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 수 있는 데까지 가본 다음, 거기에 이르렀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보고 싶었”던 마르코가 보았던 것은 무엇일까. 그게 바로 ‘달의 궁전’ 아니었을까. 마르코는 전락의 순간을 최대한도로 지연시키며 그 동안 빅터 삼촌이 유산으로 남긴 천 몇백 권의 장서를 남김없이 읽어치운다. 이 명민한 컬럼비아대학 출신의 젊은이는 세상의 밑바닥까지 내려가보기로 작정한다. 그것은 일종의 제 운명 찾기, 혹은 정체성 찾기라고 할 수 있는 행동이다.
그가 착지한 현실의 막장은 공원을 떠돌며 쓰레기통에서 끼니를 해결하고 한데서 잠을 청하는 노숙자의 삶이다. 밑바닥까지 전락한 사람은 저 고원(高原)을 향하여 올라가야 한다.
저마다 다른 성을 쓰고 저마다 다른 삶의 동선에서 움직이던 세 개의 떠돌이 별들, 토머스-솔로몬-마르코는 우연한 계기에 본디 궤도로 돌아온다. 실명한 괴팍한 노인 토머스의 간병인 겸 책 읽어주는 비서로 들어갔던 마르코는 산책 도중 주변의 사물들을 자세하게 묘사해보라는 토머스의 요구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야단을 맞으면서 사물의 가변성을 직시하는 지혜를 배운다.
“소화전, 택시, 포장도로에서 피어오르는 김. 그런 것들은 내게 아주 익숙한 것이어서 나는 그것들을 아주 잘 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들의 가변성, 즉 그것들이 빛의 강도와 세기에 따라 달라지는 방식과 그것들의 모습이 주위에서 벌어지는 상황, 말하자면 그 옆을 지나치는 사람이나 갑작스러운 돌풍, 이상한 반사 등에 의해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고려하지 않았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중이었고 비록 벽을 구성하는 두 장의 벽돌이 아주 똑같아 보인다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동일한 것일 수가 없었다.”
달은 만월에서 초승달로, 다시 초승달에서 만월로 차고 기울기를 계속하는 것처럼 사람의 삶도 성공과 퇴락을 반복하며 유전한다. 우주의 모든 만물은 가변성과 유전의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다.
50년 전에 죽은 것으로 알려지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진 채 살던 장님 노인 토머스가 죽고 난 뒤 그의 유언에 따라 마르코가 찾은 솔로몬이 바로 제 아버지라는 사실이 밝혀진다. 과거-현재-미래라는 혹성들이 도는 동선(動線)은 미국의 사막과 도시들, 대륙 전체에 퍼져 있다. 그건 아주 극적이다. 연결고리가 끊어진 채 제멋대로 궤도를 순환하던 과거(할아버지)-현재(아버지)-미래(나)가 하나의 연결고리로 이어지며 본디의 질서와 궤도를 회복한다. 뛰어난 이야기꾼인 폴 오스터의 절묘한 서사 구축 솜씨가 확연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의 문체는 플로베르처럼 정확하면서도 따뜻하다. 그의 문장들이 인간의 운명의 미세한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직관과 통찰, 영감과 암시들로 충전될 때 나는 그 매혹에 쉽게 감염된다.
‘달의 궁전’은 달에서 시작해서 달로 끝난다. 첫 문장에서 아폴로가 처음으로 달에 착륙한 해를 시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음을 암시한 소설은 마르코 포그가 돈과 자동차를 잃고 서쪽으로 향하다가 밤하늘의 노란 달과 만나는 것에서 끝난다. 달의 이미지는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중국식당 이름도 ‘달의 궁전’이고 외삼촌 빅터의 밴드도 ‘문멘’이다. 달과 신대륙과 서부는 하나의 상징으로 묶인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 미래의 세계에 대한 상징이다. 토머스-솔로몬-마르코의 걸음이 한결같이 서쪽을 향했다는 것은 미국의 서부 개척사와 겹쳐진다.
중국식당 ‘달의 궁전’에서 과자에 들어 있던 점괘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태양은 과거고 세상은 현재고 달은 미래다.” 나는 단절과 무의미의 먼지들이 부유하는 삭막하고 공허한 이 세상이 실은 혈연으로 연결되어 있으며, 인생의 희로애락을 따뜻하게 공유하는 사람들이 유전하며 사는 몽환적인 ‘달의 궁전’임을 속삭일 때 감동을 받는다. 야윈 하현의 달이 차올라 둥근 만월이 되어 세상의 어두운 구석구석을 비출 때 아무리 삭막하다 해도 세상은 궁전이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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