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질적 공주병?
반면 내향적 감정형의 부정적인 측면은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고스란히 드러난다. 박근혜는 사람들을 살갑게 대하지 않는다. 그에게 다가가기가 쉽지 않다. 내향적 감정형은 정서적으로 안정돼 있어 좋고 싫은 감정을 밖으로 표현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에게 냉담하며 배척하는 듯한 인상을 준다. 이런 점 때문에 박근혜는 ‘스킨십이 부족하다’는 오해를 받는다. 그가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오해가 없었을 테지만, 끊임없이 사람을 만나야 하는 정치인으로서는 장애요인이다.
사고기능이 잘 발달하지 못한 것이 단점이다. 사고는 미숙한 상태로 무의식에 머물러 있으면서 ‘환원적인’ 경향을 보인다. 환원적 사고란 ‘깎아내리는 생각’을 말한다. 이런 무의식적 사고를 지나치게 억압하면 외부세계로 투사된다. 그렇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틀림없이 나쁜 생각을 하고 있다고 간주한다. 박근혜는 특히 배신자에 대해 극도의 피해의식을 느낀다. 이는 아버지가 심복에게 배신당하고, 죽임을 당한 데서 비롯됐다. 그는 사람을 믿지 못한다.
내향적 감정형의 단점 중엔 외향적 사고가 미숙해 시비를 잘 가리지 못하며, 따지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것이 있다. 그러나 박근혜에게선 이런 단점이 보이지 않는다. 이회창에게 잘못을 따지고 결국 탈당할 정도로 소신이 강하다. 아버지 박정희에게 정치를 배워 단점이 보완됐을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다른 정치인은 이회창이 두려워 말도 제대로 못했지만 박근혜는 할말을 했다는 사실이다. 다른 정치인은 이회창이 대통령이 될 사람이어서 자기보다 신분이 높다고 생각했지만, 박근혜는 대통령의 딸로 이미 퍼스트레이디까지 했기 때문에 그와 대등하다고 여겼던 것 같다. “박근혜는 남들 앞에 나서고 싶다”는 동료 정치인의 평가는 이런 데서 비롯됐다. 한나라당 전직 의원은 다음과 같이 얘기한 적이 있다.
“박근혜가 정치권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일이다. 그는 집회가 있을 때마다 항상 맨 앞줄에 앉으려고 했다. 어떤 때는 의자를 끌고 가 이회창 옆에 앉았다. 이회창과 같은 위치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체질적으로 공주병이구나 싶었다.”
융은 정신기능을 사고, 감정, 감각, 직관의 네 가지로 구분했다. 이 중에 ‘사고-감정’은 합리적 기능, ‘감각-직관’은 비합리적 기능으로 나눴다. 사고형이나 감정형인 사람은 제2의 기능으로 감각이나 직관이 발달할 수 있다. 감각이 발달한 사람은 눈치가 빠르고 이해관계를 잘 파악해 현실 적응이 뛰어나다.
감정형에 속하는 박근혜는 감각이 발달했을까. 한나라당 이정현 부대변인은 “박 대표는 상대방이 농담을 건네면 쉽게 알아듣고 그 높이에서 맞받아친다. 애드리브가 강하다”며 “이 때문에 그가 주재하는 회의나 모임은 늘 편안하다”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박근혜는 감각이 없는 사람은 아닌 것 같다.
“그 누구도 믿지 못한다”
감각적이라는 또 다른 증거가 있다. 2000년 9월초 추석을 앞두고 한나라당은 서울역 앞에서 국정파탄 규탄 대회를 개최했다. 박근혜가 인파를 헤치며 연단까지 50m를 걷는 동안 길 양편에서 환호하는 시민이 손을 내밀었다. 일순간 손으로 숲을 이뤘는데 박근혜는 바람처럼 숲을 쓰다듬으며 지나갔다. 내민 손이 닿지 않으면 그는 미소 띤 눈길을 던져 마치 악수하는 것과 같은 교감을 나눴다. 여러 개의 손을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으며, 눈길과 미소로 시민을 감전시켰다.
이처럼 박근혜는 대중을 빨려들게 하는 힘이 있다. 정치권과 언론계 인사들은 공통적으로 “정치가의 자질이 유전된다면 박근혜가 그런 사람”이라고 말한다. 조갑제닷컴의 조갑제 대표는 “정치에 입문하기 전 그는 어딘가 불안해 보였지만 정치권에 들어간 뒤로는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며 “그에게 정치무대가 맞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아 박근혜는 감각이 발달한 것 같지는 않다. 2004년 가을 박근혜가 삼성동 자택을 공개하고, 당직자와 소속의원, 출입기자를 저녁식사에 초대했다. 이때 한 여성의원이 “그동안 박 대표를 가까이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해 서운했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대화를 부드럽게 하기 위해 가볍게 던진 말이었다. 보통의 정치지도자라면 “내가 그랬나요? 미안합니다. 앞으론 자리를 자주 만들도록 하죠”라고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박근혜는 뜻밖에도 “내가 언제 안 만난 적이 있나요?”라고 반박했다.
박근혜의 직관은 어떨까. 1981년 3월2일 일기에서 그는 “무뚝뚝하고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던 사람이 나중에 보니 더 의리가 있고 인정이 많았고, 학식이 많아 기대를 걸었던 사람이 자기 중심조차 제대로 잡지 못했다”고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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