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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연재|美 비밀문서로 본 격동의 80년대④

전두환, 정권 승인 대가로 美에 핵포기, 전투기 구매 약속

  • 글: 이흥환 美 KISON 연구원 leescorner@hotmail.com

전두환, 정권 승인 대가로 美에 핵포기, 전투기 구매 약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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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정권 승인 대가로 美에 핵포기, 전투기 구매 약속

취임 직후인 1981년 1월 첫 외국 국빈으로 한국의 전두환 대통령을 초청해 환담하고 있는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

한국이 현재 경제적으로 어려운데도 미국의 대외군사 판매와 F-16을 포함한 무기 공급에 협조해줘서 감사드린다. 우리가 중국과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에 대해 한국이 불편해하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전략적인 관점에서 러시아와 관계를 진척시킬 때에도 한국의 입장을 반영하겠다.

노신영 :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고맙다. 한·미 관계가 순항할 것으로 본다. 3월3일 서울에서 전두환 대통령 취임식이 열린다. 미국이 최고위급 저명인사를 취임식에 파견해줄 수 있겠는가? 일본, 유럽 및 다른 나라들에도 미국이 최고위급 인사를 한국 대통령 취임식에 파견한다는 걸 널리 알려주었으면 한다.

헤이그 : 레이건 대통령께 상의드려보겠다. 고위급 인사를 대표로 파견하는 것을 고려해 보겠다.》

형식적인 워싱턴 일정

노신영과 헤이그의 이 대화는 양국 외교의 실무 수장 두 사람이 비공식적인 자리를 빌려 서로 속에 품고 있던 말을 주고받았다는 점에서 ‘허심탄회’하다 못해 노골적인 것이었다. 공식 회담에서는 거론하기 불편한 문제들을 까발려놓았던 것이다.



한국은 미국으로부터 전두환의 정치일정표에 대한 ‘공개승인’을 받고 싶어했고, 내친김에 대통령 취임식을 기회로 전두환 정권의 정통성을 인정한다는 ‘철인’까지 찍어줬으면 했다. 두 가지는 모두 불발이 되었다. 헤이그의 말대로 레이건 행정부는 전두환을 초청함으로써 ‘말’ 대신 ‘행동’으로 전두환 정권을 이미 ‘승인’했으며, 전두환의 대통령 취임식에는 주한 미 대사만 참석했다. 백악관의 결정이었다.

노신영-헤이그의 대화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한국이 원했던 것은 이 두 가지 외에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 반면, 미국은 전두환 정권에 핵무기 개발 포기와 미국산 무기 구입이라는 두 가지 카드를 내밀었고 모두 받아들여졌다.

도착 첫날, 노신영과 헤이그는 이 비공식 회동에서 서로 줄 것을 주고 받을 것을 받았다. 이후 전두환 일행의 워싱턴 일정은 거의 형식에 불과했다. 이튿날, 백악관에서의 레이건 ‘10분 면담’과 ‘사교 오찬’이 있은 뒤 오후에 국무부에서 전두환과 헤이그가 만난다. 한·미간 현안의 실제적인 토의는 한국 대통령과 미 국무장관 사이에서 이날 이루어진 셈이다.

美 학회에 100만달러 기부

전두환-헤이그 회동의 주요 내용은 미·중, 미·소, 미·북 관계 및 한국 경제 문제였다. 미국의 대(對)중, 대소 문제와 관련, 한국이 우려하는 점을 미국이 설득시키는 내용이었고, 통보하는 형식이었다. 이 자리에서도 헤이그는 또 한번 한국의 핵무기 개발 포기를 종용한다.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지 말라는 미국의 요구는 ‘핵 비확산 정책을 충실히 지켰으면 한다’는 표현으로 완곡하게 전달되고 있다.

좀더 구체적이고 논리적인 헤이그의 두 번째 한국 핵 프로그램 발언은 2월6일자 미 국무부의 2급 비밀문서에 적혀 있으며, 하와이 호놀룰루의 미 태평양 사령부와 도쿄 및 베이징의 미 대사관에도 발송되었다는 점이 다른 문서와 다르다.

《헤이그 국무장관은 전두환 대통령에게 한국은 원자력 발전에 필요한 핵연료 공급물과 기술을 미국에 의존할 수 있을 것이며, 한국이 현명하게 핵 비확산 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점에 대해 감사드린다는 점을 분명히 했음.》

전력생산용 원자로 가동에 필요한 핵물질은 미국이 대줄 테니 별도로 핵물질을 가질 생각은 안하는 것이 좋겠다는 것이다. 헤이그의 이러한 발언에 대해 전두환이 어떤 대응을 했는지는 이 문서에 언급돼 있지 않다.

전두환 정권에서 핵문제가 처음 거론된 시점은 방미가 확정되었던 1월22일이며, 이 문제를 처음 거론한 사람은 글라이스틴 주한 미 대사다. 1월22일자 ‘레이건-전두환 회담을 위한 협의사항 제안’이라는 제목의 2급 비밀문서에 글라이스틴은 다음과 같이 적고 있고, 워싱턴은 글라이스틴의 이 제안을 그대로 반영했다.

《핵 비확산 : 한·미 양국 모두 신행정부가 출범했으므로, 포드와 카터 행정부에서 채택된 핵 비확산의 입장을 다시 거론하는 것이 중요하며, 사적인 회동자리에서 언급하는 것이 최선일 듯함. 헤이그 국무장관과 전두환 대통령의 회동자리에서 언급될 수도 있음. 해럴드 브라운 국방장관이 박정희 대통령과 합의한 대로 우리의 확고한 입장을 누그러뜨려서는 안 될 것임.》

전두환의 방미 대가는 컸다. 스미스소니언 학회에 주기로 한 기부금 100만 달러도 헤이그가 공식회담 자리에서 직접 감사를 표할 만큼 파격적인 거금이었다. 방미 후 미국이 추진한 대한국 후속조치들을 보면 전두환이 워싱턴에 풀어놓은 ‘보따리’의 크기가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다. 다음은 2월6일 국무부 동아시아담당 부차관보 마이클 아마코스트가 헤이그 국무장관에게 제출한 조치 각서(2급 비밀) 가운데 주요 부분을 발췌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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