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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의봉의 종횡무진 中國탐험 ⑧

홍성범(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박사와 함께 파헤치는 중국 과학기술의 전모

튼튼한 기초과학, 무서운 핵기술·우주과학, 일취월장 첨단산업기술

  • 대담·황의봉 동아일보 출판국 부국장·전 베이징특파원 heb8610@donga.com

홍성범(한중과학기술협력센터장) 박사와 함께 파헤치는 중국 과학기술의 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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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기초과학이 일찍부터 발달한 데에는 어떤 배경이 있을까요.

“대부분의 사회주의 체제 국가에선 대학이 분야별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중국의 예를 보면 석유대학, 화공대학, 항천항공대학 등이 대표적인 경우입니다. 따라서 구체적이고 세분화된 전공영역을 일생 동안 꾸준히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 있는 셈입니다. 그러나 중국 기초과학의 강점은 사회주의 체제보다는 청조(淸朝)말 이후 문호개방에 따른 해외유학 및 1949년 중공 성립 이후 유학파의 대거 귀국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1921년 플랑크 상수(Planck 常數) 측정에 참가한 예치쑨(葉企遜), 1920년 콤프턴(Compton, 192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효과의 실험 합작자 우유쉰(吳有訓), 1928년 미국에서 소행성을 발견한 장위저(張鈺哲), 1932년 미국에서 정부(正負)전자띠의 인위 복사(輻射)현상을 발견한 자오중야오(趙忠堯), 양자역학자인 하이젠베르크(Heisenberg)와 합작하여 많은 논문을 발표한 왕푸산(王福山), 아인슈타인의 제자인 양자역학자 저우페이위안(周培源), 유전학자 모건(Morgan)의 제자인 탄자정(談家禎), 퀴리 부인의 제자인 첸싼챵(錢三强), NASA의 J.P.L 소장을 역임한 공기동력학자 첸쉐썬(錢學森), 양자역학 창시자인 보어(Bohr)의 제자 장중환(張宗緩) 등이 해외유학을 통해 성장한 과학자들입니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과 함께 해외에서 학자들이 대거 귀국하게 되는데, 1952년까지 약 2000여명의 저명한 학자가 미국에서 중국으로 돌아왔습니다. 그중에는 핵물리 실험설비와 전자 기기를 자비로 구입하여 귀국한 자오중야오 같은 사람도 있었지요. 1952~57년에는 1000여명의 학자가 추가로 귀국해, 중국의 기초과학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되었는데요. 이 시기에 귀국한 대표적인 학자가 나중에 중국 미사일의 대부로 불리게 된 첸쉐썬입니다. 해외의 과학자들이 귀국한 것과 더불어 중국 정부가 건국 후 약 2만명에 달하는 유학생을 국비로 소련에 파견한 것도 기초과학의 토대를 쌓는 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이때의 유학생 중에서 세계적인 저온물리학자 관웨이탄(管惟潭)과 공제론(控制論)의 대가로 나중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주임을 역임한 쑹젠(宋健) 등이 배출되었습니다.”

-중국 학생들의 수학실력이 높다는 말을 많이 들었습니다만, 중국인이 태생적으로 과학분야에 소질이 뛰어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과학에 소질도 있고 관심도 많은 것 같아요. 한 가지 예를 들어보지요. 칭화대 컴퓨터공학과에 입학한 한 시골 출신의 중국학생이 처음으로 컴퓨터 자판기를 만져 보았다고 합니다. 이 학생은 컴퓨터를 잘 다루는 한국 유학생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는데, 1학년 말이 되면서 상황이 역전되었다고 합니다. 그만큼 타고난 소질이 돋보였다는 것이지요. 요즘 중국 청소년들에게 장래 희망하는 직업을 물어보면 1위가 바로 과학자입니다.”

-중국의 초중고 학교교육이나 입시 등에서 기초과학분야와 관련된 어떤 특징적인 측면이 있습니까.

“전반적으로 초중고의 실험실습 기자재는 연해의 도시지역을 제외하고는 아주 낙후한 형편입니다. 그래서 자연히 이론에 치중하게 되는데, 그 결과 수학적 사고가 발달하게 된다는 겁니다. 관심있게 보아야 할 점은 오히려 대학입학 후 어떻게 공부하느냐는 점입니다. 대학생들의 공부량이 우리와 비교해볼 때 월등하게 많아요. 중국의 대학 바깥에는 사이언스 파크가 있고, 한국의 대학 바깥에는 술집과 당구장이 있더라는 비판을 새겨볼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 과학기술의 역사적인 전통에도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종이의 발명이나 인쇄술처럼 널리 알려진 것말고도 과거의 중국 과학기술력을 말해주는 역사적 사례로는 어떤 것이 있나요.

“17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근대과학은 중국의 과학, 기술, 의학 발전을 토대로 했다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2항계수의 배열, 지리식물학과 토양학의 창시, 종두의 발견, 나침반 등이 모두 중국의 작품입니다. 이밖에 태양흑점(기원전 4세기), 혈액순환, 내분비학(기원전 2세기), 십진법(기원전 14세기)도 중국에서 발견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방·우주분야의 눈부신 발전

중국 과학기술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 해도 국방·우주분야다. 일찍이 핵무기를 만들었고, 최근엔 유인우주선까지 쏘아 올리는 것을 보면 이 분야는 확실히 세계적 수준에 도달해 있다. 중국은 어떻게 핵강국·우주강국이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어떤 인물들이 활약했을까.

-중국은 1956년에 이미 핵무기 개발을 결정했고, 현재는 미국 러시아에 이은 세계 3위의 핵강대국이 되었습니다. 현재 중국 핵무기 혹은 핵과학의 현황과 수준은 어떻게 평가할 수 있습니까.

“중국의 핵기술은 2단계의 발전과정을 거쳤습니다. 1단계는 1955~78년으로 원자탄과 수소탄, 잠수함 핵동력장치의 개발 등 국방부문에 주력했던 시기이고, 2단계는 1979년부터 현재까지로 민수(民需)전환을 통한 국방과 민수의 공동 발전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1964년 10월 최초의 원폭실험이 신장(新疆)위그루족 자치구 뤄부보(羅布泊) 지역에서 성공리에 끝났는데 핵무기를 제조할 때, 원료는 우라늄235나 플루토늄239를 사용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라늄235를 택할 경우 비용이 더 많이 들고 고도의 기술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중국이 개발한 핵무기는 플루토늄형일 것으로 예측되었지만 중국이 당시 핵폭발에 사용한 것은 우라늄235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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