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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초우량기업을 찾아서 ⑥

볼보자동차|‘안전 신화’로 일군 名車의 전통

  • 글: 유영을 동아일보 신동아 부장 youngeul@donga.com

볼보자동차|‘안전 신화’로 일군 名車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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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튼튼하고 안전한 차.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불리는 볼보차의 트레이드 마크다. 안전에 관한 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을 갖고 있는 볼보차는 환경문제에도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세계의 명차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볼보차의 저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스웨덴 예테보리의 볼보차 공장을 찾아 그 힘의 근원을 알아보았다.
볼보자동차|‘안전 신화’로 일군  名車의 전통

① 금년 3월 제네바 모토쇼에 출품해 좋은 반응을 얻은 컨셉트카. ② 볼보차의 첨단기술을 집약해 제작한 S80. ③ 세계적으로 SUV가 인기를 끌고 있다. 출시된 이후 매출이 급신장하고 있는 XC90. ④ 날렵한 외관이 일품인 P121. 1958년 출시되었다.

공장같지 않은 공장. 스웨덴 제2의 도시 예테보리에 있는 볼보자동차 투슐란다 공장의 첫인상이다.투슐란다 공장은 곳곳이 숲으로 조성돼 있고 건물은 깔끔하기 그지없다. 자동차 공장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쇳조각이나 철근도 아무렇게 나뒹굴지 않는다. 조립라인의 소음만 아니라면 대학 캠퍼스로 착각할 정도다.

이처럼 외관상으로는 한산해 보이지만 볼보자동차의 최근 성장세는 눈부시다. 2003년의 경우 매출이 10% 늘었으며, 금년 상반기에는 23만여대가 팔려 11%의 신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전세계 자동차시장이 거의 포화상태에 이른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과다. 볼보차의 대약진 비결은 무엇일까. 철저한 품질 관리, 끊임없는 기술개발을 통해 안전하고 편안한 차를 만들어낸다는 점을 첫손 꼽을 수 있다.

‘스웨덴의 자존심’

볼보차는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1924년 경제학자 아서 가브리엘손과 베어링 회사 엔지니어 구스타프 라르손이 의기투합해 만든 볼보차는 세계 굴지의 자동차메이커 중에서도 오래된 역사를 자랑한다.

볼보차의 첫 모델은 일명 야곱으로 불린 OV4로 창립 3년 만인 1927년 출시되었다. 야곱은 4기통 엔진으로 정상주행속도가 시속 60km. 요즘의 자동차와 비교하면 ‘장난감’ 수준에 불과하지만 당시로서는 경이적인 속도였다. 1929년에는 6기통 PV651을 개발해 처음으로 해외수출을 했으며, 1935년에는 요즈음 차량처럼 사면이 막히고 짐칸이 장착된 유선형의 PV36을 출시해 선풍적인 인기를 얻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볼보차는 군용차량 생산에 주력하는 한편 ‘스웨덴의 미인’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디자인이 아름다운 소형차 PV444를 개발하여 성장의 계기를 마련했다.



볼보차가 명차의 반열에 오를 수 있었던 비결은 뭐니뭐니해도 안전성이다. 안전을 주요한 마케팅 전략으로 활용해온 데다 각종 테스트에서도 볼보차의 안전성이 여실히 입증되었기 때문이다.

볼보차는 창립 초기부터 안전을 핵심적인 기업 이념으로 설정해왔는데 이는 스웨덴의 기후조건과 무관치 않다. 스웨덴은 북반구에 속하는 나라여서 여름이 짧고 겨울이 길다. 10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눈이 내린다. 폭설은 다반사다. 날씨가 추워 도로가 얼어붙기 일쑤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차의 안전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볼보차 광고 중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차량을 7대 겹쳐 쌓아놓은 광고다. 차 6대가 내리누르고 있음에도 맨 아래에 있는 차는 끄떡없다. 그만큼 강한 차라는 이미지를 심어준다. 이렇듯 볼보차는 안전성을 내세워 세계시장을 공략했다.

“볼보가 포드 만들기 원치 않아”

볼보자동차|‘안전 신화’로 일군  名車의 전통

볼보차의 효시 V4. 일명 야곱으로 불리는 이 차는 창립 3년 만인 1927년 제작되었다.

볼보차는 ‘스웨덴의 자존심’으로 불린다. 그만큼 스웨덴 국민에게 사랑받는 기업이다. 그런 볼보차도 90년대 들어 거세게 밀어닥치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인수·합병 바람을 피해갈 수는 없었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해짐에 따라 브랜드 파워가 약하거나 규모가 작은 자동차 회사들은 포드, GM 등 메이저 기업들의 사냥감이 될 수밖에 없었다.

잘 나가던 볼보차도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 볼보차는 1990년 합병을 목적으로 프랑스의 르노와 제휴했다. 그러나 3년 만인 1993년 합병은 물거품이 됐다.

독자 생존을 모색하던 볼보차는 마침내 1999년 3월 포드에 인수되었다. 승용차를 비롯해 트럭, 건설기계 등을 생산하던 볼보그룹이 볼보차만을 떼어내 포드에 매각키로 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볼보차의 발전을 위해서였다.

당시 볼보차는 흑자 경영을 했고 스웨덴 내에서도 매각 반대 여론이 높았다. 하지만 연간 생산능력이 40여만대 수준이어서 갈수록 치열해지는 글로벌 경쟁에서 살아남기 쉽지 않았다. 막대한 자금을 투입해 규모를 키워야 생존할텐데 당시 볼보그룹으로서는 그럴 만한 여력이 없었다고 한다.

볼보그룹은 승용차 부문을 매각하는 대신 나머지 부문에 역량을 집중키로 했다. 1998년에는 삼성중공업에서 건설장비부문을 사들였고, 2001년에는 미국의 맥트럭과 프랑스의 르노트럭을 인수했다. 그 결과 볼보그룹의 트럭 부문은 세계 3위로 뛰어올랐다. 볼보차는 세계 자동차시장의 ‘빅 브라더’인 포드의 그늘 밑에서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볼보차를 포드에 매각함으로써 그룹도 살고 볼보차도 사는 ‘윈-윈 전략’을 선택한 볼보그룹의 계산은 아직까진 적중하고 있는 셈이다.

포드에 인수당했지만 볼보차는 거의 완벽하게 독립경영을 한다. 포드사 경영진은 볼보차에 단 한 명도 없다. 포드는 대주주로서의 권한을 행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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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유영을 동아일보 신동아 부장 younge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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