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촬영장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대본을 보고 있는 한혜진이 안쓰러웠는지, 중견 탤런트 정한헌씨가 우스갯소리를 건넸다. 시무룩하던 얼굴이 조금씩 밝아졌다. 그때 한혜진의 입에서 뜻밖의 말이 튀어나왔다.
“전, 일찍 결혼하고 싶어요. 아이도 빨리 가졌으면 좋겠어요.”
“뭣하러 결혼을 일찍 해, 천천히 하는 게 좋지. 생각 고쳐 먹어.”
“결혼하면 좋잖아요.”
“좋긴 뭐가 좋아. 한 3년만 좋지, 그 다음은 별거 없어.”
“어머, 그렇게나 빨리요?”
“결혼하더라도 꼭 신랑 몰래 딴 주머니 차야 해. 인생 선배가 하는 말이니까 새겨들어.”
잠시 웃음꽃이 피어났다. 여자가 결혼하고 싶을 땐 두 가지 경우다. 지금 하고 있는 일이 너무 힘들어서 변화를 주고 싶거나, 아니면 정말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있거나. 한혜진에겐 사귀는 사람이 있다. “곧 좋은 소식이 들리는 거냐”고 묻자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지금 당장 시집가겠다는 건 아니고요. 젊은 여자들은 누구나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어요. 결혼해서 남편이라는 울타리의 보호를 받고 싶은….”
▶ 남자친구와 구체적으로 얘기한 적은 있고요?
“아직 그런 건 없어요. 하지만 여성 연기자라고 일찍 결혼하면 안 된다는 선입관은 없어져야 한다고 봐요. 지금 당장은 아니지만 기회가 되면 빨리 결혼하고 싶은 생각이 있어요.”
▶ 결혼하고 아기 낳은 후에도 연기는 계속하겠죠?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그렇게 할지 안 할지….”
연기가 많이 힘든 모양이다. “사극 연기가 힘들죠?”라고 묻자 “힘들긴 힘든데…잘 모르겠어요” 하는 끝에 가벼운 한숨이 흘러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