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헌법안 통과시킨 유럽연합의 앞날

외교·안보·국방은 거부권 행사 가능… 요원한 연방국가의 꿈

  • 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anpye@hanmail.net

    입력2004-07-29 15: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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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17일에 열린 EU정상회담에서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 신설, 중요정책에 대해 다수결 원칙 채택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안이 통과됐다. 이 헌법안이 각 회원국에서 비준되거나 국민투표로 통과된다면 EU는 국제무대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헌법안 통과시킨 유럽연합의 앞날

    헌법안을 통과시킨 EU 25개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1973년 10월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과 당시 유럽공동체(EC) 회원국들은 대(對)이스라엘 정책과 관련해 심각하게 대립했다.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는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반(反)이스라엘 진영이 맞섰다. 역사적 업보로 인해 이스라엘 비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서독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당시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중동전쟁에 대해 유럽공동체 회원국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유럽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유럽 외무장관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은 EC 회원국과 개별 접촉, 적절한 분리지배 정책을 취하면서 친이스라엘 정책을 주도해나갔다. 따라서 당시 키신저의 이 말은 다분히 수사적인 면을 띠고 있다.

    이제 미국은 유럽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전화를 걸어 대화할 수 있는 유럽연합(EU) 외무장관을 몇 년 안에 맞이하게 된다. 지난 6월17일부터 이틀 동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정상회담에서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을 신설하고 중요정책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안이 통과됐기 때문. 이미 영국과 덴마크 등 회원국의 3분의 1이 이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했다.

    EU통합사(史)에서 역사적인 이정표라 불리는 이 헌법안이 각 회원국 의회에서 비준되거나 국민투표로 통과된다면 EU는 국제무대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명실상부한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이라크전쟁을 두고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해 ‘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 군사 무지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EU. 25개 회원국을 거느린 EU는 과연 이 헌법안 채택 이후 순항할 것인가. 헌법안의 주요내용을 분석하면서 질문의 답을 찾아가보자.

    EU는 아직 연방국가가 아니다. 25개 회원국이 주권을 공유하며 경제와 통상 등 한 나라가 다루기 힘든 공동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다. 하지만 유엔과는 달리 EU는 회원국의 일부 주권을 넘겨받아 행사한다는 면에서 한 단계 앞선 초국가기구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단일통화 유로를 발행하고 이자율을 결정한다. 통상협상과 농업정책도 EU집행위원회가 권한을 행사한다.

    이번에 채택된 헌법안의 정식명칭은 헌법조약(Constitutional Treaty·이하 헌법안)이다. 회원국끼리 체결한 조약이기 때문. 이번 헌법안이 이전 조약과 다른 점은 한 국가의 헌법처럼 관련 규정을 구비했다는 것이다. 인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규정을 두었으며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권한, 각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이사회, 유럽의회 등 행정부, 입법부 기능을 갖는 EU기구의 권한을 명시했다. 이제까지 이 조항들은 각 조약에 흩어져 있었다.



    헌법안을 마련한 유럽미래회의(상자기사 참조)는 국제무대에서 EU의 역할을 검토, 보고해달라는 회원국 수뇌들의 요구를 받았다. 난해하게만 보이는 EU의 역할을 시민에게 보다 잘 알리자는 취지에서였다. 지난해 6월 헌법안이 보고된 후 회원국 대표들이 모여 협상을 벌였다. 헌법안 자체가 기존의 조약을 가다듬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 신설을 규정하는 등 새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회원국 대표들이 1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지난 6월 헌법안이 타결됐다.

    2년6개월 임기의 EU 대통령

    우선 EU 대통령을 살펴보자. EU정상회담은 각 회원국 정부와 국가수반이 모여 주요 정책의 지침과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다. 보통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이제까지 EU정상회담의 의장과 각료이사회(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기구) 의장은 회원국이 6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맡았다. 이러다 보니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국제무대에서 EU 대표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또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이 의장을 맡았을 때와 그밖의 나라에서 의장을 맡았을 때 업무추진능력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헌법안은 EU정상회담의 상임의장을 임명할 것을 규정했다. 정식명칭으로 유럽정상회담의 상임의장이지만 통칭 EU 대통령으로 불린다. 각 회원국 수반들이 선출하는 상임의장은 임기 2년6개월에 연임이 가능하다. EU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주재하고 준비하며 공동외교안보정책(CFSP·Common Foreign and Secu- rity Policy)에 있어 EU의 입장을 대변한다. 한 인물이 최소한 2년6개월 동안 EU를 대표하므로 EU의 대표성과 정체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번 EU정상회담에선 헌법안이 2006년 말까지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 또는 국민투표 통과를 거쳐 확정 발효되도록 한다는 일정을 잡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속단하기 힘들지만 초대 EU 대통령으로 언론의 하마평에 오른 사람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다. 대통령직을 신설하자는 제안이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나온 데다가 회원국들 사이에 대통령이 주요국에서 나와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기 때문이다.

    문제는 프랑스이다. 지난 6월 차기 집행위원회 위원장 선출을 놓고 영국이 제안한 크리스 패튼 대외담당 집행위원을 프랑스가 거부하자, 영국도 프랑스가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제안한 프랑스의 외무장관을 거부했다. 이렇듯 두 나라는 앙숙관계다. 이라크전쟁 때도 영국은 친미진영, 프랑스는 반미진영의 선봉에 서서 격돌한 바 있다. EU집행위원회에서의 주도권 싸움 역시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토니 블레어 총리는 내년에 치러질 영국 총선 결과에 따라 계속 총리로 남아 있을지, 사퇴하게 될지 결정날 것이다.

    EU 외무장관은 EU의 개발원조 업무와 공동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게 된다. 집행위원회 대외담당위원과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가 분담해온 업무를 한 사람이 담당해 업무의 효율성이 높아지고 외교분야에서 EU의 역할이 커질 것으로 예상될 수 있다. 또 외무장관은 각 회원국 외무장관 모임인 각료이사회를 주재하고 공동외교안보정책을 집행하게 된다.

    EU 외무장관은 하비에르 솔라나?

    이제까지 EU의 외교는 EU집행위원회 대외담당 집행위원이 대외원조를 맡고, 그밖의 주요 국제문제는 공동외교안보담당 고위대표(통칭 Mr. Europe, 현재 하비에르 솔라나)가 맡았다. 경제와 통상은 집행위원회가 회원국으로부터 권한을 넘겨받아 행사해왔다. 즉 EU 예산으로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정책은 집행위원회 대외담당 집행위원이 관장했던 것. 단 공동외교안보정책 결정에선 각 회원국이 독자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음을 인정해왔다. 이러다 보니 개발원조와 공동외교안보정책의 일관성이 문제로 제기되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를 지원하는 데 있어 공동외교안보정책을 담당하는 부서에서는 선(先)인권개선을 요구한 반면 대외담당 집행위원은 선(先)인도적 지원을 강조해 갈등을 빚기도 했다.

    이번 헌법안 논의과정에서 외교, 국방, 안보 분야에도 다수결 원칙을 도입하자는 안이 제시됐지만 영국 등 일부국가의 거센 반발로 이 분야는 회원국의 고유 권한으로 남게 됐다. 국가 주권의 핵심을 이루는 외교나 국방·안보 분야 사안이 다수결로 채택될 경우 연방국가로 가는 길이 앞당겨지겠지만 이에 대한 합의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헌법안은 대신 외교정책의 주요 도구인 예산을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EU 외무장관이 개발원조와 공동외교안보정책을 함께 관장하도록 했다. 개발원조 업무가 집행위원회 고유 권한인 만큼 EU 외무장관은 집행위원회 부위원장 역할도 겸임하도록 규정했다. 이 업무를 수행할 때는 집행위원회의 규정에 따라야 한다.

    현재 EU는 전세계에 대표부를 두고 있다. 미국 국무부는 워싱턴 주재 EU대표부를 중국, 러시아대사관과 마찬가지로 1급 외교공관으로 분류하고 있다. EU의 위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초대 EU 외무장관은 각 국에 나가 있는 EU대표부도 지휘하게 된다.

    EU 대통령과 마찬가지로 누가 초대 EU 외무장관이 될지 아직은 속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지난 6월말 AP통신은 현재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직을 맡고 있는 하비에르 솔라나를 유력한 후보로 지목했다. 그는 1997년 암스테르담조약 이후 신설된 공동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에 임명되어 활발한 활동을 전개해왔을 뿐 아니라 나토 사무총장도 역임해 미국과의 관계에도 큰 무리가 없는 인물이다. 이라크전쟁이 발발하자 EU의 독자적인 중동평화안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해관계 따라 분열과 대립

    회원국간 협상에서 가장 논란이 됐던부분은 주요 정책을 어떤 방식으로 결정하느냐는 문제였다. 한 회원국이 한 표를 행사하는 것과 회원국의 인구수에 따라 투표권을 차등 부여하는(가중다수결) 두 가지 안을 놓고 논란이 벌어졌던 것. 지난해 12월 폴란드와 스페인이 자국의 가중투표권 삭감에 반발, 헌법안 협상이 타결되지 못한 적이 있다. 결국 인구와 회원국 수를 포함하는 이중다수결이 채택됐다.

    내용을 보면 중요 정책과 규정의 채택은 전체 4억5000만 인구의 65%와 25개 회원국 가운데 15개국 이상이 지지해야 한다. 또 전체 인구의 35%, 4개국 이상의 동의로 의제 채택을 반대할 수 있다. EU는 당초 인구 60%, 회원국 수의 50% 이상이 찬성할 때 가결한다는 초안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안은 몇몇 강대국이 담합해 주요 의제를 결정할 수 있다며 폴란드와 스페인 등 중간 규모 국가들과 약소국들이 반발해 무산됐다. 이번에 결정된 새 규정은 2009년 11월부터 적용된다.

    그동안 내무와 경찰, 사법 분야에서도 거부권 행사가 인정됐으나 각 국이 이민과 난민정책에서 공동정책을 실시하기로 합의, 이 분야도 다수결로 정하게 됐다. 헌법안은 그 외에 모두 50개 항목에서 거부권을 없애고 다수결을 도입했다. 그러나 외교, 안보, 국방, 세제(稅制)와 사회복지 분야는 여전히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다.

    시장의 기능을 강조하는 영국식 자본주의와 달리 복지측면을 강조하는 사회시장경제를 추구하는 독일은 EU 차원의 사회복지 정책을 강조해왔다. 독일뿐 아니라 프랑스, 베네룩스 3국도 사회복지 분야에서의 다수결 도입을 밀어붙였으나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일부 국가의 반발로 무위에 그쳤다. 유럽 제일의 금융서비스 중심지인 영국이 세제 분야의 다수결 도입에 반대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 분야에 다수결이 도입될 경우 금융서비스 경쟁력의 원천인 낮은 법인세율을 포기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헌법안 통과시킨 유럽연합의 앞날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며 국익을 추구하려는 영국과 유일한 초강대국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 EU를 활용하려는 프랑스. 상반된 목적을 가진 두 나라가 국가의 핵심주권인 외교, 안보, 국방 분야에서 거부권을 포기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따라서 이라크전쟁처럼 회원국들의 이해가 달린 국제문제가 발생할 경우, 분열과 대립이 나타날 것은 불 보듯 뻔하다. EU의 대통령과 외무장관도 회원국이 거부권을 행사하는 외교정책에 대해서는 강제권을 행사할 수 없기 때문. 단일화폐인 유로화 도입으로 경제분야의 통합은 가속화됐지만 외교, 국방 분야는 여전히 개별 국가의 권한으로 남아 있다. 이것이 바로 EU의 현주소며 진정한 EU통합은 요원함을 잘 말해준다.

    현재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한 회원국은 영국과 아일랜드, 덴마크, 포르투갈,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벨기에, 체코 등 8개국. 경제가 어려운 데다가 자국의 정치기구는 물론 EU기구에 대한 불신이 심한 유럽 각 국에서 과연 헌법안이 무난히 국민투표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1992년 6월 덴마크 국민은 국민투표에서 1.4% 차이로 유럽연합조약(일명 마스트리히조약)을 부결시켰다. 결국 덴마크에서 마스트리히조약은 단일화폐 유로와 공동외교안보정책에서의 탈퇴가 허용된 후 다음해 다시 치른 국민투표에서 통과됐다. 이번에 타결된 헌법안도 이와 비슷한 경로를 밟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가장 큰 난관은 영국에서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블레어의 승부수

    지난 5월말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EU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발표했다. 그러자 영국 언론은 노동당 정부가 EU라는 함정을 내년 봄으로 예정된 총선 이후로 교묘히 피한 뒤 집권 8년 동안 이뤄놓은 교육과 의료보험 서비스 개선을 집중 부각, 총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블레어가 띄운 승부수라고 분석했다. 즉 야당인 보수당이 유럽의 초국가기구가 영국의 주권을 찬탈하고 있다고 집중 비난하며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쳐야 한다고 요구하자, 이 문제가 총선이슈로 비화하는 것을 막기 위해 내놓은 고육책이라는 것. 그러나 블레어는 총선 승리를 위해 유럽이라는 더 큰 혹덩어리를 스스로 키우고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차대전 이후 거대한 제국을 잃고 1973년 뒤늦게 유럽공동체에 가입한 영국은 유럽통합에 대해 실용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다. 독일이나 프랑스, 베네룩스 3국이 다시는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고 평화롭게 살기 위해 유럽통합을 추진했다면 영국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기 위해 유럽공동체에 가입했다. 하지만 유럽통합이 진전될수록 자랑스런 영국의 역사가 끝나며, 미국과의 특별한 관계를 위해서도 유럽통합에 적극적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현재 영국사회에 팽배해 있다. 이런 생각은 설문조사 결과에 잘 드러난다. 지난 6월 헌법안이 타결된 직후 실시된 설문조사에서 조사대상자의 49%가 ‘헌법안에 반대한다’고 대답했다. 찬성하는 사람은 4분의 1에 불과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은 유럽통합을 반대하는 언론재벌 루퍼트 머독이 대주주로 있는 ‘더 선’과 여타 타블로이드 신문들이 너무나 잘못된 정보를 국민에게 주입시켰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대다수 영국인은 헌법안이 통과되면 EU 집행위원회가 영국의 조세를 인상하며, 영국 여권이 EU 여권으로 대체된다는 등의 근거 없는 지식을 가지게 됐다. 지난 6월 열린 유럽의회 선거에서 EU 탈퇴를 강령으로 내세운 영국독립당이 전체 의석의 15%인 12석을 얻은 것은 현재 영국내 EU에 대한 반감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블레어가 총선에서 이기기 위해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회부한 것에 대해서는 많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유럽개혁연구소 찰스 그랜트 소장은 “블레어가 총선 승리라는 단기적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럽이라는 매우 민감한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려 한다. 만약 국민투표에서 헌법안이 거부될 경우 영국은 EU의 주변국으로 전락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지만 블레어는 EU 헌법이 영국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국민에게 이성적으로 설득하면 국민투표에서 무난히 통과할 수 있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국민투표 시기는 내년 봄 총선이 끝나고 1년 안, 즉 2006년 봄 이전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헌법안이 국민투표에서 부결된다면 영국뿐 아니라 EU 전체에도 큰 짐이 될 것이다.

    1992년 덴마크 국민투표에서 유럽연합조약이 부결되자 당시 존 메이저 총리가 이끄는 영국 보수당은 조약의 의회비준을 두고 당이 분열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보수당은 야당인 노동당보다 의석 수에서 겨우 22석이 많아 비준을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존 메이저는 이 조약을 의회에서 통과시키기 위해 반대하는 의원은 출당하겠다고 위협하는 동시에 찬성하면 내각자리를 주겠다고 하는 등 채찍과 당근전략을 함께 구사했다. 하지만 비준이 거부됐다. 결국 메이저 총리가 이 문제를 자신의 신임과 연계, 재비준에 부치고 나서야 유럽연합조약이 통과됐다.

    당시 이 문제를 두고 영국 의회는 1년 넘게 매달렸다. 당시 악몽 같았던 상황을 기억하는 영국의 친유럽연합 지식인과 의원은 이번 헌법안 처리과정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여당인 노동당에도 유럽통합에 반대하는 의원이 꽤 있다. 이들은 벌써 ‘유럽의 초국가기구에 반대하는 노동당’이라는 원내모임을 조직, 헌법안에 반대하는 시민단체 등과 연계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멀고 먼 통합의 길

    오랫동안 동서로 분열되어 있던 유럽은 1990년 철의 장막이 붕괴된 후 통합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5월에는 40년 넘게 공산독재 치하에서 고통을 겪었던 체코, 폴란드, 헝가리,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발트 3개국 등이 EU 회원국이 됐다. 명실공히 EU는 25개 회원국에 인구 4억5000만인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다.



    하지만 내부 응집력과 화합을 이루기까지는 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 예로 리투아니아의 1인당 국민총생산은 8400달러인 반면 룩셈부르크는 4만8900달러다(CIA 월드팩트북, 2002년 말 기준. 구매력 평가 기준). 이처럼 회원국 가운데 부국과 빈국의 격차가 6배나 된다. 또 신규 회원국이 된 10개 나라가 EU기구에 적응하고 제대로 활동하려면 최소 3∼4년은 걸릴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EU 헌법안이 통과되어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이 선출되면 EU의 대표성과 업무효율성은 한층 높아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외교, 안보, 국방 분야에 관해선 여전히 회원국의 거부권 행사가 가능하기 때문에 과연 EU가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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