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6월호

國富 유출, 산업공동화가 한국경제 살린다

상식과 편견 뛰어넘는 파격의 경제학

  • 글: 최용식 21세기경제학연구소장 ecnms21@yahoo.co.kr, www.taeri.org

    입력2004-05-31 15:4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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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은 빈부격차가 심하지 않은 나라다. 지표경기는 좋은데 체감경기가 나쁜 것은 자연스런 현상이다. 산업공동화는 수출을 증가시킨다. 환율이 떨어져도 수출은 늘어난다. 우리 경제는 ‘고용 있는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 하나같이 어리둥절한 얘기들이다. 당신의 고정관념을 깨는 새로운 시각의 경제 읽기.
    國富 유출, 산업공동화가 한국경제 살린다
    경제전문가처럼 행복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경제문제에 관한 한 절대적인 권위가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감히 시비를 걸지 못한다. 정치, 사회, 문화, 교육 등 다른 사회현안에 대해서는 전문가 뺨칠 정도로 높은 식견을 내보이는, 그래서 말싸움에서 결코 양보하는 법이 없는 사람들조차 예외가 아니다. 경제문제가 대두하면 주위에 혹시 경제전문가가 있는지부터 살핀다. 경제전문가가 눈에 띄면 당연히 발언순서를 그에게 양보한다. 경제문제의 영역은 전적으로 경제전문가에게만 맡겨져 있는 꼴이다.

    그렇다면 경제전문가의 말은 모두 진리이고 사실일까. 그 동안 사회현안으로 떠올랐던 몇 가지 문제를 살펴보면 우리가 경제전문가의 견해를 얼마나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왔던가를 쉽게 알 수 있다. 지금껏 경제상식처럼 당연하게 여겨져온 문제들을 제대로 해부해봄으로써 경제문제에 접근하는 우리의 자세를 가다듬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하다.

    국민 다수는 빈부격차가 심하다고 생각한다. 경제전문가들이 빈부격차 문제를 사회현안으로 끊임없이 등장시켰기에 민초들은 그렇게 믿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사실일까. 이 문제를 따지기 전에 명심해야 할 점이 하나 있다. 이 세상은 신들이 사는 곳이 아니라 인간들이 사는 곳이라는 사실이다. 따라서 절대적인 평가는 의미가 없으며, 반드시 상대적으로 평가해야 한다.

    이해하기 쉽게 비유를 들어보자. 시험점수가 70점이라면 높은 점수일까, 낮은 점수일까. 초등학생이 대학시험을 치러 얻은 점수라면 기적적인 점수라고 칭송해야 하고, 대학생이 초등학교 시험을 치러 이런 점수를 받았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빈부격차 문제 역시 비교를 통해 평가해야 한다. 다른 나라에 비해 빈부격차가 심하다면 당연히 큰 문제라고 지적해야 한다. 또한 빈부격차가 계속 심화되는 추세라면 온 국민이 걱정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빈부격차는 다른 나라에 비해 어느 정도로 심각할까. 과거에 비해서는 개선되고 있을까, 아니면 악화되고 있을까. 세계적으로 흔히 사용하는 소득 5분위배율(소득 하위 20%에 대한 상위 20%의 배율)을 보면 우리나라는 약 5.2배이다. 쉽게 말해서 잘사는 사람들의 소득이 못사는 사람들의 소득보다 5배 남짓 더 많다는 것이다. 이런 정도면 빈부격차가 심각한 편이라고 해야 할까.



    일반적으로 선진국으로 갈수록 소득격차가 작은 편이고 후진국으로 갈수록 소득격차가 큰 편인데, 우리나라는 선진국 모임이라는 OECD 국가들 중에서도 중상위권에 속한다. 국민소득 1만2000달러인 한국이 국민소득 2만5000달러를 넘나드는 나라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라면 빈부격차가 작은 편이라고 해야 한다. 독일을 비롯한 서유럽 일부 국가들과 일본의 빈부격차는 우리나라보다 작지만, 선진국 가운데 영국은 소득 5분위배율이 6배가 훨씬 넘고 미국은 9배에 가깝다. 개발도상국인 칠레는 17배, 브라질은 25배가 넘는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마저 8배에 육박하는데, 이것도 동부 연안의 잘사는 대도시만의 통계다.

    더구나 우리 경제는 환란이라는 중병을 앓는 과정에서 빈부격차가 잠시 악화된 적이 있지만, 지금은 매년 조금씩이나마 완화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빈부격차 문제를 이대로 방치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빈부격차가 심각하면 경제가 안정적으로 성장할 수 없다. 소득이 많은 사람들은 소비성향이 낮은 편이다. 예를 들어 월소득이 500만원을 넘는 사람들은 소비가 소득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빈부격차가 벌어지면 소비성향이 낮아지고, 이렇게 되면 유효수요가 부족해져 아무리 많이 생산해도 팔리지 않는 일이 벌어질 수 있다. 우리 경제가 오랜 세월 동안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지속해왔던 것도 빈부격차 문제가 1970년대 이래 꾸준히 개선되어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빈부격차를 좁혀서 고도성장을 달성하려는 정책을 선택할 수는 없다. 역사적 경험으로 볼 때 이런 정책을 선택한 나라들은 한결같이 경제가 정체되어 큰 어려움을 겪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제를 장기간 안정적으로 성장시킬 때 빈부격차는 개선되는 경향이 있다. 그래야 실업률이 떨어지고 임금상승률도 높아지면서 빈부격차가 줄어들기 때문이다. 실(絲)은 앞에서 끌어야지, 뒤에서 밀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의 이치가 여기에도 적용된다.

    지표경기와 체감경기

    ‘지표경기는 좋다는데 체감경기는 여전히 꽁꽁 얼어붙어 있다’는 따위로 체감경기 타령을 하는 것은 경제학을 떠나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납득하기 어렵다. 체감경기와 지표경기는 당연히 시차(時差)를 보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물건을 만져서 뜨겁다고 느꼈다면 이미 화상을 입은 다음이다. 화상을 입지 않기 위해서는 온도계가 필요하다. 경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가파르게 상승할 때 이 사실을 모르고 경기부양책을 쓰면 경기가 과열되어 심각한 경제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정책실패를 피하려면 경기의 흐름을 조금이라도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그래서 개발한 것이 경제지표다. 즉우리가 체감하는 것보다 조금이라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경기흐름을 읽어내게 해주는 것이 경제지표다. 그러므로 체감경기와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훌륭한 경제지표라고 해야 한다. 체감경기 타령을 하는 것은 이런 훌륭한 경제지표를 비난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이런 자세가 경기의 흐름을 제대로 읽어내지 못하게 한다는 데 있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제전문가들이 경기흐름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경제에서 경기흐름을 미리 내다보는 것처럼 중요한 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경기가 나빠질 것 같으면 씀씀이를 줄여야 하고 부채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새로운 사업은 되도록 벌이지 말아야 한다. 특히 기업은 망하지 않기 위해 현금을 충분히 확보하고 군살을 빼는 등 미리 대비해야 한다. 반면에 경기가 상승할 것 같으면 새로운 사업을 시도하거나 신규 투자를 적극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럴 때 투자를 하지 않으면 경쟁업체에 뒤질 수밖에 없고, 결국은 도태당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경기의 흐름은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미래의 일이야 신의 영역이라 쳐도 현재의 흐름이나마 정확하게 읽어내는 방법은 없을까. 경제전문가가 아닌 일반인도 현재의 경기흐름을 비교적 정확하게 읽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간단하다. 경기가 상승하는가 혹은 하강하는가를 호조인가 혹은 부진인가와 구분할 줄만 알면 현재의 흐름은 쉽게 읽힌다.

    비유를 들어보자. 지하 7층에서 지하 1층으로 옮겨갔다면 여전히 낮은 층에 머물러 있지만 올라간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낮은 층에서 올라갔지만 높은 층에서 올라간 것과 마찬가지로 숨이 가쁘다. 반면에 지상 10층에서 7층으로 옮겨갔다면 여전히 높은 층에 있지만 내려간 것이 사실이며, 이런 경우에 그 속도가 너무 빠르면 자칫 추락할 수도 있다.

    상승·하강 vs 호조·부진

    경기의 흐름은 바로 이렇게 읽어야 한다. 경기가 당장 부진하더라도 상승하고 있으면 조만간 경기가 호조를 보일 것이라고 봐야 하며, 경기가 당장 호조를 보이더라도 하강하고 있으면 조만간 부진해질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다. 경기흐름에 대처하는 자세도 마찬가지다. 경기가 부진하더라도 빠르게 상승하면 과속을 걱정해야 하고, 경기가 호조를 보이더라도 빠르게 하강하면 추락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한다.

    그러면 경기가 호조·부진인가와 상승·하강인가를 어떻게 알아낼 수 있을까. 경기가 호조냐 부진이냐는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나타내는 ‘전년동기대비 성장률’로 알 수 있다. 또한 경기가 상승하는지 하강하는지는 바로 앞 분기에 비해서 얼마나 성장했는가를 나타내는 ‘전기대비 성장률’로 알 수 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면 당신은 최고의 경기진단 전문가라고 자부해도 좋다. 국내 경제전문가들은 이런 사실을 몰랐던 나머지 외환위기 이듬해인 1998년 성장률 전망치를 13% 안팎이나 잘못 짚었다. 세계적인 경제연구소들조차 1999년 성장률 전망치를 10% 이상 틀리게 내놓았다.

    환란 후에 경기부침이 심해진 것도 경제전문가와 정책당국이 경기흐름을 잘못 읽었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가령 1999년과 2000년에는 경기가 비교적 호조를 보였지만, 2001년에는 성장률이 3.8%에 불과할 정도로 경기가 부진해졌고, 2002년에는 다시 경기가 급상승했으나 2003년에는 두 분기나 마이너스 성장률을 기록할 만큼 빠르게 하강했다.

    그런데 정책당국은 경기가 상승할 때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 재정지출을 늘렸고, 이것으로도 모자라 중앙은행이 금리를 인하함으로써 경기를 더욱 과열시켰다. 경기과열은 곧바로 경기하강을 불러왔다. 당국은 정작 경기가 하강할 때는 팔짱을 끼고 있다가 경기가 부진해진 다음에야 부랴부랴 경기부양책을 펴곤 했는데, 이때는 이미 경기가 다시 빠르게 상승하고 있었다. 그러니 경기의 부침이 잦고 극심했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다. 경기는 전기대비 성장률로 읽어야 하고, 경기가 호조이더라도 급하게 하강할 때는 경기를 부양해야 하며, 경기가 부진하더라도 빠르게 상승할 때는 경기를 진정시킬 필요가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산업공동화의 혜택

    국권을 침탈당한 적이 있는 우리 국민은 국부(國富)유출을 예민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나라의 부가 몽땅 외국인에게 넘어간다는데 좋아할 국민이 어디 있겠는가. 조금이라도 애국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국부유출에 대해 거부반응을 나타내는 것이 당연하다. 그렇지만 이것은 국가경제를 망칠 수도 있는 아주 위험한 발상이다.

    국부유출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외국자본 유치’다. 외국자본을 들여와 우리나라에서 사업을 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그런데 세계경제를 한번 둘러보라. 번영을 구가하는 나라들은 한결같이 외국자본 유치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땅을 공짜로 제공하고 세금을 감면해주는 것은 물론, 종잣돈을 지원하는 나라까지 등장하고 있다. 외자유치에 성공해 경제번영을 누리고 있는 아일랜드의 사례를 보자.

    아일랜드는 700년 넘게 영국의 식민지 수탈에 허덕이느라 자본을 축적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박탈당했다. 국토는 좁고 거칠며 자원은 빈약하다. 교육수준도 비교적 낮고 인구도 적어서 시장도 좁았다. 그래서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1인당 국민소득이 8000달러를 겨우 넘는, 유럽 변방의 가난한 나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은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훌쩍 넘어서면서 종주국이던 영국마저 추월했다.

    어떻게 이런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게 된 것일까. 그 해답은 국부유출에서 찾을 수 있다. 국부유출이 기적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國富 유출, 산업공동화가 한국경제 살린다

    중국으로 이전한 우리 제조업체들은 부품과 소재는 물론 기계까지 국내에서 수입하고 있어 대(對)중국 수출을 오히려 증가시키고 있다.

    일반적으로 기업은 세금을 낸 후의 순이익이 총매출액의 3%만 넘어도 우량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순이익 중 투자자에게 배당되는 몫은 3분의 1도 안 되는 게 보통이다. 예컨대 외국인이 전액을 투자한 기업이라고 해도 매출액의 1%도 안 되는 금액이 외국인의 수중으로 들어갈 뿐이다. 그렇지만 부가가치는 매출액의 40% 안팎에 달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다시 말해서 외국인 투자자는 1%도 안 되는 수익을 가져가면서 수십 배 또는 백수십 배의 국부를 창출해 국내에 남겨주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 데도 우리는 외국인 투자를 국부유출이라고 비난하고 걱정해왔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이 지금과 같은 번영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던 것도 국부유출 때문이며, 베트남 역시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열심히 국부유출을 위해 노력함으로써 경제가 비약적으로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되새겨야 할 것이다.

    무릇 세상일이란 부분만 보면 중대한 착각을 하기 쉽다. 아무리 미인이라도 약점만 꼬집어낸다면 그녀를 보지 못한 사람에게 추녀로 인식시키는 일은 어렵지 않다. 이른바 산업공동화(空洞化) 현상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공장들이 해외, 특히 중국으로 이전되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렇지만 해외로 이전하는 공장만 봐서는 사태의 전모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해외 이전으로 산업공동화가 초래됐다면 수출은 줄고 수입은 늘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로는 이와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나라 수출은 지난해에 무려 20% 가까이 증가했다. 여기에서 굳이 ‘무려’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이런 높은 실적을 기록한 경우가 1980년 이래 여섯 차례밖에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올해 1분기까지 수출증가율은 40%에 육박했는데, 이처럼 높은 실적은 지난 4반세기 동안 한번도 없었다.

    그렇다면 한번 따져보자. 우리가 수출하는 제품은 국내 공장에서 생산한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란 말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공장들이 몽땅 중국으로 옮겨간다고 아우성인 데도 중국에 대한 수출증가율이 지난해 50%에 육박했고, 올해에는 이미 50%를 훌쩍 넘어섰다는 사실이다. 더욱이 대(對)중국 수출이 이렇게 급증한 것은 중국으로 이전한 공장들이 부품과 소재는 물론이고 기계까지 우리나라에서 수입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래도 산업공동화 현상이 벌어진다고 떠들어서 국민을 걱정시켜야 할까.

    GDP의 미학

    지금 사회주의는 세계적으로 변신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국가 전체가 사회주의 노선을 걸었던 러시아나 중국은 물론 서유럽의 진보적인 정당들도 마찬가지다. 요즘 진보정당들은 1960년대에 보수정당들이 내세운 것보다 훨씬 더 우경화한 경제정책을 선택하고 있다. 지난해 독일의 사민당이 ‘어젠더 2020’을 선언한 것은 대표적인 사례다. 성장률은 떨어지고 실업률이 높아지는 등 국가경제가 어려워지면서 이런 변신을 가져왔다.

    그런데 유독 우리나라에서만 진보적인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을 뿐 아니라 국민적 설득력까지 얻어가고 있다. 이런 외침 가운데 대표적인 것을 꼽자면 ‘국민소득은 늘어난다지만 서민들의 삶은 좋아진 것이 없다’거나 ‘경제성장의 몫을 누리는 것은 부자들뿐이다’ 등이다.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어떤 문제든 간에 뒤집어보면 의외로 쉽게 해답이 찾아지는 수가 있으니 이 문제도 한번 뒤집어서 생각해보자. 국민소득이 늘어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국가경제는 침체의 길로 들어설 수밖에 없다. 이 경우 누가 가장 큰 피해를 당할까. 국가경제가 어려워지면 기업 가운데서도 영세기업부터 무너지고, 실업자 또한 못사는 사람 중에서 나오게 마련이다. 국민소득이 늘지 않으면 민초들의 삶은 더욱 고달파지는 것이다. 이래도 좋다는 것일까.

    국민소득이 늘거나 경제가 성장을 지속하면 최소한 민초들의 삶이 더 고단해지지는 않는다. 나아가 경제가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늘어나야 민초의 몫도 커질 수 있고, 서민을 위한 사회복지비 지출도 늘어날 수 있다. 이런 의미에서 ‘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는 우리 당대에 반드시 달성해야 할 국가적 과제다. 누가 이것을 제안했는가와는 상관없이.

    이 문제와 관련해 조금 전문적인 접근을 해보자. 진보적인 경제학자들은 “국내총생산(GDP)이 국민의 후생복지 척도를 대변하지 못한다”고 끊임없이 비판해왔다. 소득이 늘어나도 삶의 질은 나아질 게 없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이렇듯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주장하는 근거로 그들은 ‘시장에서 거래되지 않는 생산물은 통계에 잡히지 않는다’ ‘지하경제에서 거래되는 것은 통계에 들어가지 못한다’ ‘국내총생산에는 여가(餘暇)가 없다’ ‘국내총생산은 환경파괴 등의 부작용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국내총생산 수준이 후생복지 수준과는 반대로 가는 사례가 수없이 많다’는 것 등을 내세운다.

    하지만 국내총생산을 후생복지의 척도로만 인식하는 것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국내총생산 개념은 국민의 복지수준을 재는 척도 이상의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이는 가격이 가치를 반영하지 못하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한 예로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어린이에게 필요한 식량은 애완용 개를 위한 사료보다 훨씬 귀중하다. 그러나 애완용 개를 위한 사료가 기아에 허덕이는 어린이에게 필요한 식량보다 훨씬 비싼 가격에 팔리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럼에도 가격의 한계나 불합리성을 지적하는 경제학자는 없다. 가격은 가치의 절대적 척도로서가 아니라 거래 비율로서의 기능만을 갖기 때문이다. 즉 가격은 어떤 재화를 얼마나 생산하고 소비할 것인가를 알려주는 신호등 노릇을 하는 것만으로도 그 기능을 다하는 것이다.

    국내총생산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그것이 복지수준을 정확하게 대변하지 못한다고 해서 그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다. 국내총생산은 여러 가지 면에서 중요한 경제적 기능을 갖고 있다. 경기흐름 등 경제상황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며, 이 정보를 바탕으로 경기대책 등 경제정책을 수립할 수 있게 해준다.

    실제로 국내총생산 통계가 편제된 이후에 경제의 호황과 불황의 폭이 훨씬 작아졌다고 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1932년에는 국내총생산이 무려 13%나 감소했는데, 최근 50년 동안에는 최악이라던 1981∼82년에도 1.9% 감소한 데 불과했다고 한다. 즉, 국내총생산 통계가 개발되어 경제정책에 이용된 뒤에는 과거와 같은 큰 폭의 경기순환은 사라졌으며 예금인출사태, 금융공황, 오래 지속되는 경기침체, 장기 실업사태 등도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미국의 데일리 전 상무장관은 국내총생산 통계를 ‘20세기 최고의 발명품’이라고 일컬었다.

    ‘고용 있는 성장’

    지난해 경제분야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는 ‘고용 없는 성장’이었다. 그만큼 이 문제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뜨거웠다. 경제전문가들은 “과거와 달리 지금은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이 늘지 않는다”고 줄기차게 외쳤고, 일반 국민들도 이제는 이런 주장을 실감나게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여기에 청년실업의 심각성이 가세하면서 더욱 호소력을 키웠다. 주변을 둘러보면 이것이 틀림없는 사실처럼 보인다.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나 20대 태반이 백수라는 ‘이태백’ 같은 유행어가 이런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과연 진실일까. 부분적으로 보면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모든 일은 균형감각을 가지고 전체적으로 접근해서 살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통계를 통해 확인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새롭게 사회에 진출하는 청년들을 취업시키기 위해서는 경제가 어느 정도 성장해야 한다. 이것을 ‘기초성장률’이라고 하는데, 그동안 우리나라의 기초성장률은 5% 정도인 것으로 추정돼왔다. 즉 성장률이 최소한 5%는 넘어야 실업률이 늘어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2001년에는 3.8%, 그리고 지난해에는 3.1%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최근 들어 두 해나 기초성장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한 셈인데, 그렇다면 실업률도 당연히 높아졌어야 한다.

    실제로도 그랬을까. 2001년에는 기초성장률보다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실업률은 3.8%를 기록하여 2000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지난해에는 2002년보다 실업률이 조금 상승해 3.4%를 기록했지만 이것마저 세계적으로는 낮은 수준에 속한다.

    어떤 사람들은 통계청이 발표하는 통계조차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유엔이나 IMF, OECD 등은 이를 그들의 통계집에 그대로 싣는다. 권위 있는 국제기구들은 우리나라 통계를 신뢰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 경제는 ‘고용 없는 성장’을 한 것이 아니라, 과거와는 다르게 성장률이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고용 있는 성장’을 했다고 보아야 한다.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한 것은 사실이다. 사회에 막 진출한 청년들이 일할 기회조차 얻지 못한다면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그렇지만 청년실업률은 환란 직후에 최고 수준을 기록한 뒤 계속 낮아져왔고, 지난해 하반기에만 약간 올라갔을 뿐이다. 따라서 청년실업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등장시키려면 매우 심각하던 때에 해야 했으며, 지금은 점차 개선되고 있으므로 이 문제를 제기할 시점이 아니다.

    또한 청년실업으로 고통을 겪는 청년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하듯이 경제전문가들은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수출기업과 중소기업 등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실업이 심각하겠지만, 국가경제적으로는 인력난이 더 심각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사실 청년실업은 고학력자의 문제, 눈높이의 문제일 뿐인지도 모른다. 눈높이를 낮추고 창의적인 눈으로 찾아보면 일자리는 주변에 널려 있는 것이 현실이다.

    國富 유출, 산업공동화가 한국경제 살린다

    개인적으로는 청년실업이 심각하겠지만, 국가경제적으로는 인력난이 더 심각한 문제다. 취업박람회의 입사지원서 교부창구.

    우리나라 환율은 매년 지속적으로 떨어지고 있다. 연평균 환율은 2001년에 1달러당 1291원이던 것이 2002년에는 1251원으로 떨어졌고, 지난해에는 다시 1192원으로 떨어졌으며, 지금은 1150원 밑으로 떨어져 있다. 앞으로도 이런 추세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국제수지가 매년 대규모 흑자를 기록하고 있으며, 외환보유고도 세계 4위를 기록할 정도로 많은 데다 외국인 투자도 대체적으로 증가하고 있어서 환율은 계속 떨어질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그런데 환율하락으로 수출전선에 비상등이 켜졌다고 여기저기서 아우성이다. 환율이 떨어졌다는 것은 원화가치가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고, 원화가치가 올랐다는 것은 수출가격이 올랐다는 것을 의미하며, 수출가격이 오르면 수출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경제전문가들은 걱정한다.

    그럴듯한 얘기지만 실제로도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을까. 통계를 들여다보면 정반대의 사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즉 환율이 떨어지면 수출은 오히려 증가하고, 환율이 오르면 수출은 오히려 줄어드는 것이 요즘 사정인 것이다. 환율이 떨어진 1999년과 2000년, 그리고 2002년과 2003년에는 수출이 큰 폭으로 증가했지만, 환율이 14%나 올랐던 2001년에는 수출이 12.7%나 감소했다.

    왜 이렇게 되는 것일까. 수출가격은 오르는데 수출금액이 오히려 늘어나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 전문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나라 수출의 가격탄력성이 낮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서 수출가격이 올라도 해외시장의 판매량이 줄어들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이와 유사한 사례는 우리 주변에서도 흔하게 찾아볼 수 있다. 가격을 올리면 판매가 오히려 증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품질이 그만큼 좋아졌을 것이라고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우리나라 수출품도 과거처럼 중저가품이 아니라 고가품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현대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도 ‘고가화 전략’의 영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일렉트로닉스 등이 제품에 따라서는 일본의 유명회사 제품보다 더 높은 가격을 붙이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한 사실이다.

    중국이 우리 경제에 위협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모르는 국민은 이제 거의 없다. 실제로 중국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으며, 언젠가는 우리 경제를 추월할지도 모른다. 설령 이런 사태가 벌어지더라도 그것은 먼 훗날의 일일 뿐이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1만2000달러이고 중국은 약 1000달러로 우리가 중국보다 10배 이상 많다. 중국이 지금의 속도로 계속 성장하고 우리는 전혀 성장하지 않는다고 해도 중국이 우리를 추월하려면 최소한 25년 이상 걸린다. 만약 우리가 연 5% 안팎만 성장한다면 그 기간은 더욱 길어져서 앞으로 50년 이상은 걸려야 한다. 더욱이 앞서나간 다른 나라에 견줘볼 때 중국 경제가 장차 어느 수준에 이르면 성장률은 점차 낮아질 수밖에 없다.

    뒤를 보고 달려서야

    사정이 이런데 우리나라는 왜 중국을돌아보면서 두려움에 떨어야 할까. 뒤에 처져서 따라오는 나라를 볼 게 아니라 우리보다 앞선 나라들을 쳐다보면서 달려가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

    우리가 나아갈 길에는 선진국들이 있다. 그 중에서도 일본은 우리가 반드시 극복해야 할 나라다. 일본을 따라잡아야 치욕적인 역사의 굴레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있고, 드디어 선진국에 들어섰다고 자부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일본을 따라잡는 데는 얼마나 걸릴까. 일본의 1인당 국민소득은 약 3만3000달러이므로 우리가 연 6%씩 성장하고 일본이 전혀 성장하지 않더라도 20년은 걸려야 한다. 그렇다면 일본을 따라잡는 게 당분간은 불가능하다고 봐야 할까.

    그렇지 않다. 원화가치가 상승하면 그 기간을 대폭 단축할 수 있다. 환율을 매년 6%씩만 떨어뜨리면 설령 일본이 연 3%씩 성장하더라도 앞으로 12∼13년 안에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 실제로 이런 일을 해낸 나라가 있다. 앞에서 언급한 아일랜드다. 이 나라는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훌쩍 넘어섬으로써 종주국이던 영국을 추월했으며, 그래서 진정한 독립을 이룩했다고 온 국민이 기뻐했다. 아일랜드가 해냈다면 우리라고 못해낼 이유가 없다. 뒤만 돌아보고 불안에 떨 것이 아니라 온 국민이 힘을 합쳐 앞을 보고 달려간다면 10년 안에도 얼마든지 일본을 따라잡을 수 있다. 이것이 바람직한 자세가 아닐까.

    경제전문가들은 우리 경제를 ‘개방형 소규모 경제’라고 부르곤 한다. 그러나 이것은 겸손을 지나 자기비하가 너무 심하다고 해야 할 정도다. 우리나라는 지난해 국내총생산이 약 5700억달러에 달해 세계 10위권에 드는 경제대국으로 올라섰기 때문이다. 지구상에는 200개가 넘는 나라가 존재하므로 이 정도면 ‘경제대국’이라고 불러도 크게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10조달러가 넘는 미국이나 4조달러에 이르는 일본과 비교하면 작은 규모인 것은 사실이다. 전통적인 경제강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은 물론이고 인구 13억의 중국도 1조달러를 넘는다.

    그러나 인구 10억의 인도와 비슷한 수준이고, 1억이 넘는 멕시코와 2억에 육박하는 브라질, 그리고 선진국인 캐나다와 스페인 등의 국내총생산도 우리나라보다 약간 더 많거나 비슷하다. 우리의 경제규모는 한때 초강대국이었고 인구도 1억8000만에 달하는 러시아보다 약 1.5배나 더 크다. 경제규모로 따지면 우리도 이제는 충분히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무엇보다 자랑스러워할 일은 36년간이나 식민지배 아래 수탈을 당했고 남북이 분열되어 전쟁까지 치르면서 산업기반이 초토화된 상태였음에도 현재의 위치까지 올라섰다는 점이다. ‘한강의 기적’이라는 세계인의 찬사는 결코 우연히 주어진 것이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했으니 그 찬사는 너무나 당연했다.

    불과 5년 전에는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치욕적인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지만, 1년여 만에 환란을 극복함으로써 세계를 또 한번 깜짝 놀라게 했다. 환란은 좀처럼 치유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후유증과 부작용도 커서 장기간 지속된다는 경제학계의 통설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것이다.

    1980년대 이후만 보더라도 100개가 훨씬 넘는 나라들이 IMF 구제금융을 받았는데, 그 규모가 10억달러를 넘은 경우에는 한결같이 외환위기가 두 번 이상 반복됐다. 특히 중남미 여러 나라에는 수십 년 동안 외환위기가 간헐적으로 이어지면서 아직도 극심한 경제적 고통을 겪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무려 580억달러에 이르는 구제금융을 받아야 했을 만큼 심각한 수준의 외환위기를 겪었지만, 이제는 거의 완벽하게 극복했다. 이런 저력을 잘 살려낸다면 머지 않아 ‘G7’ 또는 ‘G8’이라고 불리는 세계 경제대국 모임에도 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비관이 국가경제 위협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사회적 의제들은 한결같이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는 특성을 안고 있다. 세상에는 어두운 면이 있으면 반드시 밝은 면도 있게 마련인데, 경제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낙관적이고 호의적인 사회적 의제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고 해야 할 정도다. 우리나라 경제전문가들은 모든 일을 왜 이처럼 부정적이고 비관적으로만 보려고 할까.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지 경제전문가들을 붙잡고 한번 물어보고 싶은 심정이다.

    게다가 경제란 비관적이고 부정적으로 보면 장래마저 어두워지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그 심정은 더욱 절박하다. 실제로 성장률이 7%만 돼도 괄목할 성적으로 평가하겠다던 2000년에는 8.5%나 성장했음에도 각종 대란설, 위기설, 파국설 등이 횡행하면서 연말에 경기가 추락하는 일이 벌어졌다.

    경기회복이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던 2002년에도 7.0%라는 비교적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지만, 가계부채 및 신용불량자 문제와 국제경제의 침체 가능성 등이 국가경제에 심각한 타격을 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경제전문가들 사이에서 대두했고 국민들도 그렇게 믿으면서 지난해 상반기에는 두 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주식시장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훨씬 더 심각하다. 경제전문가들은 우리나라 주식시장이 외국인의 배만 불리고 있다고 외친다. 이 소리를 들은 민초들은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다. 언론은 우리나라 10대 재벌의 주식을 외국인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고도 전하고, 외국인이 주식시장에서 벌어들인 돈이 하늘 높은 줄 모르게 치솟고 있다고도 전한다. 물론 이런 보도는 모두 사실이다. 그런데 이런 사태를 불러온 원인에 대해서는 어떤 경제전문가도 언급하지 않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원인을 제대로 알아야 근원적인 대책을 세울 터인데,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무엇이 외국인들로 하여금 우리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벌게 했을까. 이유는 딱 하나다. 외국인은 오직 통계만을 분석해서 투자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통계를 분석해본 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과 국제경쟁력이 뛰어나고, 기업도 마찬가지며, 환율은 장차 떨어질 수밖에 없어서 환차익까지 얻을 수 있다고 봤던 것이다.

    그러나 내국인은 경제전문가들의 목소리에 먼저 귀기울였으며, 그래서 우리 경제의 장래가 비관적이고 부정적이라고 믿었다. 그 바람에 내국인은 주식을 헐값으로 팔아치우기에 바빴고, 외국인은 그만큼 싸게 우리 주식을 살 수 있었다. 그렇다면 외국인이 우리 주식시장에서 큰돈을 번 것에 배아파할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를 비관적, 부정적이라고 믿도록 한 경제전문가들을 우선 비판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흔히 ‘경제’라는 단어만 나와도 고개를 돌려버린다. ‘경제학’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우선 머리부터 내젓고 본다. 경제학이든 경제문제든 어렵고 골치 아프다는 것이다. 신문을 보더라도 경제 기사는 온통 모르는 용어로 가득 차 있다. 전문가쯤 되면 일반인은 도대체 알아들을 수 없는 용어와 해괴한 기호가 들어 있는 거창한 수식을 들고 나선다. 이런 것들은 외계인의 언어나 마찬가지여서 알아듣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러니 어느 누가 경제와 쉽게 친해질 수 있겠는가.

    이래서는 안 된다. 경제문제는 쉬워야 한다. 경제학도 쉬워야 한다. 실제로 경제원리는 아주 쉽다. 대표적인 것만 들어보자. 살 사람이 더 많아지면 가격은 오르고, 팔 사람이 더 많아지면 가격은 내린다. 아무리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도 귀하면 가격이 높아지고, 아무리 쓸모가 많더라도 흔하면 가격은 낮아진다. 또한 수요가 늘면 경기가 살아나고 투자가 늘면 경기는 급상승한다. 이것으로서 경제학이 가르치는 가격이론이나 소득이론은 모두 배웠다. 최소한 실생활에 필요한 경제 상식은 이 정도면 충분하다. 얼마나 쉬운가. 오직 학교에서 가르치는 경제학만 어려울 따름이다.

    경제학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 문자를 깨우친 국민이라면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수리경제학과 같은 특별한 학습과정을 여러 해 배우지 않더라도 정성을 다해 접근하면 누구나 충분히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전문가는 여기에 도움을 주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야 한다. 경제문제처럼 우리 실생활과 밀접한 것이 또 어디 있으며, 국가의 장래에 경제문제처럼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얼마나 되는가.

    그러므로 경제학은 무조건 쉬워야 한다. 누구나 일상생활에 필요한 실질적인 도움을 경제학에서 받을 수 있어야 하고, 중요한 경제정책을 선택함에 있어서도 국민이라면 누구나 한마디쯤 거들 수 있어야 한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이 경제전문가를 무작정 믿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를 알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국가경제의 문제를 경제전문가에게만 맡겨둬선 안 된다. 민초들이 스스로 직접 경제문제에 접근해야 한다. 경제문제는 국민 모두의 문제이고 국가 장래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을 어떻게 소수의 경제전문가에게만 맡겨둘 수 있겠는가. 이 나라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는데 말이다.



    이제 국민이 나서야 할 때이다. 어렵다고 외면해서는 안 된다. 사실 경제학처럼 쉬운 학문도 드물다. 쉽다고 생각하면 한없이 쉽다. 다만 반드시 통계지표를 통해 확인하는 습관을 길러야 하고, 원인과 결과를 구분하는 노력을 끈질기게 기울여야 하며, 이를 위한 수련이 다소 필요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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