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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 ⑥

前衛에 선 신세대 무협작가들

서술 실험으로 영웅주의 뛰어넘다

  • 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 junaura@snu.ac.kr

前衛에 선 신세대 무협작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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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습과 권위에 맞서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는 전위 정신을 무협소설에도 적용할 수 있을까. 새로운 서술형식을 도입해 영웅주의에 물든 무협소설의 한계를 뛰어넘으려는 신세대 작가 3인방을 통해 한국 무협소설의 전위정신을 살펴본다.
前衛에 선 신세대 무협작가들
지금까지 서효원, 야설록, 용대운, 좌백, 진산 등 5명의 작가에 대해 살펴보았다. 한국 무협소설 작가를 모두 아우르려면 적어도 풍종호(風從虎), 설봉(雪峰), 장경(長鯨), 백야(白夜) 의 작품세계를 살펴봐야 하지만 이번 호에서 ‘한국 무협소설 명인열전’의 연재를 마무리해야 하므로 이들에 대한 검토는 다른 기회로 미룬다. 이번에는 한국 무협소설의 전위(前衛)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 전위를 살펴보는 일은 앞날에 대한 전망을 가능하게 할 것이므로.

전위란 프랑스어 아방가르드(avant-garde)의 한자 번역어이다. 아방가르드란 본디 20세기 초에 등장한 표현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문예사조 개념이다. 그러나 그 의미가 확장되어 인습적인 권위와 전통에 반항하고 혁명적인 방식으로 새로운 예술을 개척하려는 예술정신 일반을 뜻하기도 한다. 이 글에서 말하려는 전위란 바로 후자의 의미에서의 전위이다. 이렇게 말하는 순간 당장 다음과 같은 반문이 예상된다.

“전위는 예술에 대한 것인데 무협소설은 예술이 아니니 전위를 무협소설에 적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아닌가?”

과연 무협소설은 예술이 아닐까. 나는 무협소설 중에서도 예술과 만나는 예외적 작품이 얼마든지 있다고 생각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은 나중으로 미루고 전위란 단어가 꼭 예술에 한정돼야 하는가 하는 문제부터 따져보자.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일단 무협소설에서 전위가 어떻게 가능한지부터 이야기해보자.

유형 벗어난 새로운 모티프 창출



고급문학과 대중문학의 차이로 흔히 고급문학이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데 비해 대중문학은 유형화되어 있다는 점을 지적한다. 중국의 비평가 마오스안(毛時安)의 요령 있는 설명을 빌리자면, 대중문학의 유형화는 우선 모티프의 유형화에서 시작된다. 그런데 이 모티프의 유형화는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다(만약 유형화가 고정된 것이라면 대중문학은 금세 독자를 잃고 말 것이다). 대중문학에서 유형화된 모티프의 원형은 부단한 재생성(再生性)을 가지고 끊임없이 변화한다. 모티프들의 주기적인 전환과 교체, 장르에 따른 모티프 원형의 다양한 변형, 형식의 가변성, 이데올로기의 영향 등이 그 변화의 원인이다.

그 다음으로 스토리 모델의 일반성을 지적한다. 스토리는 대중문학의 가장 기본적인 감상 층위인데, 대중문학의 여러 스토리는 하나의 스토리 모델을 공유한다. 이러한 공유는 여러 작가 사이에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 작가의 여러 작품 사이에서도 나타난다. 자기만의 스토리 모델을 만드는 일은 대중문학 작가로서 성공하느냐 못하느냐에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당연히 이는 작가들의 주된 관심사이다.

반면 고급문학은 모티프의 유형화를 벗어나 자신만의 독창적이고 개성적인 모티프를 창조해내기 위한 개별 작가의 부단한 노력을 그 특징으로 삼는다. 물론 완벽한 의미에서의 독창성과 개성이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독창성과 개성을 추구하는 것 자체가 중요함은 더 말할 나위가 없다. 한편 고급문학은 스토리 모델을 중시하지 않으며, 오히려 스토리 모델의 일반성을 벗어나고자 한다. 고급문학이 중시하는 것은 스토리 자체가 아니라 스토리를 서술하는 방식이다. 고급문학 작품은 그 하나하나가 유일무이한 텍스트가 되고자 한다.

내가 말하려는 무협소설의 전위는 유형을 벗어난 새로운 모티프 창출과 스토리 서술방식 추구라는 두 가지 계기에서 발견된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의 ‘신무협’은 기본적으로 이 두 가지 계기에 대한 의식적 탐색 위에 생성되었다. 이미 살펴본 좌백과 진산, 그리고 풍종호, 설봉, 장경, 백야가 모두 그러하다.

그러나 ‘신무협’이라는 사조가 시간이 흐를수록 확산되자, 여기에도 나름대로의 유형화 기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에 예술가적 태도를 지닌 무협작가들은 이 새로운 유형을 극복하기 위해 각자 나름대로 고민하는 모습을 역력히 드러낸다. 이러한 고민은 새로 글을 쓰기 시작한 신인작가들에게 더욱 크게 나타나거니와 그들 중에는 특히 실험적 색채가 짙은 경우가 적지 않다.

여기서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신인들의 실험, 그 중에서도 서술 실험이다. 사례로 택한 작품은 백야의 ‘취생몽사(醉生夢死)’, 문재천(文在天)의 ‘환검미인(幻劍迷人)’, 장상수(張尙洙)의 ‘삼우인기담(三愚人奇談)’세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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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전형준 서울대 교수·중국문학 junaur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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