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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의 보복 선언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테러의 심장부인가 민족독립의 횃불인가

  • 글: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피의 보복 선언한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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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마스 조직을 와해시키려 공들여온 이스라엘도 팔레스타인 민중의 높은 지지를 얻고 있는 하마스의 끈질긴 생존력을 인정하고 있다. 이스라엘 정보부 모사드는 하마스 지도부를 잇달아 제거했음에도 하마스가 여전히 이스라엘에 위협적인 존재라고 여긴다.

이름을 밝히지 않은 한 모사드 간부는 이스라엘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하마스는 매우 넓고 깊은 조직기반을 갖고 있다. 지금까지 우리는 효과적으로 하마스 지도력을 제거해왔지만, 그것으로 하마스가 끝장난 것은 아니다”며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하마스 지도자를 제거함으로써 하마스의 힘을 약화시킨 것은 틀림없지만, 하마스는 이러한 ‘일시적’ 어려움을 곧 털어낼 것이란 분석이다.

하마스는 과연 어떤 세력일까. ‘열심’ 또는 ‘열성’이란 뜻의 하마스(Hamas)의 정식 이름은 ‘하라카투 알-무자와마티 알-이슬라미야’이다. 우리 말로 ‘이슬람 저항운동’이란 뜻. 하마스의 정신적 지도자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 란티시를 비롯한 6명의 창립 멤버와 함께 하마스를 조직한 것은 1987년, 팔레스타인인의 1차 인티파다(1987~93)가 벌어진 직후였다.

하마스의 궁극적 목표는 팔레스타인에 이슬람 신성국가 ‘움마(Umma)’를 세우는 것이다. 하마스의 방향과 저항운동의 대의(大義)를 밝힌 헌장 제11조는 ‘어떤 당파도 팔레스타인 땅을 포기할 권리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제13조는 ‘지하드(jihad, 聖戰)야말로 대이스라엘 투쟁의 유일한 해결책이다. 중동평화를 위한 국제회의는 시간낭비이자 어린애 장난’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하마스 헌장은 코란의 문구를 자주 인용하며 서방국가와 유대인에 대한 증오를 강하게 드러내고 있다.

하마스는 정치부문과 군사부문으로 구성된 이원적 조직체계를 갖추고 있다. ‘이즈 알-딘 알-카삼’ 여단이라 불리는 군사부문은 대이스라엘 강경투쟁의 행동대이다. 가자지구 현지에서 만난 하마스 지도자 란티시에 따르면 정치위원회 간부들은 이즈 알-딘 알-카삼 여단의 자살폭탄 공격 세부계획에 개입하지 않는다. 그러나 공격시점을 언제로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정치위원회의 몫이다.



무장활동과 더불어 팔레스타인 빈민을 위한 구호사업과 학교, 병원, 직업훈련소 운영도 하마스의 주요 사업이다. 이러한 사회복지사업을 하마스의 대이스라엘 정치군사 투쟁보다 더 중요한 사업이라고 판단하여 하마스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시각도 있다.

하마스 키운 이스라엘

하마스의 뿌리는 ‘무슬림 형제(Muslim Brotherhood, 이하 MB)’라는 회교운동조직이다. 팔레스타인 MB에 정치색을 입혀 정치 결사(結社)로 조직한 것이 바로 하마스인 것. 그렇다면 MB란 어떠한 조직일까.

인터넷 자료(www.i-cias.com/e.o/-mus_br_egypt.htm)에 따르면 회교도들 사이에서 ‘알-이크완 알-무슬리문’이라 불리는 MB는 하산 알-바나란 인물이 1928년 이집트에서 조직했다. 이슬람 근본주의(fundamentalism)에 바탕, 가난하고 소외된 민중을 위한 회교공동체를 다져나가는 것이 MB의 목표이다. 이후 MB는 이슬람 문명권에서 주요한 사회운동으로 성장해 현재 70여개 나라에서 활동중이다. 이슬람 근본주의라는 강한 정치색 때문에 이집트와 시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탄압과 견제를 받기도 했다.

팔레스타인에 MB가 본격적으로 뿌리내린 것은 1942년 이집트 MB 지도자 하산 알-바나에 의해서였다. 이에 대해서는 다른 해석도 있다. 텔아비브대학 샤울 마이샬 교수와 헤르뷰대학 에이브라함 셀라 교수가 함께 펴낸 하마스에 관한 연구서, ‘팔레스타인 하마스 : 비전, 폭력, 그리고 공존(2000년판, 미 컬럼비아대 출판부)’에 따르면 1930년대 전반 팔레스타인 사회에 MB의 초기적 형태가 나타났다. 그 가운데 하이파 지부를 이끌던 셰이크 이즈 알-딘 알-카삼은 유대인들과 당시 팔레스타인을 다스리던 영국인 관리들을 암살했다. 알-카삼은 이러한 행위를 지하드라 여겼다. 1935년 알-카삼이 영국군과의 총격전에서 피살되자 팔레스타인은 그를 민족적 영웅으로 기렸다(하마스 군사부문이 ‘이즈 알-딘 알-카삼’ 여단이라 불리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967년 6일전쟁 결과 서안지구와 가자지구가 이스라엘군의 무단통치를 받게 된 이후 팔레스타인 MB의 지도자로 떠오른 인물이 바로 셰이크 아흐메드 야신이다. 고향 애쉬켈론(가자지구 북쪽에 가까운 이스라엘 도시)에서 쫓겨나 가자지구 샤티 난민공동수용소에 머물던 야신은 1968년부터 가자지구를 중심으로 MB조직을 키워나갔다. 교사 출신의 야신은 1973년 ‘알-무자마 알-이슬라미(이슬람센터)’를 창립, 교육과 빈민구호활동을 본격화했다. 이때 청소년과 여성이 대거 MB 활동의 일꾼으로 참여했다.

이스라엘 점령당국은 처음에는 야신의 MB를 합법적 조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곧 아라파트가 이끄는 정치조직이자 팔레스타인 저항세력의 구심점인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에 맞서 이슬람의 종교적 색채가 강한 야신의 MB를 키움으로써 팔레스타인 사회를 분열시키겠다는 책략을 꾸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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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재명 분쟁지역전문기자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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