 쾌적하다 보니 다른 섬유업체 직원들이나 대학의 섬유계열 학과 학생들이 공장을 견학하러 오는 일이 잦다.

    높은 브랜드 이미지, 뛰어난 기술력, 고급 원단과 세련된 디자인으로 새 바람을 일으킨 니나리찌 코리아와 원풍물산이 향후 신사복 시장의 판도를 어떻게 바꿔놓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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