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달 전에 비해 무려 11% 포인트 상승한 65%(‘마이니치신문’ 9월22~ 23일 조사)를 기록했다. 이는 지난해 9월 북한을 전격 방문해 김정일(金正日) 국방위원장과 역사적 정상회담을 갖고 향후 수교 협상을 적극 벌이기로 한 직후 지지도에 육박하는 것이다.
2001년 4월 총리에 올랐을 때 지지율 85%(마이니치신문)에는 못미치나 당분간 자민당 내는 물론 야당 정치인 가운데서도 그에 필적할 만한 상대는 없을 것으로 보여 ‘장수 총리’를 예고했다.
실체 없는 개혁
그렇다면 그의 승승장구는 ‘변화와 개혁’을 앞세우며 총리에 오른 뒤 거둔 성과에 대한 갈채일까. 아무래도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이번 총재 선거를 앞두고 자민당 일부 소장파 의원들이 ‘진정한 개혁’ 후보를 독자 추대하려 한 일은 고이즈미의 개혁이 ‘사이비 개혁’이었음을 시사한다.
자민당 총재 선거를 앞두고 후보 논의가 무성하던 9월1일 새벽. 중의원 재선의 당 청년국장 다나하시 야스후미(棚橋泰文·40) 의원은 역시 재선으로 친밀한 한 의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자네, TV토론 봤는가?”
“봤네만.”
전날 밤 한 민간 TV방송 프로그램에 고이즈미 총리에 도전할 입후보 예정자 3명이 등장해 토론을 벌인 것을 두고 한 말이었다.
다나하시 의원은 말을 이었다.
“이대로 두면 큰일일세. 3명의 후보로는 안 돼. 다른 대항마를 내세우지 않으면 고이즈미 재선은 틀림없어. 유권자들은 ‘자민당 체질 불변’이라고 판정할 걸세. 다음 총선이 걱정이야.”
고이즈미 총재를 포함해 3명의 다른 후보는 모두 60대였다. 활기를 잃은 원로정치를 타파하기 위해 중의원 비례선거(전국구 의원) 후보자 연령을 73세로 제한하자는 안이 추진되고 있지만 아직 완전하게 실시되지는 않은 상태다. 자민당이 진정한 개혁을 하려면 고이즈미를 꺾을 참신한 후보가 나서서 바람을 일으켜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다음날 자민당 본부 한 방에 ‘동지’ 7명이 모였다. 목표는 자민당 총재 선거 입후보에 필요한 추천의원 21명을 확보하는 것. 누구를 후보로 할 것인지는 일단 동조 의원 21명이 확보되면 다수결로 정하기로 했다. 그때까지는 언론에도 비밀에 부치기로 했다.
닷새 뒤인 9월7일 밤 10시를 넘긴 시각. 도쿄역 부근 한 호텔에 계파는 다르지만 개혁에 동조하는 젊은 자민당 소속 의원들이 속속 모여들었다.
각기 추천의원으로 확보한 사람을 모아보니 19명, 딱 2명이 모자랐다. 해외 출장중인 한 참의원은 팩스를 통해 이들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명하기도 했다. 357명의 자민당 소속 의원 가운데 2명만 더 동의하면 총재 선거 후보를 추천할 수 있었다.
이들은 두 명의 의원을 확보하기 위해 여기저기 전화를 걸었다. 한 명이 동의했다. 마지막 한 명. 하지만 마감 시한인 다음날 오전 11시 후보 등록 개시 때까지 끝내 한 명의 추천을 얻어내지 못했다. 고이즈미 총리측의 방해공작도 있었다. 결국 젊은 의원들의 독자후보옹립이란 ‘쿠데타’는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