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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뮬라크르의 공간, 라스베이거스 뜯어보기

“당신이 상상하는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에 없어요, 라스베이거스에 있답니다”

  • 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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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안 호텔의 자랑이라는 운하의 곤돌라.

컨벤션은 또한 관광객 계층에도 변화를 불러왔다. 수치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미묘한 변화였지만, 의미는 생각보다 엄청났다. 비즈니스를 위해 이곳에 온 이들은 예전의 도박꾼들과는 달랐다. 떠들썩한 놀이동산 분위기나 알코올의 흥겨움은 유치하거나 저급한 것처럼 느끼는 이가 상당수였다. 기존의 콘셉트를 바꿔야 할, 정확히 말해 ‘고급화’해야 할 필요가 솟아올랐다.

이러한 분위기를 타고 최근 강력하게 부상한 호텔이 2005년 완성된 윈(Wynn)이다. 이 호텔은 특정한 시대, 특정한 공간을 모델로 하지 않았다. 굳이 콘셉트가 있다면 현대 유럽풍이라는 것이 PR담당 부사장 데니스 란도조씨의 말이다. 호텔의 프런트 데스크에는 피카소의 ‘꿈(Le R릚e)’ 원본이 천연덕스럽게 걸려 있다. 호텔 객실 곳곳에서도 피카소 그림의 복사품을 볼 수 있다.

사막 한가운데 지어진 호텔 안에 호수가 있고 건너편에 솟은 작은 산에서는 폭포가 쏟아져 내린다. 산자락에 심어진 나무는 모두 각국에서 수입해온 것이다. 호수의 한 귀퉁이를 차지하는 일본 음식점에는 일본에서 공수해온 대나무가 심어져 있고, 그 아래 전형적인 일본식 정자가 꾸며져 있다. 로스앤젤레스의 로데오 거리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한 명품 쇼핑가나 도심 속 골프장도 ‘고급화’의 연장선상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고급화 전략을 표방하는 또 다른 호텔로는 베네치안 호텔이 있다.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건축양식을 그대로 옮겨놓은 이 호텔의 압권은 실내에 꾸며놓은 명품 쇼핑가. 바닥에 깔린 보도 블록 하나, 계단에 설치된 난간 하나도 진짜 베네치아의 디자인을 그대로 옮겨놓았다. 쇼핑몰의 입구에 해당하는 광장에는 운하가 있고, 그 위로 곤돌라가 지나간다. 역시 이탈리아에서 왔다는 곤돌라 뱃사공들은 낭랑한 목소리로 이탈리아 가곡을 부른다. 오가는 경비원들이 입은 옷은 이탈리아 경찰 제복이다.

베네치안 호텔 공연장은 최근 브로드웨이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공연하고 있다. 호텔 한켠에는 현대추상미술의 전당이라는 구겐하임 미술관 분관까지 유치했다. 브로드웨이가 필요하면 브로드웨이를, 르네상스가 필요하면 르네상스를, 현대미술이 필요하면 현대미술을 거침없이 불러들이는 식이다.



새로 떠오르는 이 고급 호텔들은, 외국의 것을 모방했다 해도 이전의 놀이동산 분위기 호텔과는 방식이 다르다. 놀이동산형 호텔들이 이미지만을 차용했다면 이들은 원형의 ‘이데아’를 재현하기 위해 애썼다고나 할까. 평범한 관광객이라면 누구나 실제 베네치아에 가면 사진 속에서는 볼 수 없었던 쓰레기나 운하의 탁한 수질을 보고 당혹스러워한다. 라스베이거스는 그런 부정적인 요소들을 깨끗이 정리한 채 가장 아름다운 모습으로 모방해놓았다. 실제 이탈리아 베네치아보다 라스베이거스 호텔의 쇼핑가가 오히려 사람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베네치아의 이미지에 더 가깝다고 느껴질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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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급화 전략’의 대표주자인 윈 호텔은 도심 한복판에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구비하고 있다.

멋진 것은 뭐든지

▼ 시끌벅적한 카지노 한켠에 얌전히 달려 있는 고풍스러운 나무문. 삐그덕 열고 들어가니 완전히 다른 세계다. 온통 보라색과 검정으로 디자인한 고전적인 분위기, 흔들리는 촛불, 부드러운 벨벳 방석. 벽에 걸린 고가의 그림과 짙은 갈색 마호가니 가구들. 여기는 프랑스다.

MGM그랜드 호텔이 야심차게 준비했다는 최고급 프랑스 레스토랑 조엘 로부숑이다. ‘세기의 요리사’로 선정된 바 있다는 프랑스 요리의 거장이 자신의 이름을 걸고 운영한다. 메뉴가 따로 없이 코스요리만 판매하는 이 집의 한 끼 식사는 와인을 빼고 아무리 적게 잡아도 1인당 30만~40만원. 안내를 맡은 선임부사장 로브 민씨의 얼굴에 자부심이 피어오른다.

레스토랑 한쪽에는 야외 테라스를 가장해 꾸며놓은 룸이 있다. 햇볕은 들 리 없지만, 들어서니 온통 싱그러운 생화 향기가 어찔할 정도로 가득하다. 수천 송이는 될 듯한 노랗고 빨간 장미가 벽과 바닥을 가득 메우고 있다. “몇 송이나 되느냐”는 질문에 레스토랑 종업원은 ‘죄송스러운’ 표정으로 “정확히 잘 모르겠다. 전속 정원사가 매일 공항에 나가 꽃을 받아온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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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일도 동아일보 신동아 기자 shamo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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