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8월호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검은콩국수

몸짓으로밖에 전할 수 없는 맛의 깊음

  • 글: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사진: 김용해 기자 sun@donga.com

    입력2004-07-30 16:14: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 영양가 높다는 콩 중에서도 으뜸은 검은콩이다. 신장과 혈액순환에 좋을 뿐 아니라 해독성분도 있어 예로부터 한방약재로 쓰였다. 검은콩을 갈아 만든 걸쭉한 콩물에 손칼국수를 말아 얼음 몇 조각 띄워 먹으면 복날 더위마저 고소하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검은콩국수
    깊은 어둠과 적막감이 흐르는 소극장. 빙 둘러앉은 관객들 한가운데로 한 줄기 빛이 비친다. 그 곳엔 하얀 화선지가 한 장 놓여 있다. 잠시 후 자그마한 유리통 속에 갇혀 있던 개미 한 마리가 그 위로 던져진다.

    어둠 속에서 더욱 흰빛을 발하는 화선지 위를 기어다니는 검은 개미의 몸짓. 관객에겐 누군가에 의해 연출된 극적인 장면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개미에겐 현실일 뿐이다. 잠시 후 극장 한쪽 벽면의 검은 유리창이 ‘와장창’ 깨지면서 닭 한 마리가 ‘푸드덕’거리며 날아든다.

    창 밖은 바로 길거리. 깨진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극장 안은 일순 환해지고, 관객들은 깜짝 놀란다. 무심히 거리를 지나던 행인들은 창문을 통해 극장 안을 들여다본다. 어떤 이는 피식 웃고, 어떤 이는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내뱉으며 어디론가 사라진다. 극장 안에 앉아 있던 관객들은 혼란에 빠진다. ‘연출일까 아니면 실제 상황일까….’

    국내 마임1세대 유진규(柳鎭奎·52)씨가 1980년대 초반 시리즈로 발표했던 작품 ‘아름다운 사람’의 한 토막이다. 실험정신이 강했던 그는 이 작품처럼 실제적 상황을 무대에 옮기려 시도했다. 현실과 극적인 상황을 절묘하게 충돌시키며 관객에게 새로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것이다.

    결과는 실패였다. 정작 유씨 자신이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작품을 하면서 극적 상황보다 현실적 상황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커졌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공연이 무의미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현실이 곧 연극이고, 그러니 자기 삶을 충실히 사는 것이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한 거죠. 1980년대 초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의 사회적 상황도 한몫했지만 결과적으로 새로운 실험을 예술로 승화시키지 못했던 겁니다.”



    1971년 건국대 수의학과를 다니다 중퇴한 후 마임에 인생을 걸었던 유씨는 1981년 5월, 10년 동안 해온 모든 걸 접고 서울을 떠나 춘천으로 향했다. 그리고 춘천시 변두리에 땅을 사서 소를 키우며 농사를 짓기 시작했다. 소설가 이외수와 ‘춘천지기’가 된 것도 그때부터다. 하지만 세상살이는 그리 녹록치 않았다. 1985년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면서 ‘소값 파동’을 겪었고 그 와중엔 적지 않은 재산을 날린 것. 그후 친구의 권유로 자신의 작품에서 이름을 딴 ‘아름다운 사람’이라는 카페를 강원대 앞에 열었다. 그 카페는 얼마전부터는 위탁 운영 중이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검은콩국수

    ‘화선지’를 매개로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마임이스트 유진규. 그에게 마임은 곧 인생이다. 빈손으로 무대에 서서 뭔가를 만들었다가 빈손으로 내려오는 것처럼.

    그러던 1987년 말 공연기획자 신영철씨가 그를 찾아왔다. “그 사람이 ‘한국에서 마임 장르가 없어질지도 모르니 제발 돌아와달라, 책임감을 가져달라’며 간곡히 권유했는데,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마음을 무겁게 누르더군요.”

    당시 국내에 남아 있던 마임이스트는 고작해야 3, 4명. 유씨는 결국 1988년 5월 복귀공연을 시작으로 ‘마임운동’을 벌였다. 이듬해인 1989년 한국마임협의회 결성과 함께 개최한 ‘한국마임페스티벌’이 그 첫걸음이었다.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지금, ‘춘천마임축제’는 세계적인 축제로 명성을 얻고 있다. 올해 5월26~30일 열린 ‘2004 춘천마임축제’에는 프랑스, 독일, 영국 등 해외 6개국 11개 극단과 국내 50여개 극단이 참여했고, 수만명의 관객이 몰렸다.

    장맛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지난 7월1일 유씨의 아지트인 춘천 ‘마임의 집’을 찾았다. 축제사무국 겸 ‘몸짓연구소’이자 공연장, 강의실 등 다양하게 활용되는 공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구수한 냄새에 입맛이 당겼다. 한쪽에선 파전을 부치고, 다른 한쪽에선 이를 안주삼아 막걸리를 마시는 사람들로 마치 잔칫집 같은 분위기였다. 경제적 여유는 없지만 마임의 집 식구들과 이곳을 찾는 이들을 위해 가끔 이런 자리를 마련한다고 했다.

    이날의 주메뉴는 따로 있었다. 유씨가 야심만만하게 준비한 ‘검은콩국수’. 보통 콩국수보다 몇 단계 복잡하다. 먼저 콩국 만들기. 검은콩을 한나절 정도 물에 불린 다음 삶아 익힌다. 익은 콩은 찬물에 식혀 맷돌이나 믹서로 곱게 간 뒤 체로 찌끼를 거른다. 걸러진 콩찌끼는 밀가루 반죽할 때 쓴다.

    반죽은 밀가루와 콩찌끼, 깨 간것, 소금 약간을 섞어 물을 조금씩 부으면서 이겨 만든다. 반죽이 다 되었으면 한줌 정도 떼어내 밀방망이로 얇게 민 다음 2~3번 정도 접어 칼로 채 썰어준다. 이때 얇게 민 반죽을 접으면서 밀가루를 골고루 뿌려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야 칼로 썬 후 면발이 덜 엉겨 붙기 때문. 이렇게 준비된 칼국수는 끓는 물에 넣어 익힌 후 곧 얼음물로 헹군다. 그러면 면발이 더욱 쫄깃쫄깃해진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검은콩국수

    ① 맷돌로 콩을 갈고 있는 유진규씨와 그 위에 콩을 올려주는 서양화가 임근우씨. 두 사람은 예술적 동지다. <br>② 유씨를 도와 밀가루 반죽을 하던 지인들이 장난삼아 얼굴에 밀가루를 묻혔다.



    마임이스트 유진규의 검은콩국수

    유씨가 만든 검은콩국수를 맛보고 있는 단원과 축제사무국 관계자, ‘마임의 집’을 찾은 지인들.

    이제 삶아낸 칼국수 면발에 콩국을 부은 후 얼음 몇 조각과 신선한 오이채, 깨소금 등을 취향에 따라 뿌려먹으면 된다. 걸쭉하면서도 시원한 검은콩국수 맛은 일품이다. 보통 콩국수보다 훨씬 고소하고 담백할 뿐 아니라 독특한 향이 식욕을 돋운다. 콩국수 반찬으론 역시 김치가 최고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맛이다.

    마임이스트 유씨가 요즘 새롭게 추구하는 세계도 바로 우리만의 ‘몸짓’이다. 작품 공연을 위해 세계 각국을 다니면서 그는 한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었다. 몸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새로운 시각과 방법을 찾느라 방황했다. 또 4, 5년 전엔 뇌종양으로, 최근에는 무릎연골 파열이라는 육체적 고통도 그를 괴롭혔다.

    방황과 고통 속에서 그가 찾은 ‘해방구’가 바로 우리 민족 고유의 정서다. “앞으로 근원적인 우리만의 정서와 정신세계, 영혼관을 찾아내 보여주고 싶습니다.” 말하지 않기에 더 절실히 와 닿는, 가장 원시적인 인간의 표현방법인 ‘몸짓’으로.





    댓글 0
    닫기

    매거진동아

    • youtube
    • youtube
    • youtube

    에디터 추천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