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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안 통과시킨 유럽연합의 앞날

외교·안보·국방은 거부권 행사 가능… 요원한 연방국가의 꿈

  • 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anpye@hanmail.net

헌법안 통과시킨 유럽연합의 앞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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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난 6월17일에 열린 EU정상회담에서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 신설, 중요정책에 대해 다수결 원칙 채택 등을 골자로 하는 헌법안이 통과됐다. 이 헌법안이 각 회원국에서 비준되거나 국민투표로 통과된다면 EU는 국제무대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헌법안 통과시킨 유럽연합의 앞날

헌법안을 통과시킨 EU 25개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위해 한 자리에 모여 있다.

1973년 10월 중동전쟁이 발발했을 때 미국과 당시 유럽공동체(EC) 회원국들은 대(對)이스라엘 정책과 관련해 심각하게 대립했다. 친(親)이스라엘 정책을 취하는 미국과 프랑스가 주도하는 반(反)이스라엘 진영이 맞섰다. 역사적 업보로 인해 이스라엘 비판에 소극적일 수밖에 없었던 서독은 중립적인 입장을 취했다. 당시 미국의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은 “중동전쟁에 대해 유럽공동체 회원국들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 문제에 대해 유럽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도 유럽 외무장관이 없다”고 말했다. 물론 미국은 EC 회원국과 개별 접촉, 적절한 분리지배 정책을 취하면서 친이스라엘 정책을 주도해나갔다. 따라서 당시 키신저의 이 말은 다분히 수사적인 면을 띠고 있다.

이제 미국은 유럽의 목소리를 듣고 싶으면 전화를 걸어 대화할 수 있는 유럽연합(EU) 외무장관을 몇 년 안에 맞이하게 된다. 지난 6월17일부터 이틀 동안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EU정상회담에서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을 신설하고 중요정책은 다수결 원칙에 따라 결정한다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헌법안이 통과됐기 때문. 이미 영국과 덴마크 등 회원국의 3분의 1이 이 헌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선언했다.

EU통합사(史)에서 역사적인 이정표라 불리는 이 헌법안이 각 회원국 의회에서 비준되거나 국민투표로 통과된다면 EU는 국제무대에서 경제력에 걸맞은 명실상부한 정치력을 행사할 수 있을까. 이라크전쟁을 두고 이해관계에 따라 분열해 ‘경제 거인, 정치 난쟁이, 군사 무지렁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은 EU. 25개 회원국을 거느린 EU는 과연 이 헌법안 채택 이후 순항할 것인가. 헌법안의 주요내용을 분석하면서 질문의 답을 찾아가보자.

EU는 아직 연방국가가 아니다. 25개 회원국이 주권을 공유하며 경제와 통상 등 한 나라가 다루기 힘든 공동문제를 다루는 국제기구다. 하지만 유엔과는 달리 EU는 회원국의 일부 주권을 넘겨받아 행사한다는 면에서 한 단계 앞선 초국가기구다. 유럽중앙은행(ECB)이 단일통화 유로를 발행하고 이자율을 결정한다. 통상협상과 농업정책도 EU집행위원회가 권한을 행사한다.

이번에 채택된 헌법안의 정식명칭은 헌법조약(Constitutional Treaty·이하 헌법안)이다. 회원국끼리 체결한 조약이기 때문. 이번 헌법안이 이전 조약과 다른 점은 한 국가의 헌법처럼 관련 규정을 구비했다는 것이다. 인권과 행복추구권 등 기본권 규정을 두었으며 행정부 역할을 하는 집행위원회의 권한, 각 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 정책을 결정하는 각료이사회, 유럽의회 등 행정부, 입법부 기능을 갖는 EU기구의 권한을 명시했다. 이제까지 이 조항들은 각 조약에 흩어져 있었다.



헌법안을 마련한 유럽미래회의(상자기사 참조)는 국제무대에서 EU의 역할을 검토, 보고해달라는 회원국 수뇌들의 요구를 받았다. 난해하게만 보이는 EU의 역할을 시민에게 보다 잘 알리자는 취지에서였다. 지난해 6월 헌법안이 보고된 후 회원국 대표들이 모여 협상을 벌였다. 헌법안 자체가 기존의 조약을 가다듬어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EU 대통령과 외무장관직 신설을 규정하는 등 새로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었다. 회원국 대표들이 1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지난 6월 헌법안이 타결됐다.

2년6개월 임기의 EU 대통령

우선 EU 대통령을 살펴보자. EU정상회담은 각 회원국 정부와 국가수반이 모여 주요 정책의 지침과 방향을 결정하는 기구다. 보통 1년에 두 차례 열린다. 이제까지 EU정상회담의 의장과 각료이사회(회원국 장관들이 모여 주요정책을 결정하는 기구) 의장은 회원국이 6개월에 한 번씩 돌아가면서 맡았다. 이러다 보니 업무 연속성이 떨어지고 국제무대에서 EU 대표가 누구인지조차 제대로 알려지지 못했다. 또 영국이나 독일, 프랑스 등 주요국이 의장을 맡았을 때와 그밖의 나라에서 의장을 맡았을 때 업무추진능력에 차이가 나타나기도 했다.

이런 문제를 없애기 위해 헌법안은 EU정상회담의 상임의장을 임명할 것을 규정했다. 정식명칭으로 유럽정상회담의 상임의장이지만 통칭 EU 대통령으로 불린다. 각 회원국 수반들이 선출하는 상임의장은 임기 2년6개월에 연임이 가능하다. EU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주재하고 준비하며 공동외교안보정책(CFSP·Common Foreign and Secu- rity Policy)에 있어 EU의 입장을 대변한다. 한 인물이 최소한 2년6개월 동안 EU를 대표하므로 EU의 대표성과 정체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번 EU정상회담에선 헌법안이 2006년 말까지 각 회원국 의회의 비준 또는 국민투표 통과를 거쳐 확정 발효되도록 한다는 일정을 잡았다.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아 속단하기 힘들지만 초대 EU 대통령으로 언론의 하마평에 오른 사람은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다. 대통령직을 신설하자는 제안이 영국과 독일을 중심으로 나온 데다가 회원국들 사이에 대통령이 주요국에서 나와야 한다는 암묵적인 합의가 이뤄진 상태기 때문이다.

문제는 프랑스이다. 지난 6월 차기 집행위원회 위원장 선출을 놓고 영국이 제안한 크리스 패튼 대외담당 집행위원을 프랑스가 거부하자, 영국도 프랑스가 차기 집행위원장으로 제안한 프랑스의 외무장관을 거부했다. 이렇듯 두 나라는 앙숙관계다. 이라크전쟁 때도 영국은 친미진영, 프랑스는 반미진영의 선봉에 서서 격돌한 바 있다. EU집행위원회에서의 주도권 싸움 역시 그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토니 블레어 총리는 내년에 치러질 영국 총선 결과에 따라 계속 총리로 남아 있을지, 사퇴하게 될지 결정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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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안병억 영국 케임브리지대 박사과정·유럽통합 전공 anpy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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