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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갈등 지도 (11)|보스니아

인종청소 내세운 광기 어린 살인·집단강간

  • 글: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인종청소 내세운 광기 어린 살인·집단강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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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적인 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이 2003년 8월에 낸 한 보고서에 따르면, 아직도 1만7000명 가량이 실종 상태다. 가족들은 그들이 죽임을 당한 뒤 어딘가에 암매장됐을 것으로 여긴다. 그래서 보스니아 곳곳에선 아직도 발굴작업이 진행중이다. 보스니아 당국이 최근 밝힌 바에 따르면, 1995년 내전이 끝난 뒤 지난 8년 동안 약 1만8000구의 시신이 발굴됐다. 지금까지 신원이 확인된 희생자는 약 1만1500명. 나머지 6500명의 유골은 훼손이 심한 탓에 신원조차 확인이 안 된 상태다. 부녀자들도 보스니아 내전의 피해자들이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세르비아계 무장세력에 성폭행당했다.

세르비아계 정치 지도자로 내전을 이끌었던 라도반 카라지치와 세르비아계 군사령관 락토 믈라디치는 현재 헤이그 유고전범재판소(ICTY)에 전쟁범죄자로 기소된 상태. 그러나 이 두 사람은 같은 발칸 전쟁범죄 혐의로 현재 헤이그에서 재판 을 받고 있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전 유고연방 대통령)와는 달리, 세르비아계의 은밀한 보호 아래 아직껏 도망중이다.

필자는 카라지치가 살던 곳을 찾아간 적이 있다. 보스니아 수도 사라예보에서 트레베비치산을 넘어 세르비아계 영토인 스르프스카 공화국 안에 있는 팔예(Palje) 마을이 카라지치의 본거지였다. 사라예보에서 팔예로 가는 길은 아슬아슬한 고갯길을 따라가는 험난한 길이었다. 게다가 고갯길 곳곳에는 내전의 흔적이 역력했다. 파괴된 2층 벽돌집, 대인지뢰 조심 팻말….

고갯길에서 잠시 쉬면서 세르비아계 운전사는 이렇게 말했다. “카라지치가 지금 어디 숨었는지는 우리 같은 사람은 잘 모른다. 분명한 점은 그는 내 마음속에 영웅으로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는 여전히 우리들의 지도자이고 대통령이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다. 내 친구들이나 마을 사람들이 다 그를 숭배한다. 한마디로 카라지치는 우리들의 영웅이다.”

사실상의 분단국가



흔히 ‘보스니아’로 불리는 이 나라의 공식이름은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1995년 12월 보스니아 내전 에 종지부를 찍은 데이튼평화협정에 의해 태어난 기묘한 형태의 연방국가다.

이 국가는 다시 두 개의 공화국으로 나뉘어 각각의 대통령과 수상, 그리고 의회를 두고 있다. 두 개의 공화국이란, 보스니악(Bosniak, 일반적으로 보스니아 회교도들을 가리키지만 인종적인 공식 명칭은 보스니악이다. 인구비율 48%)과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인구비율 14.3%)이 합친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연방’과 세르비아계 주민들(인구비율 37.1%)의 ‘스르프스카공화국’이다. 두 공화국의 면적은 거의 같다(보스니아 51 대 스르프스카 49). 이 두 공화국 연합이 우리가 흔히 부르는 ‘보스니아’다.

그래서 보스니아 사람들도 명칭의 혼란을 막기 위해 공식 국가이름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는 ‘국가 차원의 BH’로, 이에 속한 두 공화국 중 하나인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연방’은 그저 ‘연방’으로 부른다. 보스니아 회교도들과 크로아티아계 주민들의 연방은 2명의 대통령, 세르비아인들의 스르프스카공화국은 1명의 대통령을 두고 있어 모두 3명의 대통령이 있다. 이들 세 명의 대통령은 8개월마다 한 번씩 돌아가며 의장직을 맡아 ‘국가 차원의 BH’ 대통령직을 수행한다. 4년이 임기이므로 두 번씩 ‘대표 대통령직’을 맡는 셈이다.

이처럼 말만 연방국가일 뿐, 보스니아는 사실상 두 개로 쪼개진 분단국가나 마찬가지다. 데이튼평화협정 서명에 깊이 개입했던 미국과 유럽연합이 발칸반도에 더 이상의 국경선 변화가 일어나는 것을 막으려고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연방국가일 뿐인 것이다.

필자도 보스니아 현지를 취재하면서 분단의 체험을 했다. ‘국가 차원의 BH’ 수도이자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연방’의 수도인 사라예보에서 험준한 트레베비치산을 넘어 스르프스카공화국의 주요도시인 팔예로 가려면, 사라예보 외곽인 도브리냐로 가서 차를 타야 한다. 도브리냐는 두 공화국을 가르는 경계선에 자리한 마을이다. 그런데 필자가 버스정류장에서 사라예보 시내로 전화를 하려고 공중전화에 사라예보에서 산 카드를 넣으니, 작동이 안 됐다. 알고 보니 그 전화는 오로지 스르프스카공화국으로만 통하는 전화였다. 사정이 이러니 ‘연방’ 쪽에서 범죄를 저지르고 스르프스카공화국으로 도망가면 잡을 길이 막연해진다.

외세의 침략 받으며 동화와 분열 거듭

보스니아는 다른 발칸 국가들과 마찬가지로 숱한 고난을 치러왔다. 서로 언어와 문화, 그리고 종교가 다른 세 개의 종족이 섞여 살게 된 것은 역사적으로 이 지역이 외세의 침략을 받으며 동화와 분열을 거듭했기 때문이다. 보스니아 역사에 관한 비교적 객관적인 서술로 이름을 얻은 노엘 말콤(영국 역사학자)의 ‘보스니아 약사(Bosnia, A Short History, 1994년판)’에 따르면, 고대 시절 지금의 보스니아 지역 주거민들은 코소보와 마찬가지로 알바니아계의 조상이라 일컬어지는 일라이리언(Illyrians)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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