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꼭 열흘 전인 1994년 7월5일 밤 나는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나는 아버지의 영정 앞에 서 있었다.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다른 식구들은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검은 리본이 매어진 아버지 사진 앞에서 나는 “아버지 미안해, 너무 미안해” 하고 통곡하고 있었다. 왜 하필이면 ‘아버지, 미안해’라고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도 항상 내 맘 깊숙이 자리잡고 있던 말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영원히 그렇게, 항상 내 손 닿는 곳에서 나를 지켜보며 계실 줄 알았기에 아버지의 존재를 당연히 여긴 게 너무나 미안하고, 내색은 안 하셔도 성치 못한 딸이 사람 구실 못할까봐 몇십 년을 마음 졸이게 해드린 게 너무나 미안하고, 아버지와 함께 공동 집필이나 번역을 할 때마다 가진 수많은 논쟁들, 걸핏하면 눈살을 찌푸리고, “뭐가 그래 아버지, 안 그렇다구” 하면서 심통부린 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나는 꿈속에서도 눈물을 펑펑 흘리며 울었다.
그러고서 새벽에 깨어보니 정말로 베개가 푹 젖어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개꿈이다, 네가 요새 아버지랑 같이 교과서 쓰면서 매일 세대차 난다고 아버지에게 투정하면서도 속으로는 미안한 생각이 있어 그런 꿈 꾼 거니까 이젠 아버지에게 말할 때 좀 예쁘고 고분고분하게 해라” 하고 무심하게 말씀하셨다.
그러고 나서 꼭 열흘 후인 7월17일 아버지는 친구분과 함께 속초로 피서를 떠났고 수영을 하던 중 심장마비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나는 내 일생 중 꼭 열흘 동안만 아버지에게 고분고분하고, 간혹 존대어를 섞어가며 예쁜 말을 골라 한 ‘착한 딸’이 되었던 것이다.
꿈이 아닌 현실 속의 아버지 영정 앞에서 “아버지, 미안해, 정말 미안해”하고 통곡하며 나는 너무나도 기가 막혔다. 왜 여섯 자식 중에 유독 내 꿈에만 그런 예시가 있었는지, 아마도 하느님이 내게 열흘 동안의 기회를 주신 것인지, 아니면 아버지와 가장 많이 시간을 보낸 자식에게 먼저 이별을 준비시킨 것인지.
아버지가 떠나시고 난 뒤 1주기 추모식에서 아버지와 절친하셨던 동국대학교 명예교수 이창배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장왕록 교수는 집안에선 좋은 가장이었고, 사람들에겐 아주 접근하기 쉬운 친구였고, 대학에선 좋은 교수였습니다. 그를 가까이에서 접한 사람 중 그의 부지런함과 행동의 날렵함에 감명을 받지 않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는 촌시를 아껴 책을 읽고 원고를 썼습니다. 다방에서 친구를 기다리는 동안에도 원고의 교정을 보았고, 상대방과 대면하고 있으면서도 머릿속에선 다음 행동을 설계할 정도로 뛰고 또 뛰는 행동인이었습니다. 장 교수의 아호가 ‘우보(又步)’라는 것을 알고 계시겠지요. 걷고 또 걷는다는 뜻입니다. 본인이 지은 이 자화상의 뜻에 걸맞게 그는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일하기를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번역을 하고, 함께 영어 교과서를 집필하면서 나는 아버지의 ‘일하는 방법’을 전수받았다. 아버지는 그 어떤 학문적 이론보다 더 중요한 나름대로의 ‘장왕록 원칙’을 갖고 계셨다. 싫증이 나서 대충 넘어가려고 하면 아버지는 “독자들이 바보냐? 귀신처럼 좋은 글, 성실한 책 알아보는 게 독자다” 라고 하시면서 몇 번이고 다시 손을 보게 하셨다. 글을 쓸 때마다 아버지는 집요하다고 할 만큼 여러 번 교정을 보시기 때문에 나중에는 원고지에 글자 하나 들어갈 자리가 없을 정도였다. 번역을 할 때도 수십 번씩 교정을 보고 원작자를 찾아다니시면서 ‘독자가 얼마나 무서운데…’의 원칙을 철칙처럼 지키셨다.
‘장왕록 원칙’
아버지에 대한 나의 기억은 몇 가지 두드러진 이미지로 요약된다. 언제나 책상에 앉아 무엇인가 열심히 읽고 쓰시던 모습, 끝없이 선량하고 장난기마저 감도는 웃음띤 얼굴, 전화를 통해 들려오는 낭랑한 목소리, 호리호리한 몸매에 가볍고 빠르게 걸으시던 모습 같은 것들이다. 지금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길에서 손때묻은 책가방을 들고 팔랑팔랑 가볍게 어디론가 바쁘게 걸어가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다.
아버지를 모셔놓은 천안공원묘지 입구에는 아주 커다란 바윗돌에 ‘나 그대 믿고 떠나리’라는 문구가 씌어져 있다. 누가 한 말인지, 어디서 나온 인용인지도 없이 그냥 밑도끝도없이 커다란 검정색 붓글씨체로 그렇게 씌어져 있다. 처음에는 좀 촌스럽고 투박한 말 같았는데, 어느 날 문득 그 말의 의미가 가슴에 와 닿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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